삼성 오너가 3세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photo 뉴시스
삼성 오너가 3세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photo 뉴시스

미국계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이하 씨티글로벌)이 지난 7월 6일 내놓은 ‘매도 의견’ 보고서가 호텔신라 주가를 끌어내리고 있다. 사실상 “호텔신라 주식을 팔라”는 씨티글로벌의 보고서는 당사자인 호텔신라는 물론 호텔신라에 대해 호평 일색인 한국계 증권사와 리서치센터들, 투자자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씨티글로벌의 이 보고서는 투자자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외국계 증권사 vs 한국계 증권사’ 간 대결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호텔신라는 삼성그룹의 대형호텔 체인이자 롯데에 이은 면세점 업계 2위 사업자다. 2017년 무려 4조115억원 가까운 매출에, 영업이익도 730억8600만원에 이른다. 최근 몇 년 호텔신라는 전략적으로 덩치 키우기에 나서고 있다. 기자가 지난 10년간 호텔신라의 재무제표를 확인해본 결과 2008년 8748억1750만원 정도이던 매출이 1년 후 2009년 1조2132억4424만으로 1조원을 넘었고, 3년 뒤인 2012년에는 2조2196억3855만원으로 매출 2조원을 돌파했다.

다시 2015년에는 3조2516억7955만원대로 매출이 급격히 늘었다. 2015년 이후 호텔신라의 덩치 키우기 속도는 전보다 훨씬 빨라지고 있다. 예컨대 2017년 호텔신라는 4조114억원9999만원까지 매출을 늘리며, 매출 3조원대가 된 지 불과 2년 만에 매출 4조원대로 몸집을 빠르게 불렸다.

10년간 덩치 4.6배 불려준 ‘면세점 올인’

재무제표를 바탕으로 직접 계산해본 결과, 호텔신라는 10년 만에 덩치를 4.6배 가까이 키웠다. 연평균 18.44%씩 덩치를 불린 것이다. 10대 그룹 주요 계열사 중 이렇게 짧은 기간 엄청난 속도로 몸집을 불린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지난 10년간 호텔신라가 덩치를 키워온 상황을 보자. 기존 신라호텔 외에 2013년 비즈니스호텔 체인 브랜드인 신라스테이를 만들어 서울과 경기·제주·부산·울산 등 전국으로 확장했다. 면세점 덩치 키우기는 더 폭발적이다. 사명(社名)에는 ‘호텔’만 있을 뿐, 면세점에 대한 정체성은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뜯어보면 호텔신라에 호텔 장사는 사실 주력 사업이 아니다. 수익과 사업 구조만 보면 호텔신라는 면세점 기업이다.

전체 매출 중 면세점 비중이 89~90%를 넘는다. 2013년 전체 매출에서 면세점 비중이 처음 90%를 넘은 후 지금까지 한 번도 예외 없이 면세점 비중이 89~90%를 넘고 있다. 결국 호텔신라의 폭발적 덩치 키우기는 사실상 면세점 덩치 키우기에 ‘올인(All-in)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동안 호텔신라가 선택한 빠른 속도의 덩치 키우기 전략은 기관과 개인 등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어냈다. 2017년 후반기부터 주가도 급상승했다. 지난해 중반만 해도 5만원대였던 주가가 10월 말 7만원대를 찍었고 8월 초에는 8만원까지 넘었다. 주가 폭등세는 2018년에도 이어져 지난 1월 10일 9만원을 넘었고, 4월 2일에는 10만원 선까지 뚫었다. 6월 14일에는 13만2000원까지 오르며 13만원대도 뚫었다.

이런 상황에서 7월 초 호텔신라를 향한 경고음이 울렸다. 7월 6일 미국계 씨티글로벌이 부정적 의견을 적시한 보고서를 작성한 것이다. 씨티글로벌은 기존 14만4000원으로 제시했던 호텔신라의 목표주가를 8만9000원으로 단숨에 38.2%나 끌어내렸다. 외국계든 토종 증권사든 특정기업의 목표주가를 한 번에 40% 가까이 끌어내리는 사례는 많지 않다. 사실상 주주들에게 “호텔신라 주식을 팔라”는 매도 의견을, 투자자들에게는 “호텔신라 투자는 고민해야 한다”고 의견을 던진 것이다.

목표주가 38% 추락시킨 미국계 씨티

씨티글로벌은 왜 호텔신라 목표주가를 끌어내렸을까. 씨티글로벌은 “롯데가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탈락과 사업 철수로 그동안 인천공항 면세점에 투입했던 엄청난 자금을 고스란히 (서울 등) 시내 면세점에 투입할 것”이라며 “롯데가 (중국인 관광객 알선 여행업체 등 브로커에게) 알선 수수료 등 마케팅비를 본격적으로 확대해 시내 면세점 경쟁을 격화시키면 내년 호텔신라의 성장률이 둔화될 것”이라는 이유를 내놨다. 또 “신세계가 반포에, 현대백화점이 (삼성동) 코엑스에 면세점을 열면 지금도 심한 시장 경쟁이 더 격화될 것”이라는 점도 제시했다. 이렇게 되면 2019년과 2020년 호텔신라가 직격탄을 맞아 순이익 전망치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호텔신라 덩치 키우기의 핵심이던 면세점 사업에 대해 씨티글로벌이 ‘발목을 잡을 위험 요소’라고 지목한 것이다.

씨티글로벌의 보고서는 당장 주가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 보고서가 나오고 첫 거래일이던 7월 9일 하루 호텔신라의 주가는 11.11% 이상 폭락했고, 7월 11일에는 9만9900원으로 10만원도 무너졌다. 이후 계속 하락해 7월 25일 9만5900원까지 떨어졌다. 씨티글로벌의 매도 의견 제시 13일(거래일 기준) 만에 호텔신라 주가는 14.8%나 추락했다.

파격적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은 씨티글로벌 측에 구체적인 내용을 듣기 위해 취재 요청을 했다. 씨티글로벌은 “(계약된 투자자에게만 제공하는) 비공개 보고서에 대해 언론 언급을 할 수 없다는 내부 규정상 관련 내용을 회사나 담당자가 설명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런데 씨티글로벌이 호텔신라 보고서를 낸 후 토종 증권사 리서치 조직들은 마치 이에 반발하듯 완전히 상반된 내용의 리포트를 쏟아내고 있다. 7월 9일 오전 신한금융투자는 “2~3분기 (신라호텔 영업) 이익 최고치 예상”을 주장했고, KTB투자증권은 “하반기 호텔신라 면세점 사업 기대할 수 있고, 시장경쟁 심화돼도 (호텔신라의) 수익성 약화는 제한적”이라며 모두 목표주가를 16만원으로 전망하는 매수 보고서를 내놨다. 7월 12일에는 삼성증권이 무려 17만3000원의 목표주가를 제시한 보고서를 내놨고, 7월 16일 한국투자증권은 이전보다 5%나 목표주가를 올려 ‘주가가 14만4000원이 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한화투자증권은 7월 17일 9만4000원이라던 목표주가를 12만9000원이 될 거라며 37%나 폭등시킨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미국계 씨티글로벌과 반대되는 내용과 목표주가를 제시한 한국계 증권사들의 보고서가 시장에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호텔신라를 두고 마치 외국계 vs 한국계 증권사 리서치 조직 간 대결 구도 같은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지금 구도에서, 시장은 미국계 씨티글로벌이 내놓은 분석에 더 영향을 받고 있다. 당장 7월 9일 이후 한국계 증권사 리서치센터들이 목표주가를 올리거나 매수 의견 보고서를 대거 쏟아내고 있지만, 7월 25일 현재까지 단 13일 만에 호텔신라 주가는 14.8%나 떨어졌다.

씨티글로벌발 호텔신라 주가 하락은 기관투자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특히 외국계 vs 한국계로 나뉜 증권사 리서치센터들 간 대결 구도와 달리 기관투자자들은 외국계는 물론 한국계 기관투자자들까지 씨티글로벌 보고서가 나온 직후 대거 ‘팔자’에 나서고 있다. 7월 9일 하루 외국계 기관투자자가 23만176주의 호텔신라 주식을 처분하는 동안 한국계 기관투자자들은 이보다 2배 이상 많은 47만4959주의 호텔신라 주식을 팔아치웠다. 한국계 기관투자자들마저 한국계 증권사 리서치센터들이 제시한 투자 의견보다, 매도 의견을 낸 외국계 증권사 보고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덩치 키우기 핵 ‘면세점’이 발목 잡을 수도

사실 한국계와 외국계 증권사 리서치 조직 간 투자 의견과 목표주가, 분석 내용이 충돌하는 경우는 종종 있어왔다. 이 경우 투자자들이 혼란스러워하거나 해당 기업이 반발하곤 한다. 한국 1세대 애널리스트로 대우증권 사장을 지낸 홍성국씨는 “토종과 외국계 간 대결 구도라기보다, 서로 분석 관점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가끔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했다. 그는 “외국계는 해당 업종과 관련 기업을 전 세계에 걸쳐 분석하고 밸류에이션(가치)을 산출해 의견을 내는 반면, 한국계 증권사 리서치 조직은 국내 시장 상황에 중점을 두고 분석하는 경향”이라고 했다. 홍 전 사장은 “한국계들은 관례적으로 삼성그룹 계열사에 대해 시장 프리미엄을 더하는 경우가 많은데, 외국계는 (분석 결과 이외) 특정 기업 프리미엄을 고려한 투자 보고서가 없다”며 “이런 분석 방법의 차이가 같은 기업에 대해 외국계와 한국계 간 전혀 상반된 내용의 보고서가 종종 나오는 이유”라고 했다.

익명으로 취재에 응한 외국계 투자사 관계자는 “한국계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분석은 주관성이 상당 부분 개입돼 있다는 평이 크다”며 “경험적으로도 그렇고, 실제 보고서 내용도 주관적으로 해석한 것들이 많다”고 했다. 그는 “외국계와 달리 한국계 증권사와 애널리스트, 기업 사이에는 공생관계 같은 분위기도 있다”며 “결국 기관투자자의 실제 투자 판단 시 외국계의 투자의견이 더 큰 영향력을 보이는 이유”라고 했다.

호텔신라 측은 씨티글로벌의 보고서에 대해 “(부정적 투자 의견 제시는) 씨티 측 애널리스트의 개인적 추측과 생각으로 보인다”며 “투자자들이 심리적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호텔신라 관계자는 “올 1분기 이미 영업이익이 440억원 이상일 만큼 상황이 나아져 있다”며 “남은 3개 분기에 이 정도만 해도 (수익성이) 지난해보다 훨씬 좋은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씨티글로벌 애널리스트의 과도한 판단이라는 것이다.

실제 호텔신라의 1분기 실적은 나쁘지 않다. 1분기 이미 1조1255억100만원의 매출에 441억원 이상 영업이익을 올렸다.

그런데 문제는 역시 면세점 사업에 올인한 듯한 사업구조다. 면세점을 통한 덩치 키우기 전략에 더욱 몰입하는 상황에서 또 다른 사업 축인 호텔(레저 포함) 사업의 영업이익은 1분기 적자다. 사실 이 점이 면세점 사업의 덩치 키우기를 중단할 수 없는 뼈아픈 이유이기도 하다. 리크스 관리가 쉽지 않은 사업구조라는 뜻이다.

‘리스크 관리보다 덩치가 먼저’

이런 구조에서 씨티글로벌의 분석처럼 하반기 이후 면세점시장에 이상기류가 나타나면 호텔신라가 1~2분기와는 다른 상황을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호텔신라는 지난 10년간 면세점 사업 확대를 통해 4.6배에 이르는 덩치 키우기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영업이익과 영업이익률 등 수익성 지표는 오히려 정체 혹은 악화된 상황이다. 호텔 사업의 영업이익이 적자로 몰렸고, 면세점 사업의 영업이익(률)까지 최근 몇 년간 악화돼왔다. 향후 시장 상황에 따라 세(勢)가 꺾이게 되면 ‘잘될 수 있다’고 맹목적으로 말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아무튼 현재 호텔신라는 외국계와 한국계 증권사 간 완전히 반대로 분석되고 있다. 분석력이 떨어지는 개인투자자들을 위해서라도 좀 더 객관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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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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