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숲모기
이집트숲모기

지구상에서 가장 무서운 동물은 무엇일까? 세계보건기구(WHO)가 뽑은 인간에게 가장 위험한 동물은 모기다. 지구상에 약 3500종이 존재하는 모기는 역사상 그 어떤 동물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인 동물이다. 매년 72만명의 목숨을 앗아간다. 이 공포의 모기를, 살충제가 아닌 같은 모기로 퇴치하는 방법이 성과를 거두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호주, 번식능력 없앤 모기로 뎅기열 퇴출

세계적으로 모기 퇴치를 위해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은 살충제다. 하지만 살충제가 빈번히 사용되면서 주성분인 ‘피레스테로이드’에 내성을 가진 모기가 점점 늘어나 대처하기 힘들어졌다. 뿐만 아니다. 살충제가 해충은 물론이고 조류, 포유류 등 야생동물, 더 나아가 사람에게도 심각한 해를 끼친다는 사실이 하나둘씩 확인됐다. 이제 합성 화학 살충제로 모기 같은 해충을 퇴치할 수 있다고 믿는 과학자는 아무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8월 2일, 호주의 모내시(Monash)대학 스콧 오닐 박사팀이 퀸즐랜드의 열대 도시 타운즈빌에서 모기를 박멸할 수 있는 획기적 방법을 찾아 뎅기열을 완전 퇴치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에프킬라 같은 살충제가 아닌, 살아 있는 살충제 ‘볼바키아(Wolbachia)’라는 박테리아를 이용해 모기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모기는 생물학적으로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오직 암컷만이 흡혈을 한다는 점(수컷은 식물의 즙액이나 과즙을 먹고 산다)이고, 두 번째는 수컷들은 암컷을 정말 잘 찾는다는 점이다. 의료곤충학자인 오닐 박사는 이 두 가지 특징에 착안했다. 오닐 박사는 비영리단체인 ‘세계 모기 프로그램(WMP)’의 소장으로, 인도네시아 요그야카르타를 비롯한 11개국에서 볼바키아 박테리아를 이용한 생물적 방제를 시도하고 있다.

박사팀은 먼저 뎅기열을 옮기는 이집트숲모기(Aedes aegypti) 수컷의 배아(알)에 약간의 조작을 가했다. 볼바키아 박테리아를 주입해 감염시킨 뒤 성체가 될 때까지 배양한 것. 연구팀은 이런 수컷 모기를 자연 상태에 놓아주면 어떻게든 암컷을 잘 찾아 날아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타운즈빌의 약 7000여가구에 볼바키아 박테리아에 감염된 수컷 이집트숲모기 알과 먹이가 든 통을 정원에 놓아두었다.

연구팀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알에서 부화한 약 400만마리의 새끼는 먹이를 먹고 자라 온 도시에 퍼졌다. 이들이 야생 모기들과 짝짓기를 하여 볼바키아에 감염된 모기를 도시 전체로 확산시키는 게 연구팀의 목적이었다.

볼바키아는 세포 내에 기생하는 박테리아다. 세계 60% 이상 곤충 종의 세포 안에서 영양분, 효소 등을 차지하고 서식하면서 암수 결정, 개체 발생, 수명 등 생리적 현상을 조절한다.

볼바키아에 감염된 수컷이 새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유전자를 가졌다면 짝짓기 결과는 어떨까. 짝짓기를 거듭할수록 모기 개체 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암컷 한 마리가 한 번에 약 100개, 평생 동안 500개 정도의 알을 낳는다고 하니 제대로만 된다면 그 효과는 엄청날 것이 분명하다.

오닐 박사팀의 시도는 실제 효과가 크게 나타났다. 타운즈빌 66㎢ 반경 지역이 뎅기열의 공포로부터 완전 해방된 것. 볼바키아에 감염된 수컷 모기와 감염되지 않은 암컷 모기가 교미를 한 뒤 낳은 알은 부화하지 않았다. 수컷 모기의 정자 변형으로 배아(알) 자체가 유전적 결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정상적 암컷 모기와 유전적 결함이 있는 수컷 모기와의 ‘잘못된 만남’이 충분히 이루어진다면, 그 일대의 모기 개체군은 멸종할 것이다. 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생물적 방제에 성공한 것은 오닐 박사팀의 연구가 처음이다.

한편 볼바키아 박테리아는 암컷이 감염될 경우 후대에 전염되고 감염률도 높다. 박테리아에 감염된 암컷 모기와 감염되지 않은 수컷 모기를 번식시킨 결과 34세대 모기까지 볼바키아 박테리아에 감염된 사실이 확인됐다. 볼바키아 박테리아에 감염된 채 태어나는 모기의 수명은 짧다. 평균 21일로, 정상적인 모기가 평균 50일을 산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수명이 반 이상 줄어드는 것이다. 모기의 수명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면, 그만큼 사람에게 질병을 퍼뜨릴 시간도 줄어들어 질병의 위협이 낮아진다.

‘모기 박멸’ 프로젝트를 진행한 스콧 오닐 박사(오른쪽). ⓒphoto The Australian
‘모기 박멸’ 프로젝트를 진행한 스콧 오닐 박사(오른쪽). ⓒphoto The Australian

모기 매개 질병 전파경로 차단한다

볼바키아 박테리아에 감염된 수컷 모기는 결국 나쁜 모기를 잡아주는 착한 모기인 셈이다. 모기는 물리는 것보다 모기가 옮기는 질병 바이러스 때문에 더욱 골칫거리다. 뎅기열은 뎅기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집트숲모기, 흰줄숲모기가 사람을 물었을 때 바이러스가 사람 몸속으로 들어와 걸리는 질병이다. 이 중 흰줄숲모기는 한국에도 서식한다.

뎅기열은 두통과 고열, 근육통 등의 증세를 동반하는데 매년 전 세계 감염자가 5000만∼1억명에 달할 정도로 전염성이 높다. 모기는 작지만 심하면 목숨까지 앗아가는 매우 위협적인 살인자다. 중증환자 치사율은 50만명 중 약 2만명으로 높진 않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감염자가 워낙 많아 세계보건기구 등이 가장 위험한 감염병 중 하나로 분류하고 있다.

앞으로 이런 걱정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연구팀은 볼바키아 박테리아에 감염된 수컷 모기를 반복해서 자연계에 대량으로 풀어 놓으면 모기의 개체 수가 줄어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모기의 개체 수를 통제하여 뎅기열뿐 아니라 지카열, 치쿤구니야열과 같은 모기 매개 질병의 전파경로를 차단하는 데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뎅기열 바이러스의 경우 모기 안에서 8~10일 동안의 잠복기를 거치기 때문에 모기가 성숙하기 전에 죽는다면 질병이 퍼질 위험이 줄어들 수 있다.

지금까지 온갖 방법이 시도됐지만 모기 전염 질환을 막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원천적으로 모기 퇴치법을 찾은 오닐 박사팀의 이번 연구는 처음으로 그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게다가 수컷 모기는 물지 않기 때문에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편 볼바키아 박테리아에 감염된 모기 또한 기존의 유전자 변형 모기와 달리 돌연변이가 발생할 위험성이 적어 생태계에도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과 같은 첨단과학 시대에 한낱 미물을 박멸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아직 인간이 갈 길은 멀다. 이제라도 오닐 박사팀의 연구를 통해 인류 역사에서 계속 진행되어온 모기와의 전쟁이 끝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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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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