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최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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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미영 박사는 줄기세포로부터 사람의 작은창자(소장)와 비슷하게 기능하는 조직을 만들었다. 지난 8월 20일 대전 대덕의 한국생명과학연구원에서 만난 손 박사는 “소장 오가노이드, 즉 장관 유사체는 신약 개발 실험에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생명공학연구원 줄기세포연구센터 책임연구원. 소장 오가노이드 관련 손 박사 논문은 지난 8월 2일자 학술저널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실렸다. 이 저널은 관련 분야 상위 5% 학술지에 속한다.

손 박사에 따르면 줄기세포 연구에는 세포 치료제 개발과 신약 개발이라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세포 치료제는 파킨슨병이나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신경퇴행성질환이나 유전병 치료를 위해 고장 난 세포를 대신할 건강한 세포를 줄기세포로부터 만드는 일이다. 손 박사는 “세포 치료제 개발에는 한국이 강하다”라고 말했다.

손 박사는 신약 개발 목적으로 쓰일 줄기세포 연구를 한다. 신약을 개발하면 동물을 상대로 먼저 약효를 실험한다. 동물실험에서 성공하면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한다. 임상실험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에 조심스럽다. 또 동물에서는 효과가 있었으나 사람에게는 듣지 않는 경우도 많다.

“동물실험과 임상실험의 간극을 메울 필요가 있다. 줄기세포로 만든 소장 유사체, 즉 소장 오가노이드가 이 일을 할 수 있다. 입으로 삼키는 약물은 소장에서 흡수된다. 때문에 소장 오가노이드를 통해 약물효과 실험을 하면 매우 효과적이다.”

더구나 소장 오가노이드는 환자의 유전 정보를 갖고 있다. 환자의 체세포로 만든 줄기세포를 키워 오가노이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신약이 해당 환자에게 효과가 있을지를 예측할 수 있다.

8월 초 네이처커뮤니케이션 학술지에 손 박사의 연구가 실렸다는 게 생명공학연구원 보도자료를 통해 알려졌다. 많은 언론이 ‘인공장기를 만들어내기 위한 전 단계’라는 식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손 박사 연구는 신약 개발을 위한 목적으로 쓰일 장기 유사체이지, 장기를 대체할 수 있는 인공장기가 아니다. 오가노이드 개발은 세계적으로 7~8년, 한국에서는 5년 전부터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뇌 오가노이드, 심장 오가노이드와 같이 유사 생체조직을 생명공학자는 만들어내고 있다.

손 박사가 빛나는 대목은 ‘체외 성숙화’ 기술이다. 자궁 밖으로 막 나온 신생아는 소장과 대장이 완성되지 않았다. 장에 사는 미생물이 정착하고, 딱딱한 음식이 들어오면서 모양과 기능이 완성된다. 즉 체외에서 성숙된다. 기존 연구는 발달이 완성되지 않은 신생아의 장과 유사한 오가노이드를 만들어내는 수준까지였다. 인간과 같은 체외 성숙을 구현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이다. 손 박사는 “체외 성숙화를 시도한 기존의 연구가 실패한 건 체내 환경과 같은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손 박사는 소장 오가노이드를 ‘체외 성숙’시키기 위해 줄기세포에 발달단계별로 적절한 인자를 처리하여 소장 오가노이드를 먼저 만들었다. 이어 면역세포와 소장 오가노이드를 같이 키웠다.

“배양 용기 바닥에 면역세포를 놓았다. T림프구의 일종인 저캇(Jurkat) T세포로부터 면역인자가 분비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용기의 상단에 오가노이드를 올려놓았다. 분비된 면역인자가 용기 안에서 위에 있는 미성숙 오가노이드의 성숙을 도왔다. 저캇 T세포가 분비하는 화학물질인 인터루킨-2(IL-2)가 소장을 이루는 세포들의 유전자 발현을 돕는 것으로 확인됐다.”

인체와 똑같은 체외 성숙화도 구현

소장이 기능하기 위해 필요한 네 가지 세포(흡수세포·배상세포·파네스세포·내분비세포)를 모두 오가노이드는 갖고 있다. 또 각각의 세포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확인시켜주는 ‘마커’라고 불리는 단백질도 존재했고, 특히 성숙한 소장에서만 보이는 단백질들이 확인되었다.

손 박사가 오가노이드를 만든 줄기세포는, 역분화줄기세포이다. 모든 세포로 자랄 수 있는 줄기세포를 ‘전(全)분화능줄기세포’라고 한다. 전분화능줄기세포에는 배아줄기세포와 역분화줄기세포가 있다. 배아줄기세포는 논란을 빚은 황우석씨가 연구했고, 역분화세포는 2012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야마나카 신야 교토대학 교수가 연구했다. 체세포를 갖고 거꾸로 줄기세포로 만들어낸 게 역분화세포이다. 인간의 이 역분화줄기세포로 오가노이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성숙한 소장 오가노이드 제작에는 5주가 걸린다. 미성숙 오가노이드 제작에 3주, 성숙 오가노이드는 2~3주가 더 소요된다. 성숙된 오가노이드는 기능을 유지는 6개월간 사용이 가능하다. 신약 개발에 사용하려면 균질해야 하고, 대량 생산이 필요하다. 대량 배양도 해야 한다. 이 부분은 앞으로 손 박사가 완성도를 더 높여야 할 기술이다.

“검증, 재현이 어려웠다. 내가 만들어낸 방법으로 다른 사람이 해봐도 똑같은 결과가 나와야 한다. 이번 연구는 2014년부터 4년이 걸렸다. 이 중 재현 실험에 2년이 걸렸다.

처음 시작할 때 세포의 상태에 따라 분화가 안 되기도 했다. 또 연구자의 손을 많이 탔다. 이 사람이 하면 되는데, 다른 사람이 하면 안 됐다. ‘됐다’ 싶은 게 2015년 말이었는데 이로부터 논문이 나오기까지는 두 번의 겨울이 더 지나야 했다.”

손 박사는 부산 태생. 문현여고-경북대 미생물학과(94학번)를 다녔다. 석사를 마치고 2000년 기업에 들어갔다. 바이오벤처기업인 바이오니아와 한화케미칼에서 일했고, 2005년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 들어왔다. 생명공학연구원의 상사인 한용만 현 카이스트 교수(생명과학) 권유로 2009년 카이스트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석사로 연구원에 들어온 거의 마지막 세대다. 이제는 박사학위를 가져야 연구원에 들어올 수 있을 거다. 생명연에 들어온 이후 줄기세포 연구를 시작했다.”

초기에는 환자 맞춤형 역분화 줄기세포 연구를 했다. 체세포로 줄기세포를 만들고, 이 줄기세포로부터 질환이 표현되는 분화세포를 만들어 질환 연구를 했다. “처음 10년간은 깊은 연구보다는 얕고 넓게 연구했다. 이제는 깊게 집중할 수 있는 연구를 하려고 한다.”

소장 오가노이드 연구는 2014년부터 시작해 4년이 걸렸다. 앞으로는 소장과, 소장을 완성시키는 장내 미생물의 연관성 연구를 할 계획이다. 손 박사가 학부와 석사과정 때 공부한 게 ‘미생물’이다. “미생물과 줄기세포를 잇는 연구를 하고 싶다. 장내미생물은 마이크로바이옴이라, 최근 연구가 많이 되고 있다. 장내에는 조 단위의 미생물이 산다. 이 미생물이 장의 발달과 기능을 완성시킨다. 장내미생물을 연구할 수 있는 모델이 장 오가노이드이다.”

손 박사는 4~5년 전부터 장내미생물 연구를 위한 인체 모델 개발을 준비했다. 현재는 장내미생물 연구를 위한 인체 모델이 없다. 국내 저명 미생물학자는 인간 장 오가노이드를 기다리고 있다. 손 박사가 완성도를 높일 소장 오가노이드는 장내미생물 연구와 신약 개발을 위한 흡수 모델로 사용될 전망이다. 40대 초반인 손 박사가 앞으로 무엇을 연구할지는 훤히 보였다. 그리 머지않은 시기에 그의 다른 연구가 주목받기를 기다린다.

최준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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