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국제도시 전경 ⓒphoto 윤동진 조선일보 기자
송도국제도시 전경 ⓒphoto 윤동진 조선일보 기자

한·미 민간합작사업으로는 최대 규모로 알려진 24조원 규모 송도국제도시 개발사업의 최대 주주가 미국 회사에서 홍콩의 투자회사로 바뀌었다. 이 사업은 미국 게일인터내셔널과 우리나라 포스코건설이 각각 70.1%와 29.9%의 지분을 갖고 있는 NSIC(New Songdo International CITY)란 법인이 주도해왔다. 게일과 포스코건설은 2015년 이후 경영권 분쟁을 벌여오다 지난 9월 11일 포스코건설이 게일 측 NSIC 지분 70.1%에 대해 질권 실행을 하면서 지분을 홍콩계 회사에 팔았고, 경영진과 직원은 모두 포스코건설 측 사람으로 교체했다. 질권이란 채무자가 채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계약 당시 담보로 제공한 동산·유가증권·채권 등을 채권자가 처분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새로 대표이사가 된 인사는 과거 포스코건설 측이 인천지검에서 수사를 받을 당시 이금로 인천지검장(현 법무부 차관)과 골프를 쳐서 물의를 빚은 포스코건설 임원 출신이다. 포스코건설 측 인사들은 2014년부터 업무상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아왔다. 같은 혐의에 대해서 경찰은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으나, 검찰은 무혐의 처분한 바 있다.

게일인터내셔널은 송도국제도시 개발 과정에서 잭니클라우스골프장, 채드윅국제학교, UN GCF(녹색기후기금)본부, 아시아 최초의 프레지던트컵골프대회 유치 등을 주도했으나 16년 만에 송도사업에서 물러날 위기에 놓였다. 포스코건설은 이번 질권 실행과 물갈이가 게일이 금융회사들에 갚지 못한 돈을 대위변제함에 따라 이뤄진 정상적인 절차라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건설의 이번 조치로 송도국제도시의 상징적 의미나 다름없던 ‘한·미 최대 규모 민간합작사업’이란 간판은 내리게 됐고, 홍콩계 투자회사가 미국 주요 개발사의 지위를 이어받게 됐다. 포스코건설에 의해 일방적으로 송도국제도시 사업에서 물러나게 된 게일 측은 추후 대응 방안 등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송도국제도시는 당초 계획안의 절반 정도만 개발이 이뤄졌는데 최대주주가 도중에 교체되면서 사업 성패의 관건은 홍콩 회사가 이 사업을 이어받을 만한 능력과 의지를 갖고 있느냐로 모아지고 있다. 게일인터내셔널의 스탠 게일 회장은 카네기 회장, 트럼프 대통령 등과 함께 미국에서 디벨로퍼 순위 10위 안에 드는 사업자였다. 물론 대형 건설사인 포스코건설이 향후 사실상 사업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포스코건설은 수익성 높은 주택사업에 초점을 맞추다 파트너였던 게일 측과 의견 충돌이 잦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건설의 새로운 파트너가 돼 송도국제도시 건설에 뛰어들 홍콩 회사는 어떤 곳일까. 주간조선이 홍콩의 법인등기 검색 시스템, 즉 한국으로 치면 대법원 인터넷등기소와 같은 사이트를 통해 입수한 NSIC 새 대주주의 등기를 보면 포스코건설이 송도국제도시의 대주주로 끌어들인 홍콩계 투자회사 중 한 곳이 사실은 영국령 앵귈라라는 조세피난처에 모회사를 둔 투자회사인 것으로 드러났다.

포스코건설이 언론에 배포한 자료에 보면 게일을 대신해 NSIC의 새 대주주가 된 투자사는 ACPG(Asia Capital Pioneers Group), Troika Advisory(TA)란 이름의 두 회사다. 포스코건설은 게일이 가지고 있던 NSIC 지분을 두 회사가 각각 45.6%, 24.5%씩 인수했다고 홈페이지에도 공지하고 있다. 하지만 포스코건설이 언론에 배포한 자료와 다르게, NSIC 지분을 인수한 회사의 실제 명칭은 ‘ACPG K-land’와 ‘Troika Investment NSIC Limited’(TI)다. 이 명칭은 ACPG K-land와 TI의 국내 법률대리인인 율촌이 작성한 자료에 정확하게 나와 있다. 홍콩 법인등기부 검색시스템에는 트로이카(Troika)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여러 회사가 등장하는데 TA와 TI는 엄연히 다른 회사다. 포스코건설 보도자료에는 TA에 대해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Scottsdale)에서 약 2만㎡ 규모의 커뮤니티 조성사업의 마스터플랜 수립에 참여한 바 있다”는 설명도 덧붙이고 있다. 결과적으로 국내 언론과 송도국제도시 관련기관, 송도 주민들은 포스코건설이 배포한 자료에 의존해 새 사업자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밖에 없는데, 정작 포스코건설은 율촌이 작성한 자료와는 차이가 있는 자료를 외부에 공개한 셈이다.

포스코건설, 다른 회사 자료 언론에 배포

그렇다면 실제 송도국제도시 사업의 대주주로 참여한 TI는 어떤 회사일까. TI의 원래 명칭은 ‘엠파이어 웨이 코퍼레이션 유한회사(Empire Way Corporation Limited)’로 포스코건설 질권 실행 한 달 전인 8월 6일 이름을 바꿨다. 엠파이어 웨이 코퍼레이션 유한회사 역시 7월 23일 새로 만든 회사로 ‘GRLI8 SECRETARY LIMITED’(이하 GRLI8)란 회사 소유다. GRLI8 역시 7월 23일 등록한 회사다. GRLI8는 자본금 1홍콩달러(약 143원)로 만들어졌으며, 이 회사를 설립한 모회사는 서인도제도 동부에 있는 영국령 섬인 앵귈라(주소 Victoria House, P.O. Box 58, The Valley, Anguilla)에 위치해 있다. 앵귈라는 울릉도보다 조금 큰 넓이로, 국세청이 지정하고 있는 14개 조세피난처 국가 중 하나다.

또 다른 투자사인 ACPG K-land 역시 2018년 7월 23일 등록된 회사다. 앞서 언급한 TI와 등록일자가 같다. ACPG K-land의 자본금은 1000홍콩달러(약 14만3000원)다. 이 회사의 모회사는 ‘ACPG Perfect Capital Limited’(ACPG Perfect)로 역시 2018년 7월 23일 등록됐다. ACPG Perfect를 설립한 주체가 Asia Capital Pioneers Group(이하 ACPG)으로, 바로 포스코건설이 배포한 보도자료에 나오는 이름이다. ACPG는 1만홍콩달러(약 140만원)의 자본금으로 만들어졌으며 2017년 4월 21일에 등록됐다. ACPG K-land, ACPG Perfect, ACPG 세 개 회사 모두 ‘Golden Rise Enterprise Limited’(이하 골든라이즈)란 회사 소속이다. 즉 송도사업의 또 다른 대주주로 포스코건설이 소개한 ACPG의 정확한 명칭 역시 2018년 8월 6일 TI와 같은 날짜에 이름을 바꾼 ACPG K-land다. 포스코건설이 언론에 소개한 TA란 회사는 TI와 홍콩의 같은 사무실을 쓰고, 대표(Director)도 같은 인물이지만, 설립일자가 전혀 다르다. 게다가 TI는 TA와 달리 ACPG K-land와 등록일자가 같다는 점에서 사실상 송도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TA란 회사도 이름만 보면 컨설팅 회사인데 송도국제도시 사업에 컨설팅 회사가 1대 주주로 들어오는 것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회계사 출신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주간조선이 입수한 자료를 보고 “자본금이 1홍콩달러라는 사실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조세피난처에 모회사를 둔 상황에서 다른 정보가 투명하지 않은 회사가 송도 개발사업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지분(24.5%)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납득이 잘 안 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회사의 이력과 정체성이 분명치 않아 과연 이 정도 규모의 사업에 투자자로 참여할 자격이 있는 회사인지 포스코건설이 더 명확하게 소명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외환거래법 위반 수사에 정통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사실상의 조세피난처인 홍콩법인의 모회사가 또 다른 조세피난처에 세워졌을 경우 실소유주가 누구인지를 감추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런 경우 법인대표도 현지인을 내세워서 만드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비슷한 사안을 수사해봤지만 실소유주가 실제로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주간조선이 단독으로 입수한 송도국제도시 개발회사의 새로운 대주주인 ACPG K-land와 Troika Investment NSIC Limited의 등기.
주간조선이 단독으로 입수한 송도국제도시 개발회사의 새로운 대주주인 ACPG K-land와 Troika Investment NSIC Limited의 등기.

물의 빚은 포스코건설 임원이 새 대표로

게일인터내셔널이 물러나고 포스코건설이 끌어온 회사가 송도사업의 새 대주주가 되면서 이 사업은 사실상 NSIC 2대 주주인 포스코건설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됐다. 포스코건설은 2015년 이후 송도사업과 관련해 게일 측과 수십 건의 민형사 소송을 벌여왔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서로의 책임 공방이 난무하면서 사업은 사실상 올스톱됐다. 이런 가운데 포스코건설 측 임원이 당시 인천지검장이었던 이금로 법무부 차관과 함께 포스코건설이 운영하던 골프장에서 골프를 친 사진이 한 언론에 의해 보도되는 일도 있었다. 당시 포스코건설 측 임원은 법무부 법사랑위원회 임원들과 가진 모임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이들은 모두 포스코건설 측 하청업체를 운영하던 인사였다. 당시 골프를 쳤던 포스코건설 측 임원은 9월 18일자로 NSIC의 새 대표이사가 됐다.

포스코건설은 이번 질권 실행과 관련해 자사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입장문을 올려놨다.

“게일사는 2016년 12월 NSIC 이사회에서 승인한 ‘송도사업 정상화 합의서’ 이행을 거부하고 있고, 인천경제청 중재로 협의한 포스코건설의 재무적 부담마저 해소할 능력이 없어 송도사업은 좌초될 위기에 직면해 있다. 송도IBD(국제도시) 개발사업 중단은 대한민국 최초의 경제자유구역인 송도국제도시의 실패로 인식될 뿐만 아니라 ‘아트센터 인천’ 기부마저 지연되고 있어 인천시민들의 피해가 가중되고 있다. 즉 게일 회장의 개인 세금 문제가 인천시와 시민들의 피해로 비화되고 있는 것이다. NSIC는 사업중단 기간(2015년 7월~2018년 6월)에만 약 453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으며 경영상태가 더욱 악화될 경우 송도사업 자체를 재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포스코건설 역시 미수공사비와 PF 대출금 상환 등 2조원이 넘는 재무적 부담으로 경영활동에 어려움을 겪을 우려가 커지고 있다.”

포스코건설의 주장대로라면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투자회사가 어떤 조건으로 투자를 했는지도 의문이다. 포스코건설은 그동안 안젤로고든과 같은 글로벌 부동산 시장에서 나름대로 검증된 투자회사에도 합작 제안을 했지만 모두 계약을 맺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한 지역신문 기자는 “송도국제도시 사업은 국내 최초의 경제자유구역에서 시행하는 대규모 도시 개발사업에다 한·미 최대 규모 합작사업으로 인천 지역 정재계나 언론의 초미의 관심사”라며 “게일은 적어도 회장이 한국에 수십 차례 이상 다녀가며 청사진을 밝혔는데, 게일 대신 들어오는 홍콩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 포스코건설이 더 투명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포스코건설은 TA와 TI의 관계를 묻는 주간조선 질문에 “Troika Investment (NSIC) Limited는 Troika Advisory가 송도개발사업만을 위해 설립(지분 100% 출자)한 특수목적법인”이라며 “송도개발사업은Troika Advisory가 단독으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약 2조원 수준의 자금을 운용하는 등 부동산 개발사업 경험이 풍부한 아시아 캐피탈 파이오니어스 그룹(ACPG)과 포스코건설, Troika Advisory가 공동으로 수행하는 프로젝트”라고 답했다. 또한 포스코건설은 “NSIC가 개발 중인 송도국제업무지구의 현재 사업 진행률은 70%이고, 남은 30% 부분에 대한 개발계획도 확정된 상태이기 때문에, 새로운 외국 투자자가 송도개발사업에 참여해 사업을 수행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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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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