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최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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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원 한국화학연구원 박사는 “차세대 태양광전지 개발이 한창이며, 상용화만 남았다”고 말했다. 그는 차세대 태양광전지 소재로 각광받는 ‘무유기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연구에서 한국의 정상급 연구자로 평가받는다. 한국화학연구원 에너지소재연구센터의 무유기태양전지 그룹을 이끌고 있다.

지난 9월 19일 대전 대덕연구개발특구의 화학연구원 사무실에서 만났을 때 서 박사는 책상 위에 있는 태양광 서브 모듈 한 개를 보여줬다. 태양광패널 하면 떠오르는, 검은색이고 납작한 모양이었다. 서 박사는 페로브스카이트라는 구조를 가진 물질로 만든 태양광전지라며 “연구가 성숙했다. 이제는 한국의 관련 기업이 들어와 이 분야 연구를 견인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서 박사는 그러나, 실리콘 태양광전지 사업에 투자했다가 뜨거운 맛을 본 기업들이 페로브스카이트 태양광전지 기술 개발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영국(옥스퍼드PV), 벨기에(IMEC), 스위스(EPFL)가 상용화 연구에서는 빠르고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태양광전지는 신재생에너지 산업의 핵심으로 일반에도 익숙하다. 서 박사는 현재 태양광전지 시장의 95%를 차지하고 있는 건 실리콘 태양광전지라고 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태양광전지 업체인 한화큐셀이 내놓는 게 실리콘 태양광전지다. 실리콘 태양광전지는 1세대 태양광전지로, 이 분야에서는 중국이 단연 경쟁력이 있다. 소재가 중국에서 많이 나오고 연구도 활발하다. 그래서 한국은 실리콘 소재 다음의 차세대 태양광전지 개발에 힘써왔다. 차세대 태양광전지로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광전지를 비롯, 유기고분자 태양전지, 무기양자점(quantum dot) 태양전지가 많이 연구된다.

서 박사에 따르면,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가 차세대 태양전지 중에서는 단연 선두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가 주목받기 시작한 건 2009년. 일본 요코하마 소재 도인요코하마대학의 미야사카 쓰토무(宮坂力) 교수가 페로브스카이트 소재를 태양전지로 쓸 수 있음을 알아냈다. 그리고 2012년, 2013년을 전후해 연구가 불붙기 시작했다.

차세대 태양전지 후보들의 일반적인 특징은 실리콘에 비해 값이 싸고, 소재가 유연하며, 가볍다는 것이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저온 용액 공정을 통해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장점도 추가로 갖고 있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연구를 선도하는 나라가 한국으로, 성균관대학 박남규 교수(화학공학)와 UNIST 석상일 특훈교수가 이 분야의 1세대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다. 박남규 교수는 이 연구와 관련 2017년 노벨화학상 후보로 거명되기도 했다. 한국화학연구원에서 몸담고 있는 석상일 교수는 화학연의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연구를 시작하고 이끈 바 있다. 석상일 교수에 이어 화학연의 페로브스카이트 연구를 서장원 박사가 책임지고 있다.

서장원 박사는 2016년 화학연의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연구 그룹 리더가 됐다. 지난해 서 박사가 이끄는 그룹은 22.7%라는 세계 최고 효율을 기록했다. “한국화학연구원은 2013년 이후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효율 면에서 모두 5번의 세계 최고를 기록한 바 있다.” 이 분야의 공식 인증 기록은 미국 에너지부 산하의 연구기관인 NREL(미국재생에너지연구소)이 발표한다.

서 박사가 보여주는 차트를 보니, 불꽃 튀는 연구 경쟁을 알 수 있었다. 스위스연방공대(EPFL)와 KRICT(한국화학연구원)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고효율 경쟁을 벌였음을 알 수 있다.

“이제 효율 연구는 어느 정도 됐다. 물론 방심할 수 없다. 화학연이 기록을 경신한 다음해인, 지난 7월 16일에 23.3%의 효율 신기록이 나왔다. CAS라고 중국과학원이 낸 기록이다.”

서 박사 그룹은 책임연구원인 본인과, 선임연구원인 4명의 팀원 등 5명의 정직원을 두고 있다. 이 그룹은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효율을 올리기 위한 연구를 계속하는 한편, 상용화를 하기 위한 연구에도 힘을 쏟고 있다. “관련 업체가 우리 그룹의 연구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다. 이들이 우리에게 묻는 게 있다. 패널을 크게 만들 수 있느냐, 내구성이 있느냐, 두 가지다. 해서 이 분야 연구를 지난 2016년부터 집중적으로 해왔다.”

연구실에서 개발해 미국 NREL에 가서 효율 인증을 받는 태양전지 소자와, 업체가 만들어낼 상용화 제품은 다르다. 상용화를 위해서는 0.1㎠ 혹은 1㎠ 크기라는 작은 사이즈의 ‘단위 소자’가 아닌, 대면적(large area)화 모듈공정이 필요하다. 서 박사 책상 위에 있는 서브 모듈은, 대면적 모듈 공정 연구 결과 만들어낸 10×10㎝ 모듈이었다. “대면적 페로브스카이트 박막을 균일하게 만들 수 있는 인쇄공정 개발이 중요하다. 넓이가 커지면 저항값도 커지기 때문에 식각공정을 통해 극복했다. 15×15㎝ 서브 모듈 크기까지 만들었다.”

상용화를 위해 필요한 다른 장애물은 내구성 확보다. 현재의 실리콘 태양전지는 25년이 수명이다. 서 박사에 따르면, 페로브스카이트 소자는 높은 열을 받으면 쉽게 망가지는데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과제라고 한다. “열안정성과 광(光)안정성 연구에 힘을 쏟았다. 그 결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 연구 결과는 세계적 학술지인 네이처가 발행하는 ‘네이처 에너지’에 지난 7월 발표됐다. 서 박사는 ‘네이처 에너지’의 피인용 지수(Impact Factor)가 46.8로, ‘네이처’보다 더 높다고 말했다. 피인용 지수는 해당 논문을 관련 분야 학자가 인용하는 기준이다. 해당 학술지에 실린 논문이 학계에 얼마만큼 관심을 받는지 알 수 있는 기준이다. 서 박사팀은 열안정성 면에서도 섭씨 60도에서 500시간 이상 정상작동하는 장기 안정성을 확보했고, 광안정성 면에서도 1태양(sun) 기준 300시간의 안정성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뭘 해도 망가져서 어려웠다. 왜 망가지는지를 알아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광안정성은 무기산화물에, 열안정성은 유기단분자에 문제가 있었다.”

내구성에서 남은 문제점은 물에 취약한 점을 극복하는 것이다. 야외에 설치하면 빗물과 이슬에 젖으므로, 수분에 강해야 한다. 물에 취약한 특성을 극복하는 데 현재 연구자들이 달려들고 있다.

페로브스카이트 구조는 러시아 광물학자 레프 페로브스키(1792~1856) 이름을 땄다. 서 박사는 페로브스카이트 구조에 대해 “무기와 유기의 하이브리드 소재”라고 설명했다. “무기물인데 유기물처럼 유연하다. 만들기도 쉽다. 이게 페로브스카이트 구조의 가장 큰 물성이다.”

페로브스카이트는 광물 중 티탄산칼슘(CaTiO3)에서 발견되는 구조이며, 태양전지에서는 MAPbI3/FAPbI3가 가장 많이 사용된다. “무기물은 팔면체가 3차원에 나열돼 있고, 유기물은 공간의 가운데 들어 있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빛을 받으면 전자는 무기산화물(전하수송체)로, 정공(electronic hole)은 유기고분자(정공수송체)로 이동한다. 이 두 개가 음극과 양극으로 이동해 만나면 전류가 흐르게 된다. 빛에너지가 전기에너지로 변하는 것이다.

서장원 박사는 서울과학고(3기)를 졸업하고 서울대 섬유고분자공학과(94학번)에서 공부했다. 박사과정 때 재료공학부로 옮겨 ‘유기광전자재료’를 공부했다. 유기형광체 소재를 합성하고 분석해 박사논문을 썼다. 2006년이었다. 미국 뉴욕주 버펄로에 있는 뉴욕주립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했다. 여기에서 태양전지 연구를 시작했다. 당시 연구는 무기양자점이었다. 그는 “새로 공부할 게 많았다. 소중했던 시간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팀원들 자랑을 하면서 화학연이란 기관에 대해서도 얘기를 자주 했다. “팀원들이 유기, 무기, 금속으로 각각 전공이 다르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팀원이 협업했기 때문에 만족할 만한 연구실적을 올릴 수 있었다. 화학연이기 때문에 그런 박사들이 모여 있는 것이고, 그런 연구가 가능한 것이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분야의 경쟁은 불꽃을 튀기고 있다. 논문 수가 연구 초기인 2009~2012년에는 10여편에 불과했으나, 2016년 이후 한 해에 2000~3000편이 쏟아지고 있다. 급속한 연구 진전으로 연구자 스스로도 놀랄 정도다. 결승선에서 누가 웃을지 궁금하다.

최준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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