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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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 경제, 위험합니다. 지금만 나쁜 게 아니라 앞으로 더 나쁠 겁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2000년대 초 카드사태처럼 진짜 위기를 맞아야 해결될 수 있을 만큼 심각합니다. 문제는 정부도, 기업도, 민간도 이 상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지요.”

현대경제연구원 주원 경제연구실장의 진단이다. 그는 지금 한국 경제가 사실상 침체 상태라고 진단하면서 그동안 국내외 변수들로부터 한국 경제를 지탱해줬던 주력 산업들이 무너진 상황이라고까지 했다. 개인적인 생각이란 점을 강조하긴 했지만 자칫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2.5%에도 미치지 못할 수 있을 만큼 심각한 상태라는 점도 강조했다.

지난 10월 29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현대경제연구원을 찾아 주원 연구실장을 만났다. 주 연구실장은 거시경제 분야, 특히 경제전망에 있어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는 경제학자다.

한국 경제의 현주소를 둘러싸고는 한국은행 등 한국 내부는 물론이고 IMF(국제통화기금)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등 경제 관련 국제기구, 또 상당수 글로벌 투자은행(IB)들과 시장분석기관들까지 암울한 전망을 쏟아내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10월 9일 IMF는 기존 3%로 전망했던 2018년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을 2.8%로 대폭 낮췄다. 이보다 앞선 9월 20일 OECD 역시 3%일 것으로 전망했던 2018년과 2019년의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018년 2.7%, 2019년 2.8%로 기존보다 대폭 낮춰버렸다. 세계 금융시장의 큰손인 골드만삭스와 도이체방크, 노무라, 소시에테제네랄(SG) 같은 글로벌 투자은행(IB)들 역시 2018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2.7%에 불과할 것으로 일찌감치 전망했다. 네덜란드계 ING그룹의 경우 2018년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6%로 대폭 낮추기도 했다.

그런데 이들이 바라보는 2019년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은 2018년보다 더 암울하다. IMF는 2.9%로 예측했던 2019년 전망치를 무려 0.3%포인트나 낮춰 2.6%로 제시했다. 노무라는 이보다도 낮은 2.5%, 소시에테제네랄은 2.4%를 내놓았다. 심지어 도이체방크와 ING그룹은 2.3%라는 수치를 제시한 상황이다.

한국 내부의 전망도 크게 다를 바 없다. 한국 경제 상황을 가장 낙관하던 한국은행마저 최근 2019년 경제성장률을 2.7%로 낮췄다. 민간연구소인 현대경제연구원은 2.6%, LG경제연구원은 2.5%까지 떨어뜨린 상태다. 이제 한국의 3%대 경제성장 가능성을 말하는 곳을 찾기가 불가능한 지경이다. 더 큰 문제는 추락하는 경제성장률 전망치보다 2018년과 2019년 한국의 ‘실제 경제성장률’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공포감이다.

이와 관련 주원 연구실장은 “지금은 한국의 실제 경제성장률이 여러 기관과 연구소에서 제시하는 수치보다 더 낮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는 상황”이라며 개인적 생각을 전제로 “경제성장률이 2.5%도 안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최근 IMF가 기존에 3%로 제시했던 올해 경제성장률을 2.7%로 낮춘 것에 대해 “통상적인 전망치 조정보다 큰 폭이었다”며 “(한 번에) 이렇게 많이 낮추는 건 드문 경우”라고 했다. “IMF와 OECD의 성장률 전망 조정 당시 한국의 경제지표가 상당히 안 좋아졌습니다. 저조한 경제지표가 드러나면서 ‘한국의 성장률 전망을 현실화시켜야겠다’는 의지가 작용했을 것입니다.”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한 국가의 현재와 미래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이 점에서 최근 경제 관련 국제기구와 주요 IB들, 그리고 국내외 경제연구소, 심지어 한국은행까지도 한국 경제를 낙관적으로 보지 않고 있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결국 경제성장률 전망치 대폭 하락이라는 방법으로 한국 경제를 향해 조용히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주 연구실장은 “경제성장률 전망치 0.1%, 0.2% 떨어지는 게 수치상 크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절대 만만하게 볼 것이 아니다”며 “경제성장률은 당장 고용시장과 임금을 크게 좌우하는 중요한 지표”라고 강조했다. “0.1~0.2% 차이에 죽고 사는 사람이 생겨날 만큼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한국 제품이 안 팔린다

도대체 2018년 한국 경제는 어떤 상황이기에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약속이나 한 듯 큰 폭으로 떨어뜨리고 있는 것일까. 주 연구실장에게 “한국의 현 경제 상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고 묻자 그는 “위험하다”고 명확히 답했다. 그는 특히 “한국은행이 (2018년은 물론) 2019년 우리 경제성장률을 2.7%로 내놓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며 “올해보다 내년 성장률이 더 떨어질 것 같다”는 시각도 분명히 했다. 국내외 대부분의 시각이 자신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했다.

“이유가 명확합니다. 당장 우리 산업경쟁력, 특히 그동안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주력 산업들의 경쟁력이 떨어져버렸습니다.” 조선·철강·자동차·IT·전자 등 한국의 주력 산업이라 불리는 업종들이 지금 나쁘다고만 알려져 있지만 앞으로도 나아지기 힘들다는 진단이다.

그는 ‘나빠졌다고 말하는 한국 경제의 해법’과 관련해 “구조조정을 해야 할 시점”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조선업의 구조조정을 생각하면 됩니다. 사실 조선업만 해야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산업들도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는 “GM은 이미 시작했지만, GM이 한국 자동차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아 그 자체로 자동차산업의 구조조정이 시작됐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한국의 다른 주요 자동차 기업들도 그렇게 (구조조정에) 들어갈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당장 한국의 주요 주력 산업을 구조조정 해야 할 만큼 한국 경제가 추락하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는 이런 진단을 내리는 이유도 분명히 말했다. “한국산 제품이 안 팔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든 제품이 해외 시장은 물론 국내 시장에서조차 잘 안 팔리고 있습니다. 자동차뿐 아니라 기계, 전자제품 등 그동안 주력 제품이라고 했던 게 안 팔리고 있습니다. 물건이 안 팔리면 결국 산업이 쓰러지게 돼 있습니다. 산업이 기울면 경제는 당연히 힘들어집니다. 그렇게 기울고 있는 산업이 더욱이 그 나라의 주력 산업이라면 더 힘들어집니다.”

사실 최근 한국 경제를 말할 때 ‘과잉유동성의 시대’라는 말이 곧잘 등장한다. 그만큼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 유동성에도 불구하고 당장 구조조정을 해야 할 만큼 한국의 주력 제품들이 팔리지 않고 있다는 게 주 연구실장의 말이다. 왜일까?

그에 따르면 유동성 과잉 상태는 맞지만, 실제 소비에 쓰일 수 있는 유동성이 바닥이 났기 때문이다. “과잉유동성 대부분은 잘나가는 몇몇 기업 중심으로 몰려 있습니다. 개인들의 유동성은 사실상 부동산에 묶여버린 게 현실입니다. 결국 소비를 위해 쓸 수 있는 돈이 매우 제한적인 상태입니다. 기업은 투자를 줄였거나 하지 않는 상태고, 개인은 소비할 돈이 없는 거지요.”

정치적 표 계산이 해법 가로막아왔다

주 연구실장은 한국의 주력 산업들과 주요 기업들의 경쟁력 부족, 소비를 해줘야 할 개인들의 소비력 축소 문제 등이 사실 어제오늘 갑자기 나온 게 아니라고 했다. 이미 누적되어온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허비해오면서 예방주사를 맞을 단계조차 넘어선 문제라는 것이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산업 경쟁력 이야기가 나왔고, 과잉유동성과 가계부채 문제도 과거 정부들 때부터 나온 이야기입니다. 이 문제들을 그때그때 해결했어야 하는데 계속 미뤄왔습니다.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이 사실 ‘표’를 잃을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선이나 자동차 산업계에서 구조조정 이야기만 나와도 난리가 나지 않습니까. 과잉유동성, 가계부채 해결은 사실 금리인상으로 상환 압력을 줘야 풀리는 것인데 반발이 없겠습니까. 누가 봐도 ‘표’를 잃을 정책이잖아요. 그러니 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실제로는 아무것도 안 한 겁니다.”

주 연구실장은 “‘표’라는 정치적 문제에 가로막혀 한국 경제를 위해 당장 필요한 산업 구조조정, 가계부채와 과잉유동성 해소가 정책을 통해서는 해결 불가능했다”고 지적했다. 그럼 시장은 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지금 상태에서 시장 기능으로 문제들을 해소하는 건 더욱 힘들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그는 “결국 위기와 파국이 문제 해결의 방법”이라고 했다.

“정부나 정치권의 정책을 통해서는 해결할 수 없고, 시장을 통해서도 불가능합니다. 안타깝지만 결국 1990년대 말 외환위기와 2000년대 초 카드사태 때처럼 우리 경제가 엄청난 위기에 빠져야만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위기나 파국 상태에 빠지면 싫어도, 반발이 있어도 산업 구조조정에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과잉유동성이 만든 부실도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는 정책을 통해 문제 해결이 불가능한 지금으로서는 이 방법밖에는 없다고 했다. 그는 “진보정권이든 보수정권이든 이들에게 생명은 ‘표’”라며 “그래서 모두 위기라고 말하지만 정작 진짜 위기나 파국이 올 시점까지 누구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진짜 위기·파국 맞고 3년 버텨야

주 연구실장은 “기업들, 특히 일부 대기업들은 투자 축소를 통해 실제 위기 시 견딜 수 있는 유동성 확보로 대비를 하고 있다”며 “일부는 불안한 중국 시장 철수로 대비하는 모습”이라고 했다. 그는 “현재 정부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아이러니이지만 지금 정부가 말하고 있는 복지와 사회안전망에 재정을 넣는 게 어쩌면 서민들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상황일 수 있다”고 했다.

한국 경제를 짓누르는 문제들이 결국 진짜 위기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면서 그는 1997년 한국 외환위기와 2000년대 초 카드사태, 2007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예를 들어가면서 ‘역설의 해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진짜 위기는 그 자체로는 나쁘지만 경제적 비효율과 부실을 털어낼 수 있는 딱 한 가지 순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한국이 앞으로 찾아올 위기를 3년 정도 버티게 되면 우리 경제가 다시 자기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만큼 부실을 털고 회복할 것입니다.”

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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