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전쟁이나 역병으로 일시적으로 줄어든 적은 있어도 자발적으로 세계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인류 역사상 처음 발생하는 현상이다.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11월 27일 서울 광화문 ‘혜안리서치’ 사무실에서 홍성국(55) 혜안리서치 대표를 만났다. 홍 대표는 1986년 대우증권에 입사해 30년간 재직하면서 대부분을 투자분석부와 리서치센터에 몸담았고, 미래에셋대우의 CEO를 지냈다. 금융가에서는 대표적인 한국 1세대 애널리스트로 꼽힌다. 그런 그가 최근 ‘수축사회’라는 저서를 펴내 우리 사회와 경제의 흐름을 거시적으로 진단했다. 수축사회는 디플레이션이나 경제위기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전 세계가 동시에 접한 전환적 현상을 말한다. 홍 대표에 따르면 수축사회를 불러온 핵심 요인은 공급과잉이고, 이 공급과잉의 핵심 요인으로는 다시 두 가지가 꼽힌다. 첫째는 인구감소, 둘째는 과학기술의 발전이다. 인구가 감소하면서 수요는 자연히 줄어드는데,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공급은 더 늘어난 것이다.

르네상스와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인구가 급증하는 ‘팽창사회’를 겪어왔다. 하지만 이제는 인구감소와 공급과잉으로 인해 모든 것이 줄어드는 ‘수축사회’가 왔다는 것이 홍 대표의 설명이다.

“부채를 봐야 한다”

홍 대표는 팽창사회가 수축사회로 변하는 분기점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본다. 그는 2008년을 전환점으로 보는 이유에 대해 “모든 구조적 요인의 변화가 본격화되는 시기”라고 했다. 선진국들은 베이비부머(1948년생)가 60세가 되는 2008년 이전까지 부채를 엄청나게 늘려놓았는데 더 이상 늘리기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양적완화와 초저금리로 각국이 부채를 늘린 시점이 2008년이라는 설명이다.

홍 대표는 2008년 전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EU 출범과 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의 성장이다. EU 출범은 자국의 신용으로는 제대로 된 국채를 발행할 수 없는 PIGS(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의 국채 발행을 가능하게 했고, BRICs의 경제성장에 역사상 최저 수준의 금리가 더해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부동산 투기 광풍이 불었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진 배경이다.

“가장 중요한 건 각국의 부채가 엄청나게 늘었다는 것이다. 부채에는 도미노 현상이 있다. 늘어날 때는 빠르게 늘어나지만 꺾일 때는 엄청나게 꺾인다. 각국이 케인스주의(시장개입주의)로 돌아서면서 정부부채를 늘리고 양적완화를 해서 경기를 억지로 올려놓았다. 이때 글로벌 시장에 약 20조달러(약 20경4000조원)가 풀렸고 역사상 최저금리를 찍었다. 마약을 투여한 건데, 문제는 2008년보다 지금 부채가 더 늘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실제로 주요국 GDP 대비 부채비율<표 참조>을 보면 한국은 2000년 152%에서 2018년 233%로 부채비율이 증가했고, 미국은 2000년 186%에서 2018년 251%, 일본은 2000년 313%에서 2018년 369%로 증가했다. 홍 대표는 “지금은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서 그간 양적완화로 풀어놓은 유동성을 거둬들이는 단계”라며 “한국 경제 전망을 할 때 세계 흐름에 영향을 받는 측면이 80%인데 그 흐름에서도 또 70~80%는 이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한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 어려운 기간 2~3년 갈 것”

홍 대표는 한국 경제의 전망에 대해 한마디로 “어둡다”는 진단을 내렸다. “고령화에 공급과잉이 겹쳤기 때문에 내수는 살아날 수가 없고, 수출을 해야 하는데 올해 수출이 오버페이스였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반도체가 너무 오버페이스였다”며 “물론 올해 좋았던 건 사실인데, 반도체는 수급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고 사이클이 빠르다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경기를 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한국의 내년 경기 전망을 어떻게 보나. “주요국이 모두 부채가 많기 때문에 수출이 잘될 수가 없다. 이미 2년 전부터 미국 금리는 오르기 시작했다. 금리가 오르면 성장률은 떨어지고 우리 수출도 나빠질 수밖에 없다. 내수는 그나마 정부가 막아줘서 정체라도 하게 될지 모르지만 그것도 지금 하강국면이다. 이를 감안하면 내년 경기가 어려울 것은 자명하다. 전반적으로 수출 증가율은 이미 둔화되고 있고, 올해 수출도 반도체를 빼면 마이너스 수준이었다. 근데 반도체처럼 소재 만드는 회사는 사이클이 항상 있다. 내년 1~2분기는 상당히 경기가 좋지 않을 것이다.”

- 장기적인 전망은 어떤가. “고령화가 심해지면 복지예산은 더 커져야 한다. 인건비도 올라가고 근로조건은 나빠진다. 소비가 줄어들고 투자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상당히 어려운 기간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 산업별로 본다면. “우리나라 소재, 산업재는 세계적 수준이다. 소재는 철강·화학·정유, 산업재는 기계·조선·건설·운송 등이 차지한다. 여기에 IT·자동차를 합치면 9대 산업이 국가산업 전체 매출의 70%를 차지한다. 이렇게 편중이 심한 나라는 한국뿐이다. 그걸 다 재벌들이 이끈다. 물론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우린 그렇게 커온 나라다. BRICs의 등장으로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됐지만 나머지 기타산업 부문에서 우리는 여전히 취약하다. 결국 60년간 계속된 산업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에 산업구조를 개혁해야 한다.”

- 9대 산업의 특징을 요약한다면. “수출이 중요하고 내수 영향이 적다. 하지만 변동성이 어마어마하게 심해 소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어렵다. 그래서 장기적으로는 위험 분산 차원에서라도 9대 산업이 차지하는 영역을 줄여야 한다. 하지만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그 어떤 정부도 이 산업구조를 건드리지 못했다. 이 영역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세계적 수준이고 그동안 돈을 잘 벌어왔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정부가 ‘너넨 알아서 잘하라’고 9대 산업 영역에선 손을 떼고 전략적으로 기타산업을 키워야 한다. 한국에서 자동차 생산량이 1000만대에 육박하는데 이렇게 작은 나라에서 5섯명당 한명꼴로 차를 만들고, 전 세계 배를 다 만드는 나라가 어디에 있나. 이게 좋은 게 아니다. 호황 때는 어마어마하게 돈을 벌었지만 다른 나라가 똑같이 따라오면 수급이 깨져서 한 방에 갈 수 있다. 기타산업은 중소기업의 영역이기도 하다.”

- 현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많다. “정책은 이러한 위험 요인들이 동시에 못 나타나게 해야 한다. 동시에 나타나면 다시 IMF가 오는 것이다. 구조적인 문제가 80%라고 보고 무조건 구조를 바꾸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 정책이라고 하는 건 구조개혁을 뒷받침하기 위한 세부적인 것들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시간을 낭비했다. MB 때부터 큰 그림을 그리면서 대전환을 준비하지 못했다. 단기 대책만 계속 누적되다 보니까 지금 와선 쓸 대책도 없다. 예를 들어보자. 지금 4차 산업혁명을 해야 한다고들 하는데, 교육만 봐도 한참 뒤처졌다. 10년 전부터 제대로 가르쳤으면 지금쯤 인공지능 개발하는 학생들이 사회에 나왔을 것 아닌가.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기초과학 수준을 높이기 위해 뭘 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고 쓸데없이 역사 교육 과정을 놓고 이데올로기 갈등이나 벌였다.”

- 문재인 정부의 국정 운영 방향이 옳다고 보나. “현 정부는 복지와 분배 정책에 치중돼 있다. 물론 방향은 맞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상대적으로 성장은 소홀히 했다. 그나마 지금 성장 쪽으로 눈길을 돌리는 듯한 움직임은 고무적이다. 복지와 성장을 함께 해야 한다. 국가가 잘되기 위해서는 국가전략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개발독재 시대 이후 국가전략이 없었다.”

- 민주주의 국가에서 장기 국가전략을 운영하는 나라가 있나. “사실 개발독재국밖에 없다. 장기집권해야 하니까. 민주주의 운영하는 모든 국가의 고민이다. 미국도 마찬가지고 다른 나라도 별수는 없다. 그래도 한국 사람들은 똑똑하니 국민 전체가 합의하는 국가적 비전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든다.”

이 대목에서 홍 대표는 ‘핀셋 이데올로기’라는 용어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이 용어를 가리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개혁 방식에서 착안한 프랑스식 흑묘백묘론”이라고 설명했다. “보수든 진보든 국민이 잘살면 된다는 철학으로 핀셋처럼 좋은 것만 뽑아 쓴다”는 것이다.

- 프랑스에서도 마크롱 대통령과 소속 정당인 ‘앙 마르쉬!’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데. “핀셋 이데올로기를 하다 보니 국민이 불편하고, 그 결과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다. 경제도 아직 시원찮다. 프랑스 청년실업률이 25%에 달한다. 하지만 큰 방향은 맞다고 본다. 마크롱이 지금 하는 방식이 공기업을 과감하게 쳐내면서 복지를 엄청 늘리는 건데, 구조개혁과 분배를 동시에 하는 것이다. 보수든 진보든 서로에게서 취할 건 취해야 한다.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니 저 사람이 하는 모든 말을 반대한다’는 태도는 아니라고 본다.”

홍 대표는 우리의 경제 전망과 관련해 “특히 중국을 유의해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중국의 경우 2008년에서 2018년 사이 기업부채가 매우 빠르고 높게 늘었기 때문에 한국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다. 그는 “금리가 올라가면 도산하는 중국 기업이 속출할 것”이라며 “근본적인 중국의 성장신화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시각이 제기된다”고 했다. “임금상승률이 물가상승률보다 낮아질 경우 심지어 시민혁명이 날 수도 있기 때문에 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 내년이나 내후년에 부채 때문에 글로벌 위기가 다시 터질 수 있다고 보나. “그건 아니라고 본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고 있지만 아직까진 아주 낮은 상태다. 미국 10년만기 국채 금리가 3%까지 갔다가 2%대에 머물고 있다. 금리가 3%대라는 건 옛날 수준으로 보면 굉장히 낮은 것이다. 이게 4~5%까지 올라가면 위험할 수 있지만 지금 수준에서 안정이 되면 위험하지 않다고 본다.”

-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대응은 어떻게 보나. “미 연준이 기준금리를 2.25%까지 올렸는데 우리는 실기(失期)했다. 미국은 위기가 오면 다시 내릴 수 있다. 사실 내리려고 올린 것이다. 한은도 미리 올려놨어야 나쁠 때 내리는 등 선제 대응을 할 수 있었는데 그 시기를 놓쳤다. 금리정책은 선제적인 게 중요하다.”

- 한은이 금리를 왜 안 올렸다고 보나. “한국 경기가 나쁜데 금리 올리면 경기가 더 나빠지니까 못 올린 것이다. 한국만 쳐다본 셈이다. 전 세계가 다 올리는데 우리도 따라갔어야 했다. 그랬으면 부동산도 선제적으로 많이 잡았을 것이다. 이제 한은이 금리를 올리더라도 시중금리는 오히려 내려갈 것이다. 왜냐하면 어차피 다음번에는 못 올릴 테니까.”

- 부동산 문제가 여전히 심각하다고 보나. “크게 신경 쓸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국내 부동산은 세계랑 똑같이 움직이는데, 전 세계 부동산 경기가 꺾였다. 이번에 강남이 평(3.3㎡)당 1억원까지 가면서 한국의 자산가격이 홍콩·싱가포르·뉴욕·런던의 70~80% 수준까지 올라왔다. 선진국 주요 도시와 강남 부동산 경기는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어느 나라나 인구가 집중돼 있고 사람이 많은 지역의 부동산이 비싼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최근 2~3년간 경제권력 세대교체”

홍 대표는 “우리나라에 지주회사가 193개가 있고 이 중 상장기업이 83개”라며 “지주회사를 만들었다는 건 오너들의 승계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2~3년 새 정치권력이 불안하고 급격하게 변화하던 사이 우리나라 200개 기업의 승계가 거의 끝났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대주주의 지배력이 더 강화된 것이다. 오너들이 이제는 상속·증여 문제에서 해방됐다. 이제 2·3·4세의 경영능력에 한국의 경제가 상당히 의존하는 시점이 왔다. 물론 이들의 경영능력은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리스크가 되지만 반대로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아버지 때 잘못하던 걸 고칠 수도 있고 산업 포트폴리오를 바꿀 수도 있다. 2·3·4세 경영인 중에 스타가 나온다면 한국 경제에 굉장히 도움이 될 거라고 본다.”

홍 대표는 다만 “수축사회에서의 기업경영은 예전보다 100배는 힘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옛날에는 시장에서 한 번 지배적 사업자가 되면 한 10년은 먹고살았다. 지금은 1년도 바쁘다. 경영자들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 경제가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개인들의 재테크를 위해 조언을 한다면. “금리를 항상 주시해야 하고 목표수익률을 낮게 가져가야 한다. 자기가 예상한 목표수익률이 되면 얼른 나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하는 산업에 투자하는 건 여전히 매력이 있다. 투자도 글로벌로 나가야 한다. 항상 현금 비중을 유지하면서 리스크 관리를 해야 한다. 이제 경제가 나빠지는 기간이 길어질 전망이기 때문에 현금을 챙겨야 한다. 위험자산 비중은 줄여야 한다. ‘좋은 주식 사서 평생 가져가라’는 얘기는 통하지 않는다.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 왜 그런가. “이번에 애플, 페이스북 주가가 추락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제 혼자서 계속 독주하는 회사는 없다. 모든 혁신 과정에서 다 선봉에 서면 괜찮겠지만 누군가는 이 트렌드를 쫓아가지 못한다. 이번에 페이스북이 전형적인 사례다. 전 세계 20억명을 연결했다고 홍보해왔지만 중국이 네트워크에 안 들어오고 규제가 따라오면서 위험에 부딪혔다. 수축사회에서 제로섬으로 세상을 봐선 답이 안 나온다. 세상의 큰 변화 흐름을 잘 이해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보다는 미래를 봐야 한다. 과거의 성공방정식은 빨리 잊어버리는 게 좋다. 예전과 다른 시대에 노출됐다는 걸 우리 경제 주체들이 잘 알아야 한다. 정말 여야(與野)를 벗어나서 우리 사회 리더 계층이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키워드

#인터뷰
배용진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