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타트업 아바바이트(AVA Byte)가 개발한 스마트 화분. 씨앗 캡슐과 물을 붓고 버튼을 누르면 토마토, 허브, 버섯 등의 작물이 자란다. ⓒphoto 아바바이트 홈페이지
미국 스타트업 아바바이트(AVA Byte)가 개발한 스마트 화분. 씨앗 캡슐과 물을 붓고 버튼을 누르면 토마토, 허브, 버섯 등의 작물이 자란다. ⓒphoto 아바바이트 홈페이지

전 세계인의 먹을거리를 책임지는 농업은 인류에게 꼭 필요한 분야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지구촌의 땅은 사막화되어가는 반면 인구는 계속 늘어나 식량난을 예고한다. 게다가 농촌의 고령화 속도는 이미 심각한 수준. 귀농·귀촌하는 사람들에게 의존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이런 위기에 정보통신기술이 희망의 불씨가 되고 있고 이 첨단 흐름에 억대 부농들이 있다.

“교실을 나가 드넓은 농장으로 가라. 20~30년 후 농업은 가장 유망한 직업이 될 것이다. 돈을 벌고 싶으면 농부가 돼라.” 세계적 투자자 짐 로저스가 2014년 12월 서울대학교 강연 중 한 말이다. 미래에 부를 만질 수 있는 직업은 농부이고, 농업에 미래가 있다는 얘기다.

지금도 농사의 반은 첨단 과학기술이 짓는 시대다. 현재의 기술력으로 충분히 사막을 옥토로 바꿀 수 있고, 척박한 환경을 비옥하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비용이다. 자동화된 트랙터가 등장하고 있지만 10억원의 가격이라면 평범한 농민들이 사용할 엄두가 나겠는가.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도 현장에서 써먹지 못하면 쓸모없다. 그래서 가시화되고 있는 기술이 비용이 적게 들면서도 스마트한 농업이다.

일본인 마코토 고이케씨의 오이농장이 좋은 예이다. 시즈오카현 고사이시에 있는 이 농장은 인공지능(AI)으로 오이 분류 작업을 자동화하여 소득을 크게 올리고 있다. 마코토씨는 원래 자동차 부품업체의 소프트웨어 기술자였다. 그는 30대에 직장을 그만두고 2015년부터 부모님을 도와 오이농장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농장 일을 거들면서 농업의 효율성이 낮은 것에 깜짝 놀랐다. 특히 농사일보다 색깔, 모양, 크기, 흠집에 따라 오이를 분류하는 일에 쏟는 시간이 더 많았다. 농번기엔 하루 8시간을 꼬박 오이 분류에 매달렸다.

마코토씨는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정보기술을 도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업에 의뢰하면 시스템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 만만찮다. 그러던 2016년 3월 구글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 후 구글이 인공지능의 심층학습(딥러닝)을 실현하는 소프트웨어(텐서플로·TensorFlow)를 무상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마코토씨는 이를 응용해 오이 분류 장치를 만들면 농장 일손을 충분히 덜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AI에 맡긴 오이 분류

그는 즉시 행동으로 옮겼다. 일반 개인용 컴퓨터에 구글의 텐서플로를 다운받고 일반 카메라를 조합해 ‘오이 분류기’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일일이 손으로 분류한 오이 사진 7000장을 찍은 뒤 AI 프로그램에 입력해 몇 등급의 오이인지 학습시켰다. 학습시간만도 3개월이 걸렸다. 기계의 정확도가 올라가기 전까진 사람이 개입해 이런 식으로 ‘훈련’을 시켜야 한다. 분석을 거듭할수록 정확도는 올라간다. 이렇게 소프트웨어의 조정 작업을 마친 뒤 그는 완벽한 기능의 분류장치를 만들었다.

분류기는 대형 디스플레이와 그 위를 덮는 투명한 아크릴판, 소형 카메라, PC가 구성의 전부다. 원리는 간단하다. 아크릴판 위에 오이를 올리면 바로 위에 있는 카메라가 자동으로 촬영해 AI 프로그램에 보낸다. AI는 사진에 찍힌 오이의 크기, 모양, 색상 등 여러 특성에 따라 분석한 후 독자적으로 정한 9등급의 출하 기준에 맞춰 자동으로 분류해준다. 분류 정확도는 80% 이상. 열 일꾼 부럽지 않은 AI 농사꾼은 이렇게 탄생했다.

놀라운 것은 비용이다. PC를 제외하고 카메라를 포함해 2만엔 정도면 충분했다. 저렴한 분류장치 덕분에 이제 8시간 동안 힘들게 앉아 오이를 선별하지 않아도 된다. 마코토씨 농장은 오늘도 이 저렴한 장치로 오이를 분류해 수입을 올리고 있다.

지난 11월 18일(현지시각) 아랍에미리트 샤르자 코르파칸에서 열린 UAE 장애인 맞춤형 스마트팜 출범식. 황창규(왼쪽 네 번째) KT 회장 등이 꽃삽을 들고 모종을 하고 있다. ⓒphoto KT
지난 11월 18일(현지시각) 아랍에미리트 샤르자 코르파칸에서 열린 UAE 장애인 맞춤형 스마트팜 출범식. 황창규(왼쪽 네 번째) KT 회장 등이 꽃삽을 들고 모종을 하고 있다. ⓒphoto KT

스마트폰으로 농장 상태 점검

미래의 농업에서 성장잠재력이 가장 높은 분야는 스마트팜(smart farm)이다. 스마트팜은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해 작업 효율을 높인 ‘지능형 농장’이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해 자동으로 최적의 생육환경을 만들고, 언제 어디서든 농장을 실시간으로 관리하는 게 핵심이다.

농부들은 논밭을 거의 매일 오가며 농작물의 상태를 확인한다. 병해충을 입지 않았는지, 생육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끊임없이 체크하는 것은 물론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에는 궂은 날씨에도 아랑곳 않고 ‘자식’ 같은 농작물을 지키느라 밤을 새기도 한다. 농사일이 고된 이유다.

그러나 전북 남원시 운봉읍에서 대규모 파프리카 농장을 운영하는 이정구씨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 터치 한 번으로 농장을 살핀다. 온실의 온도가 어떤지, 습도나 공기 순환에 문제는 없는지 등의 정보를 원격으로 얻고 있다. 스마트팜은 사람이 세부 조작을 하지 않아도 인공지능이 농장 내부 상황을 파악한 뒤 알아서 명령을 내린다.

농장에 각종 센서가 설치돼 있어 습도와 온도, 일조량, 이산화탄소량 등 다양한 정보를 서버로 전송한다. 서버에 탑재된 인공지능은 작물의 발달 상태, 병해충 피해 등을 판단해 온도·습도를 조절하거나 배양액을 분사한다. 심지어 작물의 수확 시기와 생산량까지 예측해준다. 모두 수치를 데이터로 분석하고 최적의 조건을 유지시켜주니, 이쯤되면 처음 농사짓는 사람이라도 성공할 확률이 높다.

스마트팜의 선두주자는 단연 네덜란드와 일본이다. 네덜란드는 다양한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해 전 세계의 스마트팜 시장을 이끌고 있다. ‘농업의 95%는 과학기술이고, 나머지 5%만이 노동력’이라고 믿는 이 나라는 전체 온실의 99%가 유리온실이다. 이미 1977년부터 온실을 컴퓨터로 관리하는 복합 환경제어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온도, 습도, 일사량, 이산화탄소 등을 조절하는 정보통신기술과 에너지 관리 및 재해방지기술을 결합한 시스템이다. 네덜란드의 토마토와 파프리카 80%가 이 시스템을 갖춘 식물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5년에 파프리카를 처음 재배했다. 조기심씨(현 농업회사법인 농산 대표)가 네덜란드산 파프리카 씨를 일본에서 가져와 전북 김제의 약 1.1㏊ 땅에서 재배한 것이 국내 생산의 시작이다. 비록 생산 경력은 짧지만 네덜란드산이 장악하고 있는 일본 파프리카 시장을 우리가 점령할 정도로 성장했다. 정보통신기술 덕분이다. 스마트팜은 초기 투자비용이 많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생산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전망이 밝은 농업이다.

도시의 다양한 공간을 활용한 도시농업도 매력적이다. 도시 거주자들은 대부분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작물을 경작할 토지가 없는 곳이다. 하지만 좁은 공간을 잘 활용하면 실속 있는 작물을 재배할 수 있다. 비용도 크게 들지 않는다.

도시농업은 폐기된 공장을 고친 ‘수경재배 시설의 형태’ 또는 건물의 옥상을 이용한 ‘옥상 텃밭’ ‘도시 텃밭’으로 불리는 소규모의 농장 형태로도 존재한다. 도시형 스마트팜의 대안으로 내놓은 ‘스마트 화분’은 단연 돋보이는 제품이다.

스마트 가든과 스마트 화분

에스토니아 IT업체인 클릭앤그로는 자동재배 장치인 ‘스마트 가든’을 출시하고 있다. 가든의 구조는 간단하다. 용기에 물을 담고 그 위에 흙과 비료, 씨앗을 넣고 스위치를 켜면 LED 전등이 들어와 식물의 생장에 필요한 빛과 물을 자동으로 공급한다.

LED는 식물에 신호를 주는 역할도 한다. 빛을 쬔 정도에 따라 신호를 보내 식물이 생장호르몬을 분비시키도록 하는 것. 물은 햇빛과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양분을 만드는 광합성에 사용된다. 그 결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식물이 적절하게 생장한다. 물의 속도와 온도, 비료의 양이 적절하면 크고 맛있는 농작물을 더 잘 기를 수 있다.

미국의 스타트업 아바바이트(AVA Byte)는 수경재배에 적합한 토마토, 허브, 버섯 등 다양한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스마트 화분을 개발했다. 1회용 커피캡슐처럼 생긴 씨앗 캡슐과 물을 붓고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식물이 자란다. 특히 미국은 도시의 건물 안에 설치된 여러 층의 재배대에서 작물을 기르는 수직농장이 활발하다. 이 기술을 사용하면 일반 수경재배보다 물의 사용량을 90% 이상 줄일 수 있다. 생산지가 곧 소비시장인 도시에서 직접 생산한 작물로 샐러드나 주스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팜테크 스타트업 엔싱(nthing)은 사물인터넷을 활용한 스마트 화분 ‘플랜티’와 모듈형 스마트 수경재배 키트, 컨테이너 팜을 통해 도시 농법을 실천하고 있다. 플랜티는 스마트폰 앱에서 단추만 누르면 화분이 식물에 스스로 물을 주는 간단한 구조다. 수경재배 키트에는 특수 토양 스펀지가 탑재돼 작물이 발아하고 생장하는 데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준다. 컨테이너 팜은 이러한 기술을 총집합시켜 누구나 원하는 크기의 ‘스마트 가든’을 가질 수 있다.

한편 전북대 익산캠퍼스의 ‘LED 농생명융합기술센터’에는 3500여개의 LED를 활용해 식물을 키우는 330㎡ 규모의 LED 식물공장이 있다. 보통 농가는 물과 비료를 30% 정도 버리지만 ‘LED 농생명융합기술센터’는 LED를 이용해 농사를 짓기 때문에 낭비하는 양이 거의 없다. 이러한 도시농업이야말로 도시의 미래를 바꾸는 기술이다.

여름철 기온이 섭씨 50도를 넘나드는 사막. 사람도 견디기 어려울 만큼 무더운 사막에서도 작물이 자란다. 아랍에미리트의 한 사막농장에는 ‘나노 진흙’으로 키우는 콩이 자라고 있다. 사막지대의 토양은 약간의 황토와 매우 건조한 모래로 이뤄져 있고 800~1200m 깊이의 지하수에서는 염분이 섞인 물이 나오기도 한다. 사막에서는 깨끗한 물이 매우 비싸고 제한적이기 때문에 염분이 섞인 물이라도 귀하다.

사막농업 개척하는 ‘나노 진흙’

하지만 모래는 힘이 없어 물을 부으면 금세 증발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나노 크기의 진흙을 모래와 섞어 식물이 자라기 좋은 흙으로 바꾼 기술이 사막농업을 개척하고 있다. 모래가 오랫동안 물을 머금기 때문에 진흙을 사용한 농장에서는 콩이 잘 자란다.

한편 아랍에미리트의 도시 샤르자에 지어진 장애인 맞춤형 실내 스마트팜에는 KT의 ICT 솔루션이 적용돼 있다. 처음으로 해외에 진출한 한국의 스마트팜이다. 곳곳에 설치된 센서가 보내는 자료로 번거로운 물 주기, 예민하게 맞춰야 하는 온도와 습도가 자동으로 조절된다. 내년 여름에는 체리, 올리브, 포도 등이 주렁주렁 매달린 농장의 모습을 드러낼 전망이다.

미래 농업은 다양한 특기를 가진 젊은이들이 역량을 펼칠 수 있는 무대이기도 한다. 첨단기술을 직접 개발하고 접목시켜 농사에 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정선에서 곤드레 농사를 짓고 있는 하병욱씨가 그 주인공이다. 경남 사천에 딸기 농사를 짓는 부모님이 계시지만 4년 전 따로 독립했다.

그는 농장의 자동화를 계획하고 있다. 직접 제작 중인 로봇이 그것. 농사를 열심히 짓되 좀 편하게 하자는 생각에서 저렴한 농업용 로봇을 기획했다. 원리는 자율주행차와 비슷하다. 밭 사이사이(이랑과 고랑)를 자유롭게 이동하며 밭 갈기, 씨 뿌리기, 물 뿌리기, 수확 등의 작업을 진행한 뒤 창고로 돌아오는 과정까지 스스로 해내는 다기능 로봇이다. 물을 줄 때는 로봇에 물 뿌리는 기계를, 수확을 할 때는 로봇팔로 바꿔 달 수 있는 로봇을 만드는 게 목표다.

이처럼 미래 농업의 모습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으로 전개될 것이다. 그리고 잠재력이 큰 정보통신기술 농장은 더 나은 먹을거리와 청년들의 훌륭한 일터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지구온난화가 농업을 미래 최고의 직업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키워드

#과학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