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 화웨이 한 매장에 최근 캐나다에서 구금됐다 풀려난 최고재무책임자 멍완저우 부회장의 사진이 걸려 있다. ⓒphoto 뉴시스
중국 베이징 화웨이 한 매장에 최근 캐나다에서 구금됐다 풀려난 최고재무책임자 멍완저우 부회장의 사진이 걸려 있다. ⓒphoto 뉴시스

“확실한 증거도 없이 중국 공민을 납치해 국제법을 짓밟은 사건이다.” “중국에 대한 일종의 선전포고다.”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華爲)의 최고재무책임자(CFO)이자 창업주 장녀인 멍완저우(孟晩舟·46) 부회장이 지난 12월 1일 캐나다 밴쿠버공항에서 체포된 이후 중국 관영매체들은 이런 격한 표현까지 동원해 미국을 비난했다. 멍 부회장은 대이란 제재를 위반한 혐의로 미국 정부의 요청에 의해 캐나다 당국에 체포됐다.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서도 “이번 체포는 미국의 깡패 같은 행위다” “우리도 미국, 캐나다 기업 고위 임원을 잡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을 쉽게 볼 수 있다.

올해 미·중 무역전쟁이 불붙으면서 중국 내에 미국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은 늘 있어왔지만 이번처럼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한 적은 없었다. 미국 상무부가 올 4월 중국 국유 통신기업 중싱(ZTE)를 제재했을 당시만 해도 “중싱이 글로벌기업답지 않은 처신으로 화를 자초했다”는 자성론이 적잖았다.

이처럼 분위기가 달라진 데는 화웨이가 중싱과는 위상이 다른 기업이라는 중국 국민들의 인식이 작용하고 있다. 화웨이는 세계 1위 통신장비업체이자 세계 2위 스마트폰 제조업체로 중국을 대표하는 과학기술 기업이다. 지난해 특허출원 건수 세계 1위 기업일 정도로 탄탄한 기술력을 갖고 있다. 세계 통신업계의 화두가 된 5G 분야에서도 가장 많은 특허를 보유하고 이 시장을 주도해왔다. 중국 기업 하면 떠오르는 ‘기술 도둑’의 이미지에서 자유로운 업체로, 중국 국민들의 자부심과 관련된 기업이다.

8월부터 준비한 비밀 체포작전

화웨이는 올 들어 미 당국의 집중 견제를 받아왔다. 연초에는 미국 통신사 AT&T와 버라이즌을 통해 미국 시장에 스마트폰을 출시하려다 발표 직전에 돌연 취소를 당했다. 안보 위협을 이유로 미국 정부가 압력을 넣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또 한국을 비롯해 영국, 독일, 캐나다,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주요 동맹국들에 화웨이 5G 통신장비를 사용하지 말 것을 설득하고 있다. 화웨이 통신장비에 중국이 무단으로 침입할 수 있는 백도어가 숨겨져 있어 간첩행위에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호응해 일본, 호주 등 여러 국가가 속속 화웨이를 5G 장비 공급업체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취했다.

미국이 또 하나 비밀리에 준비한 것이 멍 부회장 체포이다. 그에 대한 체포영장은 지난 8월 22일 미 연방 뉴욕동부지법에서 이미 발부됐다. 이런 낌새를 알아차렸는지 멍 부회장은 아들이 보스턴에 유학 중인데도 지난 수개월 동안 미국 입국을 계속 피해왔다고 한다. 이번에도 홍콩을 출발해 멕시코로 가기 위해 밴쿠버공항에서 환승하려다 캐나다 당국에 체포됐다.

지난 12월 7일 열린 멍 부회장에 대한 보석청문회에서는 그의 혐의도 자세히 공개됐다. 캐나다 검찰에 따르면 멍 부회장은 2009년부터 2014년까지 홍콩에 있는 스카이콤이라는 위장회사를 통해 이란에 미국산 컴퓨터 장비 등을 수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멍 부회장은 화웨이가 2009년 스카이콤을 매각했다고 주장했지만, 캐나다 검찰은 이 회사 직원들이 2014년까지 화웨이 이메일을 그대로 사용하고, 화웨이 배지를 달고 다녔다고 반박했다. 이 같은 위장거래는 금융기구에 대한 사기행위로 미국에서 최고 징역 30년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고 한다.

미국의 화웨이에 대한 견제는 오바마 정부 시절인 2011년부터 시작됐다. 미국 보안업체인 시만텍은 그해 미국 정부로부터 업무와 관련된 기밀정보를 얻을 수 없다는 이유로 화웨이와 맺은 합작 계약을 파기했다. 2012년에는 미 하원 정보위원회가 1년간의 조사를 거쳐 화웨이와 중싱 등이 미국 국가안보를 위협하고 있으며 정부와 기업이 이 기업들을 막아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2013년에는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해킹 위험을 이유로 화웨이 등 중국 업체 제품의 정부 구매를 제한하는 법령에 서명했다.

화웨이를 키운 4·4·2 전술

화웨이는 중국 개혁개방 초기인 1987년 퇴역 군인인 런정페이(任正非·74)가 선전에서 창업한 회사이다. 구이저우성 산골마을 출신인 런정페이는 충칭건축공정학원(현 충칭대학)을 졸업하고 건설회사 엔지니어로 일하다 1974년 공병으로 군에 입대했다. 프랑스에서 들여온 장비로 랴오닝성 랴오양에 화학섬유공장을 지으면서 공병을 모집하자 입대를 신청한 것이다. 그는 이 공장 건설 당시 큰 공을 세워 공정사, 통신연구소 부소장 등으로 진급했다. 우리로 치면 소령 정도의 계급인 부단장급까지 올라갔다. 공산당에 입당해 1982년 12차 당대회 대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1983년 대규모 감군 당시 비전투병과로 분류돼 9년 만에 군복을 벗고 선전에 있는 국영 석유기업에 배치됐다. 이 회사가 계속 큰 적자를 내면서 수입이 변변치 않자 퇴직하고 화웨이를 창업했다.

창업 초기 화웨이는 홍콩에서 소형 교환기를 수입해 판매했다. 중국 내에서 두각을 드러낸 것은 1992년 전자식 교환기를 독자적으로 개발하면서부터이다. 쓰촨성 부성장을 지낸 장인의 도움으로 국유기업 등에 이 교환기를 대거 납품하면서 성장가도를 달렸다. 1990년대 후반에는 중국 메이저 통신장비업체로 부상했다.

여기까지는 개혁개방기에 각 분야에서 성공한 다른 중국 기업과 비슷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런정페이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화웨이를 연구개발 중심의 기술 기업으로 바꾸는 개혁에 돌입한다.

그는 화웨이 인력 구조의 기본 원칙으로 4·4·2제도를 도입했다. 연구개발과 시장영업 인력을 각각 40%로 하고, 행정·제조 분야 인력은 20%로 최소화하는 아령형 조직이다. 지난해 이 회사 글로벌 연구개발 인력은 8만명으로 전체 직원(18만명)의 45%였다. 삼성전자(6만5494명)를 크게 앞선다. 연구개발비도 897억위안(약 15조원) 전후로 전체 매출액의 15%에 이른다.

IBM의 선진 경영 기법을 도입해 기업관리 시스템도 정비했다. 화웨이는 ‘관리의 삼성’을 적극 벤치마킹했다. 삼성 직원 연수 시스템을 베껴 선전에 대규모 연수원을 만들었고, 업무에 대한 헌신과 성과 경쟁을 중시해 성과를 낸 직원에게 스톡옵션을 포함한 파격적인 보상제도를 마련했다. 치열한 내부 경쟁 와중에 자살하는 직원이 속출하는 등 부작용도 있었지만, 화웨이는 이런 과정을 통해 일반 중국 기업과 다른 유전자를 가진 기업으로 변신했다.

멍완저우가 갇혀 있는 캐나다 밴쿠버 구치소 앞에서 중국인들이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photo 뉴시스
멍완저우가 갇혀 있는 캐나다 밴쿠버 구치소 앞에서 중국인들이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photo 뉴시스

삼성전자·퀄컴과 5G 패권 경쟁

화웨이가 세계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건 2005년이다. 처음으로 해외 매출이 중국 내 매출을 넘어섰다. 2012년에는 스웨덴 에릭슨을 제치고 세계 1위 통신장비업체가 된다. 초창기에는 선진 기업 기술을 모방했지만 대대적인 투자를 통해 독자적인 연구개발 역량을 확보하면서 2015년 특허출원 건수 세계 1위 기업으로 올라섰다. 미국과 독일, 일본, 인도 등 전 세계 16개국에 20여개의 연구소를 둘 정도로 연구개발 네트워크도 국제화했다.

2010년대 초반부터는 스마트폰 사업에 역량을 집중해 2016년 세계 3위 업체가 됐다. 올해는 트리플 카메라를 장착한 스마트폰 P20의 판매 호조를 등에 업고 애플을 제치고 2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화웨이의 최대 경쟁력은 연구개발 역량이다. 중국은 한 해 30만명 전후의 이공계 석·박사 인력이 배출된다. 이런 고급 인력을 저렴한 비용으로 고용해 막강한 연구개발 진용을 구축했다. 서방 언론은 임금 수준이 낮은 점을 고려하면 화웨이의 실제 연구개발 투자가 발표되는 수치의 10배에 이를 것으로 본다. 이런 저렴한 연구인력은 가격경쟁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제 입찰에서 화웨이와 경쟁해본 삼성전자 담당자들은 “기술적으로 대등한데, 가격은 30~40%를 낮게 쓴다”고 혀를 내둘렀다.

글로벌 전문가들은 세계 정보통신기술 시장 주도권을 놓고 화웨이가 삼성전자와 2파전을 벌일 것으로 본다. 5G 분야에서는 화웨이가, 폴더블폰은 삼성전자가 앞서고 있지만 차이가 미미해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화웨이는 반도체를 제조하지는 않지만, 스마트폰의 두뇌에 해당하는 AP를 직접 설계하는 등 이 분야에서도 미국 퀄컴을 위협하고 있다.

“무역전쟁 겨냥한 인질극”

미국이 멍 부회장을 체포할 정도로 화웨이를 견제하는 데는 이 기업에 대한 깊은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중국의 대표적인 민영기업으로 세계 시장의 메이저 플레이어가 됐는데도 기업 배경과 주주 구성 등에 불투명한 구석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화웨이는 알리바바, 텅쉰 등 다른 중국 대표 기업들과 달리 상장을 하지 않고 있다. 주주 구성도 미심쩍은 측면이 있다. 화웨이는 창업주인 런정페이 회장의 지분이 1.4%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직원들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은 이 종업원 지분 중에 중국 군부 등의 지분이 숨어 있을 것으로 본다. 외양은 민영기업이지만, 실제로는 중국 정부 지원을 받아 움직이는 기업 아니냐는 것이다.

멍 부회장 체포에는 미·중 무역분쟁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노림수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멍 부회장을 체포한 지난 12월 1일은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무역전쟁 90일 휴전에 합의한 날이다. 양국은 앞으로 90일간 무역전쟁 종식을 위한 협상에 들어간다. 이 협상을 앞두고 중국 최고 기술기업인 화웨이의 최고재무책임자를 체포해 시 주석을 압박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홍콩 중문대 윌리 람 교수는 “멍 부회장 체포는 미국이 공들이고 고심해서 만든 사건으로 시 주석을 직접 겨냥한 것”이라면서 “그가 중국 대표 과학기술 기업의 후계자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인질극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중국 측에서는 화웨이가 5G 분야에서 세계시장 패권을 다툴 정도로 성장하자 그 싹을 자르겠다는 의도로 보고 있다. 화웨이는 2014년부터 스마트폰 판매 호조 속에 연간 매출이 20~30%씩 증가하는 고도성장기를 맞고 있다. 올해는 매출액 1000억달러 돌파가 유력하다. 5G 분야에서는 이 분야 세계 특허의 23%를 갖고 있는 선두기업이다. 이런 화웨이가 5G 시장을 석권할 것을 우려해 미국이 집중 포화를 퍼붓고 있다는 것이다. 5G는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반 기술이어서 이 분야를 중국이 장악하면 미국의 기술 패권은 큰 위협에 직면한다. 한 중국 전문가는 중국 군사 전문 사이트 철혈망에 올린 글에서 “1000억달러와 5G가 멍 부회장 체포 사건을 이해할 수 있는 두 가지 열쇠”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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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식 조선일보 중국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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