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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제
[2540호] 2019.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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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그의 기억이 사라지고 있다

김우중 전 회장 연말 귀국 입원치료, 생일축하모임 첫 불참, 대우맨들 병원 찾아가니…

박혁진  기자 

▲ 대우그룹 김우중 전 회장이 2017년 3월 22일 서울 중구 밀레니엄힐튼호텔에서 열린 창업 50주년 기념행사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고령의 나이에 지병까지 앓고 있는 김우중(83) 전 대우그룹 회장의 건강이 지난 연말 급격히 악화돼 한 달 가까이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취재 결과 김 전 회장은 2018년 하반기까지도 한국과 베트남을 오가며 글로벌 인재양성 활동을 해오다 지난해 11월 갑자기 귀국해 12월 말까지 아주대병원 13층 VIP병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현재는 자택에 머물며 통원치료 중이다. 측근들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당분간은 해외에 갈 수 없고, 가족 곁에 머물러야 하는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다. 아주대병원 관계자들도 “아주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등을 오가며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주간조선이 만난 복수의 김 전 회장 측근들은 하나같이 “김 전 회장이 알츠하이머로 의심되는 증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매년 김 전 회장은 자신의 생일인 12월 18일 하루 전인 17일이면 과거 그룹 비서실 출신들이 여는 생일축하모임에 빠짐없이 참석해왔는데 지난해 처음으로 불참했다고 한다. 김 전 회장의 불참을 의아하게 여긴 인사들은 수소문 끝에 그가 수원 아주대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지난해 12월 18일 함께 병문안을 갔다. 이 자리에는 장병주 대우세계경영연구회 회장을 비롯한 10여명의 인사들이 동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7년 하반기부터 외부활동 중단
   
   대우그룹 해체 전까지 그룹 임원으로 일하고 최근까지도 비서실 모임에 빠짐없이 참석해왔던 A씨는 “병문안을 갔더니 나를 못 알아보셨다”며 “피지컬리(신체적) 문제는 아니어서 차도는 좀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입원한 지 한 달 정도 되셨고, 당분간은 베트남에 가지 않고 가족들과 지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역시 병문안에 참석했던 B씨는 “나를 알아보기는 했다”며 “조만간 대우맨들을 한자리에 모아달라고 내게 부탁했다”고 전했다. 김 전 회장은 지난 연말 매년 참석하던 대우그룹 창립기념 행사에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날 병문안에 동행하지 않았지만 김 전 회장의 근황에 대해 잘 알고 있는 C씨는 구체적인 병명에 대해서는 확답을 피했다. 다만 그는 “나를 알아봤다 못 알아봤다 하신다”면서 “이런 상태가 계속되는 걸 가지고 임종이 임박했다고 말하거나 당장 내일이라도 무슨 일이 있을 것처럼 말하는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라고 말했다. C씨는 “현재(1월 2일)는 자택에 머물고 계시며, 병명에 대해서 외부로 알려지는 것에 대해 가족들이 꺼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간조선은 김 전 회장의 정확한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그의 아내인 정희자씨의 휴대폰과, 딸 선정씨가 관장으로 있는 선재아트센터, 아들 선협씨가 운영하는 경기도 포천 아도니스골프클럽 등을 통해 수차례 연락했으나 이렇다 할 답이 오지 않았다.
   
   김 전 회장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그의 기억력이 급격하게 떨어진 시점을 4년 전 회고록(‘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을 출고한 이후로 보는 시선이 많다. 주간조선이 만난 대우세계경영연구회의 한 관계자는 “나는 회장님의 현재 상태를 정확히 모른다”면서도 “김 전 회장이 당시 회고록을 준비하면서 숫자 하나하나까지도 정확하게 기록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고, 이후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국과 베트남 등을 오가며 강연 등을 해왔지만 최근에는 외부활동을 하지 않는다”며 “2017년까지는 간간이 언론 인터뷰도 했으나 2018년에는 일절 언론 취재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도 했다. 김 전 회장은 베트남 하노이에 머물며 2012년부터 글로벌청년사업가양성사업(Global Young Business Manager·GYBM) 과정을 만들어 국제 비즈니스를 제대로 할 한국의 젊은 사업가들을 양성해왔다.
   
   김 전 회장의 기억력이 급속도로 악화되어가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주변에서는 “떳떳하게 병명을 밝히고, 대우그룹 해체에 관한 진실을 보다 구체적으로 역사 앞에 털어놔야 한다”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특히 김 전 회장 주변에서는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사례를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알츠하이머 확진 판정을 받고 투병생활을 하다 2004년 6월 5일 작고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1994년 5월 부인 낸시 여사가 대신 읽은 ‘국민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자신이 치매에 걸렸다고 고백한 바 있다.(Letter written by President Ronald Reagan announcing he has Alzheimer’s disease.)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에도 전직 대통령과 같은 한 나라의 원로가 알츠하이머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것을 대중에 공개하기가 쉽지 않은 분위기였다. 레이건 전 대통령도 편지에서 이런 고민들을 털어놓았다. 그는 편지 첫 부분에 다음과 같이 썼다.
   
   “친애하는 미국 국민 여러분, 저는 최근 제가 알츠하이머를 앓는 수백만 미국인 중 한 명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저와 낸시(아내)는 이 사실을 평범한 시민에게 일어난 개인의 사건으로 남겨둘지, 아니면 공식적인 방법으로 이 뉴스를 알려야 할지 결정해야 했습니다. 과거 낸시는 유방암을 앓았고, 저 또한 암으로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때 우리는 투병을 발표함으로써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더욱 많은 사람들이 건강검진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는 기뻐했습니다. 그들은 초기에 암을 발견해 곧 정상적인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었지요. 그래서 우리는 투병 사실을 여러분께 알려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럼으로써 여러분들이 치매에 대해 더욱 주의하게 되길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치매를 앓는 환자들과 그 가정에 대한 명확한 이해도 가능할 것입니다.”
   
   레이건의 이런 행동은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레이건의 편지에 대해 당시 시드니 휴즈 타임매거진 기자는 “레이건의 솔직한 행동은 의심의 여지 없이 알츠하이머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높여줬고, (치매) 연구를 위한 강력한 원동력을 제공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레이건의 편지는 미국 정부에서 운영하는 ‘레이건박물관’ 홈페이지(www.reaganlibrary.gov)에도 공개되고 있다.
   
▲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2014년 10월 2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상경대 각당헌에서 ‘자신만만하게 세계를 품자’라는 주제로 강연을 마친 뒤 자리로 돌아와 눈물을 흘리고 있다. photo 뉴시스

   레이건의 고백 이후 커밍아웃 잇따라
   
   지난해 10월 23일에는 미국 최초 여성 대법관인 샌드라 데이 오코너 또한 알츠하이머성 치매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밝히면서 향후 공식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오코너는 이날 성명을 내고 “얼마 전 의사로부터 치매 초기 단계, 알츠하이머병인 것 같다는 진단을 받았다”며 “치매 증상이 진행됨에 따라 공인으로서의 삶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혔다. 오코너는 “나는 앞으로도 친애하는 친구, 가족들과 더불어 살겠지만, 치매가 내 인생의 마지막 장을 시험에 들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축복받은 내 삶에 대해 깊이 감사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모든 사람을 축복한다”고 편지를 끝맺었다.
   
   미국에서 사회 원로급 인사들의 이런 커밍아웃이 큰 호응을 얻었던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나와야 한다는 주장이 그동안 끊이지 않았다. 신격호 전 롯데그룹 회장을 비롯한 몇몇 재계 인사들이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이 소송과 같은 외부 요인으로 인해 공개되기는 했지만, 선제적으로 이런 사실을 공개한 공인(公人)의 사례는 찾기 어렵다. 전두환 전 대통령 등 정치권 인사들 중에서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다음에야 그 사실이 알려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 전 회장의 경우 부지런함과 꼼꼼함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그가 평사원에서 국내 굴지의 그룹을 일궈낸 데에는 특유의 성실함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란 평가가 많다. 그런 재계 거장조차도 알츠하이머란 질병 앞에 자유로울 수 없단 사실은 많은 환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여기에 더해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 해체란 역사적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 사건은 사사(社史)를 넘어 한국 정치사와도 연관이 깊다. 김 회장이 어떤 식으로든 당시 상황에 대해 국민들에게 자세히 알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 전 회장이 대우그룹 해체 당시 상황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는 2014년 8월 신장섭 싱가포르대 교수와의 대담 형식을 빌린 회고록(‘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을 통해 그룹 해체 당시의 상황을 일부 밝힌 바 있다. 이 책에 따르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7년 당선되자마자 김 전 회장을 ‘경제대통령’으로 칭하며 금융위기 극복방안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하지만 당시 경제관료들은 구조조정에 초점을 맞추면서, 수출확대를 통한 위기극복을 주장하던 김 전 회장을 곱게 보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김 전 회장은 수출확대를 위한 시설확장을 위해 금융지원이 필요하다는 자신의 요청에 대해 당시 강봉균 청와대 경제수석이 “‘시장경제 중심으로 하니 정부가 나서서 그런 것을 못 한다’고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김 전 회장이 분을 이기지 못하고 “그러면 강 수석은 왜 거기 앉아 있나. 시장 중심이면 청와대 경제수석 자리도 필요 없겠네”라고 반격해 미운털이 박혔다고도 했다. 또한 김 전 회장은 “관료들이 자금줄을 묶어놓고 대우에 부정적인 시장분위기를 조성해 대우를 부실기업으로 몰아갔다”고 주장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소환한 대우의 진실
   
   하지만 김 전 회장의 주장에 대해 당시 경제관료들이 반박하면서 진실게임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논란은 최근 개봉한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또 한 번 다뤄졌다. 영화에는 대우그룹이 몰락해간다는 뉴스를 접하고 충격을 금치 못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자세히 묘사되고 있다.
   
   이처럼 영화 개봉으로 다시금 논란이 촉발된 데다, 건강까지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김 전 회장이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밝혀주기를 원하는 목소리가 안팎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 자세히 증언하는 것을 넘어 김 전 회장의 명예회복과 대우그룹의 세계경영 전반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전직 대우그룹 임원은 “김 전 회장이 건강 문제로 이슈가 되는 걸 원치 않는다”며 “김 전 회장에 대한 명예회복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전 대우그룹 임원 역시 “최근 몇 년간 삼성전자가 베트남으로 공장을 이전하고, 베트남 시내에 돌아다니는 현대차를 쉽게 볼 수 있다. 김 전 회장은 베트남을 비롯한 동유럽, 동남아시아 등 현재 우리 기업들이 진출해 있는 국가를 30년 전부터 개척해왔다”며 “지금 그 나라에 가보면 배가 아프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김 전 회장의 세계경영에 대한 재평가가 언젠가는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전직 대우맨들 사이에서는 김 전 회장의 투병과 재평가 등과 관련해 이런저런 얘기가 나오지만 정작 가족들은 어떤 식으로든 김 전 회장 관련 이야기가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에 대해 부정적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세계경영연구회 한 관계자는 “세금이나 추징금 문제 등은 억울한 부분이 많이 있지만 현재는 안고 가고 있는데, 어떻게든 김 전 회장이 주목을 받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가족의 몫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다”며 “지금 정치적 분위기도 명예회복이나 재평가를 논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GYBM 사업도 김 전 회장의 사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도, 재원에 대한 논란까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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