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노후를 책임질 ‘연금’이 추락하고 있다. 연금 중에서도 ‘연금펀드’, 특히 연금 가입자들이 맡긴 노후자금을 한국에 상장된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 ‘주식형 연금펀드’의 수익률이 심각한 상황이다. 주간조선은 2018년 한 해 주식형 연금펀드들 중 1%는 고사하고 0.1%라도 수익을 낸 펀드가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현재 한국에서 판매·운용되고 있는 모든 주식형 연금펀드의 수익률이 작년 한 해 동안 ‘마이너스’였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주식형 연금펀드들의 참담한 수익률이 2018년 한 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취재 결과 2013년 이후 무려 5년 이상 투자해놓고도 단 0.1%의 수익도 올리지 못한 채 마이너스 수익률 상태에 빠져있는 주식형 연금펀드들도 많았다. 제2의 삶인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차곡차곡 모아야 할 소중한 돈을 불리기는커녕, 연금을 받기도 전에 힘들게 모아온 돈마저 까먹고 있는 최악의 상황에 빠져 있는 것이다.

주식형 연금펀드들의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펀드평가사 ‘KG제로인’에 현재 판매·운용되고 있는 모든 주식형 펀드에 대한 자료조사를 요청했고, 이렇게 확보한 기초 자료를 토대로 기자가 다시 연금펀드만의 자료를 별도로 추출했다. 기초 자료를 통해 추출한 연금펀드들의 운용실태와 수익률 역시 직접 분석했다.

80개 연금펀드 전부 ‘마이너스’ 수익률

연금펀드들의 운용실태와 수익률 분석을 위해 우선 현재 한국에서 판매·운용되고 있는 주식형 펀드 808개(ETF 포함)를 분석했다. 이 808개의 주식형 펀드는 2018년 주식시장 폐장일인 12월 28일을 기준으로 실제 주식 투자에 사용한 돈인 ‘운용순자산’의 규모가 10억원 이상이고, 최소 2주 이상 운용된 것들이다. 또 누구나 가입 가능한 ‘공모형 펀드’를 대상으로 삼았다.

이 808개의 주식형 펀드 중 기자가 다시 별도로 추출한 연금펀드는 개인연금과 퇴직연금을 포함해 모두 80개다. 이것은 한국에서 판매·운용되고 있는 모든 주식형 연금펀드를 망라한 것이다. 그런데 이 80개의 주식형 연금펀드 중 작년 한 해 1%는 고사하고 0.1%라도 수익을 낸 펀드가 단 하나도 없었다. 80개 중 2018년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 것은 한국투자신탁운용이 만들어 운용하는 ‘한국투자퇴직연금삼성그룹자1’이었다. 수익률 1위라고 하지만 2018년 주식시장 개장일인 1월 2일부터 폐장일인 12월 28일까지 올린 수익률이 민망하게도 -2.85%다. 이 펀드는 퇴직연금으로, 규모가 15억원에 불과한 초소형 펀드다. 삼성그룹 계열사 주식에만 투자하는데, 총 15억원의 운용순자산 중 삼성전자와 삼성SDI 등 삼성그룹 계열사 주식에 92.75%를 투자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2위는 KB자산운용이 만든 운용순자산 332억원짜리 소형 퇴직연금인 ‘KB퇴직연금배당자(주식)C’였다. 2위라고는 하지만 이 펀드의 2018년 수익률 역시 -4.82%에 불과했다. 3위는 KB자산운용의 운용순자산 22억원짜리 초소형 개인연금펀드인 ‘KB연금가치배당자(주식)C’였다. 수익률은 -5.12%였다.

4위는 한국투자신탁운용이 역시 삼성그룹 주식에만 투자하도록 만든 ‘한국투자골드플랜삼성그룹연금자1(주식)C’로, 2018년 수익률이 -5.47%에 불과했다. 운용순자산이 10억원밖에 안 되는 초소형 연금펀드로 전체 80개의 주식형 연금펀드들 중에서도 가장 작은 연금펀드다. 5위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미래에셋연금한국헬스케어자1(주식)종류C-P로 2018년 수익률이 -9.55%다.

2018년 주식형 연금펀드들의 운용 실태를 분석한 결과 수익률 상위 5위까지는 그나마 -10%보다는 나은 투자 수익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6위부터 80위까지 나머지 펀드들은 모조리 채 -10%의 수익도 올리지 못했을 만큼 처참한 상태다.

2018 연금펀드 수익률 1위가 -2.85%

6위는 KB자산운용의 개인연금펀드인 ‘KB연금가치주전환자(주식)C’다. 수익률이 -10.87%다. 이 펀드는 실제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 운용순자산이 2299억원이나 되는 대형 연금펀드다. 2018년 주식형 연금펀드 수익률 상위 10위 이내에 든 유일한 1000억원 이상의 대형 연금펀드다. 이 연금펀드를 제외하면 수익률 상위 10위 이내에 주식 투자규모(운용순자산) 1000억원 이상인 대형 연금펀드는 단 하나도 없다. 사실상 대형 연금펀드들이 전멸한 것이다.

7위는 KB자산운용의 퇴직연금인 ‘KB퇴직연금자(주식)C’로 수익률이 -11.23%다. 8위는 지난해 수익률이 -11.5%밖에 안 되는 삼성자산운용의 ‘삼성퇴직연금액티브배당자1(주식)C’가 차지했고, 9위는 장기투자를 앞세우고 있는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의 퇴직연금인 ‘한국밸류10년투자퇴직연금배당자(주식)C’였다. 2018년 수익률이 -11.82%에 불과할 만큼 민망하지만 수익률 10위 안에 가까스로 들었다. 10위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운용하는 퇴직연금인 ‘미래에셋퇴직연금고배당포커스자1(주식)종류C’였다. 수익률이 -12.78%밖에 안 된다.

그나마 수익률 상위 10위권 주식형 연금펀드들은 2018년 1월 2일부터 12월 28일까지 -12% 이내로 돈을 까먹었다. 더 문제는 수익률 하위권이다. 연금 가입자들이 낸 투자금을 -20% 이상 까먹은 펀드들이 수두룩하다.

은퇴 후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는 노인들. ⓒphoto 뉴시스
은퇴 후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는 노인들. ⓒphoto 뉴시스

신한BNP 연금펀드 최악 수익률 -27.49%

수익률을 기준으로 2018년 한 해 연금펀드의 운용실태가 가장 나쁜 최악의 수익률 1위는 신한금융지주 계열인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의 ‘신한BNPP해피라이프연금전환자1(주식)C1’이다. 운용순자산이 1237억원에 이르는 대형 연금으로, 연금 가입자나 노후자금을 위해 납입한 연금 가입액이 많은 연금펀드다. 2018년 1월 2일부터 12월 28일까지 1년 동안 이 연금펀드의 수익률은 놀랍게도 -27.49%에 이른다. 수익률 수치상 연금 가입자가 1월 초에 신한BNPP해피라이프연금전환자1(주식)C1에 1억원을 납입했다면 12월 28일 이 돈의 평가액이 7251만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원금의 4분의 1이 훨씬 넘는 돈이 사라진 셈이다.

주식형 연금펀드 최악의 수익률 2위의 실태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의 ‘한국투자신종개인연금중소밸류전환자(주식)’로 2018년 수익률이 -24.39%일 만큼 처참했다. 최악의 수익률 3위도 한국투자신탁운용이 만든 ‘한국투자연금저축롱텀밸류자(주식)C’다. 역시 -24.31%로 수익률 상태가 심각하다. 최악의 수익률 연금펀드 2위·3위 모두 지난 한 해 연금 가입자들의 노후자금 4분의 1 가까운 돈을 날렸다는 의미다.

최악의 수익률 4위는 외국계 자산운용사인 맥쿼리투자신탁운용이 만들어 판 ‘맥쿼리퇴직연금뉴그로쓰자(주식)C’다. 2018년 한 해 연금 가입자들의 돈을 -22.85%나 까먹었다. 5위는 IBK자산운용이 만들어 운용하는 ‘IBK평생설계연금전환자(주식)C’다. IBK자산운용은 정부가 주인인 IBK은행이 지분 100%를 소유한 회사다. 사실상 정부가 주인인 자산운용사란 뜻이다. 이런 IBK자산운용의 개인연금인 IBK평생설계연금전환자(주식)C의 운용 실태 역시 심각했다. 2018년 1년 수익률이 -22.61%였다. 6위 역시 IBK자산운용의 퇴직연금인 ‘IBK퇴직연금한국대표자(주식)종류C’로 수익률이 -21.63%였다. 사실상 정부가 주인인 IBK자산운용이 운용하는 주식형 연금펀드 2개 모두 2018년 수익률이 -22%도 안 될 만큼 운용실태가 심각한 상황이다.

최악의 수익률 7위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미래에셋성장유망중소형주연금저축전환자1(주식)C’(수익률 -21.52%)였고 8위는 한화자산운용의 ‘한화연금전환(주식)C’였다. 이 연금펀드 역시 주식에 투자한 운용순자산이 1439억원에 이르는 대형 연금펀드이다. 기자의 취재 결과, 최악의 수익률 10위 안에 든 연금펀드 중 가장 규모가 크다. 하지만 수익률은 -21.45%에 불과했다. 수익률만 보면 연금 가입자가 낸 돈 5분의 1 이상을 지난 한 해 동안 까먹은 것이다.

최악의 수익률 9위는 수익률이 -21.39%나 추락한 ‘미래에셋퇴직연금성장유망중소형주자1(주식)C’, 10위는 수익률 -20.99%인 KTB자산운용의 ‘KTB VIP밸류퇴직연금자(주식)종류C’다.

‘메리츠’ 3년 투자했는데 수익률 -22.04%

지난 한 해 우리 국민이 노후 준비를 위해 꼬박꼬박 납입한 주식형 연금펀드들의 수익률 실태가 이렇게 한심한 상황이다. 그런데 좀 더 깊이 분석하면 주식형 연금펀드들이 처한 더 심각한 운용 실태를 확인할 수 있다. 연금은 ‘노후대비 자금’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진 상품으로, 노후대비 자금이라는 점을 특히 주목해야 한다. 50~60대 이후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연금에 가입하고 상당히 오랜 기간 돈을 납입하는 전형적인 장기 투자상품이라는 의미다.

이런 관점에서 연금펀드들의 정확한 운용 실태 확인을 위해서는 3~5년 수익률, 즉 중장기 수익률이 중요하다. 그런데 기자가 확인한 주식형 연금펀드들, 특히 연금 가입자 수가 많고 운용 규모(연금 납부액)가 큰 대형 연금펀드들의 중장기 운용 실태가 심각했다.

주식형 연금펀드들의 3년 수익률을 보자. 80개에 이르는 전체 주식형 연금펀드 중 3년 수익률을 확인할 수 있는 연금은 2017년 5월과 2018년 3월 첫 운용을 시작한 2개를 제외하고 총 78개다. 기자가 이 78개 연금펀드의 2016년 1월 2일부터 2018년 12월 28일까지, 3년간의 운영 실태를 살펴봤더니 78개 중 무려 39개, 절반이나 되는 펀드의 수익률이 마이너스 상태임을 확인했다. 전체 주식형 연금펀드의 절반이 3년 동안 연금 가입자들이 낸 돈을 불리기는커녕 있는 돈마저 까먹고 있다는 뜻이다.

3년간 투자수익률이 가장 나쁜 연금펀드는 메리츠자산운용의 ‘메리츠코리아연금전환자1(주식)C-1’였다. 무려 -22.04%나 까먹었다. 3년 수익률 최악 2위도 메리츠자산운용이 운용하는 퇴직연금 ‘메리츠코리아퇴직연금자(주식)종류C’였다. 수익률이 -21.44%로 연금 가입자가 3년간 낸 돈의 5분의 1 이상을 날렸다.

3년 수익률 최악 3위부터 5위는 모두 미래에셋자산운용이 만들어 판 연금들이다. 3위는 ‘미래에셋성장유망중소형주연금저축전환자1(주식)C’로 수익률이 -15.6%에 이른다. 4위와 5위는 ‘미래에셋퇴직연금성장유망중소형주자1(주식)C’와 ‘미래에셋소비성장연금전환자1(주식)C’로 수익률이 각각 -15.14%와 -15.08%였다. 특히 3년 수익률 최악 3~4위인 ‘미래에셋성장유망중소형주연금저축전환자1(주식)C’와 ‘미래에셋퇴직연금성장유망중소형주자1(주식)C’는 2018년 수익률 역시 각각 -21.52%와 -21.39%로 처참했다. 최근 몇 년간 운용 실태가 지속적으로 민망한 상태다.

3년 수익률 최악 6위는 ‘이스트스프링연금저축코리아리더스자(주식)C’(수익률 -12.64%), 7위는 ‘미래에셋가치주포커스연금저축전환자1(주식)종류C’(수익률 -12.16%), 8위는 ‘대신연금저축배당주전환자(주식)’(수익률 -11.36%), 9위는 ‘미래에셋퇴직연금가치주포커스자1(주식)종류C’(수익률 -11.27%), 10위는 ‘이스트스프링퇴직연금업종일등자(주식)클래스C’(수익률 -11.16%) 등의 순이었다.

지난 5년간의 운용 실태 역시 확인 결과 심각한 상태였다. 80개의 주식형 연금펀드 중 5년 이상, 즉 2013년 이전부터 판매·운용돼온 주식형 연금펀드는 총 58개다. 기자는 이들 중 5년 동안 연금 가입자들이 낸 돈을 까먹고 있는, 즉 수익률이 마이너스인 연금이 무려 20개에 달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전체 주식형 연금펀드의 34.5%나 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실제 주식에 투자한 돈(운용순자산)이 1000억원을 넘는 대형 연금펀드들 중 5년 운용 수익률이 마이너스 상태에 빠져 있는 펀드들도 상당수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자산운용사들이 ‘연금은 장기투자 상품’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상은 5년 동안 장기간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0.1%의 수익조차 올리지 못한 채 마이너스 수익률에 빠져 돈을 까먹고 있는 펀드들이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5년 수익률 최악의 펀드는 ‘신한BNPP해피라이프연금전환자1(주식)C1’이었다. 2013년 1월 2일부터 2018년 12월 28일까지의 수익률이 무려 -20.72%를 넘는다. 수익률 통계상 연금 가입자들이 낸 돈의 5분의 1을 까먹은 셈이다. 이 펀드는 이미 앞서 언급했듯이 2018년 수익률도 -27.49%로 최악의 연금펀드 1위였다. 5년 수익률 최악 2위는 ‘하나UBSFirstClass연금자1(주식)’으로 5년 수익률이 -17.31%로 처참했다. 3위는 ‘대신연금저축배당주전환자(주식)’로 연금 가입자들의 돈을 -15.43%나 날려버렸다.

사실 이들보다 더 심각한 것은 5년 최악 수익률 4위인 ‘하나UBS인Best연금1(주식)’과 5위인 ‘한국밸류10년투자연금전환1(주식)C’다. 이 두 펀드는 총 80개의 주식형 연금펀드들 중 규모 면에서 1위와 2위다. 하지만 지난 5년 수익률이 -13.88%로 심각한 상태인 한국밸류10년투자연금전환1(주식)C는 운용순자산이 무려 5375억원을 넘을 만큼 초대형 연금펀드다. 5년 수익률 -14.2%로 처참한 하나UBS인Best연금1(주식) 역시 운용순자산이 4913억원에 이른다.

‘신한’ 5년 투자해 연금펀드 -20% 까먹어

이 두 초대형 연금펀드들의 지난 5년 운영 실태는 연금 가입자들에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한국 투자시장과 연금시장에서 가장 유명한 연금펀드들이고, 가장 많은 연금 가입자들을 보유한 채 노후자금을 위한 투자 명목으로 돈을 빨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연금펀드 시장을 주도하는 이런 공룡 연금펀드의 5년 수익률이 -13%를 훌쩍 넘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에 확인된 것이다.

연금은 소득이 없거나 대폭 줄어들 노후를 위한 마지막 안전판이다. 노후대비 자금을 불리기는커녕 연금을 타기도 전에 있는 돈마저 까먹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키워드

#금융
조동진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