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6일 서울 광화문 KT 사옥에서 모델들이 가상현실(VR) 기기를 쓰고 5G 버스를 체험하고 있다. ⓒphoto 주완중 조선일보 기자
지난 1월 16일 서울 광화문 KT 사옥에서 모델들이 가상현실(VR) 기기를 쓰고 5G 버스를 체험하고 있다. ⓒphoto 주완중 조선일보 기자

최근 SK텔레콤이 인가를 신청한 5세대(5G) 이동통신 요금제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반려하면서 5G 상용화에도 급제동이 걸렸다. 5G 상용화 시작 전부터 업계가 요금제 문제로 몸살을 앓게 된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육성을 강조하며 5G 연관 산업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힌 정부가 5G 요금제 인가에 퇴짜를 놓은 배경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5G 고가요금 더 낮춰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3월 5일 SK텔레콤이 인가를 신청한 5G 요금제가 ‘고가 구간에 편중됐다’는 이유로 반려했다. SK텔레콤이 과기부에 제출한 5G 요금제는 최하 구간이 ‘월 7만5000원’에 데이터 150기가바이트(GB)를 제공한다. 과기부의 반려는 ‘이보다 더 저용량 데이터를 제공하는 중저가 요금제를 만들라’는 주문으로 풀이된다.

현행 통신요금은 시장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이 정부 인가를 받으면 나머지 사업자가 비슷한 요금제를 신고하는 방식, 즉 요금인가제로 결정된다. 통신요금 인가제를 도입한 1991년 이후 정부가 통신사의 요금제 신청을 반려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례적인 것은 이번엔 과기부가 SK텔레콤의 요금제 인가 신청 반려에 대한 보도자료까지 내면서 적극적인 설명을 덧붙인 점이다. 과기부는 보도자료에서 ‘SK텔레콤이 제출한 5G 요금제가 대용량 고가 구간으로만 구성돼 있어 이용자의 선택권을 제한할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이처럼 정부가 공개적으로 고가요금제에 대한 제재 움직임에 나선 이후 ‘요금인가제’ 폐지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요금인가제 필요성에 대한 회의론도 제기된다. 요금인가제는 사업자 간 유효경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규제이다.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의 시장지배력 남용을 방지하고 후발사업자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도입됐다.

도입 초창기와 달리 현재 이동통신 시장은 3개 이통사와 40여개 알뜰폰 사업자가 경쟁하는 구도가 됐다. 인가제를 유지해야 할 명분이 과거에 비해 옅어진 셈이다. 여기에 신고제 대상인 KT와 LG유플러스가 1위 사업자와 비슷한 요금제를 신고하는 등 요금인가제가 사실상 담합의 빌미가 된다는 문제제기도 이어졌다.

‘요금인가제 폐지’, 여야 한목소리

국회에서도 요금인가제 폐지에 대해 여야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 등이 요금인가제 폐지 관련 법안을 내놓았지만 여전히 국회 계류 중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의 박선숙 바른미래당 의원 역시 요금인가제 폐지를 골자로 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현재 계류 중인 요금인가제·신고제 관련 법안은 13건으로, 이 가운데 요금인가제 폐지를 다룬 법안이 5건이나 된다.

그렇다면 요금제 규제와 관련해 해외의 움직임은 어떨까. 해외에서는 오래전부터 요금규제를 완화하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가령 미국은 모든 유무선 통신사업자가 요금 공시 의무는 가지고 있지만 개별 이동통신사의 가격에 대한 별도 규제가 없다. 다만 위법 상황이 발생하면 미 연방통신위원회가 사후중지명령을 내린다. 일본 또한 1985년 1위 이통사 NTT도코모에 인가제를 적용했으나 1998년 유선을 포함한 모든 요금을 신고제로 전환했다. 2004년부터 NTT도코모 유선전화 일부만 제외하고 신고제도 폐지했다.

지난 2월 스페인에서 열린 MWC(Mobile World Congress)에서 박정호 SK텔레콤 사장(가운데)이 5G 관련 전시물들을 체험하고 있다. ⓒphoto SK텔레콤
지난 2월 스페인에서 열린 MWC(Mobile World Congress)에서 박정호 SK텔레콤 사장(가운데)이 5G 관련 전시물들을 체험하고 있다. ⓒphoto SK텔레콤

‘세계 최초 5G 상용화’ 이상 없나

문제는 요금제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면서 5G 상용화 시기가 점차 불투명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기부 역시 당초 3월 말로 예상됐던 5G 상용화 일정이 지연된다는 것을 사실상 인정했다. 과기부는 지난 3월 7일 5G 상용화 일정과 관련한 설명자료를 내고 “5G 상용화는 네트워크, 단말기, 서비스 등 다양한 요건들이 시장에서 준비돼야 가능하다”며 “정부는 통신사업자, 단말기 제조업체 등과 긴밀히 협의하고 준비상황을 파악해가며 정책을 추진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전성배 과기부 기획조정실장 역시 이날 ‘2019년도 업무계획’ 브리핑을 통해 5G 상용화 개시와 관련해 “품질이 확보되는 시점에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면 (5G 상용화는) 3월 말이 아닐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언제 될지는 단정하기 어렵지만 많이 늦어지거나 (한국이) 최초 상용화 국가가 안 될 가능성은 적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업계 입장에선 5G 상용화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벌어지는 요금제 논란이 달가울 리가 없다. 이통사가 5G 요금을 인위적으로 낮추게 되면 이통사의 망 구축 능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이는 다시 5G 서비스의 질적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요금을 내릴 수도, 그렇다고 정부 제재를 무시할 수도 없어 손발이 묶인 처지에 놓인 셈이다.

한 이통사 관계자는 “요금제 논란도 문제인 데다 당장 인위적으로 가격을 낮추자니 어느 수준까지 내려야 하는지 정신이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5G 초기 네트워크 구축 단계에서의 투자를 고려할 때 처음엔 고가 요금제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며 “점차 서비스 상용화 단계를 거치면서 중저가 요금제도 늘어나게 될 것이다. 앞서 3G, 4G 통신 역시 상용화 단계를 거치면서 요금이 인하되는 구조였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정부가 5G 요금제 인가를 무작정 미룰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5G 요금제 인가가 4월 안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4차 산업혁명 육성에 대한 의지가 강한 한국 정부 특성상 ‘최초의 5G 상용화 국가’라는 타이틀을 놓치려 하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김홍식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SKT 5G요금제 신청 반려 소식에 5G 요금제 출시에 대한 기대감까지 낮출 필요는 없다”며 “4차 산업혁명 육성 의지가 강한 한국 정부의 특성상 5G 요금제 인가를 다음 달까지 미룰 가능성이 희박하고 저가 요금제를 편성한다고 해도 채택률이 미미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 연구원은 “아마도 4월 발표될 초기 5G 가입자들의 요금제 선택이 초고가 위주로 이루어질 공산이 크다”며 “초기 5G 신규 가입자 중 절반 가까이가 월 7만5000원 이상을 채택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조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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