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0일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추락한 에티오피아항공 보잉737-맥스8의 잔해와 구조대. ⓒphoto 뉴시스·신화
지난 3월 10일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추락한 에티오피아항공 보잉737-맥스8의 잔해와 구조대. ⓒphoto 뉴시스·신화

세계 항공기 시장의 히트작 ‘보잉737-맥스8’이 전 세계 항공사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지난해 10월 인도네시아 국적 라이언에어(Lion air) 보잉737-맥스8이 자카르타 국제공항 이륙 13분 뒤 추락해 승무원과 승객 등 탑승자 189명 전원이 사망하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이 대형사고가 벌어진 지 채 5개월이 안 된 지난 3월 10일, 이번에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국적의 에티오피아항공이 운항하던 보잉737-맥스8이 아디스아바바 볼레 국제공항 이륙 6분 만에 추락했다. 이 사고로 UN 직원 19명을 포함해 승무원, 승객 등 탑승자 157명 전원이 사망했다.

지난 5개월 사이 벌어진 이 두 건의 대형 참사 외에도 보잉737-맥스8과 관련해 전 세계 곳곳에서 고도 급강하, 비정상적 고속운항, 오작동 등 크고 작은 사고들이 보고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보잉 공포’와 기체 결함 의혹이 전 세계에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최근 5개월 두 번 추락, 탑승자 모두 죽어

사고가 난 인도네시아와 에티오피아는 물론 중국과 몽골, 베트남,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들과 유럽연합(EU), 모로코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아프리카 국가들이 일찌감치 보잉737-맥스8의 운항을 금지했다. 여기에 멕시코,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남미 국가까지 합류하며 보잉737-맥스8의 운항 금지와 영공 통과 금지 조치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심지어 157명 탑승객 전원이 사망한 인도네시아 참사 직후까지 연방항공청(FAA) 등을 통해 “현재까지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는 기종”이라며 버티던 미국조차 트럼프 대통령 등 백악관이 직접 나서 운항 중단을 지시한 상황이다.

보잉737-맥스8 운항 중단과 영공 통과 금지만 확산되고 있는 게 아니다. 러시아 아에로플로트와 인도네시아 라이언에어, 베트남 비엣젯 등 몇몇 항공사들은 미국 보잉사를 향해 ‘보잉737-맥스8 주문을 취소할 수 있다’거나 ‘인도를 중단하겠다’는 강경 입장을 내놓고 있다.

그러면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현재 한국 항공사들이 보유한 보잉737-맥스8은 단 두 대뿐이다. 모두 저가항공사(LCC)인 이스타항공이 보유한 것들이다. 이스타항공은 이 기종과 관련해 세계 곳곳에서 심각한 안전 우려가 제기되고 지난 3월 10일 에티오피아 추락사고로 탑승자 157명 모두가 사망한 뒤에도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아 고객들의 불만과 빈축을 샀다. 이스타항공은 에티오피아 사고 3일이 지난 3월 13일에야 보잉737-맥스8 기종 2대의 운항을 중단했다.

2대 보유 이스타항공 13일에야 운항 중단

이스타항공의 운항 중단으로 3월 20일 현재 한국 항공사들 중 이 기종을 운항하는 곳은 없다. 한국의 대형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보잉737-맥스8 기종을 갖고 있지 않고, 노선 투입과 운항 기록도 없다. 이 상황만 보면 한국의 항공사들이 ‘보잉737-맥스8 공포’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한국 항공사들에 ‘보잉737-맥스8 공포는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이는 오는 4월부터 대한항공을 시작으로 보잉737-맥스8 기종이 한국에 대거 들어올 예정이기 때문이다. 특히 제주항공 등 저가항공사들이 이 기종을 대거 들여온다. 대한항공과 저가항공사인 이스타항공, 티웨이항공이 올해 안에 사올 보잉737-맥스8 기종은 최대 14대. 여기에 대표적 저가항공사인 제주항공까지 가세해 2027년까지 무려 114대의 보잉737-맥스8이 한국에 들어올 예정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국토교통부가 집계한 한국 항공사들의 보잉737-맥스8 국내 도입 계획에 따르면, 대한항공이 오는 4월 1대를 시작으로 5~7월 각 1대, 10~11월 각 1대 등 올해만 모두 6대를 한국으로 가져온다. 이스타항공은 5월부터 8월까지 매달 1대씩 4대를 들여와 보유 중인 2대를 포함해 이 기종을 올해 안에 모두 6대 보유하게 된다. 티웨이항공도 6월부터 8월까지 매달 1대씩 들여오고, 12월에 1대를 더 들여와 올해에만 총 4대를 보유하게 된다.

그런데 한국 항공사들에 보잉737-맥스8 공포는 사실 올해보다 2020년부터가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2020년부터 대한항공 등 몇몇 한국 항공사들이 도입 규모를 더욱 확대해놓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2020년에는 올해보다 3대가 많은 17대의 보잉737-맥스8이 한국에 들어올 예정이며, 2021년과 2022년 각 16대, 2023년에는 무려 18대가 새로 들어올 예정이다. 또 2024년과 2025년 각 12대, 2026년 8대와 2027년 1대 등 총 9년에 걸쳐 대한항공과 제주항공, 이스타항공, 티웨이항공이 무려 114대나 되는 신규 보잉737-맥스8을 미국 보잉사로부터 사올 예정이다.

제주항공 최대 50대 사겠다며 나서

문제는 이 114대가 전부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대한항공과 제주항공의 보잉737-맥스8 도입 규모가 국토부의 집계보다 더 증가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대한항공은 30대, 제주항공은 40대의 보잉737-맥스8 도입을 확정해놓았는데 취재 결과 대한항공은 30대 외에도 ‘상황을 고려해’ 추가로 20대를 더 사겠다는 구매 옵션을 맺었다. 제주항공도 ‘확정한 40대 외에 10대의 보잉737-맥스8을 더 사겠다’며 보잉사와 옵션 계약을 맺은 것으로 확인됐다. 만약 이러한 옵션 구매가 현실화되면 보잉737-맥스8의 한국 도입 규모는 현재 알려진 114대가 아니라 144대로 급격히 늘게 된다.

한국의 항공사들 중 보잉737-맥스8을 가장 많이 사들이겠다고 나선 곳은 제주항공이다.(구매 확정 40, 옵션 10대 등 최대 50대 구매) 제주항공 송경훈 홍보팀장에게 “안전성 문제가 터졌고, 이미지도 악화된 상황인데 10대의 옵션 구매 계약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를 묻자 송 팀장은 “계약에 대해서는 외부에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보잉737-맥스8의 1대당 가격은 약 1억1000만~1억2000만달러로, 우리 돈 1246억3000만~1359억6000만원(3월 18일 1달러당 1133원 기준·이하 동일)에 이른다. 물론 비행기 내부 구조와 기능 추가(혹은 제외) 같은 항공사별 주문 내역과 구입 대수, 제작·판매사인 보잉사와 항공사 간 계약 조건, 인도 시기 등에 따라 이것보다 비쌀 수도, 싸질 수도 있다. 하지만 금융사들과 항공업계에서는 이 가격을 보잉737-맥스8의 가장 기본적인 대당 가격으로 보고 있다.

사실 항공사들은 몇몇 이유로 자신들의 항공기 도입 가격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기자는 제주항공이 2026년까지 들여올 보잉737-맥스8 기종 40대의 구체적인 구매 가격을 확인했다. 제주항공은 총 44억1492만달러(약 5조21억440만원)를 보잉에 주고 이 비행기 40대의 구매 계약을 맺었다. 1대당 평균 가격이 1억1037만3000달러인 셈이다.

어쨌든 이를 근거로 올해 4월부터 2027년까지 9년 동안 대한항공과 제주항공, 이스타항공, 티웨이항공이 새로 사오게 될 114대의 보잉737-맥스8 총 인수비용을 계산하면 최소 125억4000만달러에서 최대 136억8000만달러에 이른다. 한국 돈으로 최소 14조2078억2000만원에서 최대 15조4994억4000만원에 이르는 규모다. 만약 대한항공과 제주항공이 맺은 옵션 구매 20대와 10대까지 모두 사게 되면 인수비용 역시 최소 158억4000만달러에서 최대 172억8000만달러로 급증하게 된다.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최소 17조9467억2000만원에서 최대 19조5782억4000만원에 이르는 천문학적 규모가 된다.

지난해 12월 김포공항에서 열린 이스타항공의 보잉737-맥스8 도입식 모습. ⓒphoto 뉴시스
지난해 12월 김포공항에서 열린 이스타항공의 보잉737-맥스8 도입식 모습. ⓒphoto 뉴시스

대거 도입 저가항공사에 재앙되나

그런데 항공사들이 부담해야 하는 실제 인수비용이 이보다 더 커질 수도 있다. 항공사들은 통상 금융사를 통해 구입 자금을 조달하거나, 리스(lease)를 통한 방법으로 비행기를 사오기 때문이다. 보잉과 계약한 구입가격에 금융사에 지급해야 할 이자와 리스료 등 금융비용까지 더해져 실제 구입가격이 더 커지는 구조다.

문제는 보잉737-맥스8의 추락 위험과 기체 및 소프트웨어 결함 가능성으로 인해 한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이 운항은 물론 영공 통과 금지까지 내린 상태라는 것이다. 항공사들이 계획한 대로 보잉737-맥스8을 도입하지 못하고, 노선 투입은 물론 영업조차 하지 못하게 되면 보잉737-맥스8 기종의 도입 비용에 더해 영업 손실까지 날 수밖에 없다.

KTB투자증권 이한준 연구원은 비행기 도입에 따른 재무적 영향보다 거액을 들여 보잉737-맥스8을 사놓고도 영업(노선 투입)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몇몇 저가항공사들에는 더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한준 연구원은 “저가항공사의 경우 영업 부문에서 이미 이들이 세워놓았던 계획이 사실상 모두 틀어졌다”며 “보잉737-맥스8 문제가 단기간에 결론이 나오기 어렵고 이 때문에 저가항공사들이 기회비용을 모두 날리게 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익명을 요청한 항공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저가항공사들이 금융사를 통해 보잉737-맥스8 구입 자금을 마련한 상태”라며 “결국 애초 계획했던 시기와 달리 비행기 도입과 노선투입이 늦어지고, 이로 인해 영업까지 못하게 되면 금융비용 부담은 물론 영업 손실에 따른 추가비용까지 고스란히 부담해야 한다”고 했다. 손실이 이중삼중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구조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저가항공사를 중심으로 보잉737-맥스8이 실적 악화와 재무적 위험을 키우는 재앙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 보잉737-맥스8의 영업을 중단한 이스타항공을 보자. 이 기종을 격납고에 보관한 채 영업을 못하는 상황에 대해 시장에서는 1대당 수백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는 추산과 전망이 나오고 있다. 참고로 이스타항공은 운항을 중단한 채 보잉737-맥스8을 격납고에 보관하는 비용으로 1대당 매월 1500만원씩(2대 매월 3000만원)을 쓰고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보잉737-맥스8의 영업 수익이 0원인데 2대 보관료로만 연간 3억6000만원을 날리게 된 것이다. 보잉737-맥스8을 위해 고용한 인력의 인간비 등 고정비용도 상당하다고 알려져 있다.

운항 중단 풀려 들여와도 문제 산더미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한국의 항공사들이 보잉737-맥스8을 예정대로 모두 들여와도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 세계에 보잉737-맥스8의 이미지가 이미 ‘추락 위험이 있는 항공기’로 굳어져버렸기 때문이다.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미국 연방항공청이 조사를 마치고, 이 조사 결과에 따라 미국 측이 ‘안전성 문제를 해결하는 조치를 취했다’는 입장을 내놓으면 이를 반박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세계 항공시장의 상황이다.

이를 근거로 다른 국가들이 운항 금지 및 영공 통과 금지 조치를 해제한다면, 한국 정부도 현재 취하고 있는 보잉737-맥스8 관련 조치들을 계속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 상황이 되면 한국 항공사들은 영업 손실 만회와 재무부담 완화를 위해 보잉737-맥스8을 계획한 대로 들여와 다수 노선에 투입하게 된다. 문제는 ‘추락 위험이 있는 항공기’로 이미지가 악화된 비행기에 대해 항공 소비자들의 불안감과 의혹까지 말끔히 지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향후 이 기종 운항에 따른 반발과 불안이 커질 수 있다는 게 취재에 응한 항공업계와 시장 관계자들의 대체적 시각이다. 결국 보잉737-맥스8을 활용한 후에도 영업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보잉737-맥스8을 현재 보유하고 있거나 사기로 한 항공사들은 어떤 생각일까. 대부분 곤혹스러워하면서도 ‘일단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이미 40대 구입을 확정했고, 한국에서 가장 많은 최대 50대를 사겠다고 나선 제주항공은 어떤 문제인지 결함이 확인돼 안전에 대한 우려가 해결되면 계약한 비행기를 가져오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제주항공 송경훈 홍보팀장은 “안전에 대한 국제적 공감대가 형성이 된 이후 도입을 추진한다는 게 CEO 명의로 나온 입장”이라고 했다. “‘안전에 대한 국제적 공감대’란 게 무엇이고,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게끔 정해놓은 기준이 있는지”를 묻자 송 홍보팀장은 구체적 내용은 말하지 않은 채 “국제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게 기본 원칙”이라는 말만 수차례 되풀이했다.

제주항공 측에 “계획된 보잉737-맥스8 구매 포기 시 발생할 수 있는 위약금 문제 등 계약 철회 가능성”에 대해서 묻자 송 팀장은 “계약과 관련해 구체적 사항은 알고 있는 게 없다”며 “지금 위약금 문제를 계산할 건 아니다”라고만 했다.

대한항공은 “안전이 완전히 담보되기 전까지 운항하지 않기로 했다”며 “보잉737-맥스8을 투입하려던 노선에는 보유 중인 다른 종류의 비행기를 투입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 3월 13일 보잉737-맥스8 두 대의 운항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이스타항공은 최종구 대표이사 명의로 보잉737-맥스8 운항 재개 시점과 관련해 “이스타항공과 국토부의 정밀안전점검 이후 안전에 대한 우려가 없다고 확인되는 시점”이라고 언급했다.

단기간에 해결되기 힘든 공포

추락 위험 등 안전 문제에도 보잉737-맥스8을 사오기로 결정한 한국의 항공사들이 계약 철회 혹은 보유 기종 다변화 등의 형태로 이 기종을 포기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게 시장과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가격과 탑승 인원, 관리 비용 등 보잉737-맥스8 정도의 효율적인 항공기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게 큰 이유다. 특히 저가항공사들의 경우 인력·자금력·항공사 운영 노하우 등 각종 문제 때문에 에어버스 기종 도입 등 항공기 다변화를 꾀할 수 있는 능력과 여력조차 사실상 없는 게 현실이다. KTB투자증권 이한준 연구원은 “저가항공사들로서는 중거리 노선에 보잉737-맥스8을 대체할 항공기가 없다”고 했다.

보잉737-맥스8 공포가 가까운 시간 안에 해결될 가능성은 낮다. 메리츠종금증권 이종현 연구원은 “이제 막 사고 조사가 시작됐고, 항공기 사고 조사는 단기간에 마무리되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내다봤다. 보잉737-맥스8 공포가 길어질수록 제주항공 등 저가항공사들을 중심으로 타격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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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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