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몽블랑 문화예술후원자상을 받고 기념 촬영을 하는 신창재 회장. ⓒphoto 뉴시스
2010년 몽블랑 문화예술후원자상을 받고 기념 촬영을 하는 신창재 회장. ⓒphoto 뉴시스

생명보험업계 2위 교보생명을 두고 오너이자 최고경영자인 신창재 회장과 교보생명에 거액의 자금을 투자한 재무적 투자자(FI)들 사이에 심각한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교보생명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은 물론 기존 신창재 회장 일가 중심의 지배구조에 변화가 촉발될 가능성마저 높아지고 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충돌로 인해 시장에서 꾸준히 거론돼왔던 교보생명의 기업공개(IPO) 역시 쉽지 않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오너와 재무적 투자자들 간 갈등이 생명보험업계의 공룡인 교보생명을 혼돈 속으로 몰아가는 양상이다.

교보생명의 지배권과 경영권을 쥐고 있는 신창재 회장 측과 1조2054억원을 교보생명에 투자한 재무적 투자자. 이 둘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충돌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예고돼왔던 게 사실이다. 신창재 회장과 재무적 투자자들은 2011년 교보생명 지분 거래(계약)를 했고, 이 거래의 조건이었던 ‘교보생명의 기업공개’가 약속된 시점에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파트너로서 양측의 신뢰 관계가 사실상 무너졌다. 이후 양측은 몇 년간 위태로운 동거를 이어왔다. 하지만 결국 올해 봄, 사모펀드인 ‘어피니티 에쿼티 파트너스’를 중심으로 뭉친 재무적 투자자들이 신창재 회장을 향해 본격적으로 포문을 열며 갈등이 격화됐다. 3월 중순 이 갈등은 교보생명의 경영권과 지배구조를 뒤흔들 수 있는 충돌로 확전된 상태다.

이번 갈등의 시작은 8년 전인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0년 포스코에 인수된 대우인터내셔널(현 포스코대우)은 대우그룹 시절부터 신창재 회장의 교보생명 지배를 원활하게 해준 강력한 우군으로 교보생명 지분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2010년 대우인터내셔널이 포스코에 인수되며 상황이 급변했다. 김우중 회장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면서 대우인터내셔널이 갖고 있던 교보생명 지분은 사업 확장을 위한 유용한 자산이 됐다. 포스코그룹에 편입된 지 불과 1년 뒤인 2011년, 대우인터내셔널은 ‘자원개발을 위한 자금 확보’를 이유로 보유하고 있던 교보생명 지분 24% 매각에 나섰다.

교보생명 운명 건 신창재 회장과 FI들 거래

그동안 경영권 행사에 강력한 우군 역할을 해줬던 24% 지분이 갑자기 매각 대상으로 시장에 등장하자 당장 신창재 회장 측에 비상이 걸렸다. 당시 신 회장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우군으로 끌어들인 것이 현재 신 회장을 향해 공세를 펴고 있는 재무적 투자자들이었다.

2012년 9월, 사모펀드인 ‘어피니티 에쿼티 파트너스’를 중심으로 IMM PE, 베어링 PEA, 싱가포르투자청 등이 교보생명 지분 24% 인수를 위한 ‘어피니티 컨소시엄’을 형성했다. 이들은 교보생명 지분 24% 인수에 1조2054억원을 투자했다. 1주당 24만5000원에 교보생명 지분을 산 것이다.

어피니티 에쿼티 파트너스와 IMM PE, 베어링 PEA, 싱가포르투자청 등이 컨소시엄까지 구성해 당시 24%나 되는 교보생명 지분을 1조2054억원에 인수한 이유가 중요하다. 24%나 되는 지분을 인수했지만 이들 사모펀드는 신창재 회장이 지배하는 교보생명의 경영에 간섭하거나 경영 참여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신 회장의 우호 지분 역할에 충실한 모양새를 갖췄다.

이유가 있었다. 어피니티 에쿼티 파트너스를 중심으로 뭉친 사모펀드와 해외 국부펀드들은 투자금 회수 시점에 주목했다. 경영 간섭을 하지 않고도 우호지분으로서 투자 3년 후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일종의 안전장치를 신창재 회장으로부터 약속받은 것이다. 당시 어피니티 에쿼티 파트너스, IMM PE, 베어링 PEA, 싱가포르투자청 등은 지분 24%를 인수해주는 대신 신창재 회장 측과 지분 매입 3년 후, 즉 2015년 9월까지 교보생명의 기업공개를 약속받았다.

여기에 더해 만약 약속과 달리 2015년 9월까지 교보생명이 기업공개를 하지 않을 경우 2012년 인수했던 지분을 신창재 회장에게 팔 수 있는 권리, 즉 ‘신 회장을 상대로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는 내용을 계약에 포함시켰다.

어피니티 에쿼티 파트너스, IMM PE, 베어링 PEA, 싱가포르투자청 등 재무적 투자자들은 당장 경영참여 같은 골치 아픈 투자를 하지 않고도 3년 후 교보생명 기업공개를 통해 상당한 투자수익을 올릴 수 있는 조건이었다. 만약 이 계획이 어긋나 기업공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신 회장을 상대로 풋옵션을 행사하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일종의 안전장치까지 마련한 것이다.

신 회장 기업공개 약속 깨며 충돌 본격화

2012년 맺은 이 약속과 계약이 신창재 회장과 재무적 투자자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충돌의 발단이 된 것이다. 신 회장이 재무적 투자자들에게 약속했던 ‘2015년 9월까지의 교보생명 기업공개’는 이뤄지지 않은 반면 사모펀드와 해외 국부펀드로 구성된 재무적 투자자들은 정해진 기간에 투자금과 수익을 회수해야 한다. 결국 이들의 투자 계획이 틀어지면서 신 회장에 대한 신뢰가 깨지기 시작한 것이다.

생명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2015년 약속돼 있던 교보생명의 기업공개가 이뤄지지 않은 후에도 신 회장과 재무적 투자자들 사이에 24%에 이르는 지분과 투자금 회수에 대한 협상이 물밑에서 계속됐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양측이 합의하기 힘들 만큼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시간이 흘렀던 게 문제”라고 했다.

사실 2015년 교보생명의 기업공개가 이루어졌다면 지금 같은 갈등과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신창재 회장이 최대주주이자 최고경영자인 교보생명은 2015년 왜 약속했던 기업공개를 하지 않았을까.

다양한 이유들이 거론되고 있다. 정체된 생명보험 시장 상황에서 기업공개와 상장을 했을 때 교보생명의 가치를 높게 인정받기 힘들 것으로 당시 신창재 회장과 교보생명 경영진이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대체적 평가였다. 기자가 교보생명 측에 직접 “2015년 기업공개를 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구체적인 답 대신 “그 당시 생명보험사들이 처한 상황이 좋지 않으면서 IPO가 늦춰진 면이 있다”는 이유를 내놨다.

그런데 이 이유와 함께 상황을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신 회장과 교보생명 측이 풀지 못한 숙제가 하나 더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교보생명 지분 33.78%(특수관계인 포함 당시 지분율 총 39.45%)를 보유하고 있던 신창재 회장에게 기업공개가 경영권과 지배구조 강화 측면에서 유리하지 않을 수 있다고 계산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업공개와 상장으로 이어지면 전체 주식 총량이 기존보다 증가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기존 주주들의 경우 지분율 희석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33.78%인 신창재 회장의 지분율 역시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결국 경영권과 지배구조 강화는 고사하고 현 상태 유지를 위해서라도 신 회장 측은 기존 수준의 지분율을 확보해야 한다. 늘어난 주식을 추가로 더 사들여야 한다는 의미다. 2011년 이미 24%의 지분이 매물로 시장에 나왔을 때 이를 소화하지 못해 재무적 투자자와 손을 잡아야 했을 만큼 자금동원력이 충분치 못한 것으로 평가받는 신창재 회장으로서는 지분율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생명보험업계 시장 상황과 함께, 신 회장의 이 같은 경영권 및 지배구조 문제가 묘하게 얽히며 당시 교보생명의 기업공개가 사실상 흐지부지됐다는 분석이 업계와 시장에서 힘을 얻고 있다.

어쨌든 2015년 교보생명 기업공개가 무산되면서 투자금 회수와 수익을 확보해야 하는 재무적 투자자들의 불만이 고조됐다. 이후 어피니티 에쿼티 파트너스를 중심으로 한 재무적 투자자들은 신 회장에게 교보생명 지분을 팔 수 있는 권리(풋옵션)를 언제든지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한 생명보험업계 관계자는 “당시 기업공개 무산 후에도 신 회장 측과 재무적 투자자들 사이에 협상이 지속됐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서로 접점을 찾기 힘들 만큼 이해가 많이 달랐다는 것이 문제였을 것”이라고 했다.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 본사 ⓒphoto 뉴시스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 본사 ⓒphoto 뉴시스

FI, 신 회장에게 “1주 40만9000원에 사라”

2012년 이후 동맹 관계였던 신 회장과 재무적 투자자들이 2015년 9월 이후 날카로운 긴장 관계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8년 9월 긴장 관계를 유지하던 양측 상황이 다시 격변했다. 2018년 9월 교보생명 이사회가 “정보와 자료가 미비하여 재논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를 앞세워 이사회에 상정돼 있던 ‘기업공개 추진에 관한 안건’을 다시 보류시켜버리면서다.

어피니티 에쿼티 파트너스를 중심으로 IMM PE, 베어링 PEA, 싱가포르투자청 등 재무적 투자자들이 바로 반발했다. 2018년 10월 재무적 투자자들은 신창재 회장에게 “보유 중인 24%의 지분을 사가라”라는 풋옵션 행사를 통보했다. 무려 7년 전인 2012년에 거래한 원금만 1조2054억원 규모인 교보생명 지분을 신창재 회장의 자본력으로 직접 인수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2018년 12월 교보생명 이사회는 3달 전 통과를 무산시켰던 ‘기업공개 안건’을 부랴부랴 결의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교보생명 이사회의 이 같은 기업공개 추진 의결에도 재무적 투자자들은 신 회장 측을 더욱 강하게 압박했다. 이들은 안진회계법인을 통해 산정한 풋옵션 행사가격 40만9000원을 신 회장 측에 제시했다. 즉 신 회장에게 재무적 투자자가 보유한 교보생명 주식을 1주당 40만9000원의 가격에 사가라고 한 것이다.

신창재 회장 측이 당황해하며 반발할 수밖에 없는 주당 가격이었다. 신 회장 측은 재무적 투자자와 안진회계법인을 상대로 소송 등 법적 대응에 나설 수 있다는 의사도 내비쳤다. 그러면서도 신 회장 측은 지난 3월 12일, 급하게 재무적 투자자들에게 협상안을 내놨다. 협상안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다. △재무적 투자자들의 주식을 담보로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 △제3자에게 재무적 투자자 지분 매각 추진 △기업공개 성공 후 차익 보전 등이었다.

하지만 이 세 가지 협상 제안 모두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신 회장이 재무적 투자자들에게 제시한 세 가지 협상안에 대해 교보생명 관계자는 “ABS 인수 주체나 재무적 투자자 지분을 인수해줄 제3의 투자자에 대한 구체적 구상이나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구체화된 것이라기보다 (협상을 위한) 큰 틀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했다.

대한상사중재원의 결정에 달려

어피니티 에쿼티 파트너스, IMM PE, 베어링 PEA, 싱가포르투자청은 신 회장의 이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 그리고 3월 20일 이들은 대한상사중재원에 신 회장에 대한 ‘풋옵션 이행 중재신청’을 제기하며 더욱 강한 압박에 나섰다.

이제 관심은 대한상사중재원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다. 이 결정에 따라 교보생명의 경영권과 지배구조가 출렁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신창재 회장은 본인 지분 33.78%에 특수관계인까지 합쳐 총 36.91% 지분을 갖고 있다. 또 우군으로 분류되고 있는 사모펀드 코세어코리아(Corsair Korea Investors) 지분 9.79%를 더하면 총 46.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재무적 투자자인 어피니티 에쿼티 파트너스(9.05%), IMM PE(5.23%), 베어링 PEA(5.23%), 싱가포르투자청(4.5%)은 총 24.01%의 지분을 갖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신 회장에 대한 풋옵션을 보유한 사모펀드 SC PE(5.33%)가 가세하면 총 29.34%의 지분이 모인다. 풋옵션은 없지만 역시 수익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외국계 투자자 캐나다 온타리오교원연금(지분 7.62%)까지 합류하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신창재 회장 측(지분 46.7%)과 충돌하고 있는 재무적 투자자들(지분 29.34%)의 지분율 차가 9.74%로 좁혀진다.

만약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대한상사중재원이 재무적 투자자들이 제기한 문제를 받아들여 이들의 투자 피해를 인정하면 신 회장 측이 난감한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자금력이 부족한 신 회장 측이 재무적 투자자들의 피해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되면 어떤 형태로든 자금 출혈을 피하기 힘들게 된다. 지분 일부를 매각하거나 담보 형태의 대출, 혹은 유동화에 나설 수도 있다. 경영권 약화를 피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가능성이 크지는 않지만 시장 일각에서는 이보다 더 나쁜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중재원의 중재에 따라 신 회장 보유 지분 중 재무적 투자자들의 투자 피해 규모와 같은 수준의 지분을 재무적 투자자들이 (압류 등의 형태로) 가져가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배력 약화를 넘어 신창재 회장의 교보생명 경영권 자체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재무적 투자자들은 기존 지분에 이렇게 확보한 추가 지분까지 더하면 신 회장 측을 지분율에서 앞설 수 있게 된다. 사모펀드로 구성된 재무적 투자자들은 신 회장과 달리 경영권에 큰 관심이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견해다. 결국 교보생명 경영권을 확보하면 재무적 투자자들이 신 회장을 배제한 채 자신들이 확보한 지분, 경영권과 각종 ‘프리미엄’을 더해 교보생명을 M&A 매물로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방법이 7년 전 투자했던 1조2054억원에 대한 수익 극대화와 투자금 회수에 더 유리할 수 있다는 재무적 투자자들의 계산과 시각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에 떠도는 교보생명 매각설

오랫동안 교보생명 오너인 동시에 최고경영자로 경영권과 지배구조를 장악해온 신창재 회장 체제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더구나 생명보험 시장 2위인 교보생명이 M&A 대상이 되면 생보 시장 전체 판도까지 출렁일 것이라는 게 취재 중 만난 시장과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이 때문인지 신 회장과 재무적 투자자들의 충돌, 교보생명 기업공개 문제가 얽히며 시장에서는 각종 이야기들이 떠돌고 있다. ‘신 회장이 재무적 투자자들과 협상을 통해 자신의 지분까지 합쳐 교보생명을 매각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나왔다. 또 신 회장이 자신의 지분 일부와 재무적 투자자 지분을 합쳐 ‘50%+α’의 지분을 은행계 금융지주사나 대형 보험사에 매각하고, 이후 자신은 경영권을 인정받는 거래에 나설 수 있다는 이야기도 최근 떠돌고 있다. 또 대형 생명보험사 인수를 원하는 금융지주들과 서로 지분 맞교환을 통해 재무적 투자자들과의 갈등, 기업공개 문제에서 벗어나는 방편을 꺼낼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실제 시장에서는 KB금융·KEB하나금융·우리금융지주는 물론 한화생명을 보유한 한화그룹의 이름까지 거론되는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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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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