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7일 오전 충북 제천시 아세아시멘트 공장에 있는 ESS에 화재가 발생해 41억원의 재산 피해가 났다. ⓒphoto 연합
지난해 12월 17일 오전 충북 제천시 아세아시멘트 공장에 있는 ESS에 화재가 발생해 41억원의 재산 피해가 났다. ⓒphoto 연합

ESS(Energy Storage System·에너지저장시설) 화재가 계속되면서 업계가 시름에 빠져 있다. 대기업·중소기업 할 것 없이 조사 결과만 바라보고 있지만 정부는 1년 가까이 사고 발생의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 4월 24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전국에는 약 1490개의 ESS가 있는데, 이 중에서 3분의 1 정도가 화재 발생 위험으로 인해 현재 가동을 멈춘 상태다. 특히 백화점 등 다중이용시설에 설치된 ESS는 올해 초 산업부가 가동 중지를 권고하면서 전부 가동이 중단됐다. 주요 배터리 제조업체 중 한 곳인 LG화학은 자사 생산 배터리가 사용된 ESS에 대해서 자체적으로 가동 중단을 하기도 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현재 LG화학은 자체 조사 후 가동 중단 권고 대상이 아닌 시설은 점차 재개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최근 잇따른 ESS 화재는 지난해 5 월 2일 경북 경산의 한 변전소에 설치된 ESS가 불타오른 게 처음이다. 이후 올해 4월까지 총 21건의 화재가 발생했는데, 이 중 대부분이 지난해 8월 이후에 집중됐다. 11월에는 한 달 새 4건의 화재가 집중되기도 했다.

ESS용 배터리 출하량 한국이 전 세계 47%

ESS는 생산된 전기를 저장하는 시스템이다. 특히 태양광, 풍력발전 등 재생에너지를 확충할 때 핵심적인 시설로 꼽힌다. 재생에너지는 해가 뜨지 않는 밤이나 바람이 불지 않을 때 전기를 생산하지 못해 생산이 들쭉날쭉한 것이 약점으로 꼽히는데, ESS에 연결해 생산된 전기를 저장한다면 전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ESS용 리튬이온 배터리 출하량은 5.6GWh로 전 세계 시장의 47%를 차지했다. 삼성SDI와 LG화학이 ESS용 배터리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현재 ESS는 대부분 리튬이온 전지를 이용한 ESS를 의미한다. 용도로 보면 두 종류가 있다. 태양광 풍력발전소와 연결된 ESS, 그리고 공장에서 사용하는 ESS다. 심야시간대에 공급되는 전기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싸다는 점을 이용해 심야시간 전기를 공장에 설치된 배터리에 저장해뒀다가 낮에 쓰는 것이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취약성은 이미 알려져 있다. 배터리를 급속도로 방전시키거나 과도하게 충전하면 폭발할 수 있다는 것이 여러 실증사례를 통해 증명됐다. 소형이지만 리튬이온 배터리를 사용하는 휴대전화의 경우에도 충전과 방전을 계속하면 배터리가 뜨거워지는 것과 비슷하다. 특히 태양광·풍력 발전소와 연결된 ESS의 경우 전문적으로 시설의 안전을 담당하는 이들이 설치한 게 아니라 관리가 어설프고 규모도 제각각인 경우가 많아 사고 위험성이 더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현재까지 발생한 ESS 화재 21건 중 71%인 15건이 태양광·풍력 발전 시스템과 연결된 ESS에서 발생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ESS에 대한 과도한 신뢰가 심각한 문제”라며 “ESS는 무정전 시스템이 필요하거나 특별한 용도가 있을 때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것이지 대규모 전력 공급 시스템의 일부로 쓰기엔 비효율적인 데다 위험하다”고 했다.

배터리 제조사들 조사 결과 공개 안 해

현재 산업부는 화재 원인에 대해서는 쉽게 단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화재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서는 배터리 자체의 결함만이 아니라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ESS는 배터리, 전력변환장치(PCS), 배터리관리시스템(BMS), 에너지관리시스템(EMS) 등으로 구성돼 있어 다양한 곳에서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 앞서 삼성SDI, LG화학 등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이 자체적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도 외부에 공개되지 않아 발화 원인을 추정만 할 따름이다. 앞서 지난 1월 산업부는 민·관 화재 원인조사회를 꾸린 후 조사를 벌여왔지만 민간위원들의 명단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산업부 국가기술표준원 제품안전정책과 이귀현 과장은 전화통화에서 “위원 명단이 유출되면 업체 간 상반된 이해관계에 휘말려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위원들이 사고원인 조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위원들의 숫자가 “19명이라는 것은 맞는다”는 것만 밝혔다.

상대적으로 자금여력이 떨어지는 일부 중소기업은 화재 경고에도 불구하고 ESS를 계속 가동하고 있어 안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SS를 사용하는 업체들은 대부분 돈을 빌려서 ESS를 설치하기 때문에 장비 가동을 멈추면 투자비에 금융비용까지 합쳐져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최근 현대커머셜에서 돈을 빌려 ESS를 설치한 현대중공업은 ESS 가동이 언제 재개될지 불확실해지자 254억원에 달하는 원리금을 중도상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강원도 삼척에서 발생한 ESS 화재 역시 배터리 생산업체의 요청을 무시하고 가동을 강행하다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정책을 미리 준비하지 않고 급격히 시설만 확충한 것이 문제의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태양광이나 풍력은 영세업자들이 운영하는 경우가 많은 데다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한 전문가는 “세계 어디에도 중앙 전력 공급망에 리튬이온 배터리로 만든 저장·수급 시스템을 연결해 운영하는 나라는 없다”며 “정부의 전문성 부족이 불러온 최악의 정책 실패”라고 말했다.

배터리 공급업체들 수익에도 타격

배터리 공급업체들의 타격도 이어지고 있다. LG화학 전지 부문은 지난해 직원들에게 역대 최대 규모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그간 수주받은 자동차 배터리가 수익을 내기 시작하고 노트북 등 휴대용 기기에 사용되는 소형 원통형 배터리 매출이 안정화되면서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는 상황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LG화학은 지난 4월 24일 1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을 통해 매출액은 6조6391억원, 영업이익은 2754억원, 순이익은 2119억원을 각각 기록했다고 밝혔다. 매출은 전년과 비교해 1.3%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57.7%, 순이익은 61.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LG화학의 또 다른 주력 부문인 석유화학 부문에서는 수익성이 개선됐지만, ESS 화재로 인한 일회성 손실이 1200억원대에 달한 것이 주요 이익 감소 요인이라는 설명이었다. LG화학 관계자는 “화재폭발 원인에 대한 자체 조사 결과는 나온 것으로 알고 있지만 워낙에 크게 터진 거라 쉬쉬 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LG화학의 경우 지난해와 올해 잇따른 화재 악재에 배터리 후발주자인 SK이노베이션의 추격이 거세지면서 직원 이탈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SS는 사업부상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자동차 배터리에 비해 이익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대적으로 공급자 위주의 시장이 형성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 종사자들의 전언이다. LG화학 전지사업부의 한 관계자는 “자동차와 ESS는 같은 리튬이온전지를 사용하지만 고객사가 다르기 때문에 영업이익률이 차이가 난다”며 “자동차 배터리의 경우 공급사가 여럿인 경우가 많지만 ESS는 보통 부지 전체에 단독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ESS 화재 사고와 관련된 향후 대책에 대해 산업부 이귀현 과장은 “상반기 중에 화재 원인 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 원인조사위원회 위원 명단도 함께 발표할 것”이라며 “종합적인 시각에서 ESS산업 생태계를 육성하기 위한 방안도 수립해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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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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