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부산 남구 감만부두. ⓒphoto 뉴시스
지난해 12월 부산 남구 감만부두. ⓒphoto 뉴시스

한국 경제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내려앉으며 성장동력에 대한 우려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급기야 지난 4월 25일 ‘올 1분기 경제성장률 –0.3%’ 소식이 한국 경제를 강타했다.

2019년 봄, 2%대는 고사하고 경제성장률이 1%대로 주저앉을 수 있다는 불안함이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경제 침체와 성장률 추락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향후 지속적으로 한국 경제를 괴롭힐 현상으로 굳어질 가능성마저 함께 커가고 있다.

사실 한국 경제를 둘러싼 위기감이 2019년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다. 멀게는 1997년 겨울 외환위기, 짧게는 10년 전인 2008년 미국발(發) 글로벌 금융위기 때 전해진 충격을 지속적으로 받으며 한국 경제는 체력을 소진해왔다. 특히 우리 경제를 이끌어온 제조업 중심의 주력 산업들이 성장 한계에 직면하고, 구조 전환과 혁신 방안을 제시했어야 할 정부의 실책이 연거푸 이어지며 위기설에 끊임없이 노출돼왔다. 각종 거시지표들은 물론 국민이 직접 느끼는 체감경기까지, 지난 수년간 한국 경제에서 ‘안정감’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 이어져온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글로벌 금융위기 한복판이던 2009년을 제외하고, 최근 10년 동안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최소 2%대 중반에서 3%대 초반을 지키며 위기감을 조금이나마 희석시켜온 게 사실이다.

이랬던 우리 경제에 2019년 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불안과 위기감이 그동안과는 조금 다른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위기설과 불안감이 고조될 때마다 우리 경제의 마지막 방패 역할을 해줬던 ‘경제성장률’ 자체에 심각한 경고등이 켜진 것이다. 해외는 물론 한국 내부에서조차 불과 얼마 전까지 제시돼왔던 경제성장률(전망치)에 대해 광범위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은의 이상한 경제성장률 수정 행보

한국의 경제성장률과 관련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경제성장률에 대한 의문과 신뢰성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의 움직임을 주목해야 한다.

지난 4월 18일 한국은행이 연초 제시했던 기존 경제성장률(전망치)을 낮추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1월 24일 ‘경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지나치게 낙관적인 시각이 아니냐’는 비판에도 “국내외 여건 변화를 고려했다”며 2019년 경제성장률을 2.6%로 제시했다. 이랬던 한국은행이 불과 3개월 뒤인 지난 4월 18일 기존 2.6%로 제시했던 2019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1%포인트 낮춰 2.5%로 하향 조정한 것이다.

국내외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거시지표와 경제 현상 및 현황, 각종 이슈들을 적절히 반영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수정하는 건 사실 문제가 아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문제는 ‘이렇게 수정된 전망치가 정말 한국 경제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또 ‘제시된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얼마나 객관적이고 타당한 사유에 근거해 제시되느냐’ 역시 매우 중요하다. 이 부분에서 지난 4월 18일 한국은행의 경제성장률 전망치 하향 조정은 가뜩이나 위기설에 약한 한국 경제에 불안감을 더했다.

불과 3개월 뒤도 전망 못 하는 한은

앞서 말했듯 연초 한국은행이 제시했던 올 경제성장률 2.6% 전망은 사실 ‘현실인식이 부족했다’는 혹평과 ‘경제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지나친 낙관적 시각에 기인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게 사실이다. 이는 최근 한국은행 스스로 보여온 경제성장률 전망치 수정 과정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2018년 1월과 4월, 2019년 경제성장률을 2.9%로 전망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4월 이후 매 3개월(1분기)마다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어김없이 하향 수정했다. 2018년 4월 제시한 2.9%를 3개월 뒤인 7월 2.8%로 떨어뜨렸고, 다시 3개월 뒤인 2018년 10월에는 2.7%로 낮췄다. 해가 바뀌었지만 역시 불과 3개월 뒤인 2019년 1월 2.6%로 추락시키더니 지난 4월에는 2.5%까지 내려앉힌 것이다.

이 내용대로라면 경제성장률 전망과 관련해 한국은행의 경제 현황 분석·파악 능력이 안타깝게도 불과 3개월 앞조차 제대로 진단하거나 예측하지 못하는 상태라는 뜻이 된다. 한국이 처한 경제 상황과 국내외에서 불거지고 있는 각종 경제 관련 이슈들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 채 낙관적 시각에 기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내놓다 보니, 결국 3개월에 한 번씩 자신들이 제시했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춰야만 하는 상황을 반복하는 것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한 민간경제연구소 관계자는 한은의 경제성장률 전망과 관련해 “왜 이런 행태(3개월마다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계속 바꾸는)를 보이는 것인지 내부 사정을 한은이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이야기하기 쉽지 않은 면이 있다”면서도 “분명한 건 한국이든 해외든, 또 공공 영역이든 민간 영역이든 이런 식으로 경제성장률을 전망하거나 내놓는 곳을 찾기 힘들다”고 했다. 그는 “금융위기 같은 대형 돌발 상황이 아니라면, 중앙은행의 경제 전망과 경기 예측은 타당한 근거와 단단한 논리를 바탕으로 (제시 후) 6개월 정도는 유지될 수 있어야 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최근 1~2년 한은이 보여주는 모습은 분명히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 교수 역시 3개월에 한 번씩 ‘경기전망(경제성장률 전망치) 자료’를 공개하고 있는 한국은행이, 그때마다 어김없이 전망치를 바꾸는 상황에 대해 고개를 저었다. 성 교수는 “애초 한국은행이 경제성장률을 (실제 경제 상황보다) 높게 제시해온 것”이라며 “그러다 보니 (경제전망 보고서를 내놓을 때마다) 계속해서 (기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수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성장률 추락 불 댕긴 무디스·S&P·LG경제硏

이런 한국은행의 행태와 함께 최근 한국 경제를 덮치고 있는 불안과 위기감을 더욱 키우고 있는 근본적 이유가 또 있다. 바로 ‘한국의 경제 상황이 심각성을 걱정해야 할 만큼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이다. 한국은행만이 아니다. 최근 국내외를 막론하고 상당수 경제 관련 국제기구와 연구기관, 신용평가사와 투자은행(IB)들이 한국 경제에 대해 싸늘한 시선을 보내며 2019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일제히 낮추는 상황이다.

아시아개발은행은 기존 2.6%로 제시했던 한국의 2019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4월 3일 2.5%로 내렸고, 같은 날 한국의 국회예산정책처 역시 기존 2.7%라던 경제성장률 전망을 2.5%로 하향시켰다. 이보다 앞선 3월, 2019년 한국 경제성장률을 기존 2.8%로 제시했던 OECD도 이를 2.6%로 내렸다.

민간 부문에서는 상황을 더욱 박하게 몰아붙이고 있다. 글로벌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기존 2.5%로 제시했던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4%로 낮췄다. 무디스는 더 심각하다. 올해 3월 4일 무디스는 ‘세계 거시전망 2019~2020’ 보고서를 내놓으며 지난해 11월 2.3%라고 예상했던 2019년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을 2.1%까지 추락시켰다. 무디스가 제시한 성장률 전망은 현재까지 나온 국제기구와 국내외 연구기관, 주요국 중앙은행과 투자은행(IB)들이 내놓은 것 중 가장 낮은 수치다.

무디스가 제시한 수치는 ‘그래도 경제성장률이 2.4~2.5% 정도는 되지 않겠냐’고 막연히 기대해왔던 한국 경제에 사실상 ‘쇼크’ 수준이라는 평이 크다. 2019년이 불과 3개월밖에 안 지난 시점에서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1%로 끌어내린 상황이 함축하는 의미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물론 국제기구나 중앙은행이 아닌 민간 신용평가사의 분석이고 ‘전망치’라는 점을 감안해야 하지만 외환위기로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이던 1998년 기록한 –5.5%와 미국발(發) 글로벌 금융위기가 덮친 2009년 0.7% 이후 가장 낮은 수치가 던지는 불안감이 상당한 게 사실이다. 심지어 이 수치는 최근 20년 중 가장 저조한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던 2013년의 2.3%보다도 0.2%포인트나 낮은 것이다.

한국 내부에서도 민간 부문이 진단하는 경제 상황은 점점 더 암울해지고 있다. 지난 4월 21일 LG경제연구원은 무디스에 버금갈 만큼 한국 경제를 향해 싸늘한 수치를 내놨다. 이날 ‘2019년 국내외 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9월 2.5%로 제시했던 2019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3%로 떨어뜨린 것이다. 국책과 민간을 막론하고 경제 관련 주요 국내 기관과 연구소(원)들이 제시해온 전망치 중 가장 낮은 것이다.

절름발이가 된 수출주도형 한국 경제

그렇다면 국내외 경제 관련 국제기구와 연구기관, 신용평가사와 투자은행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시키는 이유는 뭘까.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 경제의 고질적 약점들로 지적돼왔던 사안들이 최근 한꺼번에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향으로 인해 계량화 가능한 각종 지표들이 빠르고 큰 폭으로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국내외 경제 관련 국제기구와 연구기관, 신평사와 투자은행들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며 꺼내든 근거와 핵심 내용에는 몇몇 공통점이 있다. 수출 급감과 지속적인 설비투자 악화, 제조업 등 생산 영역의 고용 참사와 경기 활력 척도로 이야기되는 소비의 부진, 또 어떤 결론이 나든 한국에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으로 전개될 수 있는 미·중 무역 분쟁과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 확대 등이다.

현재 한국의 경제성장률 추락에서 가장 큰 화두는 수출 둔화다. 수출주도형 성장 구조를 가진 한국 경제에 수출 둔화는 곧 성장성 문제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 지난 82개월(2월 기준)이 넘는 기간 동안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해오고 있다. 그런데 그 흑자의 이면에선 꽤 오래전부터 심각한 경고음이 동시에 울렸던 게 사실이다. 경상수지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상품수지, 즉 수출입 상황 악화가 지금 한국의 경제 구조로는 대응하기 쉽지 않은 속도와 형태로 진행돼왔기 때문이다.

수출주도형 경제 구조이긴 하지만, 2000년대 이후 한국 수출의 핵심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IT와 석유·화학이었다. 특정 산업과 제품에 집중된 수출 구조가 굳어진 것이다. 이렇게 굳어진 수출주도 산업과 제품 중 한 곳에서라도 문제가 발생하면 결국 한국 경제 전체의 문제로 이어지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당장의 수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집중화에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차기 먹거리 산업 발굴과 의미 있는 수출 구조 다변화에서는 사실상 실패한 것이다. 특정 산업과 제품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지나치게 커지면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산업이나 제품을 발굴하지 못했고, 이것이 결국 경기변화에 따른 위험과 성장 한계에 대응하기 힘든 경제 구조로 고착화된 것이다. 이 관점에서 당장 문제가 불거진 것이 ‘반도체’다.

반도체 호황 끝물 예고에 경제 전체 추락

2016년 말부터 2018년까지 세계 반도체 시장은 ‘수퍼사이클’로 불릴 만큼 초호황이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휩쓴 한국이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다. 결국 이 효과는 고용·소비, 건설 경기 추락 등 각종 국내 경제지표들이 심각하게 악화된 상황에서조차 최근 몇 년 최소 2.7%에서 최대 3.3%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런 반도체 시장이 꺾이며 문제가 부각된 것이다. 반도체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상품수지가 악화됐고,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 더욱이 반도체 시장 확대가 가져왔던 관련 산업의 대규모 투자 활동 역시 반도체 시장이 악화되면서 사실상 종료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게 불안감을 더욱 키우고 있다. 가뜩이나 반도체 정도를 제외하면 최근 몇 년 다른 주력 산업들의 설비투자는 극도로 부진했다. 이 상황에서 반도체 부문의 투자 축소마저 사실상 불가피한 상황에 몰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지난 20여년간 한국 경제 성장에 기여해왔던 휴대전화 등 IT·전자·전기·소재산업과 석유·화학 분야 역시 최근 중국의 성장 둔화와 국내외 악재들이 맞물리며 침체 상태에 들어가고 있다. 결국 이런 부분이 고용악화와 소득증가 둔화, 소비위축에 영향을 미치며 빠르게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해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악순환의 고리 이전부터 참사 수준의 고용악화와 소득증가 둔화, 소비위축, 설비투자 축소, 신성장동력 발굴 실패, 생산과 무관한 공적 영역의 지속적 비대화 같은 문제들이 한국 경제를 억누르고 있던 것도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이런 내용들이 한꺼번에 표출되며, 이를 근거로 한국의 경기 둔화와 성장성 악화 문제를 경제성장률 전망치 하향 조정의 형태로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전문가들 “1%대 성장률 안 될 것 같습니까”

그렇다면 가파르게 추락하고 있는 경제성장률 (전망) 추세를 되돌릴 방법은 없을까. “현재로서는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연세대 성태윤 교수는 “한국 경제가 경쟁력 있는 다른 산업을 발굴하지 못한 채, 지나칠 만큼 반도체에 절대적으로 의존했다”며 “반도체 시장이 망가진 상황에서 쉽지 않다”고 했다. 성 교수는 “4월 이후 경상수지가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며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주원 경제연구실장은 “한국 경제에서 2%대 초반 성장률은 정상적 상황이 아니다”라며 “문제는 그 비정상적 상황이 지금 한국 경제의 현실이라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 경제 구조상 이 문제를 완화시킬 수 있는 건 수출확대와 내수회복 외에 답이 없다”며 “그런데 수출과 내수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가 우리에게 없는 상태”라고 했다. 주 실장은 “주요 기관들이 지금 제시하고 있는 수준보다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더 내릴 가능성도 크다”며 “정부와 정치권이 말하는 추경 규모보다 최소 10조원대 이상 더 많은 추경이 편성되면 그나마 2%대 중반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익명으로 취재에 응한 한 외국계 투자사 관계자는 “냉정하게 한국 경제성장률 문제는 경쟁력의 문제”라며 “추경과 금리 문제는 보조 역할을 할 뿐”이라고 했다. 그는 “수출주도형 경제 구조의 국가가 경쟁력 있는 산업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결국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IT와 반도체, 석유·화학을 대신할 새 동력원이 무엇일지부터 고민하는 게 순서”라고 했다. 그는 “당장 힘들다고 추경이나 금리 등 보조적 해법만 찾을 게 아니라, 한국 경제 구조의 약점부터 보완해야 성장률 문제와 반복되는 위기설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고 했다.

취재에 응한 경제학자와 시장 전문가 상당수는 “수출이 더 망가지거나, 정책 판단 실책이 더해지면 경제성장률이 1%대로 주저앉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게 지금의 현실”이라고 했다. 경제 운영에는 희망을 키우는 낙관론도 분명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은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냉정함이 더 필요한 때다.

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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