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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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집에서 물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순간은 언제일까. 흔히 세탁기 돌릴 때나 샤워할 때라고 생각하기 쉽다. 정답은 변기다. 한국수자원공사에 따르면 4인 가족이 화장실 양변기에서 사용하는 물의 양은 하루 평균 약 255L다. 이는 가정에서 쓰는 하루 생활용수의 약 27%에 달한다. 일반적인 변기의 경우 한 번 물을 내릴 때마다 약 10L의 물이 사용된다.

‘변기에 미친 남자’로 알려진 여명테크 현돈(46) 대표 역시 변기에 얼마나 많은 물이 사용되는지 모르고 살았다고 한다. 집에서 쓰던 변기가 고장이 나면서야 호기심을 가졌다. 손수 바가지에 물을 담아 변기에 넣다 보니 한 번 내리는 데 얼마나 많은 양의 물이 쓰이는지 깨달았다고 한다. 당시 토목회사에 다니던 그는 ‘어떻게 하면 물을 덜 쓰면서도 안 막히는 변기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에 빠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존의 ‘S’형 배관 구조 변기가 아닌 ‘I’형 배관 구조 변기의 원리를 고안해냈다. 이미 20세 때 변기에 앉았다가 일어나면 자동으로 물이 내려가는 기술로 특허를 내기까지 했으니 변기가 그의 팔자였던 모양이다. 다니던 직장도 관두고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3.5~4.5L의 물을 사용하는 절수형 변기 ‘EBAS’를 만들었다. 물 소비량을 거의 기존 변기의 4분의 1로 줄인 것이다.

2013년 설립된 여명테크는 6년 만에 매출 70억원을 바라보는 벤처회사로 성장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산자부로부터 NEP(New Excellent Product)인증을 받고 한국공학한림원으로부터 절수형 변기가 ‘올해의 15대 기술’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5년부터 양산되기 시작한 EBAS가 5년 가까이 지나도 내구성에 문제가 없자 가치를 알아보기 시작한 이들이 많아졌다. EBAS는 현재 서울대와 연세대에 총 2000여대를 비롯해 전국 30여개 고속도로 휴게소와 에버랜드, 병원 등의 기관에 납품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서울대의 경우 467대의 변기를 EBAS로 교체하고 6개월 만에 8670만원의 절감 효과를 봤다고 한다. 최근 전국 이마트 지점 내 화장실의 양변기를 오는 6월부터 전량 교체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현 대표는 “일반 가정집에서도 1년에 6만~7만원의 절감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 대표가 개발한 절수형 변기 기술의 핵심은 ‘중력식 가변 트랩 방식’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진공(Siphone) 방식을 사용하는 기존 변기와 차별되는 부분이다. 현 대표는 기존 진공 방식과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기존 변기의 경우 물을 내릴 때 ‘꾸르륵’ 소리가 나는데 이건 진공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공이 발생하는 전제조건은 변기 파이프의 처음부터 끝까지 물이 차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바꿔 말하면 진공으로 오물을 빨아들이는 방식인데, 이 진공을 일으키는 데만 3~4L의 물이 사용된다.” ‘변기 속을 들여다본 적이 없어 이해가 안 된다’고 하자 현 대표는 “자동차로 비유해 설명하자면, 보통 변기는 시동 거는 데만 3~4L의 물이 사용된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 변기는 300㏄로 가능하다”고 했다.

“화장실계의 ‘세스코’로 성장하겠다”

물을 적게 사용하는 변기라고 하면 구멍 부분에만 ‘살짝’ 고여 있는 비행기 화장실 변기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여명테크의 변기는 외관상 일반 변기와 다른 점을 구별하기 쉽지 않다. 현 대표는 “보통 변기에 고여 있는 물의 양이 1.5~2L 정도 되는데, 우리 변기는 안쪽을 휘게 만들기 때문에 겉에서 보이는 물의 양은 거의 같다”며 “중국은 1회 물 사용량이 6L 이하인 변기만 사용하도록 공산당에서 법으로 정했다. 그러다 보니 변기에 고여 있는 물의 양 자체를 줄여버렸는데, 그러면 설사 같은 경우 안쪽 표면에 다 묻기 때문에… (웃음) 결국 물을 두 번 내리게 된다”고 했다. ‘쓰이는 물이 적으면 위생에 문제가 생길 염려도 있지 않으냐’는 물음에 현 대표는 “보통 ‘절약’ 하면 뭔가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 회사의 모토는 ‘절약하면서도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자는 것이다. 적은 물을 써서 처리가 한 번에 안 되면 결국 두 번 내려야 한다. 그렇게 되면 더 많은 물을 쓰게 되는 셈”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는 ‘원샷’에 끝낼 수 있는 변기”라고 자신했다.

한국도 중국처럼 변기의 1회 물 사용량을 6L 이하로 제한하는 법이 있다. 2014년부터 시행된 수도법에 따라서다. 하지만 아직 대다수의 변기가 여전히 10L 가까운 물을 사용하고 있고, 이 규정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현 대표는 “국내 가정집의 오래된 변기 같은 경우 물이 15L까지 사용된다”고 했다. 지난 4월 4일 환경부는 수도법 하위법령 개정안을 내놓고 40일간 입법예고를 거친다고 밝힌 바 있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에너지등급제처럼 변기도 물 사용량에 따라 1~3등급으로 나누는 등급제를 시행하자는 것이다. 대변기의 경우, 물 사용량이 4L 이하인 제품은 1등급, 4L 초과 5L 이하에는 2등급, 5L 초과 6L 이하인 경우 3등급을 부여한다. 현 대표는 “우리 회사 제품은 시험소 기준 3.5L이기 때문에 1등급”이라며 “국가적 차원에서도 변기 물 사용량을 줄이겠다는 의지를 표력한 셈”이라고 했다. ‘기술적인 면이나 환경, 비용 등의 면에서 떨어지는 부분이 없어 보이는데 왜 더 많이 팔리지 않는가’를 묻자 현 대표는 “사람들이 지퍼는 항상 Y자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양변기도 240년 된 기술이다 보니 고정관념이 있다”며 “그걸 없애려고 노력 중이다. 이 인터뷰도 그 노력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현 대표는 ‘변(便) 종류’까지 직접 파악하는 노력을 기울이며 변기를 개발했다고 한다. 현 대표는 “공항이나 해외에 나가면 화장실을 다 돌아다니면서 막힌 변기를 찾아 위생장갑을 끼고 만져보기까지 했다. 서양인과 동양인이 서로 식습관이 다르다 보니 변도 차이가 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처음 사업에 뛰어들었을 때 ‘변기’라는 이유로 놀림 받지는 않았느냐고 묻자 현 대표는 “친구들이 ‘똥 사장’이라고 놀리기도 했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인정해주는 분위기인데, 단지 돈을 벌어서가 아니라 유망한 기술임을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현 대표의 목표는 회사를 ‘화장실계의 세스코’로 키워가는 것이다. 단지 변기만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전반적인 화장실 관리를 하는 회사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현 대표는 “화장실이라고 하면 흔히 지저분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지만, 반대로 집값 올리기 가장 좋은 곳도 화장실이다. 사람들이 집을 비싸게 팔기 위해 제일 먼저 리모델링하는 곳이 화장실 아닌가”라며 “화장실 문화를 선도하는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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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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