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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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에 또 하나의 위기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빠르게 치솟고 있는 환율 이야기다. 1분기 -0.3%라는 충격적인 경제성장률 성적표를 받아든 상황에서 환율마저 급등하며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다.

올해 초만 해도 ‘원 대(對) 달러’ 환율은 1110원대에서 1120원대를 오르내렸다. 1분기 말에는 조금 오르기는 했지만 1130원대를 유지하며 불안감이 커진 한국 경제에 그나마 위안을 줬다. 하지만 4월 중순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예상했던 것보다 환율이 더 빠르고 큰 폭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지난 4월 8일 1달러당 1145원(KEB하나은행 매매기준율 기준·이하 동일)으로 올해 처음 1140원대를 넘어서더니, 24일과 25일 차례로 1151원과 1163원을 찍으며 본격적인 급등 경보를 울렸다. 5월 3일 1170원, 5월 9일에는 1182.5원까지 솟구치며 1180원대마저 뚫었다. 환율이 마지막으로 1180원을 넘었던 건 2017년 1월 16일이다. 2년5개월 만에 다시 환율 1180원을 넘어선 것이다. 급기야 5월 15일 1190.5원을 찍으며 1190원대마저 돌파했다.

2018년 마지막 외환 거래일인 12월 31일 원 대 달러 환율이 1116원이었으니, 지난 5월 15일 기준 5개월 반 만에 원화가 6.68%나 추락한 것이다. 올해 1분기 마지막 거래일인 3월 29일 환율 1137원과 비교하면 한 달 반 만에 원화 가치가 4.71%나 떨어졌고, 1년 전인 2018년 5월 14일 환율(1069.5원)과 비교하면 11.31% 넘게 하락했다. 원화 가치 하락이 예사롭지 않다 보니 현재 자본시장과 경제학자들, 기업들로부터 “환율이 곧 1달러당 1200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마저 문제가 발생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4월 중순 시작돼 5월 그 강도를 더하고 있는 환율 폭등 공포는 한국 경제를 어떻게 억누르고 있는 것일까. 당장 에너지와 석유·화학, 철강, 비철금속 등 한국 경제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는 기초 소재와 중간재 산업에 비상이 걸렸다. 내수·소비재 기업들 역시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환율 곧 1200원 돌파한다

일단 환율 급등은 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원유 등 원자재 도입 부담을 키우고 있다. 정유와 석유화학, 소재 기업들이 원유 및 원재료의 선도입과 환 헤지 장치들을 활용해 비용 증가 위험을 조금은 분산시켜놓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4월 이후 계약 물량과 향후 도입 예정분에 대해서는 역시 비용 증가 부담을 피하기 힘든 상황에 몰려있다.

환율이 예측치를 넘어 빠르게 급등하면서 내수 기업과 관련 산업의 충격도 점차 커지는 분위기다. 지난해 말 혹은 올해 초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고 큰 폭으로 원료 및 제품 소재 도입 비용이 증가하며 수익성에 문제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이론상 원유와 원자재 도입 비용 증가만큼 제품 가격을 올리면 비용 증가에 따른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

환율 급등과 맞물려 정말 문제는 환율 급등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기업과 산업계에서 수익성 문제를 내세워 제품 가격 인상에 나서는 상황이 실제로 발생하는 것이다. 유가와 환율 급등세가 멈추지 않고 지금 같은 속도와 폭으로 지속된다면 머지않아 상당수 기업들의 원자재 도입 부담이 현실화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약화된 한국 제품의 수출입 가격 경쟁력과 소비 침체 상황에도 불구하고 원자재 도입에 따른 수익성 추락을 이유로 결국 제품 가격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공급자의 비용 부담을 소비자인 국민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국민 삶과 직결된 각종 생활물가들이 급격하게 인상될 수 있다는 뜻이다. ‘소비 증가’나 ‘경기 확장(활성화)’ 등의 이유가 아닌, 오로지 환율 급등 등 ‘공급자의 비용 부담 증가’ 때문에 발생한 제품 가격 인상과 물가 상승 압력은 우리 경제 구조상 오히려 소비와 수요를 지금보다 더 위축시키게 된다. 최근의 환율 급등이 가뜩이나 고민거리인 한국 경제의 불황 상태를 더 심화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환율 급등 초래한 경제성장률 추락

2017년 이후 최근 2년여간 안정세를 나타내던 환율이 4월 중순부터 갑작스럽게 급등하고 있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빠르게 악화되고 있는 한국의 경제 상황, 외부적 충격, 그리고 시기적 요인 등이다.

환율 급등의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최근 급격한 추락세에 빠진 한국 경제의 현실부터 주목해야 한다. 상당수 경제 관련 주요 국제기구와 연구기관, 신용평가사와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한국 경제를 보는 시선이 싸늘해졌기 때문이다. 이들은 3월 초부터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일제히 낮추고 있다.

지난 3월 4일 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기존 2.3%라던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1%로 낮추며 경고를 보낸 것이 시작이었다. 한 달 후인 4월 3일 아시아개발은행(ADB)도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6%에서 2.5%로 내렸고, 국회예산정책처 역시 기존 2.7%이던 올해 경제성장률을 2.5%로 떨어뜨렸다. 4월 21일에는 LG경제연구원이 2.5%로 제시했던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3%까지 낮췄다.

국내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진 경제성장률 전망치 하락 소식은 외환시장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공교롭게도 국내외 주요 경제기구와 연구기관, 대형 신평사, IB들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한 시점을 전후해 환율이 실제 급등했다. 외환시장이 한국 경제에 대해 느끼는 불안감이 환율 급등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4월 25일의 ‘2019년 1분기 한국 경제성장률 -0.3%’ 소식은 외환시장의 추락을 불러왔다. 4월 25일 원 대 달러 환율이 1151원에서 1163원으로, 단 하루 만에 12원이나 급등한 것이다. 환율이 하루 12원이나 급등한 건 2018년 2월 2일 이후 처음이다. 4월 25일 마이너스 성장이 확인되면서 한국 경제를 향했던 불안과 우려가 현실적인 공포로 확대됐다고 볼 수 있다. 당장 마이너스 성장이 확인된 다음 날인 4월 26일 일본계 IB 노무라가 기존 2.4%라던 성장률 전망치를 1.8%로 대폭 낮추며, 경제성장률 1%대 전망에 포문을 열었다. 캐피털이코노믹스도 같은 날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8%로 낮췄고, ING그룹은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5%까지 추락시켰다. ING그룹은 더 나아가 “한국 경제가 지금 예측보다도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언급도 했다.

에너지, 석유, 철강 등 주력 산업 강타

이런 상황에서 경상수지 흑자까지 눈에 띄게 줄어들며 수출주도형 한국 경제의 구조적 약점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국내외에서 전해지고 있는 경제성장률 전망치 하향, 실제 확인된 1분기 마이너스 성장, 경상수지 흑자 축소 등 악재가 거의 동시에 터지며 원화의 신뢰도(가치)가 빠르게 급락한 것이다. 이것이 환율 급등을 불러온 1차 요인이다.

LG경제연구원 조영무 연구위원은 “최근 환율 급등의 근본 이유는 결국 한국의 경제 상황이 예측했던 것보다 더 안 좋기 때문”이라며 “지표상 마이너스 성장이 확인됐고, 특히 경상수지가 우려스러울 만큼 빠르게 가라앉고 있는 것이 외환시장을 자극하고 있다”고 했다. 조 연구위원은 “경상수지가 향후 큰 폭으로 오를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면 성장률 하락 충격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지만 (수출주도형 구조에서) 빠르고 큰 폭으로 축소되고 있는 경상수지의 상승 반전을 지금은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이종우 이코노미스트(전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는 “달러 강세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이 미국과 한국의 성장률 격차를 순식간에 크게 벌리는 역할을 했다”며 “이렇게 벌어진 경제 격차만큼 환율이 급등한 것”이라고 했다.

익명으로 취재에 응한 한 대학의 경제학 전공 교수는 “경제성장률 하락 폭과 속도가 크고 빠른 것이 치명적”이라며 “현재의 하락 폭과 속도를 줄일 수 있느냐가 환율은 물론 경제 안정의 열쇠”라고 했다. 이 교수는 “성장률과 함께 경상수지에서 문제가 생기고 있다”며 “경상수지 흑자 폭이 예상을 뛰어넘는 규모와 속도로 축소되면서 그 여파로 달러의 공급이 급감하고 있는 게 환율 급등의 원인 중 하나”라고 했다. 그는 “정부와 한국은행이 내놓고 있는 정책과 행보로는 이 문제를 풀기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미·중 싸움에 한국이 만신창이

외부에서 전해지고 있는 충격 역시 환율 급등을 자극하고 있다. 특히 5월 이후 환율이 급등한 데는 격해지고 있는 미·중 간 무역충돌 여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현재 자본시장은 미·중 간 무역충돌을 ‘불확실성’ 자체로 인식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모두 양보도 포기도 할 수 없는 단계에 몰리면서 두 국가와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 경제를 향해 분쟁의 악영향이 밀려들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이미 수차례에 걸쳐 중국산 제품의 관세를 25%로 대폭 인상했다. 특히 지난 5월 10일(미국 시각) 미국은 5700여 품목, 2000억달러(약 236조원) 규모에 이르는 중국산 대미 수출품에 대해 기존 10%이던 관세를 25%로 인상했다. 바로 이 조치가 중국은 물론 한국 경제에 상당한 충격을 가하고 있다. 미국이 큰 폭의 관세 인상을 단행한 품목 상당수가 사실은 한국의 주요 기업들이 중국 현지 공장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대량 수출하고 있는 제품들이기 때문이다.

당장 관세가 인상된 전체 제품 중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IT 관련 제품 비중이 25%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스마트폰 등 완제품도 문제지만 상당수 IT 제품에 필수 부품으로 사용되는 반도체산업의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공급 과잉과 가격 급락으로 고전하고 있는 한국 반도체 기업들과 산업계에 수요 축소라는 또 하나의 공포까지 더해질 가능성이 농후해진 것이다.

석유·화학산업도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야금야금 오르고 있는 원유 가격, 미국의 이란산 원유 수출입 전면 봉쇄에 따른 원료 도입망 축소, 여기에 최근 환율 급등이 불러온 비용 증가까지 안 그래도 위기감이 커져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25%에 이르는 중국산 제품 관세 인상 조치가 자칫 결정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국 현지 공장에서 생산한 한국 기업들의 중국산(産) 제품에 대한 미국 시장 가격경쟁력 훼손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중국 돈 풀기 나서면 환율 상황 더 악화

미·중 무역분쟁에 끼여버린 우리 주력 산업의 경쟁력 약화와 수출입 수지 악화 가능성이 결국 5월 발생한 환율 급등의 또 다른 원인인 셈이다.

서울대 김소영 경제학부 교수는 “미·중 무역분쟁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원화가 안정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이 분쟁이 완화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며 “그런데 최근 미·중 충돌이 더 격한 상태에 빠지며 원만한 합의 가능성이 매우 낮아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제는 미·중 갈등 고조의 여파가 두 국가와 경제적으로 매우 밀접한 한국으로 밀려들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최근 환율 급등은 그 여파 중 하나”라고 했다.

미·중 무역분쟁이 외환시장에서 한국 주력 산업의 수출입 경쟁력 훼손과 경제 체력 축소 문제만 키우고 있는 게 아니다. 최근 몇 년 한국 원화는 중국의 위안화 환율 변화에 동조하는 경향을 보여왔는데 미·중 무역충돌에서 열세인 중국이 위기 타계를 위해 시장에 위안화를 대규모로 공급할 가능성이 고개를 들고 있다. 위안화 가치 하락을 활용해 미국의 공세로부터 경제적 충격을 완화하겠다는 전략을 들고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중국 시장 의존도가 크고, 최근 몇 년 위안화에 동조 현상을 보이고 있는 원화의 환율이 지금보다 더 뛰어오를 수밖에 없게 된다.

LG경제연구원 조영무 연구위원은 “중국이 지금보다 더 힘들어지면 돈 풀기에 나서 위안화 가치 하락을 택할 수 있다”며 “중국이 돈을 풀어 위험 회피에 나서면 위안화 동조 현상을 보이는 원화의 가치가 더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 연구위원은 “이런 상황이 실제로 벌어졌을 때, 지금 같은 체력의 한국 경제가 급작스러운 환율 변동에 잘 대응할 수 있느냐는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며 “쉽지 않은 문제”라고 했다.

최근 환율 급등에는 시기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시기적 요인의 핵심은 ‘배당’이다. 한국 주요 기업들의 배당 지급이 4~5월에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또 2010년대 들어 배당 확대 움직임도 뚜렷하다. 최대주주, 기관, 개인은 물론 외국계 자본의 배당 수익 역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원화를 달러로 대거 환전해 나간 외국인

문제는 외국계 자본의 경우 투자한 기업으로부터 원화로 받은 배당금 거의 전부를 달러로 전환하고, 이를 해외 계좌로 송금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기업들이 수익의 일부를 떼어내 지급한 배당금이 한국 시장에 재투자되지 않는 건 심각한 문제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배당금이 달러로 환전돼 해외로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일시에 달러 수요가 급증해 원화의 가치를 순식간에 급락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한국 기업들이 외국 자본에 지급한 배당금은 무려 86억달러에 이른다. 우리 돈 10조2000억원이 넘는다. 이런 거대한 자금이 4~5월 단 두 달 동안 원화에서 달러로 환전돼 해외로 빠져나가며 환율 급등에 기름을 끼얹었다. 이종우 이코노미스트 역시 “4~5월 외국인들이 86억달러의 배당금을 환전해 해외로 빼간 것이 외환시장에 단기적 충격을 줬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 외국계 투자사의 관계자는 “이 정도(약 10조원) 돈이 단 두 달 만에 달러로 환전돼 해외로 나가게 되면,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 역시 환율 급등 현상을 피하기 힘들 것”이라며 “문제는 이런 규모의 돈이라면 한국 시장에 머물며 재투자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 한국의 경제 상황이 그런 재투자와 관련해 그리 매력적이지 못한 게 사실”이라고 했다.

원화로 지급된 배당금이 4~5월에 달러로 환전돼 일시에 해외로 빠져나가는, 달러 수요 급증과 자본 이탈 현상이 매년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무시할 수 없다. 자칫 매년 4~5월이면 환율 급등 상황이 만성적으로 벌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취재에 응했던 경제학자와 시장 전문가들 대부분 현재 진행 중인 환율 급등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얼마나 올라갈지 예측이 힘들다는 의견을 보였다. 하지만 대부분 ‘곧 1200원을 넘을 것’과 ‘향후 더 큰 변동성을 겪게 될 것’이라는 전망은 부인하지 않았다. 서울대 김소영 교수는 “장기적 전망이나 판단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면서도 “1250원까지 올라간다면 분명 위기”라고 했다.

1분기 -0.3%라는 충격적 경제성장률 추락에 이어, 1200원 돌파를 눈앞에 둔 환율 급등까지 한국 경제는 분명 바닥부터 흔들리고 있다. “견딜 만하다” “시장 우려가 과하다”는 식의 판에 박힌 대응은 화를 더욱 키울 뿐이다.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부터 꼼꼼한 점검이 필요한 때다.

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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