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미국 워싱턴주 에버렛의 보잉 공장을 찾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photo 뉴시스
2015년 미국 워싱턴주 에버렛의 보잉 공장을 찾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photo 뉴시스

“애플에 대한 보복조치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런정페이(任正非) 화웨이(華爲) 회장이 지난 5월 27일 미국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말이다. 런정페이 회장이 밝힌 ‘애플에 대한 보복불가’ 이유는 이렇다. “애플은 나의 선생님이고, (업계를) 선도해왔다. 학생으로서 왜 선생님과 반대로 가겠느냐. 절대로 그럴 일 없다.” 런정페이 회장은 “만약 애플에 대한 제재가 단행된다면 내가 거기에 제일 먼저 항의할 것이다”란 말도 덧붙였다.

요즘 미국에 의해 난타당하고 있는 화웨이 런정페이 회장의 애플에 대한 언급은 그만큼 중국에서 보복요구가 빗발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관세전쟁에서 기술전쟁으로 패러다임이 바뀐 미·중 무역전쟁에서 중국의 1순위 보복 대상으로 거명되는 것은 애플이다. 애플은 미국의 대표 기술기업으로 상징성이 있다. 미국이 화웨이를 때리는 명분처럼 중국도 IT 안보를 명분으로 철퇴를 휘두르기 좋다. 화웨이와 스마트폰 시장에서 겨루고 있는 애플은 중국 입장에서 등가보복이 가능한 대상이어서 다른 산업 전반으로 확전 우려가 덜하다.

애플에 대한 보복이 실제 단행될지를 두고 이견이 분분하다. 비록 애플이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9.1%)이 화웨이(26.4%·저가브랜드 룽야오 포함), 오포(19.8%), 비보(19.1%), 샤오미(13.1%)에 이어 5위로 추락했다고 하나 애플의 위상은 여전히 굳건하다.<표 참조> 세계 1위 삼성의 중국 시장 점유율(0.8%)과 비교해보면 선방 중인 애플의 상대적 위상을 알 수 있다. 베이징과 상하이의 가장 비싼 상권에는 거대한 사과 간판을 단 애플 스토어가 있다.

애플은 ‘메이드 인 차이나’

애플에 대한 보복을 망설이게 하는 것은 애플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비롯한 각종 전자제품이 실제로 ‘메이드 인 차이나’란 점이다. 애플을 위탁생산하는 업체는 중국 현지에 있는 폭스콘(富士康)과 리쉰(立訊)정밀(럭스쉐어) 등 19개 업체에 달한다. 특히 대만 훙하이(鴻海)정밀 계열의 폭스콘은 본사가 있는 광둥성 선전과 허난성 정저우에서 애플의 아이폰, 아이패드, 애플워치, 맥북을 비롯한 전 제품을 위탁생산하고 있다.

애플의 최대 위탁생산 업체인 폭스콘의 경우 중국 현지에서 고용하는 인원만 27만명에 달한다. 특히 허난성 정저우 폭스콘 공장은 애플의 최대 해외 생산기지다. 인구가 9480만명에 달하는 허난성은 과거 빈곤의 대명사였는데, 2010년 폭스콘 입주 후 환골탈태했다. 현재도 정저우 전체 수출입의 80% 이상을 담당한다. 만약 애플을 상대로 한 보복조치 시 자국 고용사정을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

애플을 상대로 한 섣부른 제재는 자칫 양안(兩岸)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갈 수 있다. 훙하이정밀의 궈타이밍(郭台銘) 회장은 1988년 일찍부터 중국에 투자한 친중파로 분류되는데, 대만 총통 선거에 국민당 후보로 출마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자칫 애플에 대한 제재로 대만 대표기업인 폭스콘이 휘청이면 반중파인 현 대만 집권 민진당과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에게 반격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애플을 잡으려다가 대만을 놓칠 수 있는 셈이다.

이미 궈타이밍 회장은 “중국 선전에 있는 폭스콘 생산시설 일부를 대만 가오슝으로 이전하겠다”고 언급해놓은 상태다. 표면적인 이유는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위험회피지만, 친민진당 성향의 대만 남부와 국민당 내 경쟁자인 한궈위(韓國瑜) 가오슝 시장을 동시에 겨냥하는 정치적 포석이기도 하다. 현실화 가능성은 의문이지만 중국이 애플에 제재를 감행하면 실제로 폭스콘 공장의 대만 유턴을 가속화시킬 염려가 있다.

폭스콘 여공 출신인 왕라이춘(王來春) 회장이 독립해 세운 리쉰정밀도 애플의 중국 내 생산의 양대 축이다. 광둥성 선전과 장쑤성 쿤산 등지에서 애플의 블루투스 무선이어폰 에어팟 등을 위탁생산한다. 팀 쿡 애플 회장은 2017년 12월 리쉰정밀의 쿤산 공장을 찾아서 왕라이춘 회장과 함께 에어팟 생산현장을 둘러보기도 했다.

왕라이춘 회장은 중국에서 ‘차이니즈 드림’의 대명사로 통한다. 중학교 졸업 후 폭스콘 공장에서 여공으로 일한 뒤, 리쉰정밀을 차려 애플의 위탁생산을 맡으면서 195억위안(약 3조3000억원)의 부를 일군 여공계의 전설이다. “차이니즈 드림이 실현된 경이적인 예”라는 팀 쿡 회장의 격찬도 있었다. 중국 정부가 애플에 제재를 가할 경우 실제로 피해를 입는 것은 현지 위탁생산 업체들인데, ‘차이니즈 드림’마저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방침에 호응해 구글이 화웨이에 일부 서비스 제공을 중단키로 하면서 애플에 대한 중국의 의존도는 오히려 더 커졌다. 화웨이 스마트폰은 구글의 운영체제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 했다. 이는 화웨이를 추격 중인 오포, 비보, 샤오미 등 다른 중저가 스마트폰 업체도 마찬가지다. 반면 iOS란 별개의 운영체제를 사용하는 애플은 반대로 이 덕분에 화웨이나 중저가 스마트폰 3사의 공세에 어느 정도 선방할 수 있었다.

GM과 월마트도 보복하면 중국에 손해

중국은 구글의 스마트폰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를 제외하고 구글의 주요 서비스인 구글 검색, 지메일, 유튜브 등을 일제히 차단해왔다. 지금에 와서 구글에 남아달라고 아쉬운 소리를 할 형편도 못 된다. 이 상황에서 애플에 보복을 단행해 애플마저 중국에서 쫓아낸다면, 구글의 운영체제를 사용하는 오포, 비보, 샤오미의 구글에 대한 의존도는 더 심화될 수밖에 없는 말 못 할 고민이 있다.

애플과 함께 보복 대상으로 거론되는 인텔이나 마이크로소프트(MS)도 같은 이유로 중국이 보복조치를 단행하기가 쉽지 않다. 인텔과 MS 역시 애플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기술기업이다. 세계 1위 반도체칩 기업인 인텔은 중국 광둥성 일대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PC에 중앙처리장치(CPU)를 공급하고 있다. 인텔 CPU가 탑재된 PC를 운영하는 운영체제는 MS가 공급하고 있다.

인텔은 랴오닝성 다롄(大連)에 생산공장을 두고 있는데, 약 6000명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중국의 보복조치로 인텔의 칩셋과 MS의 운영체제 공급이 막힐 경우 손해는 중국이 더 크다. 당장 화웨이 메이트북 등 중국 업체가 생산하는 PC는 먹통 공기계로 변할 판이다. 중국에서는 벌써 “MS 해적판을 다운로드받아야 하느냐”는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다른 기업이나 산업으로 전선을 넓혀 추가 확전을 벌이기도 여의치 않은 상태다. 기술력과 강력한 브랜드 파워로 무장한 미국 기업을 중국 시장에서 쫓아낸다고 해도 마땅한 대체재가 없어서다. 미국 기업 상당수가 1979년 미·중 수교 이후부터 현지 국유기업과 합자 또는 합작 형태로 투자해왔고, 고용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섣불리 보복카드를 꺼내들었다가는 자칫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미국 대표기업인 월마트의 경우 회원제 할인매장인 샘스클럽을 비롯 중국에 400여개 매장을 거느리고 있다. 사드(THAAD) 사태 때 롯데마트가 중국에서 철수하기 직전 거느렸던 117개 점포보다 거의 4배가 많다. 월마트가 중국 대형마트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화룬(중국), 다룬파(대만)에 이어 세 번째다. 글로벌 소싱망을 장악한 월마트는 중국산 저가제품을 받아주는 주요 창구라 이를 상대로 칼을 휘두르기가 쉽지 않다.

미국 최대 자동차기업인 제너럴모터스(GM) 역시 지난해 중국에서 364만대의 차를 팔았다. 독일 폭스바겐(420만대)에 이어 중국 시장 2위다. 지난해 중국에서 116만대를 판매하는 데 그친 현대기아차보다 거의 3배가량 많이 팔았다. GM은 상하이를 비롯 4대 생산기지에 거느린 직원만 약 5만8000명이다. GM의 합작파트너는 중국 최대 국유자동차사인 상하이차(上海汽車)라 GM을 치면 당장 상하이차가 손해를 보는 구조다. 현대차의 파트너인 베이징차와 위상이 다르다.

미국의 상징인 스타벅스 역시 때리기가 만만치 않다. 식품위생 등을 빌미로 때리기는 쉽지만 스타벅스는 중국 150개 도시에 3600개 점포를 거느리고 있다. 직원수만 5만명에 달한다. 스타벅스 자체가 대표적인 ‘반(反)트럼프 기업’이라는 것도 걸림돌이다. 스타벅스 창업자인 하워드 슐츠 전 회장은 무소속으로 차기 미국 대선 출마를 타진 중이다. 트럼프를 잡자고 반트럼프 기업을 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중국의 잇단 보잉 때리기

현재로서 중국 정부의 보복 대상으로 가장 유력한 것은 보잉이다. 보잉은 유럽의 에어버스라는 대체재가 있다. 보잉은 일찍부터 중국 톈진(天津)에 조립공장을 세운 에어버스와 달리 중국 공장 설립을 꺼리다 지난해에야 비로소 저장성 저우산(舟山)에 중국의 국유항공기 제작사인 코맥(COMAC)과 합작으로 중단거리 항공기 B737 MAX 조립라인을 세웠다. 2015년 시진핑 주석의 방미 때 시애틀 인근 에버렛에 있는 보잉 공장을 찾아 비행기 300대를 계약하고 얻어낸 대가다.

하지만 미·중 무역전쟁 와중에 B737 MAX의 추락사고가 거듭되자 중국은 전 세계 최초로 B737 MAX의 운항중지 명령을 내렸다. 비록 지난 3월 에티오피아항공 B737 MAX 추락 때 중국인 승객 8명이 사망했다고 하나, ‘항공사고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먼저 운항중단을 내린 이례적 조치였다. 같은 달인 3월 26일, 프랑스를 국빈방문한 시진핑 주석은 미국에 보란 듯이 에어버스 비행기 300대 구매계약을 체결했다.

중국 국유항공사의 보잉에 대한 손해배상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월 21일에는 중국동방항공이 보잉을 상대로 B737 MAX 운항중단 및 인도지연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을 시작으로, 5월 22일에는 중국국제항공(에어차이나), 중국남방항공이 차례로 보잉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3대 국유항공사가 선두에 서면서 지역항공사와 저가항공사의 손배소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 항공사는 중국 최대 항공사인 남방항공이 B737 MAX 24대를 보유한 것을 비롯해 중국국제항공(15대), 동방항공(14대), 하이난항공(11대), 샤먼항공(10대) 등 모두 96대의 B737 MAX를 보유하고 있다. 루캉(陸慷)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어떤 기업이든 법에 의거해 자신의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권익을 추구하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이동훈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