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6월 3일 오전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정문 앞. 400여명의 대우조선해양 민주노총 산하 노조원들이 정문 앞 도로에 설치된 천막 밑에 도열해 앉아 있었다. 대우조선해양 노조원들은 이날 예정된 현대중공업의 현장 실사 방문을 막기 위해 정문을 비롯해 서문, 동문 등 6개의 조선소 출입문을 모두 틀어막았다. 현대중공업 강영 현장실사단장(전무), 김수야 산업은행 조선업정상화지원단장을 비롯한 20여명의 현장실사단은 이날 오전 9시와 오후 1시 두 번에 걸쳐 정문 진입을 시도했지만 모두 대우조선해양 노조원들의 육탄저지에 막혀 끝내 옥포조선소에 들어갈 수 없었다. 이 중 신상기 대우조선해양 노조지회장을 비롯해 대우조선 출신 김해연 전 경남도의원 등 6명은 쇠사슬까지 목에 걸어가며 실사단 진입에 맞서 조선소 정문을 ‘사수’했다. 실사단 측은 노조 측에 대화를 요청했지만 노조는 “매각 철회 조건이 없다면 실사단과 접촉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결국 현대중공업 측 실사단은 이날 현장 실사를 포기하고 거제도를 떠나야 했다.

실사단이 대우조선해양 진입을 포기하고 돌아간 뒤에도 대우조선해양 노조의 ‘정문 사수’는 끝나지 않았다. ‘현대중공업 현장실사단 색출 검문 검색 중’이라는 피켓을 든 노조원은 24시간 정문을 지켰다. 그 뒤로 ‘생존, 사수’라고 적힌 붉은조끼를 입은 다른 한 명의 노조원은 선글라스를 끼고 정문 안으로 진입하는 승용차 안을 일일이 들여다봤다. 정문을 지키는 사측 경비원은 옆에서 멀뚱멀뚱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현대중공업 현장실사단은 6월 10일쯤 대우조선해양 현장 방문을 재시도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 실사는 오는 6월 14일까지 예정돼 있다. 노조 측 역시 실사단의 현장 방문을 끝까지 저지하겠다는 입장이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5월 31일 본사가 있는 울산에서 주주총회를 열고 물적분할 방식으로 중간 지주회사인 한국조선해양을 출범시켰다.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의 대주주인 산업은행과 지난 3월 인수 본계약을 체결한 지 3개월여 만이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마무리되면 새로 출범하는 지주회사인 한국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3사를 비롯해 대우조선해양까지 모두 4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게 된다. 한국조선해양 본사는 서울에 두지만, 자회사가 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본사는 지금과 같이 각각 울산과 거제에 그대로 두기로 했다.

노조 투쟁 전선 거제로 이동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은 지난 수년간 수주난을 겪고 있던 한국 조선업계를 살릴 마지막 기회라는 평가를 받는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공적자금을 지원받아 연명해온 대우조선해양은 그간 무리한 저가수주를 주도해 업계의 물을 흐려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등 경쟁업계에서는 불공정 경쟁에 대한 불만이 상당했다. 앞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2월 “투쟁과 파업만으로 일자리를 지킬 수 없다”며 “노조가 총고용 보장을 요구하는데 노조는 기업을 살리기 위해 뭘 해줄 수 있나”고 매각 방침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 인수 및 한국조선해양 출범이 매끄럽게 진행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양사 노조가 모두 한국조선해양 출범을 극력 반대하고 있어서다. 앞서 현대중공업은 지난 5월 16일부터 16일 연속으로 부분파업 및 전면파업을 벌였다. 이날 주총도 현대중공업 노조가 당초 주총장인 울산 동구 한마음회관을 점거하는 바람에 차로 40분 정도 떨어진 울산 남구 울산대 체육관으로 장소를 급히 변경해 안건을 가까스로 통과시킬 수 있었다.

울산에서 한바탕 소동이 마무리된 후 새로 옮겨온 전장(戰場)이 바로 대우조선해양이 있는 거제다. 대우조선해양 노조 측은 현대중공업과의 합병이 추가 구조조정으로 이어지고, 대규모 인원 감축이 현실화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옥포조선소 정문 앞을 지키고 있던 대우조선해양 노조 관계자는 “사실 합병과 관련한 회사 내부 여론은 50 대 50”이라면서도 “지금이야 인원 감축을 하지 않을 거라고 말은 하지만 그걸 누가 믿겠나”라고 말했다. 이에 대우조선해양 노조 집행부는 ‘재벌만 살찌우는 특혜 매각’이란 대외 명분을 내걸고 합병에 반대하고 있다.

노조 집행부의 입장에 근로자 모두가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이날 옥포조선소 인근에서 만난 한 대우조선해양 직원은 “그분들(노조 집행부)의 주장은 회사 내부 전체 여론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 같다”며 “사실 현대중공업과의 합병이 얼른 마무리되어서 회사가 안정적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직원들도 많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 거제 본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한다는 이 직원은 “워낙 노조의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보니 회사 안에서도 쉽게 다른 의견을 내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대우조선해양의 전·현직 직원들 일부는 ‘현대중공업 인수 찬성 모임’이라는 이름의 네이버 밴드도 운영하고 있다. 비록 회원수가 많지는 않지만 이 밴드에 속해 있는 전·현직 대우조선해양 직원들은 현대중공업과의 합병을 촉구하며 노조를 규탄하는 게시물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한 전직 대우조선해양 직원은 “대부분 시민들은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를 불가피한 처방으로 보고 있다. 주인 없는 회사가 어떤 결과로 나타나는지 봤기 때문이다. 실사단을 막아서는 선동행위가 노동조합을 주축으로 획책되고 있고 그것이 거제 시민 생각의 대세인 양 선전되는 것에 개인적인 분노감마저 느낀다”는 글을 밴드에 올리기도 했다.

이 밴드를 만든 사람은 대우조선해양에서 1981년부터 2000년까지 근무했던 조양상(58)씨다. 현재 옥포조선소 인근에서 ‘조선플랜트엔지니어링’이라는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조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대우조선해양은 한때 우리나라 조선 3사 중 가장 생산성 높고 근로자들의 애사심이 높은 곳이었다”며 “그런데 언제부턴가 선량한 노동자를 팔아먹으며 온갖 권세를 누려온 ‘무늬만 노동자’인 반노동 세력들에 의한 ‘적폐와 패악질’로 점철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조씨는 “대우조선해양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제대로 된 경쟁력을 갖추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조씨를 비롯해 대우조선해양의 매각이 하루빨리 마무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주된 근거는 ‘경영 안정성’이다. “주인 없는 회사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겠느냐”라는 논리다. 대우그룹 해체와 분식회계 사태 때 두 차례 대규모 구조조정을 치른 대우조선해양이 경영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주인’을 맞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행 ‘빅3(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체제에서 ‘빅2(한국조선해양·삼성중공업)’ 체제로 재편되면 국내 업체끼리 과당경쟁으로 인한 저가주수가 줄어들면서 회사 경영이 자연히 나아질 것으로 보는 것이다.

지난 6월 3일 경남 거제 옥포조선소 정문 앞에서 대우조선해양 노조 관계자들이 현대중공업 현장실사단의 진입을 저지하며 몸에 쇠사슬을 두르고 있다. ⓒphoto 연합
지난 6월 3일 경남 거제 옥포조선소 정문 앞에서 대우조선해양 노조 관계자들이 현대중공업 현장실사단의 진입을 저지하며 몸에 쇠사슬을 두르고 있다. ⓒphoto 연합

합병 둘러싸고 엇갈린 민심

세계 3대 조선소 중 2곳(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이 있는 거제도는 지난 수년간 이어온 조선업 불황의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고 있었다. 거제는 ‘고용위기지역’ 및 ‘산업위기 특별대응지역’으로 동시 지정돼 있다. 옥포조선소 인근 상인들은 “3~4년 전 대우조선 구조조정부터 시작된 불황이 끝나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옥포조선소 인근에서 횟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45)씨는 “4년 전 구조조정이 시작되기 전만 해도 저녁만 되면 옥포항 일대가 대우조선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로 넘쳐났다”며 “당시에는 주말이면 자리가 없어 손님을 더 받지 못할 정도였다”고 했다. 김씨에 따르면 구조조정 여파로 음식점을 찾는 직원들이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당시에 비해 매출이 3분의 1로 줄었다고 한다. 과거 조선업 호황기 때는 ‘지나가던 개도 1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던 옥포였다.

거제 지역의 민심도 엇갈린다. 일부 지역 정치인들과 시민들은 산업은행의 자회사로 사실상 공기업이던 대우조선해양이 민간기업인 현대중공업에 인수되면 거제 지역경제가 파탄에 이를 것이라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기자가 옥포조선소를 찾아간 6월 3일에도 옥영문 거제시의회 의장이 노조원들을 격려하고 갔다. 거제도 길거리 곳곳에는 ‘힘내라 대우조선! 지역경제 파탄 내는 대우조선 매각 반대한다!’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지난 5월 23일에는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반대하는 소위 ‘시민문화제’까지 거제 시내에서 열렸다.

전문가들은 어떤 형태로든 국내 조선업 구조조정이 시급하다는 의견이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합병을 하면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는다는 주장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며 “합병을 하지 않고 구조조정을 했던 때에도 근로자 수는 20만명에서 12만명으로 줄어들지 않았나”라고 반문했다. 이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조선업의 반짝 반등을 두고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고 했지만 그건 당시 조선사들이 저가수주를 많이 했기 때문”이라며 “지속가능한 경영 상태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대우조선해양이 언제까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품속에 남아 있을지도 의문이다. 대우조선해양에는 대우그룹 해체 때 2조9000억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것을 비롯해 2015년 분식회계 사태 후에도 약 12조8000억원의 각종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대중공업도 골병 든 상태지만 현재 현대중공업 외에 대우조선해양을 살 회사가 있느냐”며 “구조조정을 해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최대한 계속 일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했다. 박 연구위원은 “인원 감축을 우려해 구조조정을 아예 하지 않는다면 회사가 망해서 모두가 나가게 될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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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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