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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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커피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시장 1위 스타벅스코리아(이하 스타벅스)의 독주를 제외하면, 나머지 커피 기업들의 경쟁 구도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미국 등 해외 유명 브랜드 커피 전문점들이 한국 시장에 상륙해 투자와 판매망 확대에 나서는 등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여기에 국내외 사모펀드들을 중심으로 한 투자 자본들이 커피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반면 CJ가 투썸플레이스를 매각하며 커피 사업에서 손을 떼는 등 그동안 한국 커피 시장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대형 토종 커피 기업들은 움츠러들고 있다.

현재 한국 커피 시장 1위는 올해로 한국 상륙 20년째인 스타벅스다. 지난해 스타벅스 한국 매출만 1조5223억7000만원이 넘는다. 스타벅스 브랜드 단 하나가 시장의 10% 이상을 차지할 만큼 독주하는 상황이다.

그 뒤를 아직은 CJ그룹 계열로 분류되고 있지만 4월 말 매각돼 6월 말 CJ그룹에서 떨어져 나갈 투썸플레이스가 2742억5400만원(지난해 2월부터 12월 말까지 11개월 기준) 매출로 2위를 기록 중이다. 그 뒤로는 이디야와 커피빈코리아가 각각 2004억원과 1666억원대 매출을 올리며 3위와 4위를 기록했다. 5위는 1549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할리스였다.

수치상 한국 커피 시장 2위부터 5위까지, 4개 커피 기업의 2018년 매출을 모두 합쳐도 같은 기간 스타벅스가 한국에서 거둬들인 매출의 절반에 불과할 만큼 스타벅스의 일방적인 시장 지배 현상이 뚜렷하다. 하지만 2위 이하 커피 브랜드들은 말 그대로 살 떨리는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앞서 살펴본 2018년 매출 실태에서도 읽을 수 있지만, 2위와 3위의 매출 격차가 불과 700억원 남짓이고 3위와 4위의 격차는 이보다도 적은 300억여원에 불과하다. 4위와 5위 차이는 불과 100억원이 조금 넘을 만큼 치열하다.

한국 커피 판은 스타벅스와 그 나머지

스타벅스를 제외한 나머지 경쟁자들의 경쟁 구도는 2019년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는 건 이미 올해 초부터 전망돼왔다. 미국과 일본에서 인기 몰이를 하고 있는 블루보틀(Blue Bottle Coffee)이 지난 5월 초 한국에 상륙하며 또 하나의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블루보틀 외에도 유럽과 일본계 커피 매장들이 한국 진출을 타진하고 있다. 2019년 초부터 해외 유명 커피 브랜드들이 한국을 주목하며 커피 시장 경쟁에 불을 댕기고 있는 것이다.

블루보틀은 지난 5월 초 한국 성동구 성수동에 1호점이 문을 연 직후, 매장에서 커피 한 잔을 사기 위해 1시간 이상 줄을 서야 할 만큼 초기 한국 상륙 바람몰이에 성공하고 있다. 블루보틀은 서울 한복판인 삼청동에 2호점이 곧 문을 열 예정이고, 지하철 2호선 강남역과 역삼역 사이 테헤란로에 있는 강남N타워에 3호점 개점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 안에 4호점을 한국에 열 계획으로 알려져 있지만, 블루보틀의 한국 시장 공략 속도는 이보다 더 빨라질 가능성이 크다.

비싸게 책정한 가격에도 젊은층과 여성 고객에 집중한 마케팅이 상당한 효과를 거두자 블루보틀의 시장 진입 초기 매출이 기대 이상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참고로 동일 제품인 아메리카노 한 잔에 스타벅스와 투썸플레이스는 4100원(각사 기본 사이즈), 커피빈은 4800원을 받지만 블루보틀은 이보다 비싼 5000원을 받고 있다. 라테의 경우 스타벅스와 투썸플레이스는 한 잔에 4600원, 커피빈은 5300원인 반면, 블루보틀은 무려 6100원을 받고 있다.

블루보틀 측 역시 ‘한국 소비자를 호구로 본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한국 시장 진입 초기 자신들이 애초 기대했던 것을 넘어서는 반응을 감지한 듯 보인다. 한국 상륙 불과 1달여 만에 자본금을 증자하며 덩치 키우기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 계열 커피 브랜드 관계자는 “화제를 키우고 있는 블루보틀의 상황이 다른 해외 커피 브랜드들도 한국 시장을 관심 있게 보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했다.

토종 몰락 신호탄? CJ 투썸 팔고 커피 손 떼

스타벅스와 블루보틀 등 해외 유명 브랜드들이 거침없이 시장을 키우고 있는 반면 토종 브랜들은 상당히 고전하는 분위기다.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며 비용이 증가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토종 커피 브랜드 대부분은 스타벅스와 커피빈, 블루보틀처럼 회사가 모든 매장을 직접 운영하는 직영점 체제가 아닌 자영업자들을 ‘점주’로 끌어들여 매출 등 덩치를 키우는 가맹점 체제로 커피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이런 가맹점 중심의 커피 기업들은 자영업자인 점주들이 높아진 매장 임대료와 인건비 등에 직접 영향을 받으며 경쟁력 역시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경쟁력이 떨어지자 이들 브랜드들은 매출액 유지를 위해 커피 가격을 야금야금 인상하고 있다. 2018년 말 이디야와 엔제리너스가 가격을 인상했고 올해 들어서는 빵집 기업 SPC가 운영하는 파스쿠찌와 탐앤탐스(2월), 카페베네(4월) 등 상당수 브랜드들이 커피 가격을 인상했다. 제품의 질과 서비스는 그대로이면서 가격만 올리자 소비자들의 비판이 커지는 실정이다.

이런 소비자들의 비판이 국내 토종 브랜드들과 직영 체제의 해외 유명 브랜드들과의 가격·질·서비스 비교로 이어지며 다시 토종 경쟁력 악화 요인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대기업 계열 커피 브랜드들의 경우 그룹이나 모기업 차원의 사업 구조조정과 자금 확보, 경영 실패 등의 이유로 시장에 매물로 나오거나 사업 축소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CJ그룹이 대표적이다. CJ그룹은 식품 계열사인 CJ푸드빌을 통해 2002년부터 커피 매장인 투썸플레이스(Twosome Place)를 운영해왔다. 가맹점 사업에 집중하며 자영업자들을 끌어들여 17년 만에 매장 수를 약 1000개로 늘리는 등 덩치를 키웠다. 하지만 CJ그룹의 사업 조정 계획과 특히 CJ푸드빌의 기업 운영 실책과 재무상황이 커피 사업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2018년 2월 CJ푸드빌은 자신들이 운영하는 브랜드 중 가장 실적이 좋았던 투썸플레이스를 떼어내 별도 기업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14개월 만인 지난 4월 30일 재무구조 개선을 이유로 국내 2위 커피 전문점인 투썸플레이스의 지분 45%를 해외 사모펀드에 2025억원을 받고 팔기로 결정했다.

이미 지난해 2월 CJ푸드빌은 보유하고 있던 투썸플레이스 지분 100% 중 40%를 외국계 사모펀드에 팔아치운 전례가 있다. 사실 이때부터 CJ가 투썸플레이스를 팔고 커피 사업에서 손을 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물론 CJ는 그때마다 이를 부인하며 “지분을 판 것뿐 매각하는 일은 없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결국 사실이 아니었다. 어쨌든 예정대로라면 CJ는 6월 30일 국내 2위 커피 기업인 투썸플레이스를 사모펀드에 넘기며 커피 사업에서 사실상 손을 떼게 된다.

롯데의 커피 사업 헛발질

CJ와 함께 국내 대기업 커피 브랜드로 유명한 엔제리너스(Angel-in-us) 역시 치열한 경쟁 속에서 빠르게 시장 경쟁력을 잃고 있다. 엔제리너스는 롯데그룹 계열로 롯데리아와 미국의 도넛 브랜드 크리스피크림, 패밀리 레스토랑 TGI프라이데이스 매장 등을 운영하고 있는 롯데GRS의 커피 전문점 브랜드다. 엔제리너스 역시 식음료와 유통 대기업인 롯데를 배경으로 자영업자들을 점주로 대거 끌어들이며 덩치를 키웠다. 2010년대 중반 가맹점을 중심으로 매장 수가 900개를 넘기도 했다. 이랬던 엔제리너스의 매장 수가 2019년 현재 600여개로 쪼그라든 상태다. 일반 커피 전문점에 비해 고가의 커피를 파는 스페셜티 매장을 열기도 했지만 시장 반응이 시원치 않다.

엔제리너스에 대한 시장 반응이 가라앉으면서, 이를 운영하고 있는 롯데GRS의 실적도 악화 추세다. 2017년 8581억4660만원에 이르던 매출액이 2018년 8309억70만원으로 무려 270억원 이상 추락했다. 당기순이익은 더 심각하다. 2017년 150억7110만원이던 당기순적자가 2018년에는 271억8610만원으로 더욱 추락하며 적자폭이 급증했다. 롯데GRS는 2015년부터 2018년까지 무려 4년 연속 당기순적자 상태에 빠져 있다.

커피에 돈 쏟아붓는 사모펀드

이런 가운데 한국 커피 시장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 사모펀드로 대표되는 투자자본이다. 이미 2013년 국내 사모펀드인 IMM프라이빗에쿼티가 시장에 매물로 나온 할리스(법인명 할리스 F&B)를 인수하며 투자자본의 커피 시장 본격 진출을 알렸다. 2013년 IMM프라이빗에쿼티는 450억원을 투자해 할리스 지분 60%를 사들였고, 이후 370억원을 추가 투자하는 등 총 820억원을 커피 시장에 투입했다. IMM프라이빗에쿼티는 이후 인터파크가 하던 카페 사업인 디초콜릿커피사업부를 인수하며 커피 시장의 투자 규모를 더 키웠다. IMM프라이빗에쿼티는 현재 크라운유한회사라는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해 할리스를 지배하고 있다.

지분을 통한 지배만 하는 것이 아니다. IMM프라이빗에쿼티는 자신들 소속의 운용담당자인 김유진씨를 할리스F&B 대표이사로 앉히며 기업 관리와 함께, 투자금 회수를 위한 재매각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IMM프라이빗에쿼티의 커피 시장 투자는 사실 매우 단순하다. 투자 후 덩치를 키워 재매각해 수익을 낸다는 것이다. 실제 2013년 인수 이후 자신들이 사들인 가격에 프리미엄을 덧붙여 몇 차례 재매각에 나섰지만 모두 실패하기도 했다.

IMM프라이빗에쿼티와 함께 최근 커피 시장에 급부상한 투자자본이 홍콩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모펀드이자 CJ에 이어 투썸플레이스의 2대 주주(현재 지분 40%)인 앵커에쿼티파트너스(AnchorEquityPartners)다. 이 사모펀드는 지난 4월 30일 CJ푸드빌로부터 투썸플레이스 지분 45%를 추가로 사들인 것이 확인됐다. 커피 사업을 두고 CJ와 앵커에쿼티파트너스가 벌인 거래 규모는 무려 2025억원에 이른다. 예정대로라면 6월 30일 앵커에쿼티파트너스는 기존 지분 40%에 더해 CJ푸드빌로부터 45%의 지분을 더 넘겨받아 총 85%의 투썸플레이스 지분을 확보하게 된다. 경영권도 가져갈 전망이어서 본격적으로 한국 커피 시장에 들어오는 해외 투자자본이 된다.

그렇다고 투자가 본업인 앵커에쿼티파트너스가 한국에서 직접 커피 사업을 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체질 개선과 수익성을 끌어올리거나, 덩치를 더 키워 재매각하는 방법으로 수익을 회수해 간다는 게 기본 구상이다. 매출액 기준 시장 2위 브랜드라는 시장 지배력과 이미지, 약 1000개의 매장 등 이미 갖춰진 영업망을 활용해 향후 한국 커피 시장에서 자신들이 생각한 수익 회수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망하는 이유, 비싼데 맛없는 커피

하지만 한국 시장에서는 사모펀드가 소유한 커피 기업(혹은 브랜드)을 사줄 인수 주체가 부족한 게 현실이다. 사모펀드는 철저히 투자와 수익 확보 관점에서 커피 시장에 진입하지만, 실제 그들의 전망만큼 시장이 움직여주지 않는 측면도 강하다. 자신들이 계획했던 시점에 원하는 가격을 받고 투자한 커피 기업(혹은 브랜드)을 제대로 팔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 돼버렸다는 뜻이다. 할리스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현재 한국 커피 시장은 스타벅스를 제외하면 뚜렷한 강자가 없이 고만고만한 브랜드들 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CJ와 롯데, 매일유업 같은 대기업, 또 한국야쿠르트와 SPC 등 중견기업들도 커피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하고 있다. 이디야 등 중저가 브랜드들 역시 수차례에 걸쳐 커피 가격을 올린 결과 이제는 중저가라는 표현도 걸맞지 않다. 당장 “비싼데 맛은 없다”는 소비자들의 비판에 직면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 유명 커피 브랜드들이 한국 시장과 소비자 공략에 나서고 있고 사모펀드들 역시 막대한 돈을 앞세워 커피 시장에 뛰어들고 있어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면서도 유별난 커피 사랑을 보여주고 있는 한국의 커피 소비자들이 어디로 마음을 줄지가 주목된다.

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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