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 LG트윈타워 ⓒphoto 바이두
중국 베이징 LG트윈타워 ⓒphoto 바이두

중국 상하이 푸둥(浦東)의 세기대도(世紀大道)변에는 루자주이광장(LJZ Plaza)이란 오피스빌딩이 있다. 지하 4층, 지상 34층, 연면적 9만8000㎡에 달하는 대형 오피스빌딩이다. 지금은 상하이에 본사를 둔 중국계 루자주이(陸家嘴)그룹 소유지만 2009년까지만 해도 이 빌딩의 주인은 한국 기업인 포스코건설이었다.

1990년 중국 정부는 상하이 푸둥을 제2의 홍콩으로 만든다는 계획을 세우고 푸둥 개발에 본격 착수했다. 포스코건설은 이 같은 푸둥 개발 붐에 편승해 한국 기업으로는 최초로 당시 돈 1억8600만달러를 투자해 ‘포스플라자’를 세웠다.

포스코건설은 빌딩 건설을 앞두고 50년간 토지사용권도 취득했고, 한국 기업 최초로 현지 건설면허도 취득했다. 설계는 미국의 유명 설계회사에 맡기고, 외장재는 포스코에서 자체 개발한 고급 스테인리스 냉연재를 채용하는 등 제법 공을 들였다. 당시만 해도 중국 건축 자재의 품질이 떨어져 강관파일은 포스코, 철근은 인천제철, 커튼월은 현대알루미늄, 엘리베이터는 동양엘리베이터에서 납품받는 등 한국 기업의 참여도 대거 이뤄졌다. 결국 포스플라자는 당시 최고급 오피스빌딩이란 평가를 받으며 준공 이듬해인 2000년 상하이시로부터 푸둥 개발 10주년 건축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랬던 건물이 준공 10년째 되는 해인 2009년 중국계 기업에 헐값에 팔려버렸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에 포스코가 비(非)업무용 해외 부동산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매각 대상에 올려버린 것이다. 당초 매각 예상금액(4억달러)보다 약 40% 저렴한 2억5000만달러에 상하이의 한국계 빌딩이 중국계 기업 수중에 넘어가자 현지 언론에서는 “헐값에 주웠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포스플라자를 중국 기업에 매각한 후 상하이 푸둥의 중심대로인 세기대도에는 한국 간판을 걸고 있는 한국계 빌딩이 단 한 곳도 없다.

한국 기업은 베이징에서도 이 같은 전철을 되풀이할 것으로 보인다. LG그룹이 베이징 중심가에 있는 LG트윈타워 매각에 착수하면서다. 베이징 차오양구(朝陽區) 건국문외대가(建國門外大街)에 있는 LG트윈타워는 지하 4층, 지상 30층 연면적 15만㎡에 달하는 쌍둥이 빌딩이다. 여의도 LG트윈타워(연면적 15만7835㎡)와 거의 비슷한 규모의 빌딩이다. 2005년 준공한 빌딩으로 한국 기업이 베이징 중심가에 처음 직접 세운 빌딩이다. 4억달러가 투자된 이 빌딩의 설계는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를 설계한 미국의 SOM이 맡았고 GS건설이 시공을 담당했다. 건물 외관이 립스틱처럼 생겨서 ‘립스틱빌딩(口紅樓)’이란 애칭으로 더 유명하다.

베이징의 LG트윈타워는 중국에 진출한 어떤 한국 기업이 세운 빌딩보다 탁월한 입지를 자랑한다. 베이징의 상징거리인 장안대가(長安大街)와 곧장 이어지는데, 천안문(天安門)과 직선으로 4㎞ 떨어져 있다. 지하철 1호선 융안리(永安里)역과는 지하아케이드로 이어져 상권도 좋다. LG는 베이징 LG트윈타워에 LG전자와 LG화학 등 중국 진출 LG그룹 주요 계열사를 모두 입주시켜 LG그룹의 대중(對中) 거점으로 삼아왔다. 이후 SK나 삼성 등의 한국 기업들도 LG트윈타워를 중심으로 인근 기존 빌딩을 매입하거나 빌딩을 신축했다. 하지만 LG트윈타워 매각설이 나돌면서 한국 기업의 대중 거점 상실 우려가 나온다.

2009년 미국발 금융위기 와중에 상하이 포스플라자를 매각했을 때도 대중 거점 상실 우려가 제기됐는데 이런 우려는 실제 현실화됐다. 당초 포스플라자에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 상하이분행(分行)을 비롯해 우리은행 상하이분행, 대구은행 상하이사무소 등이 입점했었다. 하지만 매각과 함께 산업은행은 2009년 일본 모리빌딩 계열의 상하이세계금융센터(SWFC)로 이전해버렸다. 남아 있는 우리은행도 2017년 인근의 다른 빌딩으로 떠나버렸다.

베이징 중심가의 경우 한번 떠나면 좀처럼 되돌아오기가 쉽지 않다. 베이징 장안대가의 경우 중국의 상징거리로 고도 제한, 디자인 제한 등 이중삼중 규제가 가해지고 있고, 외국 기업에는 더욱 배타적이다. 중화권 최고 재벌인 리카싱(李嘉誠) 청쿵(長江)실업 회장이 동방광장(오리엔탈플라자)을 세울 때도 특혜 논란에 휘말릴 정도였다. 요즘은 베이징시 당국이 거리 미관 정비를 이유로 장안대가에 걸려 있던 삼성과 현대차 간판을 강제 철거하는 등 외국 기업은 간판조차 제대로 내걸기가 쉽지 않다. LG트윈타워는 베이징 한복판에서 한국 기업 간판을 눈치 보지 않고 걸어놓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상하이 옛 포스플라자(현 루자주이광장) ⓒphoto 바이두
상하이 옛 포스플라자(현 루자주이광장) ⓒphoto 바이두

되돌아오기 힘든 베이징 중심가

탁월한 입지조건 등을 감안해 우리 기업들이 중국의 부동산 매각에 좀 더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하이 포스플라자의 경우 최근 인근에 상하이국제금융센터가 새로 들어서는 등 푸둥의 새로운 업무중심으로 떠올랐다. 루자주이에 있는 상하이 증권거래소도 상하이국제금융센터로 이전해올 예정이다. 자연히 이 일대 빌딩들의 자산가치도 덩달아 올라갔다.

실제로 상하이 포스플라자 매각에서 쓴맛을 본 포스코의 경우 최근 베이징 왕징(望京)에 있는 포스코센터 매각 방침을 철회하기도 했다. 포스코는 전임 권오준 회장 시절 역시 비업무 해외 부동산 정리 차원에서 한인타운 왕징에 있는 포스코센터 지분을 중국 기업에 매각하려고 계획했다. 2015년 준공한 오피스빌딩으로 포스코 주요 계열사를 비롯해 코트라 베이징지사, 경상북도 대표처 등이 입주해 있다.

하지만 지난해 취임한 최정우 회장이 매각 방침을 철회하고 지분을 전량 인수했는데, 마침 지난 연말 베이징 도심부의 대형 오피스빌딩 건설금지령이 내려지면서 상당한 반사이익을 거뒀다고 한다. 매각 방침을 철회한 덕분에 한국 기업과 기관 역시 온전하게 남아 있다.

베이징의 LG트윈타워는 왕징의 포스코센터와는 비교조차 안 될 정도로 입지가 탁월하다. LG 측은 글로벌 부동산 기업인 세빌스에 매각을 의뢰 중인데, 예상 매각가는 약 87억위안(약 1조5000억원)으로 알려져 있다. 빌딩 전체 면적 중 오피스 면적에 해당하는 8만여㎡에 대략 ㎡당 10만위안의 예상 매각가를 책정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현지 언론은 “㎡당 12만위안가량에 시세가 형성된 주변 오피스빌딩에 비해 저렴한 수준”이라며 “향후 매각 과정에서 가격이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고 평가했다. LG의 베이징 트윈타워 매각을 중국 실적 부진과 연계해 보는 시각도 팽배해 있다. LG그룹의 한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으로 매각이 결정되지는 않았다”며 “자산 효율화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키워드

#기업
이동훈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