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정부관광국 서울사무소 ⓒphoto 뉴시스
일본정부관광국 서울사무소 ⓒphoto 뉴시스

올 들어 중국 관광객의 일본 방문이 두 자릿수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일본정부관광국(JNTO)은 매월 국가별 관광통계를 발표하는데, 중국 관광객은 지난 6월 88만여명이 일본을 찾아 15.7%(이하 전년 대비)의 성장세를 기록했다. 중국 관광객은 지난 5월에도 75만여명이 일본을 찾아 13.1%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2개월 연속 두 자릿수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올 상반기(1~6월) 누적 방일 중국 관광객은 453만여명으로 국가별 일본 방문객 1위, 성장세는 11.7%에 달했다.

자연히 한국 대법원의 징용공 배상판결로 촉발된 한·일 간 경제전쟁 와중에 한국이 쓸 유력 무기로 꼽혀온 대일(對日) 관광카드가 무력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일본을 찾은 한국 관광객은 753만여명으로 한국을 찾은 일본 관광객(294만여명)을 압도한다. 지난해 방일 중국 관광객(838만여명)에 이어 국가별로 2위다. 중국과 한국의 인구규모를 감안하면 엄청난 숫자의 한국 관광객들이 일본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한국 관광객이 지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때 중국 관광객이 그랬던 것처럼 일본에 발길을 끊어버리면 일본 경제에 적잖은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계산을 해왔다.

실제로 올 들어 한국 관광객의 일본 방문 열기는 한·일 관계 악화와 엔고 등의 영향으로 주춤한 상태다. 올 1월까지만 해도 한국 관광객은 77만여명이 일본을 찾아 방일 중국 관광객(75만여명)을 제치고 국가별 일본 방문객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 역시 전년 대비 3%가량 줄어든 수치였다. 이는 2월 들어 1.1% 성장으로 살짝 반등했지만, -5.4%(3월), -11.3%(4월), -5.8%(5월)로 계속 역성장을 거듭해왔다. 여름철 성수기가 시작되는 6월 0.9%로 살짝 반등했지만, 올 상반기(1~6월) 전체로는 전년 대비 3.8% 줄어든 386만여명의 한국인 관광객이 일본을 찾는 데 그쳤다.

중국인 관광객의 일본 방문 열기는 한국인 관광객의 빈자리를 채우고도 남는다. 지난 1월 75만여명의 중국인 관광객이 일본을 찾아 국가별 순위로는 한국에 이은 2위에 그쳤지만, 전년 대비 신장세는 무려 19.3%에 달했다. 이후 비수기인 2월 1% 성장에 그쳤다가, 16.2%(3월), 6.3%(4월), 13.1%(5월), 15.7%(6월)로 두 자릿수 성장을 거듭 중이다. 중국은 국가별 방문객 순위로 1월 한 달 잠깐 한국에 1위를 내준 다음 계속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일 관계 악화와 엔고로 방일 한국인 관광객이 줄어도 일본이 받는 타격을 중국 관광객으로 흡수하는 구조가 자리 잡은 셈이다. 여기에 국가별 일본 방문객 순위에서 3, 4위 자리를 지키는 대만, 홍콩까지 합할 경우 중화권 관광객의 일본 방문 열기는 일본 관광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위상을 미미하게 만든다. 올 상반기 방일 대만 관광객과 홍콩 관광객은 각각 248만명, 109만명에 달했다. 중화권 전체를 합치면 810만여명으로 한국(386만여명)을 두 배 이상으로 압도한다.

한국 단체관광 상품 원천 배제

중국 관광객의 일본 방문 열기는 일본 자체의 관광 매력과 돌발변수 없이 안정된 중·일 관계가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사드 사태 이후 아직 정상화되지 못한 중국발 한국 단체관광 제한이 더 큰 요인으로 지목된다. 중국에서 한국 관광은 개인관광의 경우 별다른 제한이 없지만, 단체관광의 경우 여전히 각종 유무형의 제약이 가해지고 있다. 특히 대규모 단체관광객 유입 효과가 큰 전세기 이용, 크루즈 이용 등은 여전히 제한되고 있다.

일례로 중국 최대 온라인 여행사(OTA)인 시에청(携程·씨트립)은 과거 한국 단체관광 상품을 일본과 함께 일·한(日韓) 카테고리로 묶어서 판매했다. 지금은 아예 ‘한국’이란 키워드가 들어가는 단체관광 상품 자체를 원천 배제하고 있다. 단체관광 상품은 ‘홍콩마카오대만’ ‘일본’ ‘동남아’ ‘구주(유럽)’ ‘미주’ ‘호주중동아프리카’ 항목으로만 묶여 있다. 한국 단체관광 상품을 구매해 한국으로 여행을 가고 싶어도 아예 여행상품조차 찾을 수 없는 구조다. 시에청이 인수한 OTA ‘취나얼’ 역시 북한까지 묶은 ‘일한조(日韓朝)’ 카테고리는 두고 있지만 정작 한국 단체관광 상품은 취급하지 않는다.

크루즈 여행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 최대 크루즈 모항인 상하이 우송커우(吳淞口)항에서 출항하는 크루즈 상품의 경우 일본 오키나와를 비롯해 규슈, 오사카, 요코하마, 도쿄까지 다녀오는 상품은 수없이 많다. 한국의 제주도나 부산, 인천 등지를 중간 기항지로 하는 상품은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들다. 과거 한국 부산에서 들어오는 부관(釜關)페리만 드나들던 시모노세키(下關)에는 요즘 상하이발 13만톤급 크루즈가 입항한다. 한 번에 관광객 5000여명을 태우고 다니는 크루즈선이다.

주말이나 짧은 연휴를 이용해 가까운 해외를 다녀오고자 하는 중국인 관광객의 선택지에서 한국이 원천 배제돼 있는 셈이다. 자연히 이들은 한국 대신 일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일본은 오키나와처럼 본토와 떨어진 곳에 대해서는 비자 발급비용을 무료로 인하하는 등 씀씀이가 큰 중국인 관광객들을 유치하는 데 적극적이다. 요즘은 오키나와의 부속도서로 오키나와와 대만 사이에 있는 미야코섬(宮古島)까지 중국인 관광객들을 실은 5만톤급 크루즈가 입항하고 있다.

이 같은 추세는 단기적으로는 2020년 도쿄 하계올림픽, 장기적으로는 2025년 오사카 세계박람회(엑스포)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도쿄올림픽 전후로 일본 주요 도시에 오픈카지노까지 들어서면 중국 관광객의 일본 방문 열기는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싱가포르의 마리나베이샌즈를 벤치마킹한 3곳의 오픈카지노를 허용할 계획인데, 오사카와 요코하마가 가장 유력한 후보지로 꼽힌다.

외국인 카지노가 허용된 한국은 영세한 구멍가게식 영업에도 그간 중국인 관광객들을 많이 유치해왔다. 하지만 일본에 초대형 오픈카지노가 허용되면 한국을 찾던 중국 관광객들마저 일본으로 발길을 돌릴 공산이 크다. 일본정부관광국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3119만여명으로 처음으로 3000만명을 돌파했다.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오는 2020년까지 외국인 관광객 4000만명을 유치하는 것이 일본 정부의 목표다. 이를 위해 중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 일시적인 비자발급 완화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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