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의 수출 규제가 경제전쟁으로까지 확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식시장에는 ‘애국테마주’가 급부상하고 있다. 개인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일본의 수출 규제가 돈을 벌 수 있는 소재로 인식되며 새로운 테마주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주목받는 애국테마주 중 몇몇이 자칫 개미들의 무덤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기업 실적이나 확인된 성장 가능성이 아니라 오로지 일본과의 경제 충돌이 불러온 실체 없는 기대감과 소위 ‘정보’로 불리는 소문에 의해 개인 투자자들이 주가를 비정상적으로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런 기업들 중에는 회사는 물론 오너 등 대주주, 최고 경영진이 짧은 시간 주가가 폭등한 틈을 노려 보유 주식을 대거 처분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들이 주식을 처분해 거액의 현금을 가져갔다는 것은 기대감과 소문을 좇아 몰려든 개인 투자자들의 투자금을 고스란히 자신들의 주머니로 챙겼다는 의미가 된다.

현재 주식시장에서 투자자들을 빨아들이고 있는 대표적인 애국테마는 일본제품 불매운동 관련 기업들과 일본의 수출 규제 품목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불화수소(에칭가스)·포토레지스트’ 관련 기업 주식들이다. 일본제품 불매운동 관련 주식으로는 문구류 기업 모나미, 맥주회사 하이트진로와 하이트진로홀딩스, 의류업체 신성통상, 보일러 제조사 경동나비엔, 편의점 운영사 GS리테일, 전기밥통을 만드는 PN풍년 등이 꼽힌다. 이들은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매출 확대라는 반사이익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는 기업들이다. 이들 외에도 화장품과 생활용품, 비누와 세정제 등을 제조하는 기업들이 일본제품 불매운동 확산 움직임에 힘입어 애국테마주 대열로 속속 합류하고 있다.

일본의 수출 규제 품목 관련 기업들은 7월 초부터 개미 투자자들이 몰려들며 일찌감치 들썩이고 있다. 포토 레지스트(감광재)를 생산하는 동진세미켐, 불화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후성과 솔브레인, 반도체 검사장비 타이거일렉 등이 대표적이다.

모나미, 보유주 50% 팔아 현금화

문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애국테마에 편입된 기업들의 주가가 짧은 시간 폭등하는 틈을 활용해 회사는 물론 대주주와 최고경영진이 앞장서 보유 주식을 대거 처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보유 주식을 대거 처분하면서 실망 매물이 급증하고, 그 여파로 급등하던 주가가 폭락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모나미다. 모나미는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가 발표된 후 제브라와 하이테크 등 일본산 필기구를 대체할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며 주가가 급등했다.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가 시행되기 하루 전인 지난 7월 3일 모나미 주가는 1주당 2560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다음날 상한가를 기록하며 3325원으로 폭등했고, 7월 17일에는 4550원까지 솟구쳤다. 7월 3일부터 17일까지 딱 10일 만(거래일 기준)에 주가가 77.73% 이상 폭등한 것이다.

이 기간 개인 투자자들은 10억1887만원어치가 넘는 모나미 주식을 사들였다. 반면 외국인은 2.1%이던 지분율을 1%도 안 되는 0.83%까지 줄이며 10억3104만원 이상 주식을 팔아치웠고, 기관 투자자 역시 주식을 순매도했다. 거래량도 비정상적으로 폭등했다. 7월 3일 전까지만 해도 평소 2만~3만주 정도이던 거래량이 7월 3일부터 17일까지 적어도 하루 776만주에서 많을 땐 3541만2000주 이상 거래됐다. 이런 모나미 주식 거래량의 98%를 개인 투자자들이 책임졌다.

문제는 7월 17일 주가 상승률이 77.73%까지 솟구치자 모나미가 직접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갑자기 팔아치운 것이다. 모나미는 보유 중이던 70만주 중 무려 절반인 35만주를 단 하루 만에 1주당 4323원에 팔아치웠다. 모나미 측은 보유 주식 50%를 갑자기 팔아치운 이유를 “유동자금 및 투자자금 확보 차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 실적의 급성장, 성장 모멘텀 등 주가 급등 요인을 찾기 힘든 상황에서 짧은 시간 폭등한 주가의 차익을 실현하기 위해 보유 주식을 대거 처분했을 가능성 크다”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특히 개인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우리 소비자들과 투자자들 덕분에 주가가 상승했다면 회사가 주식을 팔아치울 게 아니라 반대로 좀 더 확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윤리적 행위”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어쨌든 모나미가 보유 주식 50%를 처분하자 급등하던 주가가 내려앉기 시작해 7월 19일 주가가 4000원으로 떨어졌다.

애국테마주 주가 급등을 틈타 회사 보유 주식 50%를 팔아 현금화하며 비판받고 있는 모나미의 볼펜 제품. ⓒphoto 뉴시스
애국테마주 주가 급등을 틈타 회사 보유 주식 50%를 팔아 현금화하며 비판받고 있는 모나미의 볼펜 제품. ⓒphoto 뉴시스

후성, 대표이사가 주식 팔아 7억 챙겨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주요 품목인 불화수소를 생산하는 후성도 최근 개인 투자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일본이 반도체 제조 공정 소재 중 하나인 불화수소(에칭가스)의 한국 수출을 규제하자 불순물이 거의 없는 99.999%의 초고순도 불화수소 국산화 이슈가 한국 산업계에 확대됐다. 그러자 투자자들 사이에서 가스 형태의 일본산 고순도 불화수소를 대체할 수 있는 곳으로 액화 불화수소를 생산하고 있는 후성이 주목받으며 주가가 급등했다.

일본 정부가 한국 수출 규제를 발표하기 하루 전(거래일 기준)인 지난 6월 28일 1주당 6790원이었던 후성 주가는 7월 1일 수출 규제 조치가 발표되며 서서히 오르기 시작해 7월 3일 8580원으로 8000원대를 넘어서더니 7월 15일에는 상한가를 기록하며 1만1000원으로 폭등했다. 다음 날인 7월 16일에는 1만2100원까지 뛰어올랐다.

6월 28일부터 7월 16일까지 거래일 기준 12일 동안 주가가 무려 78.2% 이상 폭등했다. 이 주가 폭등 역시 모나미와 마찬가지로 순전히 개미들이 끌어올린 것이다. 이 기간 개인 투자자들은 후성 주식을 261억5906만원어치 이상 순매수했다. 반면 외국인은 보유하고 있던 후성 주식을 115억6618만원어치 이상 팔아치웠고, 기관은 무려 130억3923만원어치 넘게 순매도했다. 이 12일 동안 후성의 주식거래량 95.23%를 개인들이 책임져줬다.

문제는 지난 7월 18일 벌어졌다. 이 회사 대표이사인 송한주씨가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 12만주 중 절반인 6만주를 주당 1만1800원에 갑자기 팔아치운 것이다. 그것도 장내에서 팔아치우며 이날 하루 7억800만원의 현금을 회수해갔다. 우리 국민의 애국심에 주가가 급등하던 시점에서 후성의 최고경영자가 대거 주식을 팔아치워 7억원 넘는 현금을 회수해간 사실이 알려지자 투자자들과 시장의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결국 개미가 털리는 테마주

주가 역시 급락세로 돌아섰다. 7월 23일 9750원으로 1만원이 깨졌고, 7월 24일에는 9460원까지 떨어졌다. 7월 16일 이후 단 6일 만에 주가가 21.82%나 폭락했다. 한 투자사 관계자는 “대표이사는 회사의 경영과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인데 상당히 경솔한 행동을 한 것”이라며 “개인 주주들은 물론 외국인이나 기관 투자자들에게도 실망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2019년 7월 주식시장을 달구고 있는 애국테마주들 중 현재 대량 매도로 비판이 커지고 있는 대표적인 곳이 모나미와 후성이지만 비슷한 일은 또 벌어질 수 있다. 취재에 응한 증권사와 투자사 관계자들 대부분 “이 기업들 외에도 비슷하거나 동일한 상황은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며 “실행을 안 했을 뿐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곳들도 분명 있다”고 했다. 한 투자사 관계자는 “기업 상황이 당장 획기적으로 좋아질 가능성이 낮은 상태에서 예상치 않게 주가가 폭등하니 대주주나 경영자 입장에서는 주식을 팔아 현금을 확보해보자는 욕심이 클 것”이라고 했다.

개인 투자자들로서는 대박을 좇아 테마 열풍에 무조건 뛰어들 것이 아니라 기업의 건전성과 대주주와 경영진의 윤리성 정도는 투자에 앞서 반드시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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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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