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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9호] 2019.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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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3억8208만6482㎡… 미분양 산업단지를 어쩌나

김원중  부동산학 박사·건국대 겸임교수 

▲ 지난 7월 15일 경북 구미시는 LG화학과 공장용지를 제공해주는 등의 조건으로 ‘구미형 일자리 협약’을 체결했다. 사진은 구미공단 모습.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구글이 캐나다 토론토에 건설하려는 ‘스마트시티(smart city)’가 2020년 착공을 앞두고 있다. ‘구글시티’는 총 공사비 4조원을 투입, 온타리오호수 주변의 옛 조선소 부지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미래형 도시로 탈바꿈시키는 초대형 프로젝트이다. 이를 위해 캐나다 연방정부, 온타리오 주정부, 토론토시는 2017 도시재생 사업계획안을 공모했다. 이 공모에서 구글은 어떻게 캐나다 정부와 토론토시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Alphabet)이 운영하는 도시재생전문회사 사이드워크랩스(Sidewalk Labs)는 온실가스 배출량 73%, 식수 소비량 65%, 매립 폐기물 발생량 90% 감축을 목표로 제시해 캐나다 정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쓰레기 감축의 비법은 도시 지하에 쓰레기와 화물수송 전용 터널을 건설해 로봇이 재활용쓰레기를 분리하고 수송을 전담하는 데에 있다. 온실가스 배출량의 감소는 열에너지를 에너지로 재활용해 궁극적으로 탄소 제로 도시를 조성하려는 것이다. 구글은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현재 토론토 남부에 있는 구글 캐나다 본사를 이전하겠다고 약속해서 이 사업은 ‘구글시티’ 사업으로도 불린다.
   
   구글은 2020년 산업 전체 면적 324만㎡의 일부인 4만8000㎡에서 시범사업을 시작한다. 첫 삽을 뜨면서 9·11테러 사건 뒤 뉴욕시 재건을 담당했던 도시 전문가와 구글 직원 5000여명이 투입된다. 건설 피크 시점인 3~4년 뒤에는 현장 근무 인원이 1만여명이 될 예정이다. 구글은 쓰레기 수거, 자율주행, 에너지 및 교통시스템 등에 최대 10억캐나다달러(약 1조990억원) 투자를 약속했다. 이에 화답하여 캐나다 연방정부, 온타리오 주정부와 토론토시는 12억5000만캐나다달러(약 1조759억원) 규모의 보조금을 이 사업에 투자한다. 이와 별도로 캐나다 정부는 3억캐나다달러를 마련해 교통정보 체계 구축, 자율주행 인프라 확충, 에너지 절감 시스템 도입 등에 투입할 예정이다. 구글은 토론토 사업 결과를 활용해 전 세계 도시를 대상으로 하는 사업을 본격화한다는 계획이다. 토론토시의 혁신과 구글의 아이디어가 맞물려 북미 최대의 디지털 도시를 탄생시킬 전망이다. 토론토시보다 앞서서 혁신적인 행정을 실천한 지방자치단체는 일본의 도요타시다.
   
   
   도요타시의 성장 과정
   
   도요타시(豊田市)는 일본 아이치현에 있는 면적 2만9012㎢, 인구 42만명의 소도시다. 원래의 명칭은 고로모시(挙母市)로 양잠업이 발달해 실크 생산지로 유명했다.
   
   도요타가 고로모시에 자동차 공장을 설립한 시기는 1938년이었다. 공장은 도시 남쪽의 론지가하라(論地ケ原)에 자리 잡았는데, 잡목과 잡초가 무성하고 경작지로는 쓸 수 없는 황무지여서 땅값이 저렴했다. 근처에는 철도와 지방도로가 있어서 운송조건은 양호했고 전력공급도 얻기 쉬운 위치였다. 도요타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여기서 군용 트럭을 생산하기도 했다. 나카무라(中村)는 1955년 고로모 시장으로 취임했다. 취임 당시 그는 1930년대 세계 대공황 이후 전 세계적으로 양잠업이 쇠퇴해 실크 생산으로는 지역 발전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 자동차 산업 중심의 지역 경제 발전 전략을 수립했다.
   
   나카무라 시장은 2차 세계대전 중 비행기 엔진을 생산했던 ‘도카이비행기(東海飛行機)’ 회사 부지의 공매를 계기로 도요타에 국유지 매입과 본사 이전을 제안했다.
   
   도요타자동차의 창립자인 도요다 기이치로(豊田喜一朗)가 도카이비행기의 사장을 맡았고, 고로모시에 일부 공장이 있는 인연을 내세워 도요타에 러브콜을 한 것이다. 보조금 지원과 도요타시로 도시명을 바꾸겠다는 파격적인 제안도 했다. 결국 도요타는 4500억엔을 투자해 부지 49만5800㎡(약 15만평), 건면적 19만8000㎡(약 6만평)의 모토마치(元町)공장을 지었다. 승용차 대표 브랜드 ‘크라운(crown)’을 월 1만대씩 생산하는 공장이었다. 1958년 11월에 시작한 공사는 8개월 만인 1959년 7월에 완성되었고, 5000명의 직원을 채용했다.
   
   1959년 1월 고로모시는 도요타자동차의 본사 이전을 계기로 도요타시로 탈바꿈했다. 주민투표를 거쳐 자동차 브랜드를 도시명으로 쓰는 세계 최초의 도시가 되었다. 나카무라 시장은 개명과 함께 보조금 지원 조례를 만들어 기업 보조금을 본격적으로 지급하면서 협력회사들이 하나둘씩 들어섰다. 인구도 빠르게 늘어났다. 1963년 5만3000명이었던 인구는 1973년 22만8000명으로 4배 증가했고, 산업용지는 160㏊에서 790㏊로 5배 확장됐다. 협력회사와 별개로 도요타가 도요타시에 납부하는 세금은 시 전체 세수의 70%가 넘었다. 전체 인구의 약 80%가 도요타에 근무할 정도였으니 ‘동양의 디트로이트’로 불리는 데 손색이 없었다. 도요타시의 성공은 일본의 기초단체가 홀로 만들어냈다. 지자체장의 열정이 지방 소도시의 인구, 고용, 세수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켜 선순환경제를 이뤄낸 것이다. 우리도 도요타시에 못지않은 패기와 열정을 보여준 시절이 있다. 1960년대 산업단지를 조성할 때이다.
   
   
▲ 구글의 ‘스마트시티’ 개발 예정지인 캐나다 토론토 온타리오호수 주변의 옛 조선소 부지. photo 뉴시스

   1960년대의 산업단지 조성
   
   울산 공단은 1962년 첫 삽을 뜬 우리나라 최초의 산업단지다. 대한민국은 1966년에 이르러서야 대일청구권 자금을 토대로 경제 기반시설을 구축할 수 있었다. 그만큼 울산공단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해외 투자 유치가 절실했던 때이다. 당시 해외 투자 유치단장은 삼성 이병철 회장이었고, 진행사항은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 의장에게 수시로 보고됐다. 이 회장은 미국 기업들을 접촉한 뒤 강, 항구를 낀 산업단지 부지 확보가 투자자 유치의 선결 요건임을 파악했다. 이 회장은 미국 방문 결과를 가지고 유럽의 산업단지 순례에 나섰다. 유럽 출장에서 돌아온 이 회장은 동해안에서 남해안을 거쳐 서해안까지 전국을 샅샅이 조사했다. 결론은 울산이 라인강 인근의 독일 공업지구, 로테르담 공업지구와 견줄 수 있는 천혜의 입지를 갖췄음을 깨달았다. 그 즉시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울산을 산업단지로 천거하는 장문의 보고서를 작성해 보냈다. 이것이 국내 최초의 산업단지 울산 제1공단이 다우케미컬 등 미국 기업들의 투자를 받아 완성되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다.
   
   울산은 3만t급 선박 출입이 가능한 장생포항과 3300만㎡(1000만평) 이상의 너른 토지를 품고 있으며, 하루 62만t의 공업용수를 공급하는 태화강, 동천강이 흐른다. 부산, 대구와는 철도(경부선, 중앙선)와 도로가 연결된 사통팔달의 위치라 노동력 조달도 수월했다. 울산에 정유, 비료,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공업의 복합 산업기지가 들어선 배경이다.
   
   산업단지의 개발은 토지 및 공업용수 확보 여부, 원료와 완성품의 수송 의존도, 공해 유발 유무 등에 달려 있다. 한국에서 산업단지를 조성할 때는 고려할 사항이 더 있다. 남북한 대치와 삼면이 바다인 지정학적 특성이다. 안보 이슈 때문에 산업단지는 남쪽에 몰려 있고 해상수송이 필요한 시설은 해안선을 따라 배열됐다. 산업 분야별로 분산 배치한 이유도 있다. 분진과 매연이 다량 발생하는 종합제철과 석유화학단지 옆에 다른 업종의 공장을 건설하면 모두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은 종합제철과 석유화학 공장을 한곳에 집약시켜서 공해대책 수립에 골머리를 앓았다. 공해를 유발하는 공장은 낙동강처럼 큰 강의 상류에 짓지 않고 기후 특성을 고려해 해안지방에 건설했다. “한반도는 중국 대륙에서 불어오는 서쪽 바람이 우세하므로 동남쪽 끝자락에 배치할 때 오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으며, 온산 인근 바다는 한류와 난류가 교차해 배수 공해 문제 해결에도 이롭다.” 제3공화국 시절 경제수석비서관 겸 중화학공업기획단장을 지낸 고(故) 오원철씨가 그의 자서전(‘박정희는 어떻게 경제강국 만들었나’)에서 밝힌 온산 비철금속단지의 탄생 비화다. 그래서 포항(제철), 울산(제1석유화학), 마산·창원(기계), 거제(조선), 여천(제2석유화학), 광양(제2제철)의 산업단지가 동남해안선을 따라 배치됐다.
   
   정부가 해안선에 산업시설을 집중시킨 이유는 또 있다. 육상수송은 해상수송에 비해 에너지 소비가 과다 발생(트럭의 에너지 소비는 철도의 7.9배, 선박의 7배)한다. 임해공업지역에 가공공장을 설치하면 수입 원료를 생산가공하고 제품화한 뒤 내수물량은 육로로 수송하고 수출물량은 대형선박을 이용해 수출할 수 있어 시간과 비용절감이 가능하다. 우리의 산업단지는 철저히 경제논리에 의해 조성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오래전 지역 갈등이 있던 시절 항간에서 떠돌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상도 출신이므로 경상도를 집중 개발했다는 것은 팩트가 아니라 루머일 뿐이다. 정부는 전자산업이 공해 발생 요인이 거의 없으므로 전자공단을 경북 구미에 지었다. 이에 따라 구미는 한국내쇼날이 컬러TV를 최초로 조립 생산하고(1974) 삼성전자와 금성사가 텔레비전 국산화에 성공한(1977) 한국 전자산업 발전의 발상지가 됐다.
   
   울산 제1공단 건설이 일단락된 뒤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기간(1966 ~1970)의 핵심 사업은 울산석유화학단지 건설이었다. 정부는 1967년 울산정유공장 인근 1130만5800㎡(약 342만평)를 부지로 정한 뒤 토지를 구입해 전기, 공업용수, 도로, 통신시설의 인프라시설을 깔면서 공장 부지를 분양받을 사업주를 모집했다. 그들이 할 일은 단지 자신이 직접 운영할 공장을 짓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사업주는 공장 가동을 시작한 뒤 땅값을 5년에 걸쳐 분할상환할 수 있었고 전기와 공업용수를 시장가격보다 싸게 이용했다. 정부의 굳건한 ‘경제 발전 우선’ 정책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정부가 나랏돈으로 비상용 발전소와 공단 시설의 수리, 보수를 전담하는 공장을 짓는 등의 강력한 지원을 한 덕택에 울산석유화학공단은 1968년 3월 착공해 1972년 10월 준공할 수 있었고 운영 첫해부터 흑자를 기록했다. 한국이 신발, 가발, 섬유를 만드는 저마진의 경공업국가에서 중화학공업국가로 발돋움하는 순간이었다.
   
   
▲ 울산대교 주탑 위에서 바라본 울산항 전경. 이곳을 중심으로 울산 제1공단과 울산석유화학단지가 조성됐다. photo 뉴시스

   현재의 산업단지 실태
   
   2000년대 초 정부는 판교신도시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는 현재의 판교테크노밸리에 해당하는 66만㎡(20만평) 부지의 IT 기업 클러스터 조성이 포함됐다. 이 발표는 그 자리에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시민단체와 여론의 뭇매를 맞아 한동안 온 나라가 시끌시끌했다. 강남발 집값 폭등으로 주택이 부족한 상황에서 ‘제2의 강남’이라고 불렸던 금싸라기 땅 판교에 사무실 빌딩을 짓는 것은 가당치 않다는 주문이었다. 여론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한 판교테크노밸리 개발은 직주근접의 자족기능을 갖춰 공전의 대히트를 기록했다.
   
   대박을 터뜨린 판교테크노밸리 사업을 목도한 전국의 지자체는 일자리와 인구를 늘리겠다는 희망을 안고 너도나도 ‘○○테크노밸리’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산업단지의 대규모 미분양 사태가 발생했다. 산업입지정보센터에 따르면 전국의 산업단지는 1206개나 되지만 입주 기업을 모두 채운 곳은 서울 3곳과 제주 6곳에 불과하다. 인구 50만 이상 도시의 시장이나 도지사가 인허가권을 쥔 ‘일반산업단지’의 미분양 면적은 3억8208만6482㎡나 된다. 서울 면적(6억502만㎡)의 절반이 넘는 규모다. 웬만한 농촌의 간선도로변에서 흔하게 눈에 띄는 ‘농공단지’의 미분양 면적은 포함되지 않은 수치다.
   
   미분양 산업단지가 이처럼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미분양 산업단지의 폭증은 선출직인 지자체장들이 선거공약을 지킨다는 미명하에 정치적 치적을 쌓으려고 너도나도 개발했기 때문이다. 기업을 유치하기에는 인센티브도 부족했다. 현행 법률에서는 기업체가 산업단지에 입주할 때 법인세, 취득세, 재산세의 감면을 받으려면 수도권 과밀억제권역에 있는 법인이 과밀억제권역 밖으로 이전할 때만 가능하다. 과밀억제권역 밖 산업단지에서 신규 설립하는 공장, 법인은 혜택을 못 받는다는 뜻이다. 정부의 경직된 자세가 캐나다 정부, 도요타시가 민간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보여준 정책적 유연성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미분양 산업단지 활용해 경제활성화 꾀해야
   
   지금 전국적으로 미분양 산단은 넘쳐난다. 지역의 산업 수요를 감안하지 않은 탓이다. 경기 침체 때문에 휴업하거나 폐업한 면적을 고려한다면 그 규모는 더욱 크다. 최근 불거진 한국과 일본의 갈등으로 인해 소재산업 육성은 시급한 동시에 장기 과제가 되었다. 국내 소재산업을 키우는 데 미분양 산업단지를 활용한 연관 산업의 클러스터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자체에 위치한 각 산업의 밸류 체인과 전후방 산업 효과를 파악한 뒤 부족한 부분을 보충할 수 있도록 유관 기업의 산단 입주를 유도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LG화학은 지난 7월 25일 구미시와 ‘구미형 일자리’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구미시가 공장 용지 6만여㎡를 공짜로 빌려주고 보조금과 세제혜택을 제공하는 대신 LG화학은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짓고 직원을 채용하는 조건이다. 군산시는 새만금산업단지의 입주율을 높이기 위해 사업주의 고용규모와 투자금액에 따라 공단 임대료를 최대 100%까지 감면해주겠다고 제안했다. 1960년대 울산공단을 개발할 때처럼 적극적으로 일하는 지자체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각 지자체는 미분양 산단을 활용해 기업을 유치하고 일자리와 세수를 창출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중앙 정부에 대한 지원 요청은 그 다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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