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급등주는 급락주와 같은 말입니다. 이런 데 손대시려면 주식하지 마세요. 만약 지금 급등주에 손대시고 있다면 무조건 망하실 겁니다. 투자를 멈추세요. 투자 원금도 줄이세요. 이것이 주식시장에서 돈을 덜 잃는 방법입니다.”

“개인이 주식시장에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를 묻자 한봉호씨가 꺼낸 답이다. 한씨는 “최근 한국 시장은 개인이 돈을 벌 수 있는 구조가 절대 아니다”라며 “이런 시장에서는 쉬어갈 수 있는 것도 주식 투자의 기술이고 지혜”라고 했다.

증권사 관계자들과 주식 좀 한다는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마하세븐’이란 별칭으로 더 유명한 한봉호씨. 그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주식시장에 등장한 최고의 스캘핑(scalping·1~2분 단위로 하루에 수십~수백 번 주식을 거래하는 초단기 투자) 고수 중 한 명으로도 유명하다. 마하세븐이라는 필명답게 스캘핑과 데이트레이딩(day trading·통상 하루 동안의 가격 변동에 베팅하는 투자) 등 단기 투자에 관한 한 최고의 기술을 갖고 있다는 게 증권가의 평가다.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매매 판단과 결단력 등 단기 투자에 최적화된 그의 투자는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각 증권사들이 개최한 투자대회를 휩쓴 원동력이 됐다. 키움증권, 미래에셋증권 등 증권사들이 개최한 투자대회에서 1위만 10여차례, 2~3위까지 더하면 입상 경력이 숨이 찰 만큼 화려하다. 그래서일까. 한때 증권가에서는 한봉호의 수익률을 두고 ‘1만%가 넘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떠돌기도 했다. 인터넷 매체들과 경제신문들은 ‘그가 종잣돈 100만원을 70억원으로 불렸다’ ‘100억원은 족히 벌었을 것’이라는 소문을 기사화하기도 했다.

만화가 허영만씨가 자신의 실제 주식 투자 이야기를 그린 만화에 한봉호씨를 등장시켰다. ⓒphoto 가디언 출판사 블로그
만화가 허영만씨가 자신의 실제 주식 투자 이야기를 그린 만화에 한봉호씨를 등장시켰다. ⓒphoto 가디언 출판사 블로그

단타 투자의 달인 마하세븐

단기 투자의 달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씨는 사실 피 말리는 초 단위 투자인 스캘핑과 데이트레이딩 세계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기업과 산업, 시장을 면밀히 분석한 후 ‘기다림’이 필수인 가치투자 영역에서도 자신만의 투자 기법을 선보이며 상당한 성과를 거두어왔다.

이런 한봉호씨의 이름이 최근 투자자들에게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사실 투자자들만이 아니다. 일반인들의 입에까지 그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만화가 허영만씨가 그를 세상에 다시 소환했기 때문이다.

허영만씨는 지난해 새로운 소재의 만화를 그리겠다며 주식 투자에 실제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실제 투자 이야기를 ‘허영만의 3천만원’이라는 제목의 만화로 온라인(웹툰)에 연재하기 시작했고, 이를 엮어 책으로도 출판했다.

그리고 올해, 허영만씨는 기존 3000만원이던 투자금을 배로 늘린 종잣돈 6000만원으로 자신의 두 번째 실전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이 두 번째 실전 투자 이야기 역시 현재 ‘허영만의 6000만원’이란 제목의 웹툰으로 연재되고 있다. 특히 지난 8월 15일에는 이 웹툰 연재의 첫 번째 에피소드를 엮은 ‘허영만의 6000만원 1권’이 책으로도 나왔다.

‘허영만의 6000만원 1권’의 주인공이 바로 ‘여의도 타짜’로 그려진 한봉호씨다. 허영만씨가 아예 책 표지에 ‘허영만, 주식고수에게 묻다-한봉호’라는 문구를 큼지막하게 넣었을 정도다. 수많은 투자고수들 중에서도 한봉호씨를 가장 먼저 자신의 주식 투자 이야기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한봉호씨는 주식 투자만 하고 있는 게 아니다. 2018년부터는 교육자로도 변신했다. 광운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과 주식투자트레이딩 전공 책임교수를 맡아 투자론을 가르치면서 시장을 연구하고 있다.

엉망이었던 1999년 첫 주식 투자

최근 서울 강북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그의 삶과 20년째 이어오고 있는 투자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20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자신이 주식투자가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는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우연’과 ‘오기’, 그리고 ‘어쩌다 보니’ 지금껏 주식투자가란 이름으로 살아온 것일 뿐이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 또래가 대표적인 IMF세대입니다. 그런 시절에도 잘되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 20대 상당수가 취업이며 결혼이며 뭐든 참 힘들었습니다. 저도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었지요. 그런데 우리 경제가 IMF 관리 체제가 되고 1~2년쯤 지나니까 신문이나 경제 뉴스들에서 ‘주가가 뛰었다’ ‘주가지수가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연일 쏟아져 나왔습니다. 사실 그때 처음으로 주식이라는 것에 관심을 가졌던 거예요.”

당시 주식에 처음 눈길을 주긴 했지만, 바로 투자의 바다에 뛰어든 것도 아니다. 그는 “동생이 먼저 주식을 해보겠다고 나섰다”며 “동생이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면 아마도 제가 주식할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며 웃었다.

“요즘 증권사들은 거래수수료를 아예 안 받는 곳도 있지만, 당시만 해도 증권사들의 거래수수료가 상당히 비쌌습니다. 거래 금액 대비 세금이 0.3%인데 증권사가 거래 때마다 떼가는 수수료가 거래총액의 1%나 됐습니다. 그러니 최소 1.3% 이상 수익이 나야만 밑지지 않는 거지요. 그런데 이게 어렵습니다. 당시 투자자들 사이에 유행한 게 단기 트레이딩이었어요. 그때 개인들 사이에서 ‘(주식을) 가지고만 있으면 손해 본다’는 말이 주식 투자의 정석으로 통할 정도였어요.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니 아무것도 모르는 주식 초보 동생도 당연히 샀다 팔았다를 반복했죠.”

동생의 투자 결과는 뻔했다. 한씨는 “수익은 고사하고 동생의 단기 매매 몇 번에 증권사가 빼간 수수료만 며칠 사이 투자금의 10% 이상이었다”며 “주식 초보가 단기 매매로 수익을 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고, 수수료까지 부담하니 계좌에 남는 돈조차 없어 결국 손해를 봤다”고 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다 그는 오기가 생겼다고 한다. “최소한 동생보다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그때 처음 주식을 해보자고 결심했다”고 했다. 이게 1999년 11월이다. 100만원을 들고 증권사를 찾아가 계좌를 만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첫 투자는 실망스러웠다. 동생보다는 잘할 것이라고 뛰어들었지만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장, 기업, 산업, 매매 기법 등 주식 투자에 대한 지식이 사실상 전무했던 때였다. 수익보다는 손실을 알리는 마이너스 숫자들이 그의 계좌를 시퍼렇게 물들였다.

인생 바꾼 ‘혼란과 불편함에 투자’

그는 ‘무엇이 문제인지’를 수없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투자에 대해 주변에서 조언을 구하거나 도움을 받을 만한 사람도 없었다. 오직 혼자서 문제를 찾기 위해 고민했다. 그러던 중 무언가가 머리를 강타했다. 그는 “투자를 처음 시작할 때 절박함이 커서 그랬는지 ‘마음이 편한 투자’를 했었다”며 말을 이었다.

“다른 사람들, 또 신문과 경제 뉴스에서 ‘좋다’고 떠들 때 그런 주식들만 골라 샀던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고 신문과 경제 뉴스까지 오로지 호평 일색일 때가 사실 주가는 고점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주변에서 좋다고 하니 이걸 사기만 하면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왠지 모르게 이런 주식을 사면 마음이 편했습니다. 어쩌면 이런 마음속 편안함이, 돈을 벌 수 있다는 탐욕의 또 다른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이때부터 주식과 시장을 조금씩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오히려 “혼란과 불편함에 투자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인간의 심리라는 게 혼란스럽고 불편하면 손이 가지 않습니다. 주식도 똑같습니다. 시장이 혼란스럽고, 악재가 터져 불편하고 불안하면 대개의 사람들은 주식을 사지 않습니다. 있는 주식도 팔게 되지요. 마음이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HTS·홈트레이딩시스템의) 매수 버튼을 누르려다가 이런 뉴스가 나오면 포기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사람들과 언론이 좋다고 하는 주식을 사고팔다가 번번이 손실이 났으니, 그럼 이렇게 불편하고 혼란스러운 주식에 투자해보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런 불편하고 혼란스러운 주식 투자가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마음을 굳게 먹고 매수 버튼을 누르려 해도 사려는 주식, 또 사려는 시점에 나오는 뉴스와 불안감 가득한 주변 이야기에 망설여졌던 게 사실이었다. 그는 “불편한 주식, 혼란스러운 주식을 발굴해 의식적으로 사고, 마음이 편해질 때 바로 파는 연습을 많이 했다”며 “의식적으로 혼란스러운 거래를 하다 보니 위험을 빠르게 인식하게 됐고 이를 회피하는 리스크 관리 노하우가 조금씩 쌓여갔던 것 같다”고 했다.

수익을 진짜 내 돈으로 만들어라

당시의 한봉호식 ‘불편하고 혼란스러운 주식 투자’는 마음의 불안과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거래 속도는 빨라야 했고, 주식 보유 시간은 짧아질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회전율이 높아지는, 말 그대로 단타로 불리는 전형적인 단기 매매를 할 수밖에 없었다. 또 매수 후 주가가 오르면 미련 없이 뒤돌아보지 않고 바로 매도해 계좌에 수익을 확보하는 그만의 투자 원칙도 이때 시작했다.

그는 오를 수 있는 주식임에도 특별한 이유 없이 주가가 하락하는 주식들, 또 향후 거래량이 증가할 수 있는 주식을 찾아 매수했다. 이렇게 산 주식의 주가가 조금이라도 반등해 목표 수익률에 도달하면 미련 없이 빠르게 팔았고, 수익은 고스란히 계좌에 쌓아두는 그만의 투자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주가가 떨어지는 종목도 주가 하락에 따른 반동으로 매수세가 몰려 거래량이 많아질 때가 나타납니다. 이때 주가의 변동성이 매우 커지지요. 이렇게 커지는 주가 변동성을 이용해 빠르게 사고팔고, 또 짧게 보유하다 보니 누가 가르쳐준 게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단타’로 불리는 단기 매매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는 이런 식의 투자가 정말 통할지, 또 자신에게 맞는 방법일지 투자를 시작할 때만 해도 잘 몰랐다고 했다. “1999년과 2000년대 초만에도 주식 투자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어쨌든 투자를 마친 후 계좌를 확인해보면 잃기만 했던 이전과 달리 정말 계좌에 돈이 쌓이고 있었습니다. 이런 투자로 돈을 못 벌었다면 회전율 높은 단타 매매는 아마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제 경우 실제 돈을 버는 것이 확인됐기 때문에 단타 매매를 계속하게 됐던 거지요.”

빠르고 잦은 단타 매매의 높은 위험을 부담한 대가로 확보한 수익은 또 다른 주식 투자에 모두 쏟아붓지 않았다. 수익의 상당 부분을 안전자산으로 이전시켜 위험을 낮췄고, 동시에 온전한 자기 수익으로 만든 것이다. 누가 가르쳐준 것이 아니지만,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언젠가부터 이 같은 자신만의 투자금 관리 노하우까지 스스로 조금씩 정립한 것이다.

그는 “주식으로 많은 돈을 벌 수 있겠지만, 그렇게 번 돈이 영원히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힘들어진다”며 “‘투자금을 키워 더 많은 돈을 벌겠다’는 욕심보다 위험을 감수한 대가로 번 돈이라면 ‘이것을 어떻게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까’를 고민하고 연구하는 게 어쩌면 진짜 투자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2000년 5월 한 달 수익률 900%

한봉호씨는 1999년 11월 주식 투자를 처음 시작해 2000년 3월까지, 초보 투자자 5개월 동안 그가 말한 ‘마음이 편한 투자’를 하며 종잣돈을 까먹었다. 그리고 2000년 4월부터 이전 5개월과는 정반대로 움직이며 ‘불편하고 혼란스러운 시장에 투자’를 시작했다. 이때부터 수익이 본격적으로 쌓이기 시작했다.

그에게 “당시 수익률이 얼마나 됐는지”를 묻자, 그는 “2000년 5월 한 달 동안 수익률 900%였다”고 했다. 투자 초창기 주식판에 혼란과 공포가 커지면 주식을 사고, 시장이 안정을 되찾고 반등했을 때 바로 팔아 수익을 회수하는 방식으로 투자 위험을 낮춘 성과였다. 그는 하루 수익률 2~3%, 심지어 하루 수익률이 1%일지라도 ‘마음이 편해지는 순간(시장에서 ‘좋다’는 언급들이 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달려드는 순간)’ 바로 팔았다.

하루 2~3%의 수익률이라면 ‘별것 아니다’며 폄하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작다면 작게 보일 수도 있는 이런 수익률을 그는 매일 차곡차곡 쌓으며 한 달 50% 이상의 수익을 만들어냈다. 투자 경력이 쌓이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렇게 쌓은 그의 연간 수익률 규모 역시 매년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2000년대 중반부터 증권사들이 개최하는 투자대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대회 때마다 수백%의 수익률로 1위 등 상위권을 휩쓸며 증권사 관계자들과 개인투자자들 사이 한봉호의 존재감이 강하게 부각됐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중반 개인투자자들 중에는 ‘마하세븐(한봉호 별칭) 투자 따라하기’에 나서는 이들도 생겼을 정도였다.

“진짜 투자는 돈을 버는 것보다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그에게 투자 시장에서 키워온 그만의 리스크 관리 노하우를 좀 더 설명해 달라고 했다. 그는 “단타라고 무조건 사고파는 것이 아니다”라며 “매매를 하기 전 손실이 날 수 있는 리스크들부터 가장 먼저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눌림목(상승하던 주가가 떨어졌다 다시 올라가려는 구간)’에서의 거래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주가 움직임이 눌림목에 걸리면 더 오를 수도 있지만, 반대로 더 빠질 수도 있습니다. 수익과 손실이 공존하는 공간이지요. 눌림목에서 매수 시점을 노려 더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도 하지만, 제 경우 반대로 손실을 보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을 먼저 갖습니다. 그러니 이런 구간에서는 더 돈을 벌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잃지 않는, 위험 관리부터 신경 쓰게 되는 것이지요.”

점점 더 어려워지는 한국의 가치투자

한씨는 “한 번의 투자로 많은 돈을 벌 수도 있지만, 거꾸로 한 번의 투자로 많은 것을 잃을 수도 있다”며 “문제는 한 번에 무너지게 되면 그 누구라도 투자 심리를 회복할 수 없다는 점”이라고 했다. 그는 수익이든 손실이든, 경험 많은 투자자든 초보 투자자든 투자 시장에서는 소위 ‘한 방’이라고 말하는 것을 늘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세상에 한 방에 모든 걸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며 “수익도 조금씩 조금씩 쌓아가야 자기 것이 되는 것이고, 손실을 봐야 한다면 이 역시 조금씩 분산시킬 줄 알아야 만회할 수 있는 기회도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리스크 관리라는 것이다.

스캘핑과 데이트레이딩으로 유명해진 그이지만 다른 형태의 투자에도 거부감이 없다고 했다. 실제 2004년부터는 가치투자에도 도전했다고 한다. “제 성향은 단기 매매에 적합한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좋은 기업이라며 한번 사놓고 잊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투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04년 시장이 좋았는데, 문득 ‘이렇게 좋은 시장에서 왜 나는 이런 노가다(끊임없는 매매)를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이때 저도 워런 버핏처럼 해보자는 생각에 투자금 일부를 저평가된 기업을 찾아 그곳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가치투자는 투자법과 분석법, 또 시장과 기업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한국이 아닌 미국 시장의 특성에 맞춰 정립된 것”이라며 “이런 이유로 한국 시장에서 가치투자는 결코 쉽지 않다”고 했다.

“가치투자가 뿌리를 내리려면 ‘시장이 꾸준히 성장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미국 시장은 이 전제에 부합하지요. 몇 년간 정체되기도 하지만, 세계 시장을 이끌며 꾸준히 성장해온 역사가 이를 보여줍니다. ‘다우존스’와 ‘나스닥’ 등 미국의 주요 주가지수의 성장 사이클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장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산업이 부흥하고, 그 산업을 이끄는 기업들이 시장 사이클에 맞춰 제 가치를 인정받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한국 시장은 성장은 하지만 정체기가 너무나 길게 이어지고, 또 자주 반복됩니다. 새로운 성장산업의 등장이 쉽지 않고, 그러다 보니 저평가된 기업을 찾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이지요.”

투자에 앞서 자기 성향부터 파악해라

초보 주식투자자인 만화가 허영만씨에게 투자 조언을 해주고 있는 그에게 “일반 개인투자자들이 투자 전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자 “초보 투자자라면 매매기법 공부나 기업·시장·산업 분석 공부보다 먼저 자신이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부터 냉정하게 알아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투자자의 성향에 따라 투자 기법과 시장 대응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종종 개인투자자들을 살펴보면 ‘나는 가치투자를 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끊임없이 주식을 사고파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산 기업이 제 가치를 인정받기도 전에 주식을 사고팔면서 증권사에 수수료 수익만 안겨주는 분들이지요. 반대로 ‘나는 매매에 자신이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사야 할 타이밍과 팔아야 할 타이밍조차 제대로 못 잡는 분들이 계세요. 매수 타이밍을 놓쳐 안타까워하거나 심지어 손절매조차 못해 손실을 키우는 분들입니다.”

그는 자신의 성향조차 모르는 투자자일수록 변화무쌍한 시장에서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수익은커녕 손실만 키울 개연성이 높다는 뜻이다. “주식을 샀는데 심장이 떨려 며칠 못 갖고 있을 것 같다면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말하는 가치투자를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분들은 단기 투자 성향이 강합니다. 반대로 한번 샀는데 마음이 편하고, 기다림이 행복하다면 장기투자에 부담이 없는 분들입니다.”

세상에 대한 관심과 자기 절제

그는 이런 성향 파악이 됐다면 그때 ‘거래의 기술’을 익히고 ‘분석 지식’을 쌓으면 된다고 했다. “차트를 읽고, 차트에 나타나는 순간순간의 변화와 거래량, 외국인과 기관의 움직임 등 수급을 배우는 건 사실 어렵지 않습니다. 재무제표와 산업, 시장 동향을 공부하는 것도 노력에 따라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 투자에서 더 중요한 것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해하고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조차 이해하지 못하는데, 세상의 한 부분인 주식시장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는 건 그 자체가 모순입니다.”

그는 ‘기술적 매매’가 주식 투자의 기본인 것은 맞지만 전부는 아니라고 했다.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고, 지금 왜 이것이 이슈로 부각했는지를 알아야 투자할 주식(기업)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투자 대상을 선택하고 난 후에 매수·매도 타이밍을 잡는 거래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개인투자자라면 욕심을 억누를 수 있는 ‘자기 절제’도 투자의 필수 요소”라며 “기계적 냉정함을 무기로 투자하는 외국인이나 기관과 달리 사실 주식시장에 뛰어든 개인들에게 이것이 가장 어려운 투자의 기술”이라고 했다. “사람이기 때문에 주가가 올라가면 더 벌고 싶고, 투자금을 더 늘려 더 많은 수익을 내고 싶어하는 게 당연한 겁니다. 또 주가가 떨어지면 불안하고 악재가 나오면 팔고 싶은 것도 마찬가지지요. 하지만 이런 유혹과 불안을 제어할 수 있어야 시장을 냉정하게 볼 수 있습니다. 시장을 냉정하게 볼 수 있을 만큼 마음을 다스릴 수 있어야만 비로소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지요.”

돈 버는 투자 vs 잃지 않는 투자

그는 “오래전부터 개인들도 주식 공부를 정말 많이 한다”며 “하지만 공부의 방향이 모두 돈을 버는 방법으로만 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모습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돈을 지키는 방법, 잃지 않는 투자에 대해서는 공부도 안 하고 잘 모르는 게 사실입니다. 진짜 투자의 시작은 이것부터 공부해야 하는데도 말이지요.”

그는 “돈을 지키고, 잃지 않는 투자에 대해 공부가 안 돼 있다면 주식 투자를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며 “주식 투자를 하지 않는 것 역시 개인에게는 좋은 투자”라고 했다. 한씨는 인터뷰 내내 “개인이 주식시장에서 살아남기는 정말 어렵다”며 “안 하는 게 가장 좋고, 굳이 해야겠다면 전부 손실을 본다 해도 사는 데 지장이 없을 최소한의 원금만으로 도전해야 한다”는 점을 수차례 강조했다.

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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