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주력 수출 상품인 D램과 낸드플래시 등 삼성 메모리반도체. ⓒphoto 뉴시스
한국의 주력 수출 상품인 D램과 낸드플래시 등 삼성 메모리반도체. ⓒphoto 뉴시스

국내외 곳곳에서 한국 경제를 짓누르는 악재들이 연초부터 쏟아져나오며 2019년 한국 경제가 험난한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한국 경제를 지탱해왔던 기업들의 상황마저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삼성전자와 LG화학, SK하이닉스, 이마트, 네이버, 한국전력 등 주요 기업들의 실적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동시다발적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주요 기업들의 실적 추락 현상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특정 그룹, 특정 업종에 국한된 몇몇 주요 기업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수출과 내수기업, 제조업은 물론 IT·서비스업, 소비재 산업과 전력, 항공 등 국가 기간산업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우리 경제 대부분의 분야에서 전방위적인 실적 추락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경제성장률(전망치 포함)이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빠르고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한국 경제의 하방 압력을 방어해오던 주요 기업들의 실적 추락은 우리 경제 체력에 대한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이 되고 있다.

지난해 말 올해 초부터 경고 나와

사실 2019년 한국 주요 기업들의 실적 악화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 걸쳐 국내외 경제 관련 국제기구와 각종 연구소, 글로벌 투자은행과 신용평가사들을 중심으로 ‘올해 한국 기업들의 실적이 기대보다 실망스러울 수 있다’는 전망이 조금씩 흘러나왔던 게 사실이다. 거대한 돈이 움직이고 있는 미국과 유럽, 홍콩 등 주요 자본·투자시장에서도 우리 주요 기업들의 실적 악화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일찍부터 존재해왔다. 한국 기업들이 실적 호황을 누렸던 2017년, 또 바로 직전 해인 2018년 등 지난 몇 년 동안의 상황과 비교해 2019년 한국 시장에 상장된 주요 기업들 상당수가 실적 면에서 고전할 가능성이 크다는 싸늘한 분석이 이미 나와 있었다는 이야기다.

한국 기업들을 향한 이 같은 분석과 전망이 국내외 시장에서 제기됐던 이유는 다양하다. 당장 2020년 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대중국 무역 공세가 시간이 갈수록 강도를 더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관세와 지적재산권, 투자 및 금융 자본을 앞세운 미국의 전방위적 무역 공세는 사실상 거의 전 산업에 걸쳐 악성 재고 문제로 신음하고 있는 중국을 고민스럽게 만들고 있다. 중국 경제의 가파른 하강 가능성을 어느 때보다 높여놓은 것이다. 특히 미국과의 무역분쟁으로 인해 2019년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6%에도 미치지 못할 수 있다는 공포가 지난해 말부터 본격화됐다.

미국의 무역 공세에 맞선 중국의 맞대응 역시 한국 경제와 기업들의 불안을 키우기에 충분한 요소다. 당장 미국 달러 대비 위안화 약세 용인 외에 마땅한 카드가 없는 중국이기에 환율 급등 압박이 일찌감치 불거졌다. 또 중국 경제와 시장의 전반적 침체와 더불어, 중국의 맞대응에 따른 미국 주요 산업과 기업들의 부담 또한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시장에 팽배했다. 우리 기업들의 연간 총 수출 비중 중 중국이 약 27%, 미국 역시 12%에 이르는 상황이다. 미·중 무역분쟁은 어떤 형태로든 한국 기업들에 상당한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 기업들의 고전 근거는 미·중 무역분쟁과 환율 문제만이 아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초호황을 이어오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주요 기업들과 IT 부품소재 기업들의 캐시카우 역할을 해온 세계 반도체 시장의 급격한 냉각도 우려를 키웠다. 여기에 스마트폰 시장의 경쟁 심화 역시 한국 기업들의 수익성 악화 요인으로 지목됐다. 예측이 쉽지 않을 만큼 크게 요동치고 있는 원유 가격, 특히 미국의 이란산 원유 수출입 전면 봉쇄 사태는 반도체·IT산업과 함께 한국 경제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석유화학업계를 고민스럽게 만들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원료 도입망 축소에 따른 구매 협상력이 약화된 상태에서, 환율 급등까지 겹치면 원유 등 원·부자재 도입 부담이 예상보다 더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요인들이 2019년 집중되면 계획했던 지출보다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할 수밖에 없게 돼 기업들의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난해 말부터 본격화됐던 것이다.

이런 분석과 전망은 수출주도형 경제구조가 뚜렷하고, 특히 반도체 및 IT기기는 물론 석유화학과 백색가전, 철강재 등 주력 제품의 ‘중국 생산·미국 판매 전략’을 구사해온 한국 주요 기업들을 향한 일종의 경고였던 셈이다.

최대 기업 삼성전자 실적 반토막

문제는 한국 주요 기업들의 실제 실적이 이런 전망보다 더 안 좋은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점이다. 주요기업들의 실적이 도대체 얼마나 악화된 것일까. 한국 최대 기업인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부터 보자. 지난 8월 14일 발표된 삼성전자의 2019년 2분기 매출은 56조1271억400만원(연결기준, 이하 동일)이다. 지난해 2분기 58조4826억5800만원보다 약 4.03%, 2조3555억5400만원이 줄었다. 올해 상반기(1~6월) 매출도 108조5126억5000만원으로 지난해 상반기(119조463억7200만원)보다 8.85%, 돈으로는 무려 10조5337억2200만원이 줄어들었다.

삼성전자의 경우 사실 매출의 축소보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 등 수익성 악화 문제가 더 심각하다. 올해 2분기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6조5970억6500만원으로, 지난해 2분기 14조8690억3500만원보다 55.63% 이상 줄었다. 돈으로 따져 8조2719억7000만원이 쪼그라든 것이다. 분석 기간을 늘려 올해 상반기 6개월 동안의 영업이익 실태를 살펴보면 더 심각하다.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12조8303억4700만원으로, 2018년 상반기 영업이익(30조5112억500만원)보다 무려 57.95%나 줄어들었다. 금액으로 따져 17조6808억5800만원이나 적다.

순이익 상황도 다르지 않다. 올해 2분기 순이익은 5조1805억7600만원으로, 지난해 2분기 11조434억1200만원과 비교하면 53.1% 가까이 감소했다. 상반기 순이익도 10조2241억6100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순이익(22조7319억5600만원)과 비교해 불과 1년 만에 55.02% 이상 줄었다. 사라진 순이익의 규모가 올해 상반기 삼성전자 순이익보다 무려 2조3000억원 많은 12조5077억9500만원에 이른다. 2018년과 비교해 2019년이, 2019년 1분기보다 2019년 2분기가 더 안 좋다는 점이 실적 데이터를 통해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SK하이닉스 전년 동기 대비 88% 폭락

주식시장 시가총액 2위이자 삼성전자와 함께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강자인 SK하이닉스의 실적은 시장에서 ‘폭락 사태’로 불릴 만큼 심각하다. SK하이닉스 역시 지난 8월 14일 2분기(4~6월)와 반기(1~6월) 실적을 발표했다. 2분기 SK하이닉스는 6조4522억100만원의 매출을 기록했는데, 이것은 10조3705억700만원의 매출을 올린 지난해 2분기와 비교하면 37.8%나 추락한 것이다. 3조9183억600만원짜리 반도체 시장 하나가 날아간 셈이다. 올해 상반기와 지난해 상반기 같은 기간 매출을 비교해도 우울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19조901억9700만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올해 상반기는 13조2248억5600만원의 매출에 머물렀다. 매출이 30.72%나 꼬꾸라졌다.

그런데 이런 매출 추락보다 수익성 폭락이 불안을 더욱 키우고 있다. 2018년 2분기 5조5739억1800만원이던 영업이익이 올해 2분기 6376억3000만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딱 1년 만에 영업이익이 무려 88.56% 이상, 돈으로 따져 -4조9362억8800만원이라는 기록적인 사태를 맞은 것이다. 바로 직전 분기인 올 1분기 영업이익 1조3664억9000만원과 비교해도 불과 3개월 만에 영업이익이 53.34%나 폭락해버렸다.

기간을 늘려 지난해 상반기와 올해 상반기 수익을 비교해봐도 심각하다. 지난해 상반기 6개월간 9조9412억5500만원이던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은 올 상반기 2조41억2000만원으로 무려 79.84%나 날아갔다.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이 빠르게 악화됐다고는 하지만, 삼성전자와 해외 경쟁사들과 비교해 SK하이닉스의 실적 폭락은 공포로 표현될 정도로 심각하다. 시장지배력은 물론 수익성 훼손 현상이 깊고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다.

우리 기업들이 생산한 수출 제품을 선적하고 있는 부산 신선대 컨테이너 부두. ⓒphoto 뉴시스
우리 기업들이 생산한 수출 제품을 선적하고 있는 부산 신선대 컨테이너 부두. ⓒphoto 뉴시스

LG화학 등 석유화학 기업 실적도 반토막

반도체 산업과 함께 한국 경제를 이끌고 있는 석유화학 분야 기업들, 특히 차세대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는 2차전지 관련 기업들의 실적도 우려스러운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 시가총액 6위로, 한국 최대 2차전지 기업인 LG화학을 보자. 2018년 2분기 7조518억5300만원이던 매출이 1년 만인 올해 2분기에는 7조1774억4400만원으로 조금 늘었다. 3개월 전인 1분기 6조6390억7300만원과 비교해도 매출은 증가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영업이익과 순이익 등 수익성은 날개가 부러진 새가 수직으로 추락하듯 빠르고 큰 폭으로 폭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8년 2분기 7032억9100만원에 이르던 LG화학의 영업이익은 1년 만인 올해 2분기 2675억1500만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동기 대비 영업이익이 62%나 폭락한 것이다. 폭락 추세를 좀 더 세밀히 살피기 위해 비교 기간을 확대해보자. 올 상반기 LG화학의 영업이익은 5428억8200만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1조3541억3200만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무려 60%나 폭락했다.

순이익 폭락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해 2분기 4933억9500만원에 이르던 순이익이 올해 2분기에는 838억2300만원에 불과했다. 순이익이 무려 83.01%나 하락한 것이다. 지난해와 올해 상반기를 비교해도 1조461억3900만원에 이르던 순이익이 올해 상반기 2957억6100만원으로 무려 71.73%나 추락한 사실이 지난 8월 14일 확인됐다.

재계 5위 롯데그룹 최대 계열사인 롯데케미컬도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매출도 줄고 있지만, 영업이익과 순이익의 감소 역시 심각하다. 지난해 2분기 7013억2031만원이던 영업이익이 올 2분기에는 3461억4878만원으로 50.63%나 폭락해 반토막이 났다. 6418억3444만원인 올해 상반기 6개월간의 영업이익은 더 심각하다. 지난해 같은 기간 1조3633억4384만원에서 무려 53% 가까이 폭락한 것이다.

순이익도 지난해 2분기 5790억1049만원이던 것이, 올 2분기에는 2712억7206만원으로 53.15%나 감소했다. 상반기 순이익 역시 지난해 1조1221억9511만원에서 올해는 불과 4950억468만원으로 56% 가까이 폭락했다.

상장사 순이익 평균 42.9% 추락

사실상 국가가 주인인 대표적 기간산업 한국전력의 상황은 익히 알려진 대로 처참하다. 아예 대규모 적자상태다. 올해 상반기 영업적자가 1조원에 육박하는 9285억3900만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영업적자가 1140억원 가까이 증가했다. 순적자도 심각하다. 올해 상반기에만 벌써 1조1733억3400만원의 순적자 상태에 빠져 있다.

그런데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있는 영업적자와 순적자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부채비율의 증가추세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흑자였던 2017년까지 140%대이던 한전의 부채비율이 1조1740억원 이상 순적자로 추락한 2018년 160%를 넘어섰다. 이것이 올해 1분기에는 172.6%까지 치솟았다. 실적 악화가 기업의 건전성과 체력마저 훼손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들뿐이 아니다. 한국 최대 유통기업 이마트는 1993년 등장 후 올해 2분기 처음으로 적자가 확인됐다. 네이버 역시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상당한 폭으로 감소했고 셀트리온도 마찬가지다. 포스코, NC소프트, 현대제철, LG디스플레이, CJ제일제당 등 상당수 주요 기업들의 실적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거래소가 지난 8월 19일 12월 결산 법인을 기준으로 코스피시장에 상장된 기업 574곳(신규법인·분할합병·감사의견 비적정·금융사 등 68곳 제외)의 올해 1분기 경영실적(연결 재무제표를 기준)을 분석한 결과가 있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같은 기간 기준으로 분석 대상 574곳의 영업이익이 평균 37.09%나 감소했다. 상장사들의 순이익 추락의 크기는 이보다 더해 무려 42.95%나 내려앉았다.

전문가들 “기업들 실적 개선 쉽지 않아”

문제는 “기업들의 이런 실적 추락 현상이 앞으로도 쉽게 개선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자산운용 CIO(최고투자책임자) 출신 한동대 김학주 ICT창업학부 교수는 “미국을 포함해 주요 경제국의 소비부진과 설비생산 축소가 반복되고 있다”며 “여기에 세계 반도체 산업의 냉각이 실제 생산과 설비를 운영하는 제조 중심 국가의 경제 하강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무역분쟁 중인 미국과 중국이 소비 촉진을 위해 금리와 재정확대 정책을 펼 가능성이 크지만, 부채 수위가 이미 높아진 상황에서 의미 있는 수준의 소비 확대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소비시장에 제품을 팔아야 하는 한국 기업들의 상황이 당분간은 좋아지기 힘들 개연성이 크다”고 했다.

삼성증권 오현석 리서치센터장은 “7월 우리 기업들의 수출 데이터가 마이너스인 상황에서 8월 1일부터 20일까지의 기업 수출 데이터 역시 -13%로 나타나고 있다”며 “이 추세로 예측하면 3분기에도 우리 기업들의 실적을 좋게 전망하기 힘든 게 사실”이라고 했다. 오 센터장은 “반도체 시장 급랭과 중국의 수입량 축소가 한국 주요 기업들에 가장 큰 타격이 됐다”며 “이 두 요인이 올 연말까지 우리 기업들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는 내년은 돼야 기업들의 실적 개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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