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토크와 출력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소인 엔진과 기어, 회전축을 구현한 그래픽. ⓒphoto 연합
자동차의 토크와 출력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소인 엔진과 기어, 회전축을 구현한 그래픽. ⓒphoto 연합

독일산 프리미엄 브랜드 차를 타본 사람은 안다. 배기량 2000㏄에 불과한 가솔린 차량에서 느껴지는 순간가속력을. 요즘이야 국산 브랜드 차도 다운사이징을 한 ‘터보 가솔린엔진’이 장착돼 순간가속력이 그에 못지않아졌지만, 불과 5년 전만 해도 국산 2000㏄ 가솔린 차량의 순간가속력은 해외 유명 자동차 전문 프로그램에서 웃음거리가 될 정도였다. 몇 년 전 영국에서 방영한 자동차 예능 프로그램인 ‘톱 기어(Top Gear)’에서는 독일산 차량의 제로백을 소개하며 한국산 브랜드의 차를 언급한 바 있다. 프로그램 진행자는 “(독일산 차량의) 제로백이 한국 ○○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된다”며 웃었다.

최대토크 발휘되는 분당 회전수의 중요성

‘제로백’이란 차가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나타내는 말이다. 세계적 수퍼카를 구별하는 기준 중 하나가 바로 제로백 수치다. 수퍼카 중에는 제로백이 3초도 되지 않는 차량도 적지 않고, 제로백이 1.9초인 차량도 있다. 최근 나오는 국산 스포츠세단도 제로백이 5초, 2000㏄ 터보엔진을 단 세단은 8초가 되지 않는다. 제로백이 짧은 차량을 탈수록 운전자들은 흔히 쓰는 표현처럼 ‘밟으면 밟는 대로’ 나간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런 차량은 일반적으로 초반 가속력이나 고속 구간에서 치고 나가는 힘이 좋다.

차의 가속력과 힘은 토크나 출력이란 수치와 연관이 있다. 자동차 제원표에서 찾아볼 수 있는 토크(torque)는 쉽게 말해 자동차 바퀴 또는 회전축이 한 바퀴 돌아가는 데 쓰이는 힘을 말한다. 토크가 좋다는 것은 자동차가 지면을 박차고 나가는 힘이 좋다는 의미로 설명이 가능하다. 엔진에 따라 발생하는 최대의 토크(회전력)는 ㎏·m 단위로 나타내며 통상적으로 토크를 발생할 때의 1분당 엔진회전수(rpm)를 함께 표시한다.

자동차 출력은 마력(馬力)으로 표기된다. 마력은 말 그대로 말의 힘으로 1마력은 한 마리의 말이 1초 동안 75㎏의 추를 1m가량 들어올릴 수 있는 힘이다. 자동차 제원표에서 마력은 최대마력이 얼마인지를 보여주는데, 1분당 엔진회전수가 몇 회전을 하면 몇 마력의 최고 출력을 얻을 수 있는가를 나타낸다.

하지만 단순히 마력과 토크 두 수치가 높다고 해서 자동차의 가속력과 고속주행에서의 힘이 좋은 것은 아니다. 엔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을 미션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전달하느냐도 중요하다. 이 조합을 파워트레인이라고도 부른다. 여기에 차체의 무게도 중요하다. 자동차 전문가가 아닌 일반 소비자들이 차량을 구입할 때 이런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자동차 초반 순간가속력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이 제원표를 보고 이를 대충이나마 알 수 있는 방법은 최대토크나 최대마력이 얼마만큼의 엔진회전수에서 뿜어져 나오냐를 보는 것이다. 초반 가속의 경우 얼마나 낮은 회전구간에서 최대토크가 발휘되느냐와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국산 브랜드의 한 준중형차는 제원표에 최대토크 15.7㎏·m/4500rpm이라고 적혀 있다. 즉 이 차는 운전자가 rpm이 4500에 도달할 때까지 가속페달을 밟아야만 차가 순간가속력을 낸다고 느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같은 국산 제조사에서 출시한 고급 스포츠세단의 경우 제원표에 토크를 36.0㎏·m/1400~4000rpm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이것은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밟기 시작한 순간부터 차바퀴 회전축이 최대의 힘을 발휘해 치고 나간다는 의미다. 당연히 제로백도 짧아지고 운전자가 느끼는 가속력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반대로 평상시 운전할 때 잘 사용하지 않는 회전수 구간인 4500rpm을 넘어서 최대토크나 마력이 발휘된다면 그것은 무의미한 수치나 다름없다.

따라서 자동차 제조사 입장에선 낮은 구간에서부터 최대토크를 발휘하게끔 하는 엔진과 미션을 개발하는 것이 곧 기술의 진보를 의미한다. 2년 전 출시된 국산 한 스포츠세단은 2000㏄ 터보엔진을 개발할 때 터보차저의 터빈 휠 사이즈를 52㎜에서 47㎜로 줄여 36.0㎏·m의 최대토크가 발휘되는 구간을 2000rpm에서 1400rpm으로 앞당겼다. 최대토크가 나오는 엔진회전수를 600rpm이나 줄이는 데는 엄청난 기술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수치에만 비중을 두고 엔진이나 미션을 개발했다가는 내구성에 심각한 손상이 생길 수도 있다. 내구성을 갖추면서도 고성능을 발휘하는 파워트레인(엔진과 기어의 조합) 개발은 그래서 쉽지 않다. 당연히 이런 성능이 나오는 차는 가격도 비쌀 수밖에 없다.

독일산 세단이나 미국산 머슬카, 일본의 프리미엄 브랜드 등이 국산차와 가격 차이가 적지 않은 원인 중 하나도 이런 기술의 차이 때문이었다. 이런 브랜드에 비해 국내 제조사들이 제로백을 5초 이내로 끊은 것은 2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내구성·고성능 겸비한 파워트레인 개발해야

제로백은 자동차 제조사의 기술력을 나타내는 하나의 척도이기 때문에 제조사들은 이를 홍보의 주요 포인트로 사용하기도 한다. 일례로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내놓은 스포츠세단 G70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경쟁 차종인 BMW 3시리즈와 비교했을 때 G70은 엔진 사양에 따라 거의 동등한 성능을 보여준다. 발진 가속을 극대화하는 런치 컨트롤 기능을 활성화했을 때 0→100㎞/h 가속 시간(제로백)은 G70 2.0L 터보 모델 5.9초, 3.3L 트윈터보 모델 4.7초를 기록했다. 이는 신형 3시리즈의 동급 트림과 유사한 수준의 출력 성능으로, 자동차를 만드는 기술력이 높은 수준까지 올랐다는 걸 뜻한다.”

자동차를 평가할 때 안전성이나 밸런스 등 다양한 기준들이 있지만, 국내 제조사들이 빠르게 기술의 진보를 이뤄내고 있는 점은 소비자들 입장에선 긍정적인 요소다.

물론 엔진과 미션의 성능이 제로백을 결정하는 유일무이한 요소는 아니다. 연료에 따른 차이도 있다. 일반적으로 가솔린엔진은 마력이 큰 반면 토크는 낮고, 디젤엔진은 마력이 낮은 반면에 토크는 비교적 높일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동일한 조건에서 가솔린엔진과 디젤엔진의 자동차가 출발한다면 디젤차는 낮은 회전구간에서 최대토크가 높기 때문에 잘 출발하여 먼저 치고 나간다. 대형트럭이나 특수차량 등에 디젤엔진이 사용되는 것도 초반 치고 나가는 힘이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정 속도를 넘어가면 디젤엔진 차량은 결국 마력이 높은 가솔린 자동차에 추월당하게 된다.

요즘은 차를 구입하는 소비자들이 포털에서 자동차 제원을 검색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포털에 나와 있는 자동차 제원표에는 최대토크, 최대출력만 표기되어 있고 어느 회전구간에서 최대토크와 최대출력이 발휘되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 보다 신중하게 차를 구입하고자 하는 소비자라면 직접 자동차 회사가 만든 제원표를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이 좋다. 다만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소비자들에게 이 수치는 무의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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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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