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인터내셔널이 소유한 ‘대우’ 상표권. ⓒphoto 포스코인터내셔널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소유한 ‘대우’ 상표권. ⓒphoto 포스코인터내셔널

‘위니아대우’로 사명을 바꾼 대우전자에서 해외영업을 담당하는 한 관계자는 최근 해외 가전바이어로부터 황당한 연락을 받았다. ‘DAEWOO(대우)’ 상표가 붙은 소형가전 제품을 대량으로 구매하고자 하는데, 해당 제품이 당신네가 생산한 제품이 맞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제품은 대우전자가 생산한 제품이 아닌 국내 다른 중소기업이 중국산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제품에 ‘대우’ 상표를 붙인 뒤 판매하는 제품이었다.

비록 ‘대우’ 상표를 붙이고 있지만, 엄밀히 말해 ‘대우전자(위니아대우)’에서 생산한 제품은 아니었다. 이 관계자는 “대우와 오랫동안 거래한 가전바이어조차 대우 브랜드를 헷갈려할 정도인데, 일반 소비자들은 어떻겠느냐”며 “이런 문의가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곳곳에서 들어온다”고 했다.

‘대우’ 브랜드 범람으로 가전시장에 일대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세계경영’을 표방했던 김우중 회장이 만든 대우 브랜드는 1999년 대우그룹 해체 이후에도 여전히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도 대우건설을 비롯 대우조선해양, 미래에셋대우(증권), 위니아대우(전자), 자일대우(버스), 타타대우(트럭), 대우전자부품(전장) 등이 여전히 대우 브랜드를 유지 중이다.

대우전자의 후신이자 국내 3위 가전사인 위니아대우의 경우 과거 김우중 회장의 세계경영 시절에 구축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멕시코, 이란 등 중남미와 중동 가전시장에서 선전 중이다. 지난해 매출 1조4300억원을 기록했는데, 해외매출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0% 이상이었다. 대우전자가 대우그룹에서 떨어져 나가 다른 기업에 피인수된 후에도 ‘대우일렉트로닉스’ ‘동부대우전자’ ‘위니아대우’ 등으로 꾸준히 ‘대우’ 브랜드를 유지하는 데는 이런 까닭이 있다.

하지만 요즘 위니아대우(대우전자의 후신) 관계자들은 ‘대우’ 브랜드를 부착한 비슷한 가전제품들이 국내외 시장에 난립하고 있어 울상을 짓고 있다. 일례로, 국내 최대 온라인 쇼핑몰인 ‘쿠팡’에서 ‘대우 TV’나 ‘대우 세탁기’ ‘대우 에어컨’ 등을 검색하면, 각기 다른 업체에서 동일한 ‘대우’ 브랜드를 붙여서 판매하는 상품들이 줄줄이 검색된다.

시장에 난립한 ‘대우’ 가전

TV의 경우 위니아대우를 비롯 대우루컴즈·대우디스플레이란 3개 업체에서 출시한 제품들이 각각 떠오르고, 냉장고와 세탁기·에어컨의 경우 위니아대우와 대우루컴즈, 선풍기와 청소기는 대우어플라이언스, 공기청정기는 대우글로벌, 전화기는 대우텔레폰이란 업체에서 판매하는 제품까지 떠오른다. 심지어 과거 대우전자가 동부그룹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폐기한 이름인 ‘동부대우전자(현 위니아대우)’라는 브랜드까지 중구난방 튀어나오는 실정이다.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는 상품군(群)도 비슷한데, ‘대우’라는 상표를 공유하고 있어, 어느 회사 제품이 과거 ‘탱크주의’ 가전으로 유명했던 대우전자 제품인지 구별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특히 대우어플라이언스라는 가전업체의 경우 과거 대우그룹 시절의 큼직한 대문자 영문로고를 그대로 사용한다. ‘루컴즈(대우루컴즈)’ ‘DW디스플레이(대우디스플레이)’ 등으로 그나마 차별화되는 다른 회사와 달리 구별이 더욱 어렵다. 이에 상대 회사의 제품을 대우전자서비스(현 위니아SLS)에 의뢰했다가 퇴짜를 맞고 헛걸음치는 웃지 못할 촌극마저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옛 대우전자의 ‘탱크주의’ 광고. ⓒphoto 구글
옛 대우전자의 ‘탱크주의’ 광고. ⓒphoto 구글

‘대우’ 상표권 가진 포스코인터내셔널

왜 이런 혼란이 벌어지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해 이들 업체는 모두 정당한 상표권을 가지고 ‘대우’ 브랜드를 부착해 사용하는 합법적인 업체들이다. 이 같은 촌극은 ‘대우’ 브랜드의 상표권을 가진 포스코가 대우 브랜드 사용을 복수 가전업체들에 허용하는 등 상표권 관리를 사실상 방치하면서다. 1999년 해체된 대우그룹의 브랜드 상표권은 대우실업의 후신인 ‘포스코인터내셔널’이 갖고 있다.

대우실업은 대우그룹의 모태이자 해외무역을 담당하던 종합상사로, 대우개발과 합병해 ㈜대우로 있었다. 1999년 대우그룹 해체 직후에는 ‘대우인터내셔널’로 바꿨다가 2010년 포스코그룹에 편입된 후 ‘포스코대우’로 이름을 바꿨다. 올해 초 ‘포스코인터내셔널’로 다시 간판을 바꿔 달며 ‘대우’ 간판을 정식으로 떼어냈다.

‘대우’ 간판을 떼어낸 후에도 여전히 ‘대우’ 상표권을 보유한 포스코인터내셔널은 해외에서 대우 브랜드를 사용하는 경우 일정액의 브랜드 사용료를 받고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 측은 160여개국에 3500여건의 상표를 출원·등록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다만 옛 대우 계열사의 경우 상표권을 공동소유한다고 간주해 국내에 한해 대우 브랜드 사용을 할 수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의 한 관계자는 “상표 계약 체결상 연간 발생하는 브랜드 사용료 수입 규모는 공개하기 곤란하다”고 했다.

이에 과거 대우전자 모니터사업부를 모태로 대우통신 컴퓨터사업부(대우컴퓨터)를 합병한 ‘대우루컴즈’, 워크아웃 와중의 대우일렉트로닉스(현 위니아대우) 영상사업부가 분사한 ‘대우디스플레이’, 대우통신 통신기기사업부(대우텔레텍)의 후신인 ‘대우글로벌’ 등은 대우 브랜드를 쓰고 있다. ‘대우어플라이언스’의 경우 대우 출신 경영자가 브랜드 사용료를 지불하고 대우 브랜드로 영업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대우 브랜드를 사용하는 복수의 업체들이 가전시장에 난립하면서 피해를 호소하는 곳은 ‘대우’ 간판을 붙인 가전업체 중 해외사업 규모가 가장 큰 위니아대우다. 해외매출만 1조원이 넘는 위니아대우의 경우 연간 수십억원의 ‘대우’ 브랜드 사용료를 포스코인터내셔널 측에 지불하고 해외에서 ‘대우’ 제품을 팔아왔다. 하지만 해외바이어들이 ‘대우’ 상표를 부착한 타사 제품과 혼동하는 일이 영업현장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요즘은 “포스코인터내셔널 측이 대우 브랜드를 중국 메이디(Midea)와 터키의 베스텔에 넘기려 한다”는 소문마저 돌고 있어 위니아대우 측은 바짝 긴장 중이다. 메이디와 베스텔은 각각 중국과 터키의 1위 생활가전 업체로, 과거 대우전자 인수를 타진하기도 했다. 지난 2015년에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가전박람회(IFA)에서 프랑스의 한 신생업체가 ‘대우’ 브랜드를 달고 청소기와 토스터 등을 전시한 사례도 있었다.

‘대우’ 브랜드가 가전시장에 범람해 가치가 하락하면서 지난해 이란 최대 가전기업 ‘엔텍합’을 제치고 동부그룹(현 DB그룹)으로부터 대우전자를 인수한 대유그룹 측은 ‘대우’ 상표를 아예 떼어내는 방안까지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대유그룹과 대우전자는 지난 5월 각각 ‘대유위니아그룹’과 ‘위니아대우’로 사명을 바꿨다. 대유위니아그룹의 한 관계자는 “오는 2020년 6월에 포스코인터내셔널 측과 대우 상표권 사용계약이 만료된다”며 “그 이후에 어찌할지는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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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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