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DLF·DLS 상품 피해 국정조사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투자 피해자가 절규하고 있다. ⓒphoto 남강호 조선일보 기자
지난 9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DLF·DLS 상품 피해 국정조사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투자 피해자가 절규하고 있다. ⓒphoto 남강호 조선일보 기자

“금융위, 금감원이라고 은행보다 잘한 것 하나 없다. 금융상품이나 은행 영업에 대한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책임이 크다. 가족들에게도 비밀로 하고 있는데,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이젠 어디에 도움을 청해야 할지 모르겠다.”

해외금리 연계 파생금융상품인 DLF(Derivative Linked Fund)에 가입했다 한순간에 1억5000만원을 잃을 위기에 처한 50대 주부 A씨의 푸념이다. DLF는 DLS(Derivative Linked Securities)를 모아 담은 펀드를 일컫는다. 여기서 DLS는 환율이나 금리 등이 특정 기간 동안 정해진 조건을 충족할 경우 약속한 수익률을 보장하지만 정해진 조건을 벗어날 경우 원금을 손실할 수 있도록 설계된 금융상품이다.

A씨가 DLF에 투자한 시기는 지난해 9월 말이다. 자신이 가입한 금융상품 만기가 끝나 이를 찾으러 갔다가 은행원의 권유로 가입했다고 한다. A씨 말에 따르면, 당시 은행원은 단순히 “안전한 독일 국채와 연계한 상품인 만큼 원금손실은 발생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상품 설명은 단 10분 만에 끝났고 관련 서류 작성은 A씨의 도장을 넘겨받은 은행원에 의해 모두 이뤄졌다. 1년이 지난 지금 A씨가 가입한 DLF 수익률은 마이너스 50~60%를 웃돌아 원금이 반토막 난 상황이다.

A씨와 비슷한 경위로 투자를 했던 또 다른 50대 주부 B씨는 최근에 관련 서류를 떼다 자신의 투자성향이 공격형으로 평가됐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은행이 자의적으로 투자성향을 조정, 상품에 가입시킨 것이다. B씨가 DLF에 투자한 금액은 1억원으로 내년 전세금으로 사용할 자금이었다. B씨는 “결국 손실이 나든 말든 상품을 다수에게 속성으로 판매해 수수료를 떼먹으려 한 것”이라며 “아직도 상품 속성이 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소비자보호책 없는 ‘규제 완화’ 문제

금감원에 따르면, 올 8월 7일 기준 A씨 등이 가입한 주요 해외금리 연계 DLF의 총 발행규모는 8224억원이다. 여기서 발행잔액은 7950억원으로 총 3242명이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9월 25일 기준 발행잔액은 6723억원으로 줄어든 상황. 손실확정 금액은 669억원이며, 현재 금리가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될 시 5784억원이 손실 구간에 진입하면서 3513억원의 추가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피해가 커지면서 DLF 투자 피해자들 사이에선 은행도 문제지만 금융당국 책임이 더 크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금융당국이 이를 미연에 방지하고 제도 보완에 나설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국정감사에서도 이와 관련한 정무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의 지적은 끊이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점은 금융당국이 사실상 DLF 판매를 제도적으로 장려하면서도 이와 관련한 보완책은 마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DLF는 공모펀드가 아닌 사모펀드 형태로 판매됐다. 사모펀드는 공모펀드와 달리 금융당국의 관리·감독을 덜 받고 투자자 유치도 용이하다. 2015년 정부가 발의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사모펀드 운용과 진입 규제 등이 완화되고, 사모펀드 적격 투자자요건은 ‘5억원 이상 투자하는 개인·법인’에서 ‘1억원 이상 투자자’로 완화됐기 때문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원장은 “은행들이 금융당국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 이 제도를 활용, 공모펀드로 내놓을 DLF를 사모펀드로 쪼개 발행하고 수수료는 수수료대로 챙긴 것”이라며 “금융당국은 사모펀드 시장을 활성화하겠다고 하다가 사실상 이번 사태의 단초를 제공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금감원의 DLF 중간 검사결과에 따르면 8월 기준 주요 DLF 상품이 총 210개인데 전체 발행잔액이 7950억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발행 사모펀드 하나당 규모는 평균 40억원도 안 된다. 사모펀드 투자금액이 최소 1억원 이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금융사들이 사모펀드 모집한도 인원인 49명도 안 채우고 비슷한 내용의 사모펀드를 시리즈로 발행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당시 금융당국이 규제완화를 실시하면서 내놓은 소비자보호책이라고는 ‘금융투자상품 판매 관련 고령투자자 보호 방안’ 등이 전부였다.

사태 조짐 있었지만 방관만

일각에선 금융당국이 이번 DLF사태를 미리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금감원이 실시한 ‘파생결합증권 판매에 대한 미스터리 쇼핑 실시 결과’에 따르면, 이번 DLF 사태의 중심에 선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은 각각 ‘저조’와 ‘미흡’ 등급을 받은 바 있다. 당시 후속 조치가 곧바로 이뤄졌다면 피해는 이렇게 크지 않았을 것이란 이야기다.

금융권에선 국민은행이 하나은행·우리은행과는 반대되는 내용의 DLF 상품 발행으로 수익을 올린 것을 두고, 이미 시장은 예견하고 있었는데 금융당국은 왜 못 막았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우리 쪽에도 비슷한 내용의 상품 제안이 왔었지만 원금손실 폭이 워낙 커서 거절했었다. 이후 시장 전망 등을 고려해, 금리가 오르면 수익이 나는 반대되는 내용의 3년 만기 DLF 상품을 올 6월 판매했었다. 다만 글로벌 시장 변동 폭이 워낙 크다 보니 1개월 만에 판매를 중단했다”고 귀띔했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지난 10월 4일과 8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소비자 피해 구제에 총력을 다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개선방안 마련에 힘쓰겠다”는 내용의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얼마나 꼼꼼히 해결할지는 미지수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금융당국은 문제 원인을 명확히 짚고 이에 대한 제재, 대책방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키코사태 때도 그렇고 문제의식만 가진 채 귀책 사유를 뭘로 해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소비자와 금융사 양측이 5 대 5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라고 지적했다.

은행법 시행령에 따르면, 예금자 등 은행 이용자의 보호에 지장을 가져오거나 금융시장 등의 안정성을 해치는 경우 해당 업무와 관련한 운영을 제한하거나 시정할 수 있다. 하지만 여지껏 금융당국이 이 행정력을 실행한 적은 없다.

금융당국이 늘고 있는 금융사들의 백투백헤지(back-to-back hedge) 관행을 미연에 규제했어야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은행이 DLF를 판매할 수 있도록 상품을 지원하는 대부분의 증권사는 백투백헤지를 취한다. 백투백헤지는 파생금융상품과 동일한 조건으로 외국계 IB 등 다른 곳과 거래 계약을 맺어, 상품의 기초자산 가격변동에 따른 자산 손실위험을 거래 상대방에게 이전하는 방식이다.

김선동 자유한국당 의원실에 따르면 자체적으로 자산 손실위험을 관리하는 자체헤지 대비 백투백헤지 상품 수, 발행잔액은 최근 3년간 꾸준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기준 DLS 백투백헤지 상품 수는 1938개(41.3%), 발행잔액은 19조6000억원(56.2%)을 기록했다가 2019년 6월 기준 각각 2719개(50.6%), 24조원(59.4%)으로 늘었다.

문제는 백투백헤지를 설정할 때 그 특성상 증권사, 은행 등은 상품 위험성이나 원금손실 여부를 신경 쓸 이유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당연히 금융소비자의 피해는 커질 수밖에 없다. 금감원에 따르면 이번 파생금융상품 발행 시 일부 증권사는 가격적정성을 검토하지 않거나, 리스크관리부서의 원금손실 의견을 무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김선동 의원은 “백투백헤지를 하는 사모유형 상품 중 은행 창구에서 판매하는 행위에 대해선 금융당국의 분명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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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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