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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제
[2579호] 2019.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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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신약 실패’ 제약업계를 위한 변명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코오롱생명과학의 골관절염 치료제 인보사케이주의 품목 허가를 취소한 것이 지난 5월의 일이다. 8월에는 신라젠의 항암바이러스 펙사벡이 미국 독립 데이터모니터링위원회(DMC)로부터 임상 3상 중단을 권고받고 조기 종료했다. 9월에는 헬릭스미스의 당뇨병성신경변증 치료 후보물질 엔젠시스(VM202-DPN)의 임상 3상 결과 발표가 연기됐다.
   
   곧바로 제약·바이오업계를 향한 곱지 않은 목소리가 쏟아졌다. 펙사벡과 엔젠시스가 임상 3상에서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 때문인지 임상 3상을 두고 ‘통곡의 벽’이라고 이름 붙인 언론사도 있었다. ‘위기의 K바이오’ ‘우리는 왜 못 넘나’ ‘임상 중단 암 치료제에 세금 88억’ 같은 제목의 기사에서 묻는 것은 하나였다. “왜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는 실패만 반복하는가.”
   
   질문에 대한 답부터 하자면 실패를 반복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는 점이다. 신약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신약을 만들기 위해서는 후보물질부터 탐색해야 한다. 타깃에 맞는 최적화된 후보물질을 찾아내고 난 뒤에는 전임상시험(Pre-clinical trial) 단계를 거친다. 토끼나 쥐 같은 동물을 대상으로 후보물질이 독성을 가지고 있는지, 유효한지 검증하는 단계다. 후보물질을 찾고 전임상시험 단계를 거치는 것만 해도 몇 년이 걸린다.
   
   먹는 항암제 리포락셀(DHP107)을 개발해 대화제약에 기술을 이전하는 데 성공한 정혜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의 설명에 따라 신약 개발 과정을 살펴보자. 리포락셀은 주사로 맞던 세포독성항암제 파클리탁셀을 먹을 수 있게 개량한 개량신약이다. 정혜선 책임연구원은 1999년부터 리포락셀 개발 사업을 시작했다. 약의 제형(劑形)을 바꾸거나 성분을 섞어 만든 새로운 약을 ‘개량신약’이라고 하는데 완전히 새로운 약을 만들어내는 ‘혁신신약’보다는 개발 비용과 시간이 적게 드는 편이다.
   
   1999년 당시 산업자원부의 지원을 받아 시작한 리포락셀 개발 사업이 기술적으로 완성된 것은 2005년에 이르러서다. 물에 녹지 않고 흡수율이 낮은 파클리탁셀을 먹을 수 있게 바꾸는 것에만 수년이 걸린 셈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먹는 파클리탁셀은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독성과 안전성을 먼저 검증했다. 정맥주사로 맞지 않아도 효능이 있는지, 독성은 나타나지 않는지 점검하는 전임상단계다. 그러고 나서야 2008년부터 비로소 임상시험에 들어갔다.
   
   
   9.6%, ‘바늘구멍’ 신약 개발
   
   보통 임상시험은 1상과 2상, 3상으로 나뉜다. 임상 1상에서는 수십 명의 일반인을 대상으로 약의 독성을 점검한다. 안전성을 확인하는 절차이기 때문에 약의 치료 효과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이 과정에만 최소 6개월에서 1년이 걸린다. 임상시험은 각 단계마다 일일이 임상시험계획(IND) 승인을 받아야 진행할 수 있다. 1상을 통과해 다시 2상에 돌입하면 수백 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시험물질의 약효, 적정용량과 부작용을 확인하고 치료 효과를 탐색한다. 이때 제형과 용법, 주의사항 등을 점검한다. 보통 1~2년이 걸린다. 그러고 나서야 3상이 진행되는데, 3상은 보통 대규모로 진행한다. 수천 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안전성과 유효성을 점검하고 대조군을 비교하는 작업을 하기 때문에 규모도 크고, 비용도 많이 들며 시간도 오래 걸린다. 2년에서 4년 정도 걸리는 것이 보통인데 3상을 통과해야 비로소 신약허가신청(NDA/BDA)을 할 수 있다.
   
   글로벌 혁신신약을 하나 개발하는 데 10년에서 15년이 걸린다는 얘기는 과장된 것이 아니다. 기간만 오래 걸리는 것이 아니다. 각 단계를 통과할 확률은 매우 낮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통계를 보면 한 후보물질이 임상1상에 들어가 신약허가신청을 통과할 확률은 9.6%에 불과하다. 각 단계별 성공률도 낮다. 1상 성공률이 63.2%인데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2상 성공률은 30.7%에 그친다. 어렵게 2상을 통과하더라도 58.1%만이 3상을 통과한다. 그중에서도 판매 허가가 떨어지는 것은 85.3%다.
   
   신약 후보물질 하나가 신약으로 개발되기 매우 어렵다는 얘기다. 후보물질이 하나 개발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3상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심지어 3상을 통과한 이후에도 4상이라고 불리는 시판 후 부작용 등을 점검하는 과정이 있다. 그렇게 어려운 과정을 뚫고 시판된다고 하더라도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비슷한 혹은 동일한 성분의 약들과 경쟁하여 병원에 자리를 잡아야만 비로소 성공한 신약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 적은 확률 때문에 신약을 개발하는 데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 신약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완전히 새로운 혁신신약의 경우 ‘바이오신약’과 ‘합성신약’이 있다. 세포·호르몬 등을 이용해 만드는 것이 바이오신약이고 물질을 추출해 화학적으로 합성해 만드는 것이 합성신약이다. 그간 제약·바이오 시장에서는 합성신약이 주로 개발·생산되고 있었지만 점차 바이오신약으로 개발 트렌드가 바뀌어가고 있다. 생물에서 유래한 물질로 만드는 만큼 바이오신약은 희귀·난치병이나 만성질환에도 적절한 약을 개발할 수 있고 독성이 낮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든 개발하는 데 드는 시간은 10년이 넘게 최소 1000억원 이상의 개발 비용이 든다.
   
   적은 확률에도 제약회사가 막대한 비용을 쏟아가며 신약을 개발하는 이유는 어마어마한 부가가치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의약품인 제약사 애브비의 자가면역치료제 ‘휴미라(Humira)’를 예로 들어보자. 2002년 출시된 이 블록버스터(blockbuster) 의약품의 지난해 매출액은 199억달러, 우리 돈으로 23조6000억원이 넘는다. 보통 연 매출액 10억달러(약 1조1800억원)를 넘는 의약품을 ‘블록버스터 의약품’이라고 부르는데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블록버스터의 흔적을 남길 만한 의약품도 개발이 된 적이 없다.
   
   

   신약 개발 20년, 이제 걸음마 뗐다
   
   애초에 한국에서 신약이 처음 개발된 것은 1999년, 꼭 20년 전의 일이다. SK케미칼의 위암 치료제 선플라주가 처음이었다. 20년 동안 개발된 국산 신약은 30개다. 그 가운데는 2017년 출시된 코오롱생명과학의 골관절염 치료제 인보사케이주처럼 식약처에 의해 허가 취소가 내려진 의약품도 있다. 선플라주도 실적을 거의 올리지 못하고 2009년 자진 철수했다. 28번째로 개발됐던 한미약품의 폐암 표적항암제 올리타정은 시판 과정에서 경쟁 의약품이 먼저 시장에 풀리고 급여를 인정받게 되면서 경쟁력을 잃어버려 제약사 측에서 판매 중단을 결정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한국은 제약·바이오 산업에서는 경쟁력이 약한 후발주자다. 지난해 FDA에서 판매 승인받은 신약이 59건이지만, 한국에서 식약처가 승인한 신약은 CJ헬스케어의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케이캡정이 유일하다.
   
   규모에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차이가 난다. 2016년을 기준으로 전 세계 의약품 시장 규모는 1조1046억달러(약 1308조원)이다. 한국의 의약품 시장은 21조원으로 글로벌 시장의 1.6%밖에 되지 않는다.
   
   왜 한국에서 신약이 개발되지 않는가에 대한 답은 여기에서 나타난다. 규모의 문제 때문이다. 여재천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전무가 정리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액 1조160억원을 올린 한미약품이 R&D에 투자한 금액은 1929억원으로 매출액의 19.0%에 달한다. 셀트리온·종근당·대웅제약·GC녹십자 등 5개 제약회사의 R&D 투자액 비중은 매출액의 평균 16.7%로 1732억원에 달하지만 사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대단한 규모가 아니다. 로슈·노바티스·화이자·바이엘·존슨앤존슨 같은 5개 글로벌 제약회사들이 지난해 쏟은 R&D 투자액만 평균 10조643억원이다.
   
   규모의 문제는 그간 국산 신약 개발이 더딘 속도를 보여왔던 것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마냥 실패를 거듭하는 것이 용납되는 것은 아니다. 국산 신약 개발이 ‘실패했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바이오주(株)는 물론 전체 주식시장이 출렁이기 때문이다. 통계적으로 보면 흔한 ‘임상 중단’이나 ‘임상 발표 연기’ 같은 일이 제약회사 밖 주식시장에서는 치명적으로 보인다.
   
   이를 테면 신라젠의 펙사벡이 임상시험 중단을 권고받은 것은 펙사벡 물질 자체의 효능 때문이 아니다. 임상시험 중에 대상이 되는 환자들이 제대로 통제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원래는 간암 치료 경험이 없는 환자를 대상으로 펙사벡을 투여받는 환자와 기존의 치료제를 투여받는 환자를 비교해 효능을 알아보려고 했다. 그러나 환자를 모집하는 중간에 다른 약물을 투여받은 환자들이 계속 생겨나면서 모집한 환자군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했던 것이다. 이 같은 일은 임상시험에서는 꽤 흔한 일이다. 환자를 모집하고 유지하는 일은 임상시험의 ‘경험’이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다.
   
   이런 사례는 또 있다. 국내 5번째로 개발됐던 LG생명과학의 항생제 팩티브정은 국산 신약으로는 처음으로 FDA의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에서 흥행 참패를 맛보았다. 문제는 제대로 된 ‘파트너’를 만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미국에서 임상시험을 함께 진행하기로 했던 파트너사가 파산하고 마케팅·영업 분야에서 제대로 된 노하우를 전수받지 못하게 되면서 글로벌 제약사의 경쟁 의약품에 밀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신약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어떻게 임상시험을 성공적으로 전개할 수 있을지 알지 못하고, 만들어놓고도 어떻게 팔 수 있을지 방법을 몰랐던 한국 제약업계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다.
   
   
   제약·바이오 업계의 선순환 구조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이런 시행착오를 두고 “국내 제약업계는 성장통을 겪고 있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이상적인 제약·바이오업계의 선순환 구조를 살펴보자. 후보물질을 탐색하고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보통 학계에서 많이 이뤄진다. 당장 전 세계 매출액 1위인 휴미라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그레고리 윈터 교수를 비롯한 연구진에서 탄생한 기술로 만들어졌다. 그레고리 윈터는 그 공로로 지난해 노벨 화학상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개발된 기술도 곧바로 글로벌 제약회사가 사업화하려 시도하지 않는다. 보통은 바이오벤처 형태의 혁신적인 기업들이 기술을 사업화한다. 이걸 건네받는 것이 제약회사다. 바이오벤처를 M&A하거나 기술이전을 통해 임상시험에 돌입한다. 기술이전을 통해 생긴 자본으로 다시 학계는 연구에, 바이오벤처는 기술 개발에 몰두하는 것이다.
   
   이 선순환 구조는 말 그대로 이상적이기 때문에 대개는 여러 단계에서 외부의 개입이 이뤄진다. 학계와 벤처의 기술 개발 단계에서는 정부와 외부의 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가 보통 “바이오산업을 지원한다”고 얘기할 때에는 매우 기초적인 단계의 기술 개발에 투자한다는 얘기다. 이렇게 보자면 ‘세금이 투입된 신약 개발에 실패한 것이 문제다’라는 언론 보도는 신약 개발 과정 전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잘 알 수 있다.
   
   비슷한 문제는 주식시장과 관련된 것이다. 보통 제약회사들은 주식시장에서 얻은 자본으로 신약 개발의 기반을 마련한다. 이것 자체는 선순환 구조를 매끄럽게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단계다. 그러나 여기에 언론과 증권사, 몇몇 제약회사의 무지와 욕심이 개입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긴다. ‘3상 돌입’이라거나 ‘임상 실패’ 같은 단정적이고 단편적인 표현들은 신약 개발 과정의 낮은 확률을 고려하지 않은 문제다.
   
   보통 ‘파이프라인’이라고 부르는 후보물질 하나에만 기대를 거는 것보다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갖추고 글로벌 파트너십을 쌓아나가고 있는, 말하자면 블록버스터 신약을 출시할 가능성이 높은 제약업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 합리적인 투자 방식이라는 것이 제약·바이오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실제로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서 올해 초 국내 제약기업 100개사를 대상으로 신약 파이프라인(후보물질)에 대해 조사한 결과 개발 중이거나 개발 예정인 신약은 953개로 나타났다. 이미 개발 중인 신약은 573개였다. 주목할 만한 것은 개발 중인 신약 중에는 바이오신약이 260개로 합성신약(225개)보다 수가 많다는 점이다. 글로벌 의약품시장 분석업체 이밸류에이트파마(EvaluatePharma)에 따르면 2016년 당시 전체 신약 개발 시장 중 바이오신약이 차지하는 비중은 14%에 그쳤지만 2020년에는 27%로 확연히 늘어날 전망이다. 다시 말하면 국내 제약업계 역시 이 같은 트렌드를 읽고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실 몇몇 수치를 보면 희망을 가져도 될 법하다. 정부의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신약 기술이전 수출액은 2010년 이후 지난해까지 7조36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들어났다. 15번째 국산 신약인 보령제약의 고혈압치료제 카나브정은 동남아와 중남미를 중심으로 4억4000만달러(약 5200억원)의 수출실적을 올렸다.
   
   다만 이건 말 그대로 ‘씨앗’이다.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을 이전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품 생산력을 높이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되어야 한다. 글로벌 제약사의 힘이 약한 동남아와 중남미 시장이 아니라 북미·유럽 시장에서 꾸준한 매출실적을 올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앞서 이야기한 선순환 구조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일관된 규제과학(Regulatory Science)이 필요하다는 것이 모든 전문가들의 말이다. 신약 파이프라인에서부터 시판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고 통일감 있는 보건당국의 관리와 신약 접근성을 높이고 활발한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게 하는 규제과학의 역할이 세심하게 만들어져야 한다.
   
   지난 10년간의 제약·선박·휴대폰·자동차·반도체·철강 등 주요 산업 수출증가율을 살펴보자. 2008년에 비해 2017년 200% 넘는 증가율을 기록한 산업은 반도체와 제약산업밖에 없다. 그마저도 제약산업의 규모는 여전히 적은 편이다. 전체 글로벌 시장에 비해서도, 한국의 산업 규모에 비해서도 얼마 되지 않는 수치다. 이 산업을 얼마나, 어떻게 키워나갈 것인가가 말 그대로 ‘미래 먹거리’ 문제의 해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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