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증권거래소 직원들이 지난 9월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하 발표 뉴스를 지켜보고 있다. ⓒphoto 뉴시스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 직원들이 지난 9월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하 발표 뉴스를 지켜보고 있다. ⓒphoto 뉴시스

인류는 현재 여지껏 접하지 못했던 초유의 경제환경에 직면해 있다. ‘저금리·저투자·저성장·저물가’의 4저(低)가 그것이다. 이론상 저금리하에서는 투자와 소비가 살아나는 법이다. 그런데 세계적인 초저금리임에도 투자와 소비가 살아나지 않다 보니 성장이 둔화되고 저물가가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금리와 물가, 경제성장률이 사실상 제로(0)에 수렴하는 초저금리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발생한 현상으로 이제는 거의 일상화되어 가고 있다. 현재 금리가 제로 또는 마이너스(-)인 나라는 유럽 주요국과 일본 등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2016년 이후 정책금리를 0%로 유지하고 있고,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예금하면 이자는커녕 보관료를 물리고 있다. 은행은 돈을 사회로 풀어야지 중앙은행에 보내 잠재우지 말라는 뜻이다. 금융인들과 일부 경제학자들은 이를 ‘뉴노멀(New Normal)’이라 부른다. ‘새로운 경제적 기준’이란 뜻이다.

예금하면 보관료 물리는 것이 ‘뉴노멀’

뉴노멀이라는 단어는 ‘저성장·저소득·저수익률·고위험’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투자 기준을 의미하기도 한다. 저수익률임에도 고위험이 따를 수 있다는 투자 위험을 암시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기업들은 투자를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사내유보금만 쌓고 있고, 소비자들 역시 지갑을 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은 뉴노멀이란 용어 대신 ‘신창타이(新常態)’라고 부른다. 새로운 정상 상태라는 뜻이다. 일부에서는 심지어 ‘클리셰(cliché)’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클리셰는 ‘진부한 표현이나 상투적인 말’을 의미하는 프랑스어인데 이제는 표준 단계를 넘어 진부한 이론이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나라도 불황에 접어들어 이제 제로금리를 향해 가고 있다. 우리 매스컴에서는 이를 ‘제로 이코노미 시대’라 부른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던 세계 경제는 최근 들어 저성장이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 IMF는 2019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5번이나 하향 수정 발표했다. IMF는 2018년 7월 ‘2019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9%로 제시했으나, 이후 10월과 올해 1월, 4월, 7월까지 총 네 차례 새로 전망을 낼 때마다 0.2%포인트, 0.2%포인트, 0.2%포인트, 0.1%포인트씩 하향조정했다. 그만큼 세계 경제가 급격히 둔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우리 경제도 이러한 현상에서 예외가 아니어서 활력이 심각하게 둔화되고 있다. IMF는 2019년 한국 경제성장률을 2.6%로 전망했으나 지난 2분기 경제성장률(잠정치)은 1.0%에 그쳤다. 장기불황 경고음이 울리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물가는 올 들어 7개월 연속 0%대 상승률에 그치다 지난 8월에는 드디어 마이너스로 진입했다. 물가가 0.038% 하락한 것이다. 이른바 디플레이션이다. 9월 들어서는 물가 하락폭이 -0.4%로 더 커졌다. 이렇게 저성장과 더불어 저물가가 오래 지속되다 보니 이제는 경기를 극단적으로 얼어붙게 만든다는 디플레이션의 공포가 덮쳐오고 있다.

‘이웃나라 거지 만들기’ 정책

이러한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각국 정부는 ‘사상 최대’라는 무기들을 동원했다. ‘사상 최대 유동성, 사상 최대 재정적자, 사상 최대 부채’로 밀어붙이고 있다. 양적완화는 2008년 11월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경기회복을 위해 꺼내든 비장의 특별카드로, 교과서에 없는 ‘무제한 달러 살포’ 비기(秘技)였다. 중앙은행이 경기를 살리기 위해 금리를 0%까지 내렸음에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자 민간 금융사들이 보유한 국채와 모기지담보부증권(MBS) 등을 사들여 시중에 직접 달러를 살포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

미국의 전대미문 양적완화는 3차까지 이어지며 6년간 약 4조달러가 전 세계에 풀렸다. 미국은 이 과정에서 통화정책뿐 아니라 재정정책도 곁들여 사상 최대의 재정적자를 펼치며 수요를 견인했다. 이 결과는 당연히 사상 최대의 부채를 동반할 수밖에 없었다. 2019년 10월 현재 미국의 실업률은 놀랍게도 사상 최저인 3.6%이다. 거의 완전고용에 근접하고 있다. 돈을 풀고 재정적자를 늘려 미국 경제를 살린 것이다.

이러한 ‘사상 최대 유동성, 사상 최대 재정적자, 사상 최대 부채’는 미국만의 정책이 아니라 중국, EU, 일본 등 G7도 마찬가지로 따라했다. 각국 정부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일단 지르고 보는 것이다.

미국이 제로금리를 운영하며 양적완화(QE)로 유동성을 늘린다는 것은 사실 달러 가치를 떨어뜨리는 행위나 다름없다. 달러의 평가절하를 통해 수출경쟁국들을 힘들게 하는 이른바 ‘이웃나라 거지 만들기(beggar-thy-neighbor)’ 정책이다. 그러자 일본과 EU, 그리고 중국 역시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절박성에 더해 가만히 앉아 미국에 당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라 앞다투어 양적완화에 뛰어들었다. 중국은 정확한 발표를 안 하고 있지만 미국보다도 더 많은 양적완화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로도 경기를 부흥시키지 못하자 현재 일본과 EU는 양적완화를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미국 연준은 2017년부터 양적완화 정책을 줄이기 시작해 2015년 4조5000억달러의 보유자산 가운데 3700억달러 정도의 국채를 매도해왔는데, 지난 8월 통화정책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하면서 그간 시행해오던 양적완화 긴축작업을 중단했다. 향후 추가 금리인하와 더불어 양적완화를 재개하겠다는 의도이다. 미국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벗어나겠다고 단행한 양적완화라는 ‘특단의 조치’가 이제는 일반화되어 ‘뉴노멀’이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세계의 유동성은 사상 최대에 달했으며 앞으로도 더 늘어날 전망이다.

중국 칭다오항의 수출 컨테이너선. ⓒphoto 뉴시스
중국 칭다오항의 수출 컨테이너선. ⓒphoto 뉴시스

미국도 양적완화 재개

현대 사회는 저성장과 저투자, 저물가, 더 나아가 디플레이션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그간 파이가 커졌던 고성장 팽창사회에서 이제는 저성장 사회로 바뀌면서 사회적 갈등이 곳곳에서 분출되고 있다.

사상 최대 가계부채로 인한 소비 감소와 생산성의 획기적 증대로 인한 공급 과잉이 불경기를 심화시키고 있어 세상은 더 이상 성장이 어려운 환경이 되었다. 인공지능 등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류에게 많은 유익도 주겠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의 일자리를 근본적으로 줄이고 있다. 우리는 한번도 도래한 적 없는 낯선 세계와 마주하고 있다.

특히 인구 감소는 저출산과 고령화가 맞물리면서 국가 소멸을 걱정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 2018년 기준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98명이다. 합계출산율 1명 이하라는 수치는 전 세계적으로 한국이 처음이다. 1971년 우리나라의 출생아동 수가 100만명이 넘었는데 이제는 32만명대로 떨어져 매년 태어나는 신생아 수가 50년도 채 안 되어 3분의 1 이하로 감소한 것이다. 이로 인해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빨리 줄어드는 나라가 되었다. 당장 올해부터 사망자가 출생아보다 많아지는 인구 자연감소가 시작되면서 인구절벽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향후 유엔이 예측하는 최장수 국가도 한국이다. 하지만 이러한 최장수 예측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은 것이 우리나라 노인의 삶의 질이 OECD 국가 중 최하위이기 때문이다. 노인 자살률도 가장 높다. 노인 인구의 절반이 인간의 마지막 인격조차 보호하기 힘든 극빈층에 속해 있다. 우리나라는 과거 여성인력을 산업화하여 경제부흥을 이루었듯이 앞으로는 노인 인구를 산업화하여야 이 절박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저출산·고령화와 구조적 장기불황

이렇게 저출산·고령화와 구조적 장기불황이 겹치면서 우리나라는 이제까지 인류가 겪어보지 못했던 엄청난 어려움과 혼란에 직면할 전망이다. 당장 빈집이 늘어나고 많은 학교와 학원들이 사라질 것이고, 종국에는 인구절벽이 부동산 시장을 붕괴시킬 것이다. 노동가능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생산이 줄어들고 세수 또한 감소하여 국가의 재정지출조차 어려워지는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 또한 청장년층이 줄어들면서 나라의 활력이 떨어지고 내수시장의 수축 또한 불가피하다. 이렇게 국력 문제만이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전반적 분야에서 엄혹한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

저금리 사회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일자리를 로봇과 장치산업에 빼앗기기도 한다. 일례로 삼성전자가 2016년 반도체 산업에 13조원을 투자했지만 그로 인해 창출된 일자리는 고작 650명이었다. 이뿐 아니다. 저금리로 인해 이제 은행업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직면해 있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예대마진 금리 차를 주 영업으로 하는 은행은 사양화의 길에 접어들어, 서너 은행이 공동으로 무인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일자리 대량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에서는 디지털 플랫폼에서 소비자가 모든 금융서비스를 이용하는 ‘아마존화와 알리바바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교훈은 약효가 떨어진 지 오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로 유동성이 폭증하자 투기 거래가 급증했다. 2017년 연말 기준 세계 파생상품 시가총액은 무려 544조달러에 달해 세계 총생산액 규모 78조달러, 세계 주식 시장 규모 81조달러, 세계 채권 시장 규모 215조달러보다도 훨씬 더 커졌다. 인간의 탐욕, 특히 월가의 탐욕은 끝을 모른다.

이러한 금융자산과 유동성의 획기적 증대는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가격의 상승을 불러와 세계적인 저성장·저소득 국면임에도 자산가들의 소득과 부를 급격히 늘려주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이로 인한 경제 양극화가 극에 달하고 있다. ‘소득불평등 심화, 부의 편중’ 등이 그것이다. 이제는 상위 1%의 부가 세계 전체 부의 거의 절반에 육박하고 있어 금융자본주의의 폐해가 누적되고 있다. 소득불평등 심화와 부의 편중은 결국 중산층의 붕괴로 이어져 자본주의 존속을 위험하게 할 뿐 아니라 당장 사회 전체의 소비 감소로 이어져 세계 경제는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양극화 문제는 이제 경제적 현상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정치, 외교 등 전 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있는 자와 없는 자, 기득권자와 신규 진입 세력, 세대 간 갈등, 보수와 진보, 자유경제주의와 사회주의 등 계층 간 갈등과 각종 이데올로기 문제로 갈라져 싸우는 게 일반화되었다.

국제관계도 보편적·합리적 질서가 아닌 자국 중심주의가 판치고 있다. 자기 살기 바쁜 것이다. 심지어 일부 정치가들의 독선과 아집이 세계를 예측 불가능한 상황으로 몰고 가고 있다. 이때 튀어나온 것이 미·중 간 무역전쟁이다. 이로 인해 미래에 대한 불가측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무역전쟁은 본격적인 환율전쟁으로 비화할 수도 있고 심각한 패권전쟁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이제는 경제와 정치 그리고 경제와 국제관계를 따로 떼어내어 생각할 수 없는 환경에 이르렀다.

‘유동성 함정’이란 존 케인스가 처음 사용한 용어로 중앙은행이 통화 또는 유동성을 아무리 많이 발행하더라도 소비, 투자 등 실물경제 활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이 금리를 내리고 선진국들과 중국이 양적완화를 통해 유동성을 대폭 늘렸음에도 세계 경기는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한마디로 돈이 돌지 않기 때문이다. 돈이 대기업과 상위 10% 수중으로 들어가 사회로 흐르지 않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의 수익은 투자로 연결되지 않고 사내유보금으로 쌓이고 있으며, 부유층의 소득은 소비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미래에 대한 불가측성의 증가, 즉 투자 리스크의 증대로 기업이 투자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부유층 소비자 입장에서도 디플레이션으로 소비를 지연시키고 있고 서민들 입장에서는 쓸 돈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역사상 초저금리는 기회이자 도전

하지만 경제사에서 보면, 저금리가 인류의 삶에 크게 공헌한 적이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17세기 초 네덜란드였고, 또 다른 한 번은 18세기 영국이었다. 17세기 중상주의 시대 네덜란드는 중앙은행의 모태 격인 암스테르담은행을 개설하여 신용창조와 채권 발행으로 유동성을 대폭 늘려 15%에 달했던 시중금리를 3%까지 끌어내렸다. 덕분에 투자가 활성화됐고 이때 전 세계 무역망을 건설하고 세계 곳곳에 대형 투자가 잇따랐다. 이후 크롬웰의 항해조례로 네덜란드 해안이 봉쇄되자 네덜란드에서 고스란히 영국으로 건너간 유대 무역상과 금융인 덕분에 영국 경제는 불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18세기 영국은 이들 덕분에 시중금리가 2.75%까지 내려갔다. 그로 인해 투자가 활성화되어 산업혁명의 시동을 걸고 이를 세계로 전파할 수 있었다.

이렇듯 저금리 시대에도 이를 활용하면서 세계가 큰 변혁을 이루어냈다. 이번 초저금리 시대도 우리가 여하히 활용하는지에 따라 각국의 승패가 갈릴 것이다. 장치산업 등 큰 투자가 필요한 부문이 도약할 수 있는 호기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재생에너지 산업, 2차전지 산업, 스마트시티 산업 등에 대한 대규모 투자는 에너지 제로요금 시대를 앞당길 수 있다. 비단 에너지 산업만이 아니다. 대규모 투자와 대형 장치산업이 필요한 부문은 모두 초저금리 시대를 호기로 활용할 수 있다.

초저금리의 과잉유동성 시대는 크게 두 가지 가능성을 갖고 있다. 초저금리가 지속되어 인류의 삶에 보탬을 주는 변화가 그 하나라면, 정반대로 인류에 재앙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 어느 날 예상치 못한 돌발변수로 인해 인플레이션의 쓰나미가 몰려와 초인플레이션에 휩싸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라도 현명한 투자를 하면 이를 모두 견뎌낼 수 있지만 사내유보금을 마냥 쌓아둔 기업은 망하기 십상이다.

홍익희 세종대 대우교수·‘월가 이야기’ 저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