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지난 11월 18일 야후재팬과 네이버 자회사인 라인의 경영 통합을 공식 발표했다. ⓒphoto 뉴시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지난 11월 18일 야후재팬과 네이버 자회사인 라인의 경영 통합을 공식 발표했다. ⓒphoto 뉴시스

시간 순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네이버의 자회사인 메신저 서비스 ‘라인(LINE)’에 관심을 보였다는 얘기는 5년 전에 흘러나왔다. 2014년, 소프트뱅크는 라인 측과 접촉해 지분 매입을 논의했다. 당시 라인은 2014년 말 일본 주식시장 상장을 앞두고 있었는데 소프트뱅크가 Pre-IPO 투자(상장을 앞두고 있는 기업의 주식을 조기에 매입)를 제안했다. 비록 성사되진 못했지만 손 회장이 라인을 눈여겨보고 있던 건 분명했다.

잠잠했던 둘의 빅딜설이 다시 불거진 건 올해 10월이었다. 일본 주간지인 ‘주간문춘’에서 지난 10월 4일 단독보도를 냈다. 주간문춘은 시장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일본 내 8000만명의 사용자를 가지고 있고 그중 85%가 매일 사용하는 게 라인이다. 라인의 시가총액은 9300억엔(10조379억원) 미만으로 프리미엄을 더해도 충분히 사정권에 들어간다. 한국 네이버가 라인 주식의 73%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소프트뱅크가 구매하기도 수월하다”고 보도했다. 당시 주간문춘 보도를 라인 측에서는 부정했지만 한 달 뒤 사실로 드러났다.

지난 11월 18일 소프트뱅크의 자회사인 야후재팬과 네이버의 자회사인 라인은 경영 통합 합의서에 정식으로 서명했다. 일본의 주요 포털사이트인 야후재팬과 일본 내 최대 소셜미디어인 라인이 결합했다는 건 한국과 일본 양쪽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같은 날 오후 5시부터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두 회사의 대표는 연단에 섰다. 야후재팬을 운영하는 가와베 겐타로 Z홀딩스 사장은 상징색인 빨간색 넥타이를, 이데자와 다케시 라인 사장은 초록색 넥타이를 맨 채 서로 손을 맞잡았다. 가와베 사장은 “우리가 노리는 시너지는 라인의 이용자 규모다. 라인은 젊은층이 사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각사가 서로의 고객층을 보완해줄 수 있는 관계다”라고 말했다. 일본 포털 2위인 야후재팬은 모바일에 약점이 있다. 반면 라인은 플랫폼으로서의 포털이 필요했다. 서로가 보완재라는 지적은 타당해 보였다.

손정의와 라인, 위기의 순간에 만나다

두 회사가 하나로 묶인 것만큼이나 주목받은 건 발표 시점이었다. 11월이 되면서 손 회장은 고난의 시간을 겪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나오는 비판에 휘둘려야 했기 때문인데 투자로 입은 손해가 막대해서였다. 11월 들어 소프트뱅크그룹이 발표한 3분기 실적을 보면 이 기간 연결 재무제표 기준으로 손실액수가 7001억엔(7조4420억원)에 달했다. 1년 전 같은 시기 5264억엔의 순이익을 본 것과 비교하면 드라마틱한 추락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우버(차량 공유업체)·위워크(사무실 공유업체) 등 손 회장이 운영하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가 투자한 회사들의 가치가 크게 하락해서였다. 이들 기업에 투자했던 손 회장은 그동안 ‘공유경제의 황제’로 불렸지만 우버와 위워크가 각각 9억9000만달러, 18억달러의 적자를 내면서 소프트뱅크 회계까지 너덜너덜해졌다. 뉴욕타임스는 소프트뱅크의 실적을 두고 “거대 자본인 비전펀드의 등장이 스타트업의 환경을 변화시켰고 이쪽 세계를 머니게임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들게 했다”고 비판했다. 가장 뼈아픈 대목은 손 회장의 최대 장점으로 평가받았던 통찰력에 대한 의심이었다.

그런 시점에서 나온 이번 통합은 어떤 속뜻을 갖고 있을까. 일단 통합을 먼저 건넨 쪽은 소프트뱅크였다. 기자회견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가와베·이데자와 두 대표는 그동안 신년회와 같은 느낌의 모임으로 연 1회 정도 만나왔는데 그때마다 가와베 사장은 “나는 라인의 헤비유저다”라고 말하며 어필했다고 한다. 그간 가와베 사장의 얘기를 들은 라인 쪽 임원들은 매번 농담처럼 웃어넘겼다. 그런데 2019년 4월 가진 모임에서는 얘기를 들은 그들의 반응이 이전과 사뭇 달랐다. 그러면서 통합 얘기가 점차 진행되기 시작했다.

라인은 라인대로 위기감을 갖고 있었다. 2014년 당시 소프트뱅크의 투자를 거절했던 건 나름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때만 해도 메신저 서비스는 전성기를 구가했다. 언론을 통해 흘러나온 당시 라인의 기업가치는 약 23조원으로 모회사인 네이버에 육박할 정도였다. 게임과 광고 등을 갖춘 플랫폼형 메신저였기에 독자적인 생존이 가능하다고 본 네이버는 소프트뱅크의 투자를 거절하는 게 옳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짧은 시간 동안 상황이 변했다. 2014년을 기점으로 메신저의 가치가 서서히 하락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라인의 트래픽 증가세가 주춤하고 기대한 만큼 수익이 나오지 않으면서 기업가치가 하락했다. 결국 2016년 7월 도쿄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라인의 가치는 약 9조원까지 떨어졌다.

메신저만으로는 한계를 느낀 라인이 새로운 먹거리로 채택한 게 핀테크였다. 일본 정부가 2025년까지 비현금 결제 비율을 40%로 높이는 ‘현금 없는 사회’ 정책을 추진하면서 라인도 여기에 베팅을 시작했다. 하지만 경쟁자들과 함께 마케팅 경쟁에 내몰리면서 비용이 급증했다. 2019년 들어 3분기까지 9개월간 라인이 올린 매출은 1667억엔이었는데 영업적자가 275억엔에 달했다. 광고 등 핵심 사업은 249억엔 영업 흑자를 기록했지만 라인페이를 포함한 전략 사업에서 524억엔의 영업 적자를 기록했다. 가입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마케팅 비용이 과도하게 들어가서다. 회원 유치는 결국 돈싸움이었는데 라인이 겨루는 상대 중 하나가 소프트뱅크 서비스인 ‘페이페이(PayPay)’였다. 라인은 경영 통합을 통해 출혈 대신 수혈을 택한 셈이었다.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최고투자책임자 ⓒphoto 뉴시스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최고투자책임자 ⓒphoto 뉴시스

“손 회장 머릿속에 일본 시장은 없다”

“‘Life on LINE’이라는 말을 해왔고 라인으로 모든 것을 실현하려고 시도했다.” 기자회견에서 이데자와 라인 사장은 라인이 하나의 앱으로 모든 삶의 영역을 담을 수 있는 ‘수퍼앱’을 추구하려 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건 소프트뱅크의 목적과 같았다. 지난 11월 5일 2분기 결산 자리에서 미야우치 켄 소프트뱅크 CEO는 “스마트폰에서 모든 생활을 편리하게 만드는 수퍼앱을 목표로 진화해나갈 것이다”라는 말을 꺼냈다. 서비스 시작 13개월 만에 1900만명을 돌파한 결제서비스 ‘페이페이’를 두고 한 얘기였다.

소프트뱅크가 라인을 품은 이유는 손 회장이라는 인물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일본 중의원 의원을 지낸 뒤 소프트뱅크에서 손 회장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시마 사토시는 야후재팬과 라인의 통합을 본 뒤 이렇게 말했다. “손 회장은 머릿속에 일본 시장 등은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그가 보기에 소프트뱅크가 라인을 품은 것은 결국 세계에서 경쟁을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 스마트폰 앱 내에서 결제와 쇼핑, 금융과 투자 등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서비스다. 미야우치 CEO가 말한 ‘수퍼앱’의 정체다.

손 회장은 이런 유형의 수퍼앱을 잘 알고 있다. 중국 알리바바가 서비스하고 있는 ‘알리페이’가 대표적이다. 알리바바의 비즈니스 모델을 보면, 알리페이는 앱을 시작하는 단계에서부터 알리바바의 에스크로를 이용하는 소매 서비스 및 금융 서비스, 각종 생활 서비스 등을 경험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 예약·티켓 구매·공과금 납부·금융·배달·여행 등 생활밀착형 서비스 등도 속속 서비스로 포함되면서 이제는 앱 하나로 어지간한 생활이 가능하도록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중국 빅데이터 업체인 이관(易觀)의 자료를 보면 2018년 4분기 중국의 모바일 결제 시장점유율에서 알리페이는 53.78%를 기록해 선두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알리페이를 쓰는 사람은 12억명을 넘어섰다.

손 회장과 알리바바의 인연은 산업계에서 전설이다. 소프트뱅크는 마윈 알리바바 회장과 2000년에 만나 투자를 결정했다. 그때 얻은 2000만달러(234억원)의 지분은 2014년 5월 알리바바가 미국 증시에 상장하면서 578억달러(67조6500억원)로 돌아왔다. 큰돈을 안겨준 알리바바의 사업 모델을 눈앞에서 숙지한 손 회장과 소프트뱅크가 페이페이를 만들고 공격적으로 나선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알리바바는 기본적으로 중국의 14억 인구를 잠재적 소비자로 두고 있다. GAFA(Google·Apple·Facebook·Amazon)는 이미 전 세계를 상대로 비즈니스를 펼치고 있다. 소프트뱅크 역시 1억명의 일본을 벗어나 새로운 시장이 필요했다. 문제는 소프트뱅크가 갖고 있는 한계였다. 플랫폼 사업자로 태생적인 한계를 갖고 있었는데 라이선스를 해외에서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들이 갖고 있는 야후재팬이라는 플랫폼은 해외에서 서비스를 할 수 없다. 야후재팬의 ‘야후’ 브랜드는 지주회사인 Z홀딩스가 미국 버라이존 미디어에서 빌려 사용하고 있으며 오로지 일본 내에서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자연스레 일본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또 다른 통로가 필요했고, 여기에 전략적으로 적합했던 곳이 라인이었다.

이데자와 다케시 라인 사장(왼쪽)과 가와베 겐타로 Z홀딩스 사장이 지난 11월 18일 경영 통합을 공식화하는 기자회견에서 서로 손을 맞잡고 있다. ⓒphoto ANN뉴스
이데자와 다케시 라인 사장(왼쪽)과 가와베 겐타로 Z홀딩스 사장이 지난 11월 18일 경영 통합을 공식화하는 기자회견에서 서로 손을 맞잡고 있다. ⓒphoto ANN뉴스

유일한 전장은 동남아시아뿐

손 회장은 평소 “인공지능(AI)이 모든 산업을 재정의하게 될 것”이라는 발언을 수시로 해왔는데 그런 점에서도 둘의 통합은 궁합이 맞다. 야후재팬과 라인은 그 각각으로도 데이터 활용과 AI에 적극적인 기업이었다. 야후재팬은 검색 서비스를 중심으로 대량의 행동 데이터를 이미 갖고 있으며 마케팅에 활용해왔다. 검색에서 만들어지는 경향 분석을 활용해 매년 보고서를 만들어온 회사이기도 했다. 라인도 모회사인 네이버가 AI 연구소를 보유하고 있고 라인 자체도 문자 인식이나 AI봇 개발 등에 주력해왔다. 일본 내에서는 독자적인 인공지능 음성 개발을 해왔는데 전화 응답을 자동으로 해주는 ‘라인 AiCall’ 등이 대표적이다. ‘현재 존재하지 않는 서비스를 개발하자’는 관점에서 본다면 나쁘지 않은 조합이다. 게다가 손 회장이 비전펀드를 통해 미리 투자해놓은 그랩이나 인도의 기업들은 동남아시아를 포함한 새로운 시장에서 우군이 될 수 있는 존재들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만약 5년 전이라면 두 회사의 조합이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유감이다. 이미 GAFA의 위협은 심각하다. 이들과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전장은 이제 동남아시아라는 게 분명해졌다”고 전했다. FT의 말대로 규모의 경제가 가능한 지역 중 싸울 만한 곳은 동남아가 유일하다. 그리고 라인은 그곳에서 나름 강점을 가지고 있다. 라인은 태국에서 4500만명, 대만에서 2100만명, 인도네시아에서 1600만명의 이용자를 갖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월간 액티브 사용자 수가 1억6400만명 정도다.

다만 세계시장에서 소프트뱅크와 라인이 놓인 처지가 일본에서와 전혀 다른 건 회의론의 근거가 된다. 동남아 시장에서 인기가 높다곤 하지만 라인 그 자체가 GAFA를 압도하진 못하는 것도 어려운 점이다. 대만과 태국에서는 라인 이용자 수가 페이스북과 비슷하지만 인구가 많은 인도네시아에서는 페이스북의 6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소프트뱅크라는 거물이 합류했지만 규모의 전쟁이 벌어진다면 글로벌 기업이나 중국 기업의 화력을 이길 순 없다. 위기의 시점에 라인을 끌어들인 손 회장의 이번 착점을 ‘신의 한 수’로 부르기에 아직 섣부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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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권 국제·IT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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