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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제
[2586호] 2019.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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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면세점 시장 다시 요동친다

▲ 서울 중구 롯데면세점 본점 앞(왼쪽)과 지난해 8월 인천공항에 문을 연 신세계 면세점. photo 뉴시스
면세점 시장 판도가 요동치고 있다. 적게는 몇백억원, 많게는 1000억원이 넘는 천문학적 적자를 더는 버티지 못하고 손을 털고 나가는 면세점 기업들이 연이어 등장했다. 향후 퇴출되거나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사업권(특허권)을 반납할 가능성이 높은 면세점 기업들이 더 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최근 롯데그룹 오너이자 최고경영자인 신동빈 회장이 대법원으로부터 ‘유죄’ 확정 판결을 받으며 “롯데가 운영 중인 서울 시내 최대 면세점의 사업권을 박탈(취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거세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백화점 업계 3위 유통재벌인 현대백화점그룹이 최근 자본력을 앞세워 면세점 사업에 뛰어들었고, 면세점 시장 최대 격전지 중 한 곳인 인천국제공항 면세구역에 대한 대규모 특허권 경쟁 입찰까지 올해 12월 중으로 예정돼 있다. 이 한 번의 입찰 결과에 따라 면세점 업계 판도 변화 등 시장이 빠르게 재편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불과 4년 전만 해도 한국 면세점 시장은 정부로부터 일단 사업권(특허권)만 받으면 앉아서 떼돈을 벌 수 있는, 말 그대로 땅 짚고 헤엄치기보다 쉬운 돈벌이로 통했다. 면세점 사업권 입찰 때마다 면세점 기업들은 물론이고 면세점 사업과 무관한 다른 업종 기업들까지 사업권 확보 경쟁에 뛰어드는 상황이 이어졌다. 2015년과 2016년 연이어 벌어진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 특허권을 두고 롯데, 호텔신라는 물론 신세계와 한화, SK, 두산, 현대산업개발(HDC), 현대백화점 등 대기업들이 사업권 확보를 위해 CEO 등 최고경영진은 물론 그룹의 최대주주와 회장 등 오너들까지 전면에 나섰을 정도였다.
   
   
   피보다 진한 돈 싸움판 면세점
   
   하지만 2016년 말부터 상황이 급변했다. 2016년 7월 한국과 미국이 주한미군의 한국 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발표하자 중국이 강력하게 반발했다. 중국 내 사업에 필요한 인·허가권과 관리·감독권을 활용해 중국은 사드 배치 부지를 제공한 롯데그룹 등 중국에 진출한 주요 한국 기업들을 압박했다. 특히 중국인들의 한국 관광에도 제동을 걸었다. 당장 한류 열풍에 힘입어 한국으로 밀려들던 유커(遊客·주로 중국인 단체관광객 지칭)들의 유입이 끊기면서 면세점 시장이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또 2015년 초만 해도 6개이던 서울 시내 면세점이 짧은 시간 10개 이상으로 급격히 늘며 출혈 경쟁이 심화됐다. 특히 서울 시내 면세점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의 고가 브랜드 유치 경쟁이 벌어지며 수익성 급락을 부채질했다. 면세점을 사실상 먹여살리던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빠르게 줄면서 영업장 안에 고객보다 직원이 더 많은 웃지 못할 상황도 속출하며 곳곳에 적자 면세점들이 등장했다. 면세점 사업 경험이 없거나 적고, 특히 경영능력과 자질이 없는 재벌 3~4세들의 경력 세탁용으로 면세점 사업을 동원했던 몇몇 기업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심각해지는 실적에 노심초사하는 일이 벌어졌다.
   
   범현대가와 범삼성가 기업들 사이에선 통상 특정 방계기업의 주력사업, 또는 방계기업들 간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는 사업에서는 가능한 첨예한 경쟁을 피한다는 불문율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면세점 사업만큼은 상황이 전혀 달랐다. 삼성그룹의 호텔신라와 신세계가 정면으로 충돌했고, 현대백화점그룹과 현대산업개발(HDC) 역시 경쟁을 피하지 않았다. 결국 오랜 경쟁관계이던 삼성가 기업과 현대가 기업이 손을 잡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삼성의 호텔신라와 현대가의 HDC가 뿌리가 같은 자신들의 방계기업을 경쟁에서 떨어뜨리기 위해 전략적으로 손잡으며 ‘HDC신라면세점’이라는 합작사가 등장한 것이다. 여기에 한국 면세점 시장 1위 롯데의 시장 입지가 최근 몇 년 빠르게 위축되며 시장 주도 기업들이 다각화됐다.
   
   
   공격적 사업 확장 후발주자 신세계
   
   2017년 이후 이 같은 일련의 일들이 이어지며 면세점 시장의 구도가 바뀌고 있다. 당장 면세점 시장을 주도하는 기업들이 재편되고 있다. 한국 면세점 시장은 오랫동안 롯데와 호텔신라 2강 체제였다. 그런 시장에서 4년 전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권을 확보한 유통 재벌 신세계가 이들을 빠르게 쫓고 있다. 관광객 등 고객 유입에 유리한 서울 명동(회현동)과 반포에 영업점을 가진 지리적 이점, 또 신세계백화점에 입점해 오랫동안 거래 관계를 유지해온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고가 브랜드 유치력을 앞세운 물량 공세, 인천공항 면세구역 추가 사업권 확보 등 비용 출혈에도 불구하고 면세점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2018년에는 외사촌 기업 호텔신라와 인천공항 면세구역 2곳의 특허 입찰에서 맞붙어 사업권을 확보했다. 당시 신세계는 인천공항 면세구역 2곳의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호텔신라보다 무려 672억원이나 더 많은, 3370억원의 가격을 제시했다. 신세계가 확보한 인천공항 면세구역 2곳의 총 연매출은 8000억~9000억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전체 면세점 시장 점유율 6% 정도로, 이를 확보하면서 신세계 면세점의 외형상 시장 점유율이 단숨에 10%대 중반으로 치솟았다. 롯데·호텔신라 중심이던 시장에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규모가 된 것이다.
   
   
▲ 지난해 10월 서울구치소를 나오는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 photo 뉴시스

   정지선 회장 관심 보이자 현대백 진격
   
   2019년에는 현대백화점그룹이 면세점 사업에 돈을 쏟아붓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2018년 서울 삼성동에 영업장을 열며 면세점 사업을 본격화했다. 지난 11월 말 롯데·호텔신라 등 다른 기업들이 참여하지 않은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권 입찰에 혼자 참여해 상당한 비용을 지불하며 또 하나의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권을 확보했다. 동대문 두타 건물에 곧 면세점을 열 계획이다. 현대백화점 면세점은 올해 12월 예정돼 있는 인천공항 면세구역 입찰에서도 경쟁자들보다 많은 돈을 쏟아부을 가능성이 큰 곳으로 꼽힌다.
   
   오너인 정지선 회장이 면세점 사업에 관심을 보이는 상황이 현대백화점그룹에 ‘어떻게든 인천공항 면세구역에 진출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결국 지난해 신세계가 출혈 투자라는 평에도 불구하고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끌어올리는 방법으로 택했던 고비용 전략을 올해는 현대백화점이 그대로 재현할 전망이다.
   
   그런데 이 같은 현대백화점그룹의 실제 면세점 운영 상황이 심각하다. 현대백화점 면세점은 2018년 삼성동 단 한 곳을 운영했음에도 무려 415억7280만원이 넘는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416억원에 육박하는 순적자 상황이 2019년 들어 더 심각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미 올해 상반기인 6월 순손실 규모가 438억2340만원을 넘었다. 면세점 영업 불과 6개월 만에 순적자가 2018년 1년 동안 기록한 적자보다 20억원 이상 많다. 기자가 확인한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9개월간 현대백화점의 면세점 적자는 612억4800만원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도 오너인 정지선 회장의 면세점 사업 확장 의지가 매우 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지선 회장은 2003년 현대백화점그룹 총괄부회장을 거쳐 불과 4년 만인 2007년 그룹 회장이 됐다. 이렇게 오랫동안 현대백화점그룹 경영 정점에 있었음에도 정 회장의 경영 성과, 특히 성장력과 신사업 발굴·투자에 대한 평가가 우호적인 상황만은 아니다.
   
   경쟁자인 롯데와 신세계가 백화점과 대형마트, 편의점, 복합 쇼핑몰로 덩치를 키우고, 인터넷과 모바일 시장 투자와 조직 확대에 나서는 상황에서도 정지선 회장 체제의 현대백화점그룹은 패션업체 한섬과 SK네트웍스 패션부문, 가구업체 리바트, 중소특장차업체 에버다임 등 비유통업 M&A에 머물렀다. 아웃렛 사업에 뛰어들기는 했지만 상당한 자금력을 가졌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룹의 주력 사업인 유통시장에서 신규 사업 발굴과 투자 능력에 대한 평가가 그리 높지 않다. 그런 정지선 회장이 현대백화점그룹의 유통사업 확장 방안으로 들고나온 게 면세점 사업인 셈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의 자금력은 주요 기업들 중에서도 높은 수준이다. 현대백화점이 보유한 이익잉여금만 올해 9월 말 기준 무려 3조6003억원(연결기준)에 육박한다. 부채비율은 40%대에 불과하다. 쉽게 말해 그룹 오너가 관심을 보인 면세점 시장 점유율을 ‘과하다’는 평이 나올 만큼 큰 출혈을 감수하고라도 빠르게 늘리는 데 쓸 자본력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오너 범죄에 롯데월드타워점 문 닫나
   
   그런데 최근 이런 일련의 시장 변화보다 면세점 판도를 더 크게 요동치게 할 이슈가 있다.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의 뇌물 범죄 사건이다. 지난 10월 17일 대법원은 ‘잠실 롯데월드타워의 면세점 사업 특허권 취득과 관련해 신동빈 회장이 수십억원의 돈을 박근혜 정권 비선실세인 최순실이 운영하던 K스포츠재단에 건넨 뇌물 범죄’를 유죄로 최종 확정했다. 신동빈 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집행유예 4년의 형이 확정되면서 당장 신 회장 뇌물 범죄의 원인이 된 잠실 롯데월드타워의 면세점 사업 특허권을 취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관세법 178조는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특허를 받은 경우 면세점 사업 특허를 취소해야 한다’고 명시해놓고 있다. 또 징역이나 집행유예를 받은 면세점 운영자 및 관련 기업 임원의 결격사유를 구체적으로 규정한 관세법 175조도 잠실 롯데월드타워 면세점 특허 취소 논란을 키우고 있다.
   
   롯데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호텔롯데가 운영하는 롯데면세점의 연간 매출이 5조4000억원 정도다. 그런데 잠실 롯데월드타워 면세점 한 곳의 연간 매출액이 1조원을 넘는다. 이곳이 롯데면세점 전체 매출의 약 20%를 차지하는 셈이다. 이런 면세점 영업장의 사업특허 취소는 롯데에 치명적이다. 전체 면세점 시장 판도가 일거에 뒤바뀌게 된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이유들로 인해 허가권을 쥐고 있는 관세청이 법률 적용을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물론 잠실 롯데월드타워 면세점 사업권 취소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면세점 시장의 경쟁력 약화와 규모 축소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특히 면세점 시장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고용문제가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현재 롯데월드타워 면세점 인력은 약 1500명이다. 사업권 취소 시 이들의 고용문제 해결책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롯데 측 역시 롯데월드타워 면세점 사업권 문제에 대해 이런 부분이 감안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4월 한화그룹이 여의도 63빌딩에 차렸던 시내 면세점에서 손을 뗐고, 11월에는 두산그룹이 두타 건물 면세점 사업권을 반납했다. 자본력을 앞세워 면세점 시장에 뛰어든 대기업들마저 한 치 앞을 전망하기 힘들 만큼 시장이 빠르고 크게 요동치고 있다. 한국 면세점 시장의 규모는 올해 들어 사상 처음으로 20조원을 훨씬 넘어섰다. 외형은 커졌지만 내실인 수익성은 심각하게 악화되고 있다. 면세점 시장의 성장은 매력적인 가격, 출중한 서비스, 특화된 상품을 통한 건전한 시장 경쟁에 의한 것이 아니다. 사실상 중국 보따리상 유치와 이들의 대량 구매에 목을 매고 있다. 그만큼 면세점 시장의 리스크가 커졌고, 크고 작은 이슈들이 연이어 터져나오며 시장 재편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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