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델타항공과 태평양 횡단노선 조인트벤처 협정을 체결한 대한항공 고 조양호 회장(오른쪽 네 번째)과 조원태 현 회장(세 번째). ⓒphoto 델타항공
2017년 6월 델타항공과 태평양 횡단노선 조인트벤처 협정을 체결한 대한항공 고 조양호 회장(오른쪽 네 번째)과 조원태 현 회장(세 번째). ⓒphoto 델타항공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작고 후 유족들의 경영권 다툼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미국 델타항공이 캐스팅보트를 쥐게 됐다. 그간 ‘불화설’로만 떠돌던 한진가(家)의 경영권 다툼은 조양호 회장의 장녀인 조현아 전 칼호텔네트워크 사장이 지난해 12월 23일 입장발표를 통해 동생 조원태 현 회장의 독단적 경영을 성토하면서 촉발됐다. 이틀 뒤인 12월 25일에는 조원태 회장이 모친인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의 자택을 찾아 거칠게 항의한 사진까지 공개되면서 극단으로 치달았다.

최악의 국면은 소위 ‘크리스마스 소동’ 직후 조원태 회장과 이명희 고문 모자가 공동사과문을 발표하면서 일단락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족들이 비슷한 지분을 갖고 있어 경영권 분쟁은 향후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영권 분쟁 당사자인 조원태 회장과 조현아 전 사장의 대한항공 지주사 한진칼 지분은 각각 6.52%와 6.49%로 비슷한 수준이다. 여기에 조현아 전 사장 측에 선 것으로 알려진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의 지분은 5.31%에 달한다. 차녀인 조현민 한진칼 전무 겸 정석기업 부사장의 지분도 6.47%에 달한다. 6.52%의 지분에 불과한 조원태 회장으로서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 누나인 조현아 전 사장(6.49%)과 모친인 이명희 고문(5.31%)의 합세만도 적잖이 신경 쓰이는 게 현실이다. 만약 여기에 동생 조현민 전무(6.47%)까지 가세하면 일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진다.

조원태 회장으로서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 델타항공의 지분을 자기 편으로 묶어둘 필요성이 절대적인 셈이다. 델타항공은 지난해 6월 한진칼 지분 4.3%를 매입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 10%의 지분을 갖고 있다. 당시 델타항공 측은 “이번 투자로 조인트벤처의 가치를 기반으로 한 대한항공과의 관계가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항공과 델타항공, 애증의 관계

자연히 델타항공은 2018년 조현민 전무의 ‘물컵 투척’ 사건으로 촉발된 KCGI(강성부 펀드)의 대한항공 경영 참여선언,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로 인한 경영권 위기에 이어 또다시 대한항공의 급소를 틀어쥐게 됐다. KCGI와 국민연금은 지주사인 한진칼 지분을 각각 17.29%와 4.11%씩 갖고 있다.

현재까지 조원태 회장 측의 백기사로 분류되는 델타항공 측에서 유족 간 경영권 분쟁에 관한 공식적인 입장은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항공업계에서는 델타항공이 두 번이나 공짜로 대한항공 편을 들어주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실제 국내 1위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미국 2위이자 세계 2위 항공사인 델타항공은 1995년 공동운항 협정을 체결하면서 본격적인 관계를 맺은 후부터 줄곧 애증의 관계에 놓여 있었다. 대한항공이 1997년 괌 추락사고 직후 안전 노하우를 대거 도입한 것도 델타항공으로부터였다. 델타항공과 대한항공은 2000년 프랑스의 에어프랑스, 멕시코의 아에로멕시코와 함께 항공동맹체 ‘스카이팀’을 창설하고 이를 세계 2위 항공동맹체로 키워내기도 했다.

하지만 ‘스카이팀’ 발족 이후에도 창설멤버인 대한항공과 델타항공은 마일리지 적립과 같은 문제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곧잘 보여왔다. 2013년에는 양사 간에 항공권 판매수익 정산 문제로 미주 국내선에 한해 공동운항(코드셰어)을 취소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과거 마일리지 적립과 사용이 유리했던 델타항공의 ‘스카이마일’로 마일리지를 적립한 승객들이 대한항공에서 이용하는 일이 늘자, 마일리지 적립과 이용에 각종 제약도 가해졌다.

심지어 2015년에는 대한항공이 델타항공의 경쟁사인 아메리칸항공(AA)과 인천~댈러스(포트워스공항) 노선에 공동운항을 실시하고 상호 마일리지 적립 협정을 체결하기도 했다. 댈러스 포트워스공항을 모항으로 하는 아메리칸항공은 미국 1위이자 세계 1위 항공사로, 2위 델타항공과는 엄연한 경쟁관계에 있다. 아메리칸항공과 델타항공은 항공동맹체도 ‘원월드’와 ‘스카이팀’으로 각각 다르다. 하지만 인천~댈러스 구간에 한해서는 지금도 대한항공은 아메리칸항공과 공동운항을 하고 있다.

악화된 양사의 관계는 2017년 6월, 대한항공과 델타항공이 태평양 횡단노선 조인트벤처(JV) 협정을 체결하면서 극적으로 회복했다. 양사 갈등의 핵심이었던 마일리지도 양사가 동등한 수준으로 적립하기로 하면서 해결됐고, 델타항공이 아시아 지역 허브를 일본 나리타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옮기는 대사건도 일어났다. 델타항공 측에 따르면, 인천공항의 환승률은 2011년 아메리칸항공-일본항공(JAL), 유나이티드항공-전일본공수(ANA)가 잇따라 조인트벤처를 체결하면서 위협받고 있었다. 대한항공과 델타항공의 조인트벤처 협정은 항공 당국의 인가를 거쳐 2018년 5월부터 시행됐고 향후 10년간 유효하다.

양다리 걸친 델타항공

하지만 대한항공과 10년 기한 동맹을 체결한 델타항공이 대한항공을 ‘팽(烹)’할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델타항공이 아시아 노선의 대체재라고 할 수 있는 중국동방항공의 지분도 3.55% 확보하고 있어서다. 대한항공과 델타항공이 2017년 조인트벤처 협정을 체결할 때도 아시아 노선에서 가장 알짜라고 할 수 있는 중국 본토 노선은 동방항공의 입장을 고려해 홍콩과 마카오를 제외하고 통째로 빠졌다.

실제 대한항공과 델타항공이 2017년 태평양 횡단노선 조인트벤처 협정을 체결했다고 하지만, 중국 본토와 미국 본토의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노선은 델타항공과 동방항공이 공동운항 중이다. 델타항공은 향후 아시아 노선 구성을 놓고 대한항공과 동방항공 사이에서 줄타기하면서 자사 이익을 극대화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지난해 1월 1일자로, 델타항공과 대한항공이 주축이 된 스카이팀에서 중국 최대 항공사인 중국남방항공이 탈퇴하면서 남아 있는 동방항공의 위상은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태다. 일례로 델타항공은 오는 3월 동방항공과 보조를 맞춰 미국 항공사 최초로 새로 개장한 베이징 다싱(大興)신공항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동방항공은 1분기 내 베이징~상하이(훙차오공항)를 제외한 모든 노선을 기존의 베이징 서우두공항에서 다싱신공항으로 옮길 계획이다.

반면 대한항공은 한인 타운이 기존 베이징 서우두공항과 가깝다는 이유로, 다싱신공항 이전을 거부했다. 자연히 중국 북방~미주 노선은 대한항공과 인천공항을 거치지 않고 동방항공과 연계해 미국 델타항공이 다싱신공항을 거점으로 직접 실어나를 가능성이 더 커졌다. 항공 업황 악화와 유족 간 다툼과 같은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는 대한항공으로서는 델타항공의 아시아 노선 양다리 걸치기 전략에 제대로 된 목소리를 못 낼 가능성도 크다.

한편 델타항공의 아시아 허브를 인천공항에 빼앗긴 일본 역시 델타항공을 위해 도쿄와 가까운 하네다공항 슬롯을 내어주는 등 델타항공 잡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항공업계의 한 관계자는 “비즈니스 세계에 절대 공짜점심은 없다”며 “델타항공이 대한항공을 도와주는 조건으로 무슨 반대급부를 가져가게 될지 계속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키워드

#기업
이동훈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