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보건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82.7년(2017년 기준)이다. 80.7년인 OECD 평균보다 2년이 더 길다. 평균수명 연장과 함께 현실적인 공포로 다가온 것이 노후자금 마련이다. 노후 준비를 위해 서민이 할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이고 대표적인 방법이 ‘연금’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우리 경제는 침체를 넘어 성장 악화 상태에 빠져들었고, 기준금리마저 1% 초반에 불과한 초저금리 시대로 가고 있다. 통상 연금 납입액의 1~2%대, 많아야 3% 남짓 이자 외에는 기대하기 힘든 연금보험과 연금저축신탁으로는 노후에 대한 불안감을 씻어내기 역부족이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꼽히는 것이 ‘연금펀드’다. 연금펀드 중에서도 주식형 연금펀드는 적극적인 노후자금 마련 방법 중 하나로 꼽힌다. 주식형 연금펀드는 운용자산의 최소 60% 이상을 주식에 투자한다는 점에서 주식형 펀드와 기본 구조는 같다. 하지만 일반 주식형 펀드에는 없는 각종 세금 혜택이 추가돼 있다.

물론 일반적인 주식형 펀드보다 투자 기간이 더 길고, 최소 55세 이후에야 연금으로 돌려받는 제약을 감수해야 한다.

기자는 주식형 연금펀드의 운용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전수조사를 했다. 현재 은행 등 금융사들을 통해 한국에서 실제 개인에 판매 중이고 자산운용사들이 운용하고 있는 주식형 펀드는 ETF를 포함해 모두 836개(모(母)펀드 기준)다. 기자는 먼저 KG제로인의 기본 자료를 바탕으로 이들 836개의 주식형 펀드를 모두 분석했다. 그리고 836개의 주식형 펀드 중 총 82개의 연금펀드를 별도로 추출해 냈다. 82개의 연금펀드는 운용순자산이 10억원 이상이고, 2019년 1년 동안 최소 2주 이상 실제 운용된 ‘공모펀드’들이다.

전체 82개 연금펀드 전수 조사

이렇게 분석한 82개 연금펀드 중 2019년 1월 2일부터 12월 30일까지 운용실적을 따져본 결과, 수익률 1위는 ‘KTB VIP밸류연금저축자(주식) 종류C’다. 23.27%의 수익을 올렸다. 눈에 띄는 점은 설정액이 불과 23억원, 운용순자산이 22억원밖에 되지 않는 초소형 펀드라는 것이다. 이 펀드는 운용방식이 조금 독특하다. KTB자산운용이 주도적으로 투자와 자금 운용을 하고 있지만, 주식 투자와 관련해서는 VIP자산운용(2018년까지 VIP투자자문)의 자문 서비스를 활용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이 연금펀드가 투자한 자산을 분석하면, 대형주보다 중소형주 투자 비중이 상당히 높은 것이 특징이다. 지난해 11월을 기준으로 이 연금펀드의 투자 상위 주식 중에는 한국 전체 주식시장에서 비중이 22%나 되는 삼성전자와 시가총액 2위 SK하이닉스 주식을 찾아볼 수 없다. 두 주식은 한국 전체 주식시장의 약 28%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크고 영향력 역시 절대적이다. 이런 이유로 최근 몇 년 대부분의 주식형 펀드와 연금펀드들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식을 상당한 비중으로 사들였다. 그런데 ‘KTB VIP밸류연금저축자’ 펀드의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식 대신 소형주와 지주사에 집중했다.

수익률 2위는 퇴직연금인 ‘KTB VIP밸류퇴직연금자(주식) 종류C’로 수익률이 23.18%였다. 이 펀드 역시 ‘KTB VIP밸류연금저축자’ 펀드처럼 KTB자산운용이 운용하고 있지만, VIP자산운용의 자문 서비스를 활용하고 있다. 두 펀드 모두 지난 1년 수익률은 23%를 넘지만, 2년 누적 수익률 상황은 좋지 못하다. 분석 기간을 2018년 1월 2일부터 2019년 12월 30일까지 넓히면 두 펀드 모두 수익률이 -2%대로 낮아진다.

1년 수익률 양호, 누적 수익률은 엉망

수익률 3위 역시 퇴직연금인 ‘한국투자퇴직연금롱텀밸류자(주식) C’로 18.70%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 연금펀드는 2019년 12월 말 기준 설정액이 불과 16억원이고, 투자에 쓰인 돈인 운용순자산은 14억원밖에 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초소형 연금펀드다. 뒤를 이은 4위는 16.26%의 수익률을 기록한 ‘한국투자신종개인연금중소밸류전환자(주식)’다.

두 펀드도 운용기간을 좀 더 넓혀 수익률 실태를 분석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2018년 1월 2일부터 2년 누적 수익률을 보면 ‘한국투자퇴직연금롱텀밸류자’ 펀드는 -10.42%, ‘한국투자신종개인연금중소밸류전환자’ 펀드는 -11.47%에 불과하다. 2019년 1월부터 이 두 펀드에 돈을 넣은 투자자와 1년 전인 2018년 1월부터 돈을 넣은 투자자의 상황이 정반대인 셈이다.

수익률 5위는 ‘미래에셋퇴직연금고배당포커스자 1(주식)종류C’다. 연 수익률이 16.17%다. 6위는 ‘한국밸류10년투자퇴직연금배당자(주식)C’로 15.91%였고, 7위는 15.73%를 올린 ‘미래에셋고배당포커스연금저축전환자 1(주식)종류C’다. 수익률 상위 10개 연금펀드 중 설정액 규모가 100억원 이상인 것은 ‘한국밸류10년투자퇴직연금배당자’ 펀드와 ‘미래에셋고배당포커스연금저축전환자’ 펀드뿐이다.

수익률 8위는 ‘미래에셋개인연금고배당포커스전환자 1(주식)’로 15.68%의 수익을 냈다. 9위는 14.71%의 ‘한국투자연금저축롱텀밸류자(주식)C’다. 이 연금펀드 역시 지난 2년간의 누적 수익률을 따지면 -12.48%로 추락한다. 장기투자와 장기운용이 필수인 연금펀드의 특성에 비춰보면 투자자도 운용사도 고민스러운 부분이다. 10위는 ‘한국투자퇴직연금인덱스자 1(주식)C’로 14.2%의 수익률을 올렸다. 코스피 관련 지수를 추종하게 설계한 인덱스 펀드다. 인덱스 방식의 연금펀드 중에서는 가장 수익률이 높았다.

이렇게 지난 1년간 10%가 넘는 수익으로 연금 가입자들을 즐겁게 해준 연금펀드들이 있는 반면, 원금마저 까먹은 최악의 연금펀드들도 상당수 있다.

지난해 3월 서울 경북궁역 인근에서 기초생활수급 노인의 연금수급권 보장 촉구 행진 모습. ⓒphoto 뉴시스
지난해 3월 서울 경북궁역 인근에서 기초생활수급 노인의 연금수급권 보장 촉구 행진 모습. ⓒphoto 뉴시스

미래에셋·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추락

2019년 최악의 연금펀드 1위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미래에셋연금한국헬스케어자 1(주식)종류C-P’다. 1년 동안 무려 -13.51% 이상 수익률을 까먹었다. 총 82개 주식형 연금펀드 중 수익률 -10% 이하는 ‘미래에셋연금한국헬스케어자 1’ 펀드 하나뿐이다. 심각한 건 누적 수익률은 더 엉망이라는 점이다. 2018년 1월 2일부터 2년 누적 수익률은 -20.51%다. 2018년 1월 이 연금펀드에 가입했다면 납입한 연금의 5분의 1이 사라진 것이다. 첫 설정 이후 총 누적 수익률을 따져봐도 -15.94%로, 마이너스 상태다. 가입과 돈 납입 기간이 긴 초기 가입자들의 마음이 더욱 답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 자산운용 시장 2위인 초대형 자산운용사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체면이 심하게 구겨져 버렸다.

최악의 수익률 2위는 ‘한국밸류10년투자100세행복연금자(주식)C’로 -5.78%를 기록했다. 이 연금펀드 역시 2019년 수익률도 좋지 않지만, 심각한 것은 누적 수익률이다. 첫 설정 이후 누적 수익률이 -17.40%다. 이 연금펀드를 만들어 운용하고 있는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은 ‘장기투자와 가치투자에 강점을 갖고 있다’는 점을 홍보해왔다. 하지만 정작 대표적인 장기투자 상품인 연금펀드의 성적표는 실망스럽다.

최악의 수익률 3위는 -4.09%의 ‘미래에셋성장유망중소형주연금저축전환자 1(주식)종류C’이다. 최악의 4위는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의 대표 연금인 ‘한국밸류10년투자연금전환 1(주식)C’로 -2.29%였다. 2년 누적 수익률은 -17.57%로 더 엉망이다. 이 펀드는 설정액이 무려 5849억원에 육박하는 초대형 펀드다. 총 82개 주식형 연금펀드 중 두 번째로 큰 규모의 매머드 펀드다. 마이너스 수익률이 불러올 충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수익률 하위 1~4위를 대형 운용사인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과 미래에셋이 번갈아 차지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최악의 수익률 5위는 KB자산운용의 ‘KB연금가치주전환자(주식) C 클래스’다. 수익률 0.33%로 간신히 마이너스를 면했다. 이 펀드도 설정액이 2800억원이 넘는 대형 연금으로 2년 누적 수익률은 -10.29%에 불과하다. 투자자들의 돈을 10% 이상 까먹은 것이다.

불명예 6위와 7위는 ‘한국밸류10년투자퇴직연금자 1(주식)A’와 ‘IBK평생설계연금전환자(주식) C’로 각각 0.92%와 1.89%다. ‘IBK평생설계연금전환자’는 2년 누적 수익률이 -20.43%에 이를 만큼 최근 운용 실태가 심각하다. 만약 2018년 1월 거치식으로 한 번에 이 펀드에 연금을 넣어둔 투자자라면, 투자금의 4분의 1이 사라졌다.

KB운용의 대형 펀드와 강방천 펀드 몰락

최악의 수익률 8위, 9위는 ‘에셋플러스코리아리치투게더퇴직연금자 1(주식)종류C’(1.92%)와 ‘에셋플러스코리아리치투게더연금자 1(주식)종류C’(2.00%)다. 성공한 수퍼개미로 유명했던 강방천 회장이 이끄는 에셋플러스자산운용의 연금펀드 2개 모두가 최악의 펀드 중에서도 최하위권으로 추락했다. 투자자들의 박탈감과 실망이 클 수밖에 없다. 확인 결과 이 두 연금펀드는 지난 2년 동안의 누적 수익률도 각각 -16.57%와 -16.68%였다. ‘에셋플러스코리아리치투게더연금자 1’ 펀드는 설정액이 600억원을 넘는 중형 펀드로, ‘강방천’이라는 이름에 몰려든 투자자들의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수익률 최악 10위는 삼성자산운용의 ‘삼성클래식중소형연금자 1(주식)C’다. 수익률이 2.06%에 그쳤다.

2019년 주식형 연금펀드 성적은 소형 연금펀드들이 선전한 것과 달리, 대형·중형 연금펀드들이 상대적으로 저조했다. 특히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등 대형 자산운용사들은 이름값을 하지 못했다. 반면 코스피지수와 코스피200지수의 등락폭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되도록 설계된 인덱스 연금펀드들은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양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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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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