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공항에 대기 중인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의 여객기. ⓒphoto 연합
김포공항에 대기 중인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의 여객기. ⓒphoto 연합

제주항공의 모회사인 애경그룹은 지난해 12월 18일 매각대금 약 695억원에 이스타항공과 인수합병(M&A)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항공업계에서는 “중고차를 살 때도 차의 사고 이력부터 살펴보고 가격을 정하는데, 이 계약은 가격부터 정해지고 시작해 다들 의아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런 항공업계의 우려는 현실화되고 있다. 인수가격을 정하고 실사를 시작하다 예상치 못한 변수와 마주했기 때문이다. 실사 과정에서 이스타항공의 열악한 재무구조가 여실히 드러났고 이 때문에 애초 계획보다 인수합병이 두 달 가까이 길어지고 있는 것이다. 애경그룹은 지난해 12월 18일 이스타항공과의 인수합병을 발표하면서 “1월 안으로 마무리하겠다”고 마무리 시점을 한 차례 늦췄다가 최근 ‘2월 안’으로 또 한 번 연기했다.

이스타항공은 지난해 말 항공업계의 불황을 겪으며 경영 상황이 더 악화됐다. 지난해 일본 불매운동부터 최근 우한 폐렴까지 항공업계에는 악재가 잇따랐다. 일본과 중국, 동남아 노선을 위주로 운항하는 저비용항공사의 경우 타격이 더 심할 수밖에 없다. 이스타항공의 부채비율은 484.4%, 자본잠식률은 47.9%인데 여기에 더해 M&A 실사과정에서 이스타항공의 막대한 항공기 리스요금(약 2200억원)까지 드러났다. 재무구조가 열악한 이스타항공 인수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제주항공 내부에서조차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 제주항공 내부에서는 “이스타항공 인수를 재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현재 제주항공 내부에서는 남은 인수대금 580억원가량을 현금이 아닌 AK홀딩스 주식으로 줘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이스타항공 측은 기존 계약대로 현금으로 매각대금을 치를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불안한 두 회사 간 M&A에 시장의 우려가 커지자 제주항공은 지난 1월 31일 “인수 불발은 없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상직 전 의원만 최대 수혜자

매물이 부실할 경우 사려는 쪽은 안 사면 그만이지만 이번 M&A의 경우 애경그룹이 더 애간장을 태우고 있을 뿐, 오히려 부실화된 이스타 쪽은 느긋한 분위기다. 이미 제주항공이 계약금 115억원을 이스타항공에 납입한 것으로 알려져 인수합병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이득을 보는 것은 이스타항공의 창업주이자 이번 21대 총선에서 전북 전주을에 도전하는 이상직 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 일가다. 현재 이스타항공의 최대주주는 지분 39.6%를 보유하고 있는 이스타홀딩스다. 이스타홀딩스는 이 전 이사장의 딸 수지씨와 아들 원준씨가 지분 100%를 보유(각각 33.3%+66.7%)하고 있다.

게다가 이스타홀딩스는 제주항공이 발행한 전환사채(CB) 100억원어치도 매입했다. 제주항공이 이스타의 돈을 받아 이스타를 사는 모양새다. 전환사채란 추후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선택권을 보유한 채권을 뜻한다. 이 CB는 2025년까지 주당 2만5520원에 제주항공 주식(39만1849주·1.46%)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닌다. 따라서 몇 년 뒤 제주항공 주식이 현재보다 오른다고 가정할 때 이스타홀딩스는 최소 100억원에서 150억원의 시세차익을 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항공업계가 활황이었을 당시 제주항공 주식은 주당 5만원을 넘었다.

이스타홀딩스는 여기에 더해 이스타항공이 발행한 CB 100억원어치도 매입했다. 이스타홀딩스가 훗날 이 CB를 주식으로 전환하면 이스타홀딩스는 이스타항공의 지분 17%도 보유하게 된다. 즉 이번 M&A로 인해 이스타홀딩스는 제주항공의 지분 1.46%와 이스타항공의 지분 17%를 갖게 된다. 향후 이스타항공이 상장하면 지분 17%는 수백억원의 가치를 지닐 수 있다. 사실상 이상직 전 이사장 일가의 회사인 이스타홀딩스가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에 가지고 있는 지분만으로 수백억원을 확보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현재 이스타항공은 문재인 대통령의 사위 서모(39)씨가 취업한 것으로 알려진 태국의 ‘타이이스타젯’과 불분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타이이스타젯’은 태국 현지에서 설립된 저비용항공사로 소개되고 있지만, 보유한 항공기가 1대밖에 없어 사실상 이스타항공의 페이퍼컴퍼니가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게다가 타이이스타젯이 보유한 항공기 1대에 대한 리스요금(약 29만달러)마저도 이스타항공이 보증을 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2020년 1월 20일자 주간조선 2592호 참조)

일각에서는 제주항공이 이처럼 불리한 M&A를 추진하는 배경에는 민주당 19대 국회의원을 지내고 이 정부에서 대통령 직속 일자리대책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낸 이상직 전 의원의 ‘힘’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제주항공은 2018년 폭발 위험이 있는 리튬배터리 시계를 운송한 것에 대한 과징금 90억원을 비롯해 지난 5년간 항공 관련법 위반으로 총 119억203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국내 항공사 중 가장 많은 액수였다. 뿐만 아니라 제주항공은 지난해 10월 국내선 여객기가 이륙 9분 만에 긴급 회항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당시 제주항공 여객기의 기종은 보잉 737NG였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무리한 M&A 이유

더 심각한 문제는 제주항공이 보잉과 체결한 보잉737맥스8 항공기 50대 구매 계약이다. 제주항공은 지난해 12월 보잉737맥스8 항공기 50대를 2022년부터 인도받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보잉737맥스는 안전상의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기종이다. 2018년 10월 자카르타와 2019년 3월 에티오피아에서 탑승자 전원이 사망(189명·157명)하는 참사가 벌어졌을 당시 항공기가 모두 보잉737맥스8 기종이었다.

제주항공은 국내 항공사 중 문제의 보잉737맥스8 기종을 가장 많이 구매한 항공사로 알려져 있다. 현재 미국 연방항공청이 이 보잉737맥스8 기종의 운항재승인(면허갱신)을 늦추고 있어 제주항공의 항공기 인도 계획에 다소 차질이 생길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두 번이나 추락해 수백 명의 사망 사고를 낸 전력이 있는 기종을 대거 들여와 운행할 경우 발생할 항공사의 신뢰도 추락과 안전상의 허점이 더 큰 문제로 지적된다.

항공업계가 장기 불황에 빠질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덩치 키우기식 인수합병이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은 애경그룹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뛰어들었을 때부터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을 품으려고 하는 데에는 수치로 드러나는 경영상의 현실 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항공업계 전문가는 “두 회사가 승객들의 안전을 담보로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인수합병을 추진하는 상황이어서 우려스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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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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