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무제한 유동성 공급을 선언한 지난 3월 26일 코스피지수 1700포인트가 무너졌고 원달러 환율은 급등했다. ⓒphoto 뉴시스
한국은행이 무제한 유동성 공급을 선언한 지난 3월 26일 코스피지수 1700포인트가 무너졌고 원달러 환율은 급등했다. ⓒphoto 뉴시스

코로나19의 위력이 시간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발원지인 중국과 한국을 넘어 이탈리아와 스페인, 독일, 프랑스 등 유럽 대부분의 국가와 미국 전역이 코로나19 공포에 휩싸여 있다.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바이러스 공포는 전 세계 경제도 강타하고 있다.

당장 한국은 물론 중국과 유로존, 그리고 세계 최대 경제국 미국까지 생산과 소비 등 경제활동이 멈춰 섰다. 이와 함께 주요국 시장이 동반 폭락하면서 세계 경제가 순식간에 역성장 공포에 휩싸인 상태다. 특히 주요 자본시장에는 유동성 위기까지 몰아치고 있다.

코로나19가 몰고온 경제 추락과 유동성 위기에 세계 주요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의 움직임이 급박해지고 있다. 3월부터 감염자와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는 미국은 세계 최대 경제국이자 기축통화국으로서 발권력을 활용해 사실상 무제한 양적완화에 나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는 지난 3월 15일 기준금리의 제로금리(0.0~0.25%)를 선언했고, 8일 뒤인 3월 23일 긴급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통해 “국채, 주택대출담보증권 등 채권 매입에 자금을 무제한 투입할 계획”까지 밝혔다. 규모도 정하지 않은 말 그대로 ‘가능한 모든 돈을 풀겠다’는 양적완화에 나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와 의회도 돈풀기에 주저하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27일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인 2조2000억달러(약 2700조원)의 수퍼 경기부양책이 시작됐다.

전 세계가 “돈 쏟아붓겠다” 선언

올해 경제성장률이 1~2%대에 그칠 것이라는 충격적 전망이 쏟아지고 있는 중국도 다급하게 움직이고 있다. 중국 공산당의 의사결정기구인 ‘공산당 정치국’이 지난 3월 27일 ‘GDP(국내총생산) 대비 재정적자 관리 비율을 높여 재정을 확보, 이를 통해 특별국채와 특수목적채를 발행해 자금을 마련한다’는 경제부양책을 내놓았다. 구체적인 규모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지만 5조1000억위안(약 880조원)쯤 돈을 풀어야 할 것이라는 분석이 중국과 중화권 자본시장에서 나오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도 긴박한 모습이다. 3월 16일 지급준비율을 낮췄고, 3월 30일에는 2.4%이던 역레포 금리를 2.2%로 떨어뜨렸다. 공개 시장 조작 중 하나인 역레포의 금리를 0.2% 낮추며 사실상 500억위안(약 8조7000억원)의 자금을 시장에 공급한 것이다. 조만간 기준금리를 낮춰 더 적극적인 돈뿌리기에 나설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유럽도 돈풀기에 합류했다. 지난 3월 12일 유럽중앙은행(ECB)이 “올해 말까지 1200억유로(약 162조원)의 자산을 매입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이로부터 불과 6일 뒤인 3월 18일 밤에는 또다시 긴급회의를 열어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충격 완화 목적’을 밝히며 7500억유로(약 1054조원) 규모의 채권 추가 매입까지 선언했다. 독일도 지난 3월 27일 GDP 대비 무려 30%에 이르는 1조유로(약 1350조원) 규모의 경제부양책을 내놓았다.

일본 역시 “역대 최대 규모의 긴급 경제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아베 총리의 발언을 통해 양적완화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현재 일본 연간 GDP 대비 약 10%, 즉 56조~58조엔(최대 약 656조원) 규모의 양적완화가 언급되고 있다. 이들 외에도 유럽 주요국과 캐나다, 터키는 물론 중동 산유국들까지 코로나19발 경제 추락을 막아보겠다며 초대형 돈풀기에 나서고 있다.

한국 정부도 재정확대 돈 폭탄

한국도 다르지 않다. 지난 3월 15일 미국 연준의 제로금리 선언 바로 다음날인 16일, 급하게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나 떨어뜨리며 0.75%로 낮췄다. 한국은행 역사상 최초의 0%대 기준금리일 만큼 사실상 통화 확대의 신호탄을 쏜 셈이다.

정부 역시 재정확대에 나섰다. 지난 3월 17일 11조7000억원짜리 추경(추가경정예산)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 추경으로 기존 3.5%이던 GDP 대비 관리재정적자 비율이 4.1%로 급등했고, 30%대를 지켰던 국가부채비율 역시 41.2%로 단숨에 40%대를 넘어섰다. 재정 압박과 건전성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지만 코로나19발 경제 추락 이슈가 정부의 재정 악화 문제를 덮어버렸다. 오히려 지난 3월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2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기업 지원과 경기 부양에 필요하다”며 불과 며칠 전 50조원으로 계획했던 기업구호자금을 순식간에 두 배 늘려 100조원을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재정을 통한 돈풀기가 강도를 더해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1차 추경 11조7000억원이 제대로 집행조차 안 된 3월 말, 총선을 앞둔 여·야 정치권에서는 적게는 수조원에서 많게는 100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2차 추경을 요구하고 나섰다. 결국 3월 30일 홍남기 기재부 장관이 “1400만가구 대상으로 최대 100만원을 주는 긴급재난지원금의 소요 규모가 총 9조1000억원”이라며 “이것의 지급을 위해 정부가 총 7조1000억원 수준의 추경을 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2차 추경까지 공식화한 것이다.

양적완화와는 다른 ‘RP 3개월 무제한 매입’

정부의 이 같은 재정확대와 함께 0.75%로 기준금리를 내린 한국은행 역시 다시 한번 대규모 유동성 공급자로 등장했다. 지난 3월 26일 한국은행이 “4월부터 6월까지 3개월간 매주 1회 RP(환매조건부채권)를 무제한 매입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시장 자금이 과잉 상태면 한국은행이 RP를 매각하고, 반대로 자금 경색 상태에서는 RP를 사들여 유동성을 공급한다. 이런 RP를 3개월간 무제한 매입하겠다고 발표하자 시장은 ‘유동성을 사실상 무제한 공급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이와 함께 한은은 “공개시장 운영 대상 기관과 증권도 확대하겠다”는 방침도 내놨다. 은행과 증권사 등 기존 22개 공개시장 운영 대상 기관 외에 7개 통화안정증권·증권단순매매 기관(증권사)과 4곳의 국고채 전문딜러까지 추가해 공개시장 운영 대상 기관을 총 33개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또 공개시장 운영을 위한 대상 증권 역시 기존 외에 한국전력과 도로공사, LH공사 등 8개 공공기관 특수채로까지 늘렸다. 한국은행이 더 다양한 루트로 더 신속하게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은 것이다.

3월 26일 한은의 발표는 사실 경제학적 시각에서 보면 양적완화는 아니다. 일반적으로 양적완화는 기준금리가 제로(0%) 수준으로 매우 낮아 금리정책으로는 중앙은행이 더 이상 유동성 공급자 역할을 하기 힘들 때, 발권력을 동원해 국채와 MBS(주택저당증권) 같은 시중 자산을 사들여 자본시장에 직접 돈을 푸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같은 정의에서 보면 한은은 아직 기준금리 운영에 최소 0.75%포인트 여유가 있다. 또 환매 개념이 포함된 RP를 활용한다는 점에서도 정확히 말하면 무제한 유동성 공급으로 규정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자본시장은 ‘한은이 3개월간 시장이 요구하는 유동성을 무제한 공급하겠다’는 선언에 주목하고 있다. 이 내용만으로도 사실상 ‘한국판 양적완화’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한은이 유례없는 돈풀기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가뜩이나 수익성과 신용도 추락에 신음 중인 한국 기업들의 상황이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는 게 1차적인 이유다. 여기에 한국 자본시장을 떠나는 대규모 자금이탈 현상까지 더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 회사채와 기업어음(CP) 시장을 자극하며 금리까지 급등시키고 있다. 이 충격이 회사채와 CP 시장은 물론 MMF 등 단기자금 시장과 또 이들 자산을 포함하고 있는 ELS 시장까지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월 26일 금융안정방안 실시 설명회에서 한국은행 조치가 양적완화로 봐도 틀리지 않다고 발언한 윤면식 한은 부총재. ⓒphoto 뉴시스
지난 3월 26일 금융안정방안 실시 설명회에서 한국은행 조치가 양적완화로 봐도 틀리지 않다고 발언한 윤면식 한은 부총재. ⓒphoto 뉴시스

한은 “양적완화로 봐도 틀리지 않다”

당장 이런 자산에 돈을 넣었던 투자자들이 대규모 자금 회수에 나서면서 이들에게 돈을 돌려줘야 할 금융사들이 자금 부족 상황에 몰리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갑작스러운 자금 부족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금융사들이 보유한 CP 등을 대거 내놓으면서 CP 시장 금리는 더욱 요동치고 있다. 하지만 짧은 시간 너무 많은 CP가 쏟아져 나오면서 정작 가격은 급락했고, 심지어 이를 모두 받아줄 곳조차 구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럴수록 MMF 등에 돈을 넣어둔 투자자들의 환매 압력이 더 강해지고, 반대로 금융사들의 자금 압박은 더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순식간에 만들어진 이런 악순환이 단기자금을 중심으로 자본시장을 경색시킨 것이다.

‘3개월간 RP를 매입해 유동성을 무제한 공급하겠다’는 한국은행의 조치는 결국 금융시장의 유동성 악화를 막아 경제적 충격을 줄여보자는 목적이 담겨 있다. 한국은행 윤면식 부총재 역시 “코로나19의 전 세계 확산으로 금융시장에 자금이 조달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어 나오게 된 대책”임을 밝혔다. 그는 “(시장 수요에 맞춰 전액을 공급하는 점에서) 꼭 양적완화가 아니라고 할 수 없고 그렇게 봐도 틀린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사실상 양적완화의 형태로 이해해 달라는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RP를 매입해 시장에 무제한 유동성을 공급하겠다’는 한국은행의 조치는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시행한 적이 없는 정책이다. 중앙은행조차 인정할 만큼 현재 우리 자본시장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자본시장 안정에 도움될 것”

한국은행의 선택에 대해 자본시장과 경제학계에서는 추락 중인 경제와 혼란에 빠진 자본시장 진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크다. 자본시장에서는 최소 향후 3개월 동안은 부족한 유동성을 한국은행이 책임져주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유동성 부족과 신용 위험을 한은이 방어해준다는 신호가 불확실성을 상당 부분 제거해줄 것이라는 뜻이다. 더구나 ‘기준금리에 아직 여유가 있다’는 점은 상황이 더 어려워지면 기준금리의 추가 인하도 가능할 수 있다는 기대를 키우고 있다. 시장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가 회사채까지는 아니더라도 한은이 결국 국채와 MBS를 충분히 매입하기 위한 선제적 움직임일 수 있다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과 하나금융경영연구소 대표, 한국창의투자 대표 등 자본시장 최일선에 있었던 서강대 경제대학원 김영익 교수는 “엄격한 정의로 보면 양적완화가 아니지만, 한국은행이 선택한 이번 정책 방향이 틀리지 않다고 본다”며 “한은의 역할 중 하나가 금융시장 불안을 안정시키는 것이라는 면에서 적극적인 유동성 공급자로 나서준 것은 의미가 크다”고 했다. 김 교수는 “현재 적자국채를 찍어 추경을 하고 있을 만큼 정부의 재정 실태가 심각하다”며 “악화된 정부의 재정 부담을 한은이 덜어줘야 하는 상황에서 이번 결정은 우리 경제, 특히 자본시장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연장될 여지가 있겠지만, 한은의 이번 유동성 공급이 3개월짜리라는 점은 조금 걱정스러운 부분”이라며 “지금 우리 경제와 금융시장 상황에서 3개월이라는 유동성 공급 기간은 충분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코로나19의 충격 정도를 가늠하기 힘든 상황에서 세계 경제 침체의 폭이 예상보다 더 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미국의 경제 침체가 이제 초기 진입 단계라는 점에서 한국은행이 더 적극적인 통화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연세대 성태윤 경제학부 교수는 “양적완화는 아니고, 질적 측면에서의 유동성 공급”이라고 선을 그으며 “그동안 한은이 유동성 공급 작업을 계속해 왔는데, 이번 조치 역시 추가적인 유동성 공급 작업의 한 부분”이라고 분석했다. 불안한 시장에 한은이 유동성 공급 의지를 강하게 보였다는 점에서 정책적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부작용 감당 쉽지 않다” 경고도

물론 후유증 등 부정적 상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는 게 사실이다. 익명으로 취재에 응한 한 자본시장 관계자는 “양적완화처럼 외형상으로는 무제한적인 유동성 공급 효과가 있겠지만, RP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결국 정해진 기간에 자금을 회수해야 한다는 한계도 있다”며 “이런 식이라면 일시적 효과는 기대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경제와 시장의 위기 상황을 뒤로 미뤄두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한은으로부터 유동성을 지원받은 금융사들이 자금난, 특히 단기 자금난을 겪고 있는 기업들에 적시에 효과적인 공급을 해주는지가 중요하다”며 “투자 실패와 자산가치 하락으로 역시 심각한 자금난에 빠져 있는 증권사 등 금융사들이 한은의 유동성 무제한 공급이라는 목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국은 기축통화국이 아니다. 이런 한국의 중앙은행이 무제한으로 유동성 공급에 나서면 결국 통화가치 하락, 이에 따른 자본유출과 자산가치 버블 등 인플레이션을 피할 수 없다는 우려도 크다. 하지만 현재 전 세계 주요국들 거의 모두가 앞다투어 재정확대와 양적완화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 그런 부담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는 상황이라는 의견도 많다.

단 인플레이션 문제는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번 부풀려진 자산가치와 물가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한국이 심각한 소비부진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서강대 김영익 교수는 “소비가 추락한 현재 한국 상황에서는 디플레이션보다 차라리 인플레이션이 나을 수 있다”며 “당장 급한 불부터 끄는 것이 더 중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반면 외국계 투자사의 한 관계자는 “유동성이 무제한 공급됐을 때 한국에서 우려되는 자산가치 상승과 인플레이션 문제는 단순히 소비지수나 물가지수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지금도 심각한 부동산으로의 자금 쏠림 현상이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경제 상황이 나쁠 때, 특히 자본시장마저 흔들릴수록 한국은 부동산으로 유동성이 집중되는 성향이 짙다”며 “경제 추락과 자본시장에 위기 신호가 커진 지금 상태에서 유동성이 확대되면, 이 중 상당 부분이 결국 부동산 시장으로 들어가 거품만 더 커질 수 있다”고 했다.

현재 코로나19발 경제 위기 탈출과 자본시장 안정을 위해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의 정부와 중앙은행들이 재정확대든 양적완화든 천문학적 규모의 돈을 쏟아붓고 있다. 다른 정책 대안을 찾기가 힘들 만큼 코로나19발 경제 추락과 자본시장의 유동성 위기가 급박하다는 뜻이다. 4월부터 시중에 풀려나가는 한국은행의 천문학적인 유동성 공급이 부작용을 줄이고 자본시장 안정이라는 목표를 이루려면 자금이 적시에 필요한 곳으로 충분히 투입될 수 있게끔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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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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