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월 2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코로나19 피해 최소화와 조기극복을 위한 민생·경제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월 2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코로나19 피해 최소화와 조기극복을 위한 민생·경제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코로나19 사태는 교역을 통해 상호 성장을 추구하던 세계 질서를 깨고 세계 각국을 각자도생의 길로 내몰고 있다. 일본은 중국에 생산시설을 두고 있는 일본 기업들을 본국으로 불러들이려고 20억달러를 준비했다는 소식이다. 미국 역시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인프라 재건과 일자리 창출 목적으로 2조달러(약 2400조원) 규모의 예산을 의회에 요청했다. 우리 정부의 올해 예산 513조원의 약 5배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다. 11월 대선을 치러야 하는 트럼프는 인프라시설 재건 사업을 자신의 재선 카드로 활용하려는 전략인 것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1930년대 대공황을 이겨내기 위해 시행했던 뉴딜정책을 모방하려는 취지로 보인다. 루스벨트는 두 차례에 걸친 뉴딜정책을 시행, 재선에 성공하고 대공황을 이겨낸 인물로 추앙받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산업, 선진국의 절반 규모도 안 돼

우리 정부는 코로나19 경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어떤 대책을 내놓고 있을까. 기획재정부는 지난 2월 28일 ‘2·28 민생경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서울 삼성동 글로벌비즈니스센터(현대차·3.7조원), 고양시 체험형 콘텐츠파크 조성사업(CJ·1.8조원), 인천 복합쇼핑몰(신세계·1.3조원) 등 ‘대형 SOC 사업’을 서둘러 착공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런데 이 사업들은 정부가 새롭게 수립한 정책이 아니고 민간 주도로 오랫동안 추진했던 것들이다. 그런 내용을 마치 정부가 발주한 사업인 것처럼 홍보하는 모양새다. 정부가 그 사업의 인허가권을 쥐고 있고, 일부 지원을 한다고 해서 마치 처음부터 정부에서 추진하는 것처럼 생색을 내고 있는 것은 이미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는 식이나 다름없다.

‘대형 SOC 사업’이라는 표현 또한 적절하지 않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위에 열거한 사업은 SOC(사회간접자본) 사업이 아니라 부동산 개발 사업이다. 부동산 개발은 해야 하겠는데 그동안 정부에서 추진해온 정책과 반대되니까 그럴듯한 단어로 포장하려고 한 것일 수 있다. 아니면 재벌이 벌이는 대형 개발 사업은 부동산 개발 사업이 아니고 사회간접자본 사업이 되는 것일까. 부동산 개발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관료들의 시각이 그대로 드러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민생종합대책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재부가 “10조원 이상의 신규 대형 민자사업 발굴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하고 “기간교통망 사업에 5조원 규모를 배정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2012년 말 현재 우리나라의 부동산 자산은 9457조원으로 국내 전체 자본 스톡의 88%로 매우 높다. 그러나 유럽연합의 ‘세계 투입산출 자료(WIOD)’에 따르면 2011년 기준 한국의 부동산 산업이 전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32%(954억달러)에 불과했다. 정부가 마치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이 지나치게 팽창됐다는 판단 아래 부동산 때려잡기에 혈안이 된 것에 비해 선진국에서 부동산 산업은 산업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다. 예컨대 영국과 미국은 6.81~8.25%, 유럽 주요국은 5.61~8.47% 수준이니 우리의 부동산 산업은 선진국의 2분의 1에서 3분의 1 크기에 불과한 것이다.

부동산이 우리의 자본 스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0%에 가까운데 부동산 산업의 사이즈는 왜 선진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까. 국토연구원이 2014년 발표한 ‘부동산 산업의 경제적 파급효과 및 육성방안 연구’에 그 해답이 있다. 부동산 산업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기여도가 낮은 이유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즉 역대 정부의 정책이 토지, 주택의 수요·공급과 가격에 초점을 맞춘 탓에 산업 차원에서 부동산을 접근하지 못했다는 자평이다. 정부가 규제에만 골몰하다가 정작 산업으로 육성할 생각을 못 했다는 것이 국토교통부 산하기관의 자체 평가다. 부동산 산업에 호의적이었던 지난 정부 시절이어서 가능했던 솔직한 고백인 것이다.

우리의 부동산 산업이 국민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주요 선진국의 절반 미만이라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희망을 준다. 부동산 산업이 경제 성장에 기여할 여지가 아직 많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가 몰고 온 복합불황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지금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고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산업으로 부동산을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세계에서 부동산 산업이 가장 발달한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의 부동산 자산관리 비즈니스는 대공황 이후 부실자산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면서 시작됐으니 90년 역사를 자랑한다. 이웃 일본의 부동산 자산관리업은 1960년대에 출발했다. 도쿄 등 대도시의 임대수요가 급증해 주택임대관리 비즈니스가 출현하면서 태동했다. 우리의 경쟁자 일본의 부동산 자산관리 비즈니스 역시 이미 60년 전에 본격화한 셈이다.

미국, 일본에서 오래전 자리 잡은 부동산 자산관리는 <그림 1>에서 후방산업을 말한다.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부동산 산업은 전후방 산업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무척 크다. 2017년 기준 주택건설 투자의 GDP 비중은 6%이고 경제성장 기여율은 자그마치 26.1%나 된다. 국토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부동산 산업은 부가가치 유발 효과와 생산 유발 효과 측면에서 금융업 다음으로 높았다. 즉 부동산 산업은 전후방 산업의 파급 효과가 크고 해외 제품을 수입해 사용하는 ‘수입 유발 효과’가 가장 낮아 내수산업 성장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산업이라 할 수 있다.

10억 투자하면 14.5개의 일자리

부동산과 관련된 산업적 파급 효과는 생각 외로 넓고 광범위하다. 한 가정이 아파트에 입주할 때 만들어내는 비즈니스 효과를 생각해보라. 이삿짐센터, 인테리어 가게, 가전제품 판매점, 세탁소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꽃집에서도 비즈니스가 생긴다. 화분 구매와 분갈이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병원, 은행, 학원, 음식점, 편의점, 미용실, 정육점, 안경점, 빵집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업종이 주택과 연관되어 있다. 이런 생활밀착형 일자리는 지속가능하다는 데 그 장점이 있다. 정부에서 후손들에게 빚을 안겨주면서까지 무리해서 끌어다 쓰는 재난기금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2014년 기준 일본 부동산 자산관리기업의 자산관리 매출은 전체 매출액의 45%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IBK기업은행의 ‘해외사례로 살펴본 국내 부동산자산관리시장 변화와 전망(2016)’에 실린 분석이다. 반면 우리의 부동산 자산관리 시장은 작은 편이다. 2012년 기준 전방산업에 속하는 부동산 개발 및 공급업의 매출은 전체(50조원)의 49.8%이고 그 뒤를 부동산관리업 27%, 부동산임대업 11.3%, 자문 및 중개업 10.6% 순으로 잇고 있다. 국내 주택시장은 일본과 비교할 때 20년 격차를 두고 유사하게 진행되므로 발전 가능성이 많다고 볼 수 있다. 지난 정부는 미국과 일본이 하고 있듯이 기업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자산관리업을 육성하려고 했었다. 국가경제의 성장동력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서는 감감무소식이다. 부동산을 터부시하는 실세 장관이 버티고 있어서인가.

주택업 및 건설업, 즉 부동산 산업은 제조업, 서비스업과 함께 국가경제를 이끌어나가는 3대 산업이다. 특히 부동산 산업은 서민들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대표적 산업이다. 주택건설업의 취업유발계수는 전체 산업 중 최고다. 10억원을 투자할 때 14.5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므로 지금처럼 일자리가 쪼그라드는 위기 상황에서는 ‘효자 산업’인 것이다.

한국판 뉴딜은 수도권 인프라시설 구축

21대 총선에서 여야는 서울 및 수도권의 인프라 건설 관련 공약을 경쟁적으로 쏟아냈다. 여당은 ‘경인전철 지하화 사업’ 착공을 서두르겠다고 선언했다. 만성적인 서울~인천 구간의 교통체증을 해소하기 위해 철도와 도로를 지하 1, 2층에 깔겠다는 구상이다. 미래통합당은 서부간선도로의 지하화 등을 약속했다. 여야가 공약한 두 SOC 사업은 모두 수도권 산업단지가 몰려 있는 인천·시흥·안산시를 연결하는 사업으로 경제발전 측면에서 서둘러야 한다. 상대적으로 개발이 더딘 서울 서부와 인천권역 발전을 촉진할 수 있으니 정치적 명분도 있다. 도로 인프라를 구축하는 참에 인근 노후 산업단지의 리모델링도 필요하다. 필자가 주간조선 제2569호(‘미분양산업단지를 어쩌나’)에서 살폈듯이 전국의 산업단지는 1206개나 되지만 미분양 산단은 서울 면적(6억502만㎡)의 절반이 넘는다. 심지어 수도권에도 유휴 산업단지는 꽤 많다. 현 정부가 도시재생사업 차원에서 노후 산업단지를 리모델링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지금은 한국 경제가 죽느냐 사느냐의 시기다. 코로나19가 몰고 온 복합불황이 언제 끝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은 미국, 일본과 달리 내수시장이 매우 빈약하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가 수출이 막히면 국가 생존이 어려울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되 당장 내수시장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 측면에서 부동산 및 건설 산업을 활성화해 내수시장을 키우고 동시에 해외로 나간 기업들을 불러들여 고용과 세수를 늘려야 한다.

정부는 돌아오려는 기업들을 지방균형발전이라는 정치적 논리와 수도권 규제법을 근거로 지방으로 내몰아서는 안 된다. 한국은 미국과 달리 각 지방의 법인세율이 똑같다. 전국적으로 동일한 법인세율이 적용되는 상황에서 제품을 내다 팔 시장이 멀고 직원 채용도 쉽지 않은 지방에 정착하고자 하는 기업은 거의 없다. ‘기업 프렌들리’ 정책이 정말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는 국내로 돌아오는 기업이 수도권에 정착하길 원한다면 허용하되 해당 기업이 납부하는 세수를 지방에 교부하는 형태를 취해 지방의 반발을 무마해야 한다. 전체 인구와 자본의 절반 이상이 몰려 있는 수도권은 대한민국 경쟁력의 산실이다. 코로나19가 만든 복합불황을 극복하려면 인프라시설의 건설과 기존 시설의 리모델링이 시급하다. 아울러 수도권정비계획법의 대폭적인 손질도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한국판 뉴딜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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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중 부동산학 박사·WJ부동산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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