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트리온 연구진이 코로나19 항체 치료제 개발에 몰두하는 모습. ⓒphoto 셀트리온
셀트리온 연구진이 코로나19 항체 치료제 개발에 몰두하는 모습. ⓒphoto 셀트리온

신종인플루엔자(신종플루)가 전 세계를 휩쓸었던 2009년은 한국 제약 업계에는 기회였다. 한국제약협회가 발행한 70년사는 그 순간을 ‘국내 백신 주권 확보’의 결정적 기회로 기록한다. 녹십자가 예방 백신의 세계적 품귀현상이 극심할 때 국내에서 유일하게 백신을 생산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녹십자는 막대한 수익 창출이 가능했던 수출을 포기하고 국가 보건 안보를 위해 백신을 전량 국내에 공급했다. 결국 2010년 2월에 열린 세계보건기구(WHO) 회의에서 신종플루 백신 생산 국가 중 한국이 신종플루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처한 우수 사례로 평가받았다.

2009년 녹십자의 성공에 자극받아 일양약품, SK케미칼 등 제약사들이 한층 적극적으로 백신 개발과 생산에 나서면서 당시 10%에 불과하던 백신 자급률은 이제 50%를 웃돌고 있다. 녹십자의 경우 국내 제약사 최초로 수출액 2억달러를 돌파했다.

신종플루 때 도약한 녹십자

코로나19는 국민 건강뿐 아니라 경제에도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경제인들이 느끼는 현실은 가혹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지난 4월 12일 “전 세계적으로 심리 저하에 따른 소비 위축, 공급망 교란으로 인한 생산 차질, 유가 하락, 재고 누적 등이 중첩되면서 글로벌 경기 침체 상황이 예상보다 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4월 14일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 충격을 반영해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2%로 예측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제약 업계는 위기를 기회로 만든 2009년을 떠올리고 있다. 정부도 2025년까지 정부개발비를 4조원 이상 투자해서 제약 및 의료기기 산업을 5대 수출 주력 산업으로 육성할 계획을 세워놓은 상태다.

제약 산업은 새로운 질병이 계속 출현하고 고령인구가 지속적으로 늘면서 꾸준히 성장하는 미래 먹거리다. 만약 글로벌 신약을 하나 탄생시키면 막대한 부가가치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신약 개발에 평균 14년이라는 기간과, 2조8000억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이 들기에 쉽게 진입할 수 없는 시장이기도 하다. 이러한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더라도 최종 성공률은 0.01%에 불과하다.

한국 의약품 시장은 세계 12위(세계 시장의 1.6%)로, 시장 규모는 23조원(2018년 기준) 규모다. 2014~2018년까지 연평균 4.5% 성장했다. 이러한 성장은 적극적인 연구개발 때문인데, 2018년에 투자한 연구개발비는 전년보다 9.8% 늘어난 2조5047억원으로 매출 대비 9.1%에 달하는 수준이다.(2019년 제약산업 데이터북)

코로나19에서 탈출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치료제를 만드는 것이다. 최근 국내 18개 제약·바이오기업들이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나아가 이들 회사의 시험 물질이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희망적인 뉴스가 증권가를 중심으로 뜨겁게 돌고 있다. 실제 이들 회사의 주가도 출렁이고 있다.

치료제 개발에 요동치는 주가

일부 신약 후보 물질은 이르면 5월 초 동물 임상을 시작하고 6월에는 인체 임상에 착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는 신속한 치료제, 백신 개발을 위해 임상시험 심사 및 허가 기간을 대폭 단축하겠다는 생각이다. 만약 백신·치료제 개발에서 우리 제약사들이 선도적 역할을 한다면 코로나19 사태가 제약·바이오 산업에는 실제 기회가 될 수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치료제가 단기간에 개발되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 지난 4월 14일 중앙대 감염내과 정진원 교수에게 조기에 코로나19 치료제가 나올 수 있는지를 문의했다. 이 분야 전문가인 정 교수는 조심스러워했다. “2005년 사스, 2015년 메르스 치료제도 아직 못 만들고 있다”며 “코로나바이러스는 변이를 많이 일으켜서 치료제나 백신 개발이 힘들다”고 했다. 마치 “독감 백신을 맞아도, (변이를 일으킨 바이러스에 의해) 독감에 걸리는 것처럼 설령 백신이나 치료제가 나와도 코로나19가 변이를 일으키면 효과가 없거나 떨어져 감염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정 교수는 “한두 달 안에 치료제가 나오는 것은 어렵고 매년 시즌마다 유행하는 계절성 질병이 될 수도 있다”는 암울한 전망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어려운 상황이지만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연구력이 매우 높다”며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투자를 하면 결국에는 치료제가 개발될 것이다”고 했다. 특히 “설령 외국에서 치료제가 나오더라도, 우리가 공급받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며 “팬데믹 상황에서 의약품 주권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현재 제약 업계는 기존에 개발해왔던 항생제·항암제 등을 코로나19 치료에 적용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어느 정도 안전성 검사를 마친 물질이 많아 희망적인 기대도 하고 있다.

사실 바이오·제약 업계로서는 지금이 해외 진출의 기회다. 지금과 같은 팬데믹 상황에서 치료제·백신 개발에 성공할 경우 해외 각국의 긴급승인제도를 통한 수출길이 저절로 열릴 수 있다. 글로벌 제약사로 발돋움할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의약품의 경우 나라별로 승인 방식이 달라 세계 진출이 어려웠다. 지금은 어느 나라든 치료와 검사가 시급하기에 승인을 받는 것이 어느 때보다 쉽다.

셀트리온 제1공장 전경. ⓒphoto 셀트리온
셀트리온 제1공장 전경. ⓒphoto 셀트리온

각국 긴급승인제도 절호의 수출 기회

정부도 이를 돕고 있는데 예를 들어 식약처는 ‘고강도 신속 제품화 촉진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이를 통해 통상 30일가량 소요되는 임상시험 심사 기간을 대폭 줄일 수 있다. 사용 경험이 있는 물질은 7일 이내, 신물질의 경우 15일 이내로 심사 기간을 단축한다. 기존에 사용 중인 의약품의 코로나19 치료 효과를 확인하기 위한 ‘약물 재창출’ 임상시험은 7일 이내에 심사를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업계에서 코로나19 치료제로 우선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 ‘항체 치료제’이다. 이미 바이러스와 싸워 이긴 사람의 혈장에서 항체를 뽑는 방식이다. ‘항체 치료제’와 관련해서는 셀트리온이 주목받고 있다. 셀트리온 연구진은 이러한 코로나19 ‘항체 치료제’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4월 13일 셀트리온은 최종 항체 후보군을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두 차례에 걸쳐 중화능력(바이러스의 독성을 낮추는 능력) 검증을 실시한 결과, 총 38개의 항체에서 중화능력을 확인했다. 이 중 14개의 항체는 강력한 중화능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게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는 시도도 있지만, 의료계는 코로나19의 직격탄으로 인한 위기 극복이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당장 병원부터 힘들다. 환자 수 감소로 인한 경영난으로 병원이 타격을 받아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면 그 자체로 의료 인프라가 무너진다. 병원이 무너지면 제약 산업도 타격을 받는다.

대한병원협회가 3월 말 전국 병원 98곳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사태 이후 입원환자 수 변화 추세를 파악한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발생 초기인 지난 1월과 2월은 전년 같은 달 대비 각각 평균 -3.68%, -3.49% 감소에 머물던 것이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3월 들어 평균 -26.44%로 급격히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병원을 찾는 환자 수가 급속히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제약·바이오 산업계에도 타격이 이어져 최소 10%, 약 1조8000억원의 매출 손실을 예상하고 있다. 매출 손실이 발생하면 자연스럽게 연구개발, 시설투자, 고용에까지 영향을 준다. 매출 감소뿐 아니라 원료 수급 문제로, 약도 만들지 못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있다. 제약·바이오 기업에 따르면 보통 2~4개월의 재고분을 확보해놓는데, 원료 공급의 34%를 담당하는 중국이 다수의 원료공장 생산기지를 폐쇄 조치했고, 10%를 담당하는 인도 역시 26종의 원료의약품 수출제한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또 글로벌 시장의 원료 수급 불안과 환율 상승이 맞물리며 원재료비 상승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원재료비가 25% 상승할 경우 약 1조700억원의 비용 증가를 감수해야 한다.

연구개발도 힘들다. 코로나19 재난 상황으로 인해 임상시험이 지연·중단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그 결과 임상시험이 지연되는 만큼 연구개발 비용은 상승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기적으로 바이오·제약 산업에 수천억원의 손실이 생길 수 있다고 걱정한다.

“투자해야 성과… 당분간 약값 유지해달라”

이러한 상황에서 제약 업계는 정부에 위기를 극복하고 더 나아가 도약의 기회로 만들기 위해 여러 요구를 하고 있다. 지난 4월 14일 기자와 만난 한국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는 “2009년 신종플루가 유행할 때 녹십자가 백신을 개발해 세계적 기업으로 부상한 바 있다”며 “다른 국가가 비록 개발했지만, 우리가 주체적으로 개발해 ‘의약품 주권’을 지켜낸 경우”라고 설명했다. 즉 “투자를 해야 성과가 생기기 때문에 제약사에 합리적인 약값을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이 관계자는 “감염병 대유행 주기가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며 “개발 역량을 축적하지 않으면, 향후 대응이 어렵다”고 강조했다.

제약 업계는 상황이 다급하니, 당분간이라도 약값을 더 보장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 이와 관련 새로운 약제규제정책 도입의 일시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보험에 등재된 의약품을 재평가하여 급여를 삭제하거나 약가를 인하할 수 있는 ‘요양급여기준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바 있다. 재평가의 기준은 외국의 허가사항, 보험등재 현황, 임상근거 문헌이고 재평가를 받을 대상 약제의 시장 규모는 약 5조6530억원에 달한다. 업계는 어려운 시기에 당장 약값을 깎지 말고 시간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후관리 약가인하제도 시행을 늦춰 달라는 요구도 하고 있다. 해당 제도는 특정 약의 사용량이 증가하면 약값을 비례해서 줄이는 제도다.

업계는 이러한 손실을 모두 합할 경우 “향후 적용하기로 한 제네릭(특허기간이 만료된 복제품) 약가 차등제에 따른 약가 인하금액 6500억원을 포함하면 건강보험 청구액의 5%에 달하는 약 1조원의 약가 인하 충격을 받는다”고 추산한다. 이러한 약가 인하의 충격을 코로나19가 진정될 때까지 미뤄달라는 것이 업계의 요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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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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