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빅토리아파크에서 내려다본 홍콩의 아파트촌. ⓒphoto 뉴시스
홍콩 빅토리아파크에서 내려다본 홍콩의 아파트촌. ⓒphoto 뉴시스

여권 일부에서 토지공개념을 도입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를 위해 개헌까지 언급했다. 현 정권의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을 지낸 이용선 더불어민주당 당선자의 이야기다. 그는 “토지공개념을 빠르게 정착시켜 부동산이나 투기 개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토지공개념을 주장하는 인사는 그뿐만이 아니다. 이인영 전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헌법정신에 토지공개념이 존재한다”고 말했고, 2018년 조국 민정수석은 토지공개념을 담은 개헌안을 발의할 때 “한정된 자원인 토지 투기로 말미암은 사회적 불평등 심화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며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현 정권이 부동산 투기 근절을 위해 토지공개념에 꽂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토지공개념을 도입하기만 하면 부동산 투기는 봄철 눈 녹듯이 사그라질 수 있을까.

박정희 정부 토지공개념 도입 배경

21대 국회 상반기 여당 원내대표가 된 김태년 의원은 2018년 개헌 문제로 국회가 시끌시끌할 때 “토지공개념 도입 논의가 처음 시작된 것은 박정희 정권 시절”이라는 논리를 펼치며 토지공개념 입법을 옹호했었다. 박정희 정부에 이어 노태우 정부 등 우파 정권에서 토지공개념 도입을 시도했으니 문제 될 게 없다는 논리였다. 박정희 정권 시절 토지공개념이 처음 언급된 것은 사실이다. 1977년 신형식 당시 건설부 장관은 “주택용 토지와 농경지를 제외한 토지에 대해서는 공개념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2018년 당시 여당 정책위의장이었던 김태년 의원이 알고 있는 내용은 여기까지다. 김 의원을 포함해 토지공개념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여권 인사들은 1970년대 부동산 가격의 급등 원인은 모른다.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 남덕우 박사는 생전에 ‘1970년대 부동산 가격 폭등은 빈약한 재정 탓’이라는 소회를 토로한 바 있다. 그가 2013년 2월 17일 KBS TV 대담에 출연했을 때의 일이다. 남 총리는 이 자리에서 “박정희 대통령 집권 기간 들여온 외국 차관의 70%인 150억달러를 내가 경제기획원 장관에 있을 때 빌렸다”고 말한 뒤 “1973년 1차 석유파동 뒤 수출이 호조를 보여 통화량이 확대될 때 유동성 조절에 실패했다”고 고백했다. 경제성장에 올인하느라 도시용지의 공급 부족이 집값 급등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아내지 못했다고 자기반성을 한 것이다. 경제학과 교수 출신인 남 총리의 부동산 급등 원인에 대한 진단은 학계에서 증명된 팩트다.

부동산 급등은 정부의 유동성 조절 실패 탓

손재영 건국대 교수는 1998년 발표한 ‘규제완화 이후의 토지정책 과제’라는 논문에서 우리나라 부동산 가격 변동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통화량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지가통계 조사가 시작된 1974년부터 1996년 말까지 지가상승률은 전국 14%, 서울 17.2%였음을 밝힌 뒤, 이 시기 시중 통화량이 팽창해 물가가 뛰자 여유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몰려들어 가격급등이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사실 박정희 정권 시절(1966~1979)의 소비자물가지수 평균 상승률 14.0%와 비교할 때 1974~1996년 서울의 지가상승률 17%는 높지 않다. 손 교수의 해석에 따르면 1970~1980년대 집값 급등은 1960년대의 외자 도입, 1970년대 말의 중동 건설 특수, 1980년대 초 경기부양을 위한 통화팽창, 1980년대 말의 3저 호황에 따른 수출 호조에서 비롯됐다. 결국 과거의 부동산 가격 급등은 투기가 아닌 정부의 유동성 조절 실패가 원인이라는 얘기다.

돌이켜보면 1960~1970년대 정부는 포항제철 등 기반산업 건설에 투입할 돈이 없어 외국에서 돈을 빌리는 상황인지라 도시용지를 개발하고 주택 공급을 하기 위한 자금이 있을 턱이 없었다. 이 때문에 전국에서 서울로 몰려드는 수많은 사람의 주택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다. 게다가 토지는 그 특성상 공급 탄력성이 전무하다. 땅이 필요하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주택부지를 뚝딱 만들어낼 수도 없다. 결국 정부는 주택 공급을 감당할 수 없으니까 토지거래허가제 등 손쉬운 규제 카드를 꺼내들었고, 부동산 매수자를 파렴치한 투기꾼으로 매도함으로써 정책 실패를 숨긴 것이다.

요컨대 부동산 투기는 ‘정부가 민간의 토지 개발을 원천차단하고 공공이 토지 개발을 독점한 상황에서 공공이 토지를 충분하게 공급하지 못해서 발생했다’는 것이 학계의 지배적인 견해다. 집값 급등은 토지사유화 제도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므로 헌법 개정까지 들먹이는 것은 원인 진단을 잘못했다고 자인하는 셈이다. 백번 양보해서 투기를 근절하기 위해 토지공개념이 필요하다는 인사들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치자. 토지공개념을 도입하면 과연 투기와 불로소득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현재 토지공개념 제도를 시행하는 서구 선진국은 거의 없다. 오직 중국, 베트남 등 공산주의 국가와 홍콩 등에서 시행 중이다. 중국의 덩샤오핑이 198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을 위해 토지공공임대제를 도입할 때 벤치마킹했던 홍콩의 실태를 들여다보자.

홍콩 토지임대제의 빛과 그림자

홍콩은 1840년 아편전쟁 뒤 영국이 홍콩을 지배하면서부터 토지임대제를 시행했다. 토지임대를 통해 정부가 벌어들인 임대 수입이 어마어마해서 홍콩의 법인세율과 소득세율은 각각 17.5%, 16%로 낮은 편이다. 홍콩 정부는 토지임대 수입으로 1970년부터 1991년까지 발생한 토지가치 상승액의 39%를 회수했다. 또한 사회간접자본 투자의 55%를 토지임대 수입으로 충당했고 사회기반시설 건설비의 79%를 회수했다. 엄청나게 수지맞는 장사를 한 셈이다. 이것이 바로 홍콩 정부가 토지임대 사업을 통해 재정 부담을 대폭 완화시킨 이유다. 여기까지는 희망을 주는 착한 제도다.

그렇다면 이 제도의 어두운 면은 무엇일까. 영국이 홍콩을 통치할 때부터 지금까지 홍콩 정부가 토지 사용자와 처음 토지임대 계약을 할 때 받는 사용료(premium) 수입은 절대적 비중을 차지했다. 사용료의 일시불 선납이 계약 조건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토지 사용권 기간이 75년이면 75년 동안의 프리미엄을 계약 때 선납하고, 별도로 연간 임대료(rent)를 매년 납부한다. 프리미엄 수입은 토지의 계약 갱신 등에서 벌어들이는 수입보다 매우 컸다. 이유는 계약을 갱신할 때 임차인들이 기존 사용자 우대를 요구하면서 사용료 인상을 막으려고 수많은 시위를 벌여서, 영국은 계약 변경과 갱신을 통한 소득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홍콩의 토지 정책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비판을 받았다. 첫째, 임대료의 일시납부 조건은 자본력이 약한 중소형 개발업체의 시장 진입을 막았는데 이는 대형 부동산 기업들의 텃세와 로비 때문이었다. 둘째, 대형 개발업체들이 토지 시장과 주택 시장을 독점함으로써 주택의 개발시점과 판매시점 그리고 판매가격을 조작하여 각종 투기와 부동산 가격 급등을 초래했다. 홍콩폴리텍대의 연구에 따르면 1991년부터 1994년까지 공급된 전체 민간주택의 70%를 7개 기업이 지었고, 이 중 1개 업체는 전체 물량의 25%를 독점 공급했다. 셋째, 토지임대 기간이 장기간이므로 ‘사용권의 소유권화’ 현상이 나타났다. 이처럼 일부 기업에 의한 과점 지배구조는 기득권자를 살찌우고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의 견제와 균형 원리가 발을 못 붙이도록 했다. 결국 홍콩 중심지에 아직도 흉물스러운 낡은 아파트가 많고 재개발 사업의 진척이 더딘 이유는 바로 정부가 토지 시장을 좌지우지해서다.

토지사용료 더 거두려는 홍콩 정부의 꼼수

홍콩의 특이한 시장 상황에 대해 윌리엄 휘턴(William Wheaton) MIT대 교수는 1994년 홍콩 정부가 토지사용료를 많이 거두려고 토지 공급량을 고의로 조작해 토지와 주택 가격의 급등을 일으켰다고 폭로했다. 정부가 “수요에 못 미치는 토지 공급을 함으로써 앞으로 주택 공급이 부족할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택 수요를 증가시키고 주택 가격을 상승시켰다”는 것이다. 오직 시민의 주거복지를 신경써야 할 당국이 토지 공급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다가 발생한 참사였다. 홍콩의 집값이 오랜 기간 세계 1위를 굳건히 유지한 것도 정부의 토지 독점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정부의 토지 판매 조건은 홍콩의 주권이 중국에 넘어간 1997년 이후 더욱 악화됐다. 중국은 토지 계약기간을 75년에서 50년으로 단축해 임차인이 토지 계약 때 납부하는 사용료 부담을 줄여줘 환심을 사려 했다. 그러나 사용기간을 단축시킨 결과 입찰가는 더 올라갔다. 매년 납부하는 임대료의 경우 영국은 1800년대 정해놓은 고정 불변의 작은 금액만 임대료로 수령하는 것에 만족했다. 반면 중국은 시세 평가를 통해 시장가격의 3%를 매년 부과함으로써 임대료 세수는 영국이 지배할 때보다 폭증해 임차인의 부담이 오히려 증가했다. 중국인의 능란한 상술을 보여준다.

우리의 진보 진영은 불로소득을 근절하기 위해 토지공개념 도입을 주장한다. 그들 중 일부는 한발 더 나가 토지 사유권의 3대 요소인 사용권·수익권·처분권 중에서 사용권과 보유기간의 수익권만으로도 경제활동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홍콩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국가의 토지 독점이 만들어낸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투기 행위를 근절하지도 못한다. 민간 부문과의 경쟁이 사라진 탓에 나타나는 토지 이용의 낮은 생산성은 더 큰 문제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현재 위례, 김포 등 2기 신도시의 수많은 상가가 공실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은 높은 분양가 때문인 것을 개발 업계의 알 만한 인사들은 모두 안다. 택지지구를 개발할 때 민간과의 경쟁 없이 공공이 토지 공급을 독점했기 때문에 나타난 부작용이다. 정부의 경영평가를 받는 LH 등의 공공 디벨로퍼는 정부의 좋은 경영 평가를 받기 위해 토지를 비싸게 팔 수밖에 없다. 경영평가 실적은 해당 기관 임직원들의 인사고과나 보너스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공공임대제를 시행할 때 나타나는 가장 큰 문제는 금융기관이 과연 토지사용권만 믿고 담보대출을 해주느냐다. 우리의 금융기관은 소유권이 없는 임차인의 사용권을 담보자산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토지사용권자가 금융기관에서 빌린 돈을 갚지 않으면 토지사용권과 건물을 처분해서 원리금을 회수해야 하는데 토지의 처분권이 빠진 사용권을 매수할 구매자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2011년 오픈한 여의도 서울국제금융센터(IFC) 빌딩과 올여름 완공 예정인 여의도 파크원 빌딩이 그런 사례다. IFC 빌딩은 서울시가 2005년 99년 사용 조건으로 미국 AIG 보험사에 토지사용권을 매각했고, AIG는 그 땅에 오피스 4동과 호텔을 지어 2011년부터 영업을 하고 있다. AIG는 99년 임대가 끝나는 2104년 서울시에 토지와 건물을 기부 채납한다. 파크원 빌딩은 99년 토지 사용권을 갖고 있으나 IFC 빌딩과는 달리 토지를 사용하는 권리는 지상권이다. 지상권은 타인의 토지를 사용하는 권리인데 땅주인인 통일교는 2005년 시행사에 99년간 지상권을 설정해줘 69층 마천루를 비롯한 2개동의 오피스타워, 쇼핑몰, 호텔을 건축하고 있다. 이 또한 99년 동안 토지를 사용한 뒤 토지와 건물 일체를 통일교에 돌려줄 예정이다. 여의도의 마천루 프로젝트 2개가 개발 가능했던 것은 소유권과 큰 차이가 없는 99년간 장기 임차이므로 돈벌이가 되기 때문이다. 본전을 뽑고도 상당한 규모의 이익창출이 가능해서다. 실제로 AIG는 운영 개시 5년 만인 2016년 IFC 빌딩을 매각해 투자금을 회수하고도 2조원 이상의 양도차익을 챙길 수 있었다.

토지사용권 조건하에서 민간 투자 가능한가

민간 자본은 토지사용권 30년이라는 조건이 붙으면 과연 투자할 수 있을까. 민간 자본은 30년의 토지사용권을 가지고서는 절대로 투자하지 않는다. 도로, 교량 등의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구조를 알면 이를 이해할 수 있다. 2000년 전후 천안~논산고속도로, 서울~춘천고속도로, 인천대교 등을 외국 자본이 돈을 대고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운영 단계에서 영업손실이 발생했을 때 정부의 최소수익보장(MRG)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토지사용권만 믿고서는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해주지 않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토지사용기간 30년 동안 원금을 회수하고 돈을 벌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둘째, 사용권 잔존기간에 따라서 가치 평가가 달라진다. 예컨대, 30년 사용기간의 토지를 담보로 건설 자금을 빌려줘 건물을 짓는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준공 직후 담보가치와 사용기간 만료 직전의 담보가치는 차이가 크다. 사용권 만기가 다가옴에 따라 미래에 수령 예정인 임대료의 현재 가치는 줄어들고 리스크는 커진다. 토지사용권의 만기 시점에 연장이 될 수 있을지, 연장이 되더라도 조건 변화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셋째, 회계 처리가 곤란하다. 금융감독원의 자산건전성 유지 방침에 의거하여 은행·보험 및 각 금융기관들은 매년 보유자산을 평가해서 회계처리를 한다. 불특정 다수의 고객 자금을 운용하면서 작은 위험도 용인되지 않는 금융기관의 속성을 고려할 때, 사용권 만기가 다가올수록 투자자산의 장부상 가치가 줄어든다면 어느 금융기관도 그 위험을 감내할 수 없다. 그 결과 금융기관이 쌓아야 하는 충당금은 눈덩이처럼 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토지임대 계약서에 계약의 자동연장이 명시되지 않는다면 금융기관은 대출이 불가능하다. 넷째,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제한물권을 담보로 자금조달한 사례는 거의 없다. 유일하게 성공한 사례는 2010년 전세권을 담보로 대출기간 3년, 총비용(All-in-costs) 12%에 110억원을 조달했던 사모 부동산 펀드이다. 이 펀드의 설정 당시 금리가 시장 평균 대비 3~4% 높았던 것은 조달 규모가 매우 작고 완전물권을 담보로 잡은 대출보다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사용권을 담보로 한 민간 사업의 자금조달이 불가능한 이유다.

토지공개념을 주장하는 인사들은 대개 실물경제에 어두운 운동권 출신 정치인이거나 법률 만능주의자인 법조인 출신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신념, 판단 따위와 일치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확증편향적 사고가 강하다. 최신 동향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한 데다 오직 자신들의 과거 경험만 가지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후유증이 있음에도 반원전 정책을 고집하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세수가 부족하면 차라리 세금을 더 거둬라

현 정부는 중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을 국내로 불러들이는 리쇼어링 정책을 다시 꺼내들었다. 기업을 불러들여 일자리와 세수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바람직한 정책이다. 코로나19로 한 푼의 세수가 아쉬운 상황에서 정부가 토지공개념 정책을 시행한다면 기업들이 과연 컴백할지 의문스럽다. 정부가 한국판 뉴딜정책으로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해 외국 기업들이 5G 시대 최고의 비즈니스 테스트 베드로서 한국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는데, 사회주의 국가에서 이미 실패한 토지공개념 정책을 도입한다면 과연 외국 기업들은 한국에 투자할까.

투기가 우려된다면 이미 시행하고 있는 주택과 토지의 거래허가제, 용도를 제한하는 지역지구제로도 충분하다. 세수부족으로 인한 세금 증액이 목적이라면 괜히 용도폐기된 토지공개념을 들먹이지 말고 국민에게 세금을 더 거두어야겠다고 실토하는 것이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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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중 부동산학 박사·WJ 부동산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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