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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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한때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국제 유가가 연일 하락세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들을 중심으로 유가 방어를 위한 감산 논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번번이 합의에 실패하고 있다. 여기에 공급 과잉과 코로나19 사태라는 대형 악재까지 덮치며 세계경제가 얼어붙어 버렸다. 이런 이유로 꽤 오랜 기간 국제 유가 하락세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저유가 상황을 주식시장도 주목하고 있다. 저유가 수혜 산업과 기업들에 대한 관심도 함께 커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주식시장에는 유가가 하락할 때마다 수혜주로 거론되어 온 전통적인 저유가 수혜 테마라는 것들이 있다. 주로 항공·해운 등 대형운송과 전력·발전, 석유화학과 자동차 관련 기업들이 대표적이다.

이들 산업에 속한 상당수 기업은 제품 생산과 서비스 제공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원유와 석유의 가격이 하락하면, 이론적으로 원료 도입 비용이 감소해 생산원가를 크게 절감할 수 있다. 이로 인해 가격경쟁력 확보가 용이하고, 생산력을 키울 수 있다는 이유가 유가 하락 때마다 등장하며 관심이 이어졌던 것이다. 물론 이런 내용과는 전혀 다르게 국제 유가가 하락해도 실제로는 가격경쟁력과 생산력을 제대로 끌어올리지 못하는 기업이 훨씬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수혜주라던 항공·해운·자동차 주가 하락

그럼에도 그동안 유가 하락 때마다 전력·발전, 항공과 해운, 석유화학, 자동차 산업에 속한 상당수 기업들이 저유가 수혜 테마로 불리며 투자자들이 주목해 온 게 사실이다. 그런데 현재의 저유가 상황은 이전과 다르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공급과잉 문제가 심각해졌고, 의존도가 급격히 높아진 중국 경제가 암울하기만 하다. 여기에 코로나19 공포는 중국은 물론 유럽과 미국까지 초토화하며 세계경제를 일순간 냉각시켜 버렸다. 세계 각국의 수많은 공장이 멈춰 섰고, 항공·해운 등 국가와 국가, 지역과 지역을 이어주는 물류도 개점휴업 상태다. 전 세계 경제가 강한 충격에 휩싸여 있다.

이런 상황은 과거 유가 하락 때마다 저유가 수혜 테마주로 투자자들의 관심을 키웠던 기업들에 대해 ‘이번에는 조심해야 한다’는 경고를 날리고 있다.

구체적으로 저유가 수혜 테마로 유명한 항공·운송 산업에서 대한항공은 유가 하락 때마다 가장 먼저 언급돼 왔다. 대한항공은 사업구조상 화물 운송이 전체 매출의 20% 정도이고, 국제선과 국내선을 합친 여객 운송 사업이 65%에 육박한다. 석유 가격이 현저히 떨어진다 해도 지금 상황에서는 화물기용 기름값을 조금 줄이는 정도밖에 기대할 게 없다. 그런데 주력 사업인 여객 운송이 마비되며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이 막혀 버렸다. 더구나 계속 발생하고 있는 천문학적 규모의 고정비는 실적은 고사하고 재무 상태마저 위기로 몰고 있다. 저유가 혜택을 전혀 볼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실제 지난 1월 2일 2만7850원으로 2020년을 시작한 대한항공 주가는 반등 기미조차 없이 꾸준히 추락 중이다. 지난 3월 17일 1만9800원으로 2만원대가 무너졌고, 저유가 공포가 본격화한 4월에도 1만8000~1만9000원대에 머물렀다. 기사를 마감한 5월 13일 현재 1만8200원으로, 약 4개월 전인 1월 2일과 비교해 34.65%나 추락했다. 다른 항공사와 해운사들 역시 저유가 수혜는 고사하고 재무 악화 등 경영 실패와 실적 추락에 기업 존폐를 걱정하는 곳들이 대부분이다.

자동차 산업도 대표적인 저유가 수혜 업종으로 꼽혀 왔다. 석유 가격이 낮아지면 자동차 사용량과 수요가 늘어난다는 이유다. 특히 석유 가격이 내려가면 연비가 좋지 않음에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소형차보다 대형차와 SUV 등 고가 차량의 수요가 늘어 자동차 회사의 수익이 나아진다는 이야기를 자동차 회사와 언론들이 자주 거론해 왔다. 그런데 최근 상황은 전혀 다르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중국 시장에서 참담할 만큼 추락 중이다. 유럽과 미국 시장 역시 수출 급감에 현지 공장들이 멈춰 서기까지 했다. 러시아 등 CIS(독립국가연합) 시장도 심각하다.

여기에 코로나19가 덮치며 실업 급증 등 자동차 소비 심리 역시 무너졌다. 저유가가 대형차와 SUV 판매 심리를 자극한다는 이야기는 사실상 폐기된 상황이다. 최근 드러난 현대자동차의 1분기 순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42.1%나 추락했다. 1분기 판매량도 약 90만대에 불과해 2011년 3분기 이후 9년 만에 처음으로 3개월 판매량이 100만대 아래로 추락했다. 영업·판매도 추락한 것이다. 지난 1월 2일 11만8000원이던 주가는 꾸준히 떨어져 기사 마감일이던 5월 13일 현재 9만3100원으로 21.1%나 하락했다. 기아차 등 다른 자동차 기업들도 알려진 것과 달리 저유가 수혜는커녕 상황 악화에 힘겨워하고 있다.

증권사들은 한전 추천, 주가 오히려 하락

대표적인 저유가 수혜주인 전력·발전 산업도 보자. 유가가 떨어질 때마다 그동안 한국전력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다. 전력 생산의 주요 원료인 석유와 LNG 등의 가격이 싸지면 그만큼 원료 도입 비용이 줄어 생산원가를 낮출 수 있다.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의미다. 2018년부터 계속된 대규모 적자에도 불구하고 최근 국제 유가가 떨어지자 키움증권과 하나금융투자, 현대차증권 등 증권사들이 이런 이유를 앞세우며 목표주가를 올리고 있다.

그런데 몇몇 증권사들의 이런 움직임에도 시장에서는 저유가 수혜에 이끌린 한전 투자를 조심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코로나19로 인한 생산 중단과 경기 둔화에 따른 전력수요 급감, 전기요금 인상은커녕 감면 확대와 탈원전 등 정책 리스크의 지속, 거액의 이자비용 등 저유가보다 강한 악재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주가도 답답하다. 지난 1월 2일 2만8500원이던 주가는 5월 13일 2만2000원으로 22.8%나 추락해 있다.

석유화학 산업의 경우 주력 사업별로 저유가 수혜 정도가 달라지고 있다. 대부분은 최대 수출국인 중국과 미국 경제의 급격한 추락으로 제품 수요가 급감해 저유가 수혜를 보기 힘든 상황이라는 분석이 많다. 다만 경쟁자들을 압도하는 생산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 현재 제기돼 있는 재고 압박을 견딜 수 있는 구조를 가진 석유화학 기업이라면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업 구조조정을 통해 하반기부터 저유가로 낮아진 원료 도입 비용의 수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산업을 대표하는 선두권 기업과 차세대 먹거리를 발굴해 세계시장에서 확실한 경쟁력 우위와 주도권을 쥐고 있는 기업의 경우 시간을 갖고 기다리면 저유가 수혜를 기대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커진 택배 수요와 유가 폭락 상황이 얽히자, 일부 증권사들이 택배 포장재 관련 제품을 만드는 석유화학 기업들의 경우 판매 증가를 기대해 볼 수 있다는 식의 이야기도 꺼내고 있다.

국제 유가가 급락하고 있다는 이유로 저유가 테마에 무작정 올라타는 것은 위험하다. 경제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고 시장을 충분히 이해한 후 차근차근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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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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