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전국체육대회에 시(市) 대표로 수영 종목 출전 경험이 있는 A씨가 요즘 수입을 올리는 방법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서다. ‘숨고’라는 이름의 앱은 A씨의 주요 수입원 중 하나다. 수영장 단체 강습이 아니라 개인 강습을 받기 원하는 고객이 앱을 통해 강습 신청을 하면 A씨 같은 강사와 연결해주는 구조다.

“학교 체육 교사가 되려고 임용시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식으로 수영장에 고용돼 단체 수강생을 지도하는 일은 조금 부담스럽더군요.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돈을 벌고, 공부 시간도 확보하고 싶어 시작한 일인데 코로나19 사태가 있기 전까지는 한 달에 30만~50만원 정도 벌었습니다.”

원래 집에서 두 자녀를 돌보던 김준희씨는 지난해 11월부터 새벽배송 일을 시작했다. ‘쿠팡 플렉스’를 이용하면 자녀들이 잠들어 있을 때 일어나 3~4시간 동안 수십 개의 물품을 배송하고 4만~5만원을 벌어갈 수 있다.

“남편이 운영하는 고깃집 매출이 점점 떨어져 조금이라도 돈을 벌어야겠다 싶어서 시작한 일입니다. 날이 갈수록 수익이 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어차피 일하지 않고 쉬는 시간에 일할 수 있다는 장점을 무시하기는 어려워요.”

최대 54만명의 플랫폼 노동자

새로운 근로 형태로 수익을 올리는 노동자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고용 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스마트폰이나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단기간만 일하는 노동자도 많다. 김씨처럼 ‘쿠팡 플렉스’나 ‘배민 커넥트’ 등의 배송 플랫폼에 등록해 하루 일과 중 일정 시간을 배송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도 있다. 통·번역, 강습이나 제품 수리같이 자신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용역을 제공하려는 노동자들은 ‘숨고’나 ‘크몽’ 같은 플랫폼을 이용한다. 매장을 차리지 않고도 자신이 만든 물건을 판매하고 싶은 자영업자는 ‘아이디어스’ 같은 소매 플랫폼에 제품을 등록한다. 남는 공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에어비앤비’를 통해 숙박객을 받는다.

기업에 채용돼 정규직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임시로, 비정규직 형태로 일하는 노동자가 늘어나는 상황을 ‘긱 이코노미(Gig Economy)’라고 일컫는다. 긱 이코노미에는 ‘플랫폼 노동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업에서 프로젝트마다 필요한 인원을 고용해 임시로 일하는 노동자도 긱 이코노미의 구성원이다. 미국에서는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차량 공유 서비스 ‘우버’의 운전기사도 긱 이코노미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컨설팅 그룹 맥킨지가 2019년에 밝힌 바에 따르면 미국 노동자의 20~30%는 어떤 식으로든 긱 이코노미에 종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한국도 플랫폼 노동자 숫자를 47만여명에서 54만여명(2019년 기준)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이는 전체 취업자의 최대 2.0%에 해당하는 수치다.

기본적으로 긱 이코노미는 ‘온디맨드(On-demand·주문형) 경제’와 ‘공유 경제’에 기반을 두고 있다. 온디맨드 경제란 수요자의 요구가 우선이 되는 경제 형태를 말한다. ‘배달의 민족’ 배달 기사는 고객이 배달 요청을 할 때에만 일을 할 수 있다. ‘아이디어스’의 제조업자도 고객의 주문을 받고 나서야 제품을 만든다. 업체에 고용돼 회사가 배분하는 일감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통·번역을 요청할 때 직접 업무량과 비용을 협상해 일을 시작하는 ‘크몽’의 통·번역가도 마찬가지다.

공유경제가 임시직 종사자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에어비앤비’의 숙박업자들은 상황에 따라 비정기적으로 숙박 공간을 제공할 수 있다. ‘우버’의 기사 역시 정식 고용 계약을 체결한 노동자가 아니다.

그래서 긱 이코노미는 종종 ‘위기’에 직면한다. 두 가지 요인이 있다.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사태와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시행된 ‘AB5법’이다.

코로나19 사태는 긱 이코노미의 전망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비대면 소비가 늘어나면서 배달·배송 기사나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한 온디맨드 소매업자는 더 많은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플랫폼을 통해 일자리를 구하던 강사, 수리기사 같은 노동자들은 고객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한국만 해도 그렇다. 앞서 언급한 수영강사 A씨는 한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한 지난 2월 이후 전국의 거의 모든 수영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단 한 명의 수강생도 만나지 못했다.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도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위기와 기회가 엇갈린다. 이동하는 사람이 없으니 차량 공유 요청도 급감해 ‘우버’의 경우 지난 4월 지난해 동월에 비해 80% 정도 고객이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마냥 손실만 입은 것은 아니다. 음식 배달 서비스 ‘우버이츠’를 이용하는 사람이 늘어 주문액이 1년 전보다 50% 넘게 증가했다. 그러나 숙박 공유 업체 ‘에어비앤비’는 확실히 타격을 입었다. 에어비앤비 측에서도 매출액이 지난해에 비해 절반 넘게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로 인한 구조조정도 예고됐다. 에어비앤비가 전 직원의 25%에 달하는 1900여명을 해고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이 지난 5월 5일 외신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긱 이코노미에 고용 안정이 더해지면

AB5법은 그간 자율적으로만 운영되던 긱 이코노미에 제도적 개입이 시작됐다는 사실을 알리는 신호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AB5법은 우버 기사 등 차량 공유 운전자들이 노동권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들여 제정된 법이다. 지금은 우버 기사가 되려면 차량을 직접 구입하고 유지·보수에 들어가는 비용을 부담하며 보험료와 주유비까지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AB5법은 회사가 우버 기사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법에 따르면 우버 기사가 지금처럼 ‘독립 노동자(Independent Worker)’가 되기 어렵다. 근무 시간을 노동자가 정할 수 있고, 기업의 핵심 업무를 맡지 않으며, 회사와 같은 업종에서 독립된 업무를 수행할 때에만 독립 노동자가 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회사는 노동자와 고용 계약을 맺어야 한다.

이 법은 독립 노동자, 한국에서는 ‘플랫폼 노동자’라고 불리는 긱 이코노미 종사자들의 노동 권리를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노동자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당장 캘리포니아주는 AB5법에 따라 그간 우버나 리프트 같은 차량 공유 업체들이 운전자들을 독립 노동자로 내버려두고 착취해왔다는 판단하에 두 업체를 고소하기로 결정했다. 업체들은 이런 제도적 움직임이 공유경제를 ‘약화시킨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우버는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한국에서도 시작되고 있다. 긱 이코노미에 종사하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법적 지위에 대한 논의가 점점 더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5월 11일 취임 3주년 특별 연설에서 “전 국민 고용보험 시대의 기초를 놓겠다”며 “특수고용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등 고용보험 사각지대를 빠르게 해소해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긱 이코노미의 성장에 따른 노동 환경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로 변화할 것이다. 플랫폼 노동자들의 불안한 고용 환경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하는 바이지만 ‘어떻게’ 이들의 노동권을 보장할 것이냐에 대한 합의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기존의 노동법을 따를 것인지, 새로운 제도적 기반을 마련할 것인지 역시 논의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지 않다면 ‘긱 이코노미’는 단지 성장 가능성 있는 모델로서만 존재할 뿐 매번 ‘위기’설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키워드

#트렌드
김효정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