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대형마트의 돈육 코너. ⓒphoto 뉴시스
서울 한 대형마트의 돈육 코너. ⓒphoto 뉴시스

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를 강타하며 ‘금겹살이 됐다’는 말이 나올 만큼 돼지고기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국가 간 이동 제한과 대형 운송기업들의 영업 축소·중단으로 인해 수출입 물량이 줄면서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소비량이 많은 돼지고기 가격이 동시다발적으로 요동치고 있다.

짧은 시간 급등한 돼지고기 가격이 장바구니 물가를 뒤흔들면서 정육 시장, 특히 돼지고기 시장 안정을 위한 방안으로 주목받는 곳이 있다. 한국거래소(KRX)에 설치된 ‘돈육선물(시장)’이다. 그런데 돼지고기 가격 급등과 함께 관심이 커지는 것과는 달리 현재 이 시장은 제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한 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로 전락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돈육선물은 돼지고기 가격의 급등락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상품 시장의 불안정한 공급 위험성을 줄일 수 있는 방안으로 투자시장에 마련된 제도다. 그런데 돈육선물 시장은 2013년 6월 이후 현재까지 한 번의 거래조차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2013년 이후 거래 없어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돈육선물 시장의 폐지나 잠정적 휴장 등 자본시장의 효율성 강화를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조차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곳을 찾는 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축산 시장, 특히 양돈 농가나 관련 사업자 등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고, 이들을 대변하는 농림축산식품부와도 이해가 얽혀 있어 자본시장과 금융감독기관이 단독으로 어떤 결정조차 내리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거래조차 없는 돈육선물 시장의 실태를 좀 더 들여다보자. 돼지고기 시장 규모는 현재 연간 7조원에 이를 만큼 거대한 시장으로 꼽힌다. 이렇게 거대한 시장 규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돼지고기 시장은 가격과 공급 면에서 늘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왔다. 거의 매년 전국적 규모로 발생하는 가축 전염병 등 돼지 관련 각종 질환이 시장 불안을 키우고 있다. 또 삼겹살 등 특정 부위 소비 선호가 갈수록 확대되면서 수요·공급의 불일치도 끊이지 않고 있다. 계절적 수요 등 가격 급등락을 일으키는 요인이 유독 많은 것이 돼지고기 시장이다.

이 같은 가격 급등락과 공급 불안정 사태가 매년 끊이지 않고 벌어지는 현상을 완화시켜 보자는 목적으로 구상돼, 2008년 7월 처음 문을 연 시장이 바로 ‘돈육선물’이다. 돈육선물의 시장 구조는 간단하다. 현재 거래되고 있는 돼지고기 가격을 기준으로 약 6개월 후 돼지고기 시장 상황을 전망해 미리 가격을 정하고 여기에 일정 비용과 수익을 더한 최종가격으로 거래 계약을 체결하면 된다. 일반적인 선물 거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초기엔 하루 평균 145건씩 거래

이론적으로는 돼지를 키우는 양돈 농가 입장에서는 전염병 등 예측이 힘든 돌발 변수에 의해 돼지고기 가격이 급락하는 위험성과 판로에 대한 걱정 없이 양돈업에 전념할 수 있다. 육가공업자 역시 매년 각종 변수에 따라 들쑥날쑥하는 구매 관련 비용을 안정시킬 수 있다. 또 최소 6개월 단위의 가격 예측이 가능해 돼지고기 가격이 급변하더라도 구입시기와 구입량, 제품 생산량 조절이 용이해져 경영 안정성도 제고할 수 있다. 일반 투자자들 역시 새로운 대체 투자시장의 등장으로 이론상으로는 새로운 투자처가 생겨난 것이다.

이런 돈육선물은 사실 시장 개설 초기만 해도 거래와 투자에서 꽤 활기를 보였다. 돈육선물 시장이 개설된 2008년 7월 이후 5개월간 1만6258건, 662억8800만원어치의 돈육선물 거래가 이루어졌다. 하루 평균 돼지고기 선물 거래가 매일 145건씩 이루어졌던 것이다.

다음 해인 2009년 역시 총 1만3703건에 589억8700만원 규모의 돈육선물 시장이 운영됐다. 불과 1년5개월 동안 돼지고기 선물 거래가 무려 3만건을 넘어서며 신생 시장임에도 안정성에 대한 기대를 키우기도 했다. 시장 개설 3년 차인 2010년 한 해 동안 총 567억7200만원 규모의 돈육선물이 거래되며 이런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런데 개설 4년 차인 2011년 시장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거래금액이 2011년 총 381억7500만원으로 빠르게 쪼그라들며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이렇게 2011년 이상 징후를 보인 돈육 시장은 2012년 갑자기 추락했다. 2012년의 경우 한 해 불과 10여건 거래에, 거래액 역시 불과 5300만원밖에 안 됐다. 심지어 2012년에는 2월 돈육선물 계약 이후 시장 마감 날인 12월 28일까지 단 한 번도 돼지고기 선물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2013년의 경우 6월 돼지고기 선물 1건이 거래됐고 이후 현재까지 돈육선물 시장을 통한 돼지고기 거래가 한 건도 없었다.

수입산 관세 인하로 선물 시장 빠르게 위축

개장 초기 연간 1만건 이상 돼지고기가 선물로 거래되던 시장이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진 이유는 무엇일까. 돼지고기 선물 시장의 몰락 원인에 대해서는 크게 세 가지 요인을 지적할 수 있다.

먼저 해외 수입산 돼지고기 관세 인하다. 거의 매년 구제역, 콜레라 등 돼지 관련 가축 전염병이 발생하며 수급 불안이 가중되자 이를 해소하는 방안으로 떠오른 것이 수입산 돼지고기다. 2011년 돼지 농가를 휩쓴 구제역 파동으로 돼지고기 공급량이 급락하고 가격이 치솟자, 2012년부터 정부가 시장 안정을 위해 수입산 돼지고기의 관세를 낮추기 시작했다. 예컨대 25%이던 미국산 냉동삼겹살 기본관세가 2013년 8.3%로 대폭 낮아진 것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다른 나라들과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도 돼지고기 관세 인하에 한몫을 했다. 관세 부담이 낮아진 저렴한 수입산 돼지고기가 들어오며 육가공 시장과 도매시장을 중심으로 돼지고기 공급 불안이 많이 해소된 건 사실이다. 육가공업체들의 경우 가격이 저렴해진 돼지고기 수입 시장을 통해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만큼의 물량을 구할 수 있는 환경이 강화되며 굳이 돈육선물 시장을 찾을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돈육선물 시장을 빠르게 위축시킨 요인이 된 것이다.

또 선물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장 조정자들, 즉 선물 회사들이 더 이상 출혈을 감수하기 힘든 상황에 빠졌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2008년 돈육선물 시장 개설 이후 선물 회사들이 초기 2년 정도 시장 활성화를 위해 자체 투자 등 상당한 노력을 들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시장이 개설 당시 전망했던 것만큼 활성화되지 못하면서 어느 순간 선물 회사들이 더는 출혈을 감수하기 힘든 상황에 몰렸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투자를 줄이면서 가뜩이나 성장하지 못했던 시장이 더 쪼그라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돈육선물 시장 필수 참여자가 됐어야 할 양돈업자와 육가공업자들의 부족한 금융·자본시장 이해도와 지식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영세 사업자가 상당수인 것이 현실인 양돈업자와 육가공업자들의 경우 공판장과 도매시장을 통한 거래에 익숙할 뿐 금융·자본시장을 통한 거래에는 이해도가 낮은 게 사실이다. 시장 필수 참여자가 됐어야 할 이들이 이해도가 낮고 익숙하지 않은 돈육선물 시장을 외면한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거래소의 한 관계자 역시 이 요인들을 부정하지 않았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2011년 구제역 파동 이후 돼지고기 수입 관세가 낮아지며 돼지고기를 대규모로 사들였던 수요자들이 싼 가격의 수입산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됐다”며 “수입산으로 가격 변동 위험 회피가 가능해지면서 이들이 굳이 돈육선물 시장을 찾을 필요가 없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그는 선물 시장 조정자 역할을 하며 출혈을 감수해 줬던 선물 회사들이 어느 시점부터 더 이상 감수하기 힘든 상황을 맞았을 것이라는 점 역시 부인하지 않았다.

돈육선물 시장 활성화를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돈육선물 시장의 접근성을 낮춰주는 조치도 있었다. 2013년 돈육선물 시장 참여 조건이던 기본예탁금 500만원을 50만원으로 낮춘 것이 그 예다. 50만원만 예탁을 하면 돈육선물 시장에 들어올 수 있게 해준 것이다. 한국거래소 역시 돈육선물 시장 활성화 방안 연구용역 등 몇몇 시도를 했다. 그런데도 시장은 전혀 살아나지 못했다.

문제는 현재 이 시장의 활성화를 위한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자본시장 효율성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거래조차 없는 이 시장을 폐지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해 관계자들이 복잡하고 민감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일반적인 자본시장과 달리 돈육선물 시장은 자본시장의 시각과 효율성을 먼저 말하기 힘든 복잡한 사안들이 얽혀 있다”며 “섣불리 말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자본시장 정부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 역시 한국거래소와 같은 입장이다. 자본시장의 한 관계자는 “처음부터 금융과 시장 논리보다 농축산업자들과 농림부의 이해가 강하게 작용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거래가 있건 없건, 시장이 제대로 운영되건 안 되건 이들의 이해관계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시장인 게 사실”이라고 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 역시 “한국거래소나 금융위만의 문제가 아니라 농림부와 양돈 농가의 의견이 중요한 시장”이라며 “판단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난감해했다.

한 자본시장 관계자는 “양돈·육가공업자들과 농축업 주무부처인 농림부가 자본시장을 담당하는 거래소 및 금융위와 이 문제에 대해 깊이 논의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돈육시장의 활성화 여부를 떠나 모두 폐지에 대한 부담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거래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돈육선물 시장을 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한국 자본시장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도 현명한 판단과 결정이 필요하다.

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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