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 중구청이 광복절을 맞아 광화문 세종대로 일대에 설치해 일본의 반발을 샀던 태극기와 노재팬 깃발. ⓒphoto 뉴시스
지난해 서울 중구청이 광복절을 맞아 광화문 세종대로 일대에 설치해 일본의 반발을 샀던 태극기와 노재팬 깃발. ⓒphoto 뉴시스

주식시장에 다시 ‘애국 투자’가 떠오르고 있다. 소강상태에 있던 한·일 관계가 지난 6월 초 급격히 악화되며 소위 말하는 ‘애국 테마’가 다시 투자자들의 관심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애국 테마주로 알려져 있는 기업들의 주가와 거래량이 꿈틀거리며 개인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다.

6월 애국 테마 급부상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거론된다. 먼저 강제징용자 배상을 두고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 압류와 압류 자산 현금화 문제가 도화선이 되고 있다. 일본 전범기업 신일철주금주식회사(현 일본제철)에 대한 한국 내 자산 현금화 문제를 둘러싸고 한·일 양국 정부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신일철주금(이하 일본제철)이 각각 1억원을 배상하라’는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일본 측이 배상에 응하지 않으면서 이 문제가 한·일 양국 정부 간 격한 대립의 직접적인 문제로 부상해 있다.

6월 폭발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이슈

일본제철이 한국 법원 판결에 반발해 배상을 하지 않으면서 피해자들과 배상 상속자들이 일본제철과 한국 기업인 포스코(POSCO)가 함께 만든 합작법인 피앤알(PNR)의 주식 19만주(약 9억7000만원)에 대해 압류를 신청했다. 지난 6월 1일,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이 일본제철 측에 ‘일제 강제징용 기업의 국내 자산을 압류했다’는 채권압류 명령을 수령하라는 ‘공시송달’을 결정했다. 쉽게 말해 법원이 채권압류 명령 서류를 갖고 있으니 일정 기간이 지나기 전 이 서류를 가져가라고 공개적으로 알린 것이다. 또 주어진 기간 안에 서류를 찾아가지 않으면 법원이 서류를 전달한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것이다.

공시송달의 효력은 대상이 한국에 있다면 2주, 해외에 있다면 2개월이다. 일본에 있는 일본제철이 늦어도 8월 3일까지 이 압류 서류를 가져가 관련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뜻이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으면 8월 4일 자로 이 서류는 일본제철 측에 전달된 것으로 간주된다. 이렇게 되면 강제징용 피해자와 피해 상속자들이 압류한 일본제철의 한국 자산인 피앤알 주식에 대해 한국 법원이 현금화 명령을 내릴 수 있게 된다. 8월 3일까지 일본제철이 이 서류를 가져가더라도 배상을 이행하지 않으면, 한국 법원이 일본제철의 한국 자산인 피앤알 주식의 현금화 명령을 내릴 수 있게 된다.

이 사실이 확인되자 지난 6월 초 일본 정부와 관련 기업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한국 정부를 향한 일본 정부의 경고성 발언이 나오고 있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일본제철의 한국 내 압류자산 현금화 시도 시 일본 정부가 ‘두 자릿수’의 보복조치를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을 전하기도 했다. 실제 일본 정치권을 중심으로 국제사법재판소 제소와 배상 청구, 일본 내 한국 기업의 자산 압류, 한국 제품 관세 인상 등 보복조치 징후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수출규제 강화 vs 지소미아 폐기

다른 이유도 있다. 지난 5월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반도체 등 한국 주요 산업계를 겨냥해 지난해 일본이 단행한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불화수소(에칭가스)·포토레지스트’ 품목의 대한국 수출규제 조치(수출심사 우대국 리스트 배제) 결정에 대해 입장을 밝혀 달라”고 요구했다. 일본 정부가 이 요구에 아무 반응을 내놓지 않으며 양국의 경제·외교 관계 역시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절차 재개 입장을 최근 밝혔고, 지난해 11월 한 차례 유예시켰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카드까지 다시 꺼내는 분위기다.

이 두 사안이 급부상하며 한·일 양국의 분쟁이 6월 초 다시 격화하고 있다. 당장 일본 내에서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더 강화하겠다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다. 기존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3종의 부자재 수출규제 장기화 가능성도 커졌다.

이런 한·일 충돌 양상이 주식시장에 영향을 미치며 개인투자자들을 중심으로 애국 테마로 불리는 주식의 거래가 급증하고 있다. 일본의 한국 수출규제 강화와 장기화 시 수혜 기업들과 일본제품 불매운동 관련 기업들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이다.

소위 말하는 애국 테마주에서 개인들이 몰리고 있는 주식 중 하나가 볼펜 등 필기구 기업 ‘모나미’다.

(왼쪽부터) 서울 광화문에 설치된 유니클로 입간판. 모나미 볼펜. ⓒphoto 뉴시스
(왼쪽부터) 서울 광화문에 설치된 유니클로 입간판. 모나미 볼펜. ⓒphoto 뉴시스

지난해 개미 뒤통수친 모나미 급등

지난 5월 중순만 해도 3000원대 초반이던 모나미 주가가 강제징용자 배상 문제와 지소미아 폐기 가능성이 대두하며 주가가 폭등하고 있다. 5월 11일 1주당 3170원이던 모나미 주가는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이슈가 터진 6월 1일 25.7% 폭등하며 단숨에 4500원으로 치솟았다. 그리고 3일 뒤인 지난 4일에는 5310원으로 5000원 선도 가뿐하게 넘었다. 거래일 기준으로 18일 만에 67.5%나 오른 것이다. 6월 9일 모나미 주가는 5270원이다.

모나미는 사실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나 한국 정부의 맞대응과는 전혀 상관없는 기업이다. 단지 한국 내 반일정서 고조와 ‘NO재팬’ 캠페인이 확산하면 ‘제브라와 하이테크 등 일본산 필기구를 대체할 수 있지 않겠냐’는 소문에 주가가 오르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 제품 불매운동인 ‘NO재팬’ 열기가 컸던 지난해 모나미의 실태는 일본산 필기구를 대체하지 않겠느냐는 개인투자자들의 기대와는 전혀 달랐다. 영업이익과 순이익 추락 등 엉망이 된 실적이 이를 잘 보여준다. 2019년 모나미의 영업이익은 18억원으로 급락했다. 2017년과 2018년 약 70억원이던 영업이익과 비교하면, 2019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NO재팬’의 수혜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장사를 망친 것이다. 심지어 이전까지 흑자였던 순이익은 2019년 아예 적자로 추락했다. 외국인투자자들도 5월 중순 이후 모나미 주식을 끊임없이 내다팔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7월 주가가 이상 폭등하자 모나미는 보유 주식 70만주 중 갑자기 절반인 35만주를 팔아 치우며 시세 차익을 챙겼다. 당시 시장에서는 ‘애국 개미들의 뒤통수를 쳤다’는 비판이 자자했다.

한국 내 일본 제품 불매운동, 즉 ‘NO재팬’ 운동의 직격탄을 맞은 대표적인 일본 기업이 ‘유니클로’다. 한국 소비자들의 NO재팬 분위기가 확산하던 지난해 7월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패스트리테일링의 오카자키 다케시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일본 도쿄에서 열린 결산 설명회에서 “(한국의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오래 안 갈 것이고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며 사실상 한국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을 평가절하했다. 한국 소비자들의 반응을 하찮게 여긴 듯한 이 발언이 알려지며 한국 내 유니클로의 이미지는 더 악화됐고 불매운동을 더 키웠다.

최근 NO재팬 운동으로 부각되며 유니클로의 부정적 이미지가 다시 커지고 있다. 이 영향으로 주식시장에서는 유니클로와 유사한 콘셉트의 한국 의류기업이 대체재로 떠올라 있다. SPA 브랜드를 운영하는 신성통상이 대표적이다. 신성통상의 주가는 지난 5월 12일만 해도 1080원에 불과했다. 이런 주가는 5월 중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장기화 가능성과 지소미아 폐기 우려가 커지자 슬금슬금 오르기 시작했다. 5월 말 1300원대를 넘었고, 6월 1일에는 1540원으로 급등했다. 한·일 간 제2차 무역전쟁 분위기가 고조된 6월 4일에는 상한가로 직행하며 단숨에 1885원으로 1800원대마저 넘어섰다. 6월 9일 주가는 1835원이다.

주가는 이렇게 폭등하고 있지만 경영 실적은 반대로 뚝뚝 떨어지고 있다. 순이익 악화가 심각하다. 2017년과 2018년 70억원을 넘었던 순이익이 52억원대로 추락했다. 특히 지난해 NO재팬 효과로 4분기(3개월) 증가했던 순이익이 올해 1분기 폭락한 사실도 확인됐다. 소매업 중에서도 코로나19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는 오프라인 의류매장 중심의 영업이 실적 악화를 키우고 있다. 올 1분기 단 3개월 동안 영업적자 68억원에 순적자가 무려 111억원에 이를 만큼 실적이 엉망이다.

日 수출규제 장기화에 불화수소 기업 꿈틀

지난해 일본이 반도체와 2차 전지 제조에 필요한 부자재의 한국 수출규제를 감행하자 주식시장에서 먼저 부상했던 곳 중 하나가 후성이다. 가스 형태의 일본산 고순도 불화수소를 대체할 수 있는 곳으로 액화 불화수소를 생산하는 후성이 떠올랐던 것이다.

지난해 반도체와 2차 전지 제조에 필요한 부자재의 한국 수출규제를 일본이 더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아지며 지난 5월 중순부터 개인투자자들을 중심으로 후성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진 것이다. 3월부터 5월 초까지 6000원대이던 주가는 반일감정과 NO재팬 분위기 확산에 힘입어 뛰어올랐다. 5월 12일 6780원에서 약 20일 만인 6월 5일 8680원으로 급등했다. 6월 9일 후성 주가는 8610원이다.

반일감정 덕에 주가가 급등했지만 개인투자자들이 조심해야 할 기업이라는 경고가 울리는 대표적인 기업 중 하나가 후성이기도 하다. 지난해 애국 개미들의 대량 매수에 힘입어 주가가 급등하자 후성의 대표이사가 보유 주식을 고가에 팔아 차익 실현에 나서며 논란을 일으킨 전과가 있다. 지난해 6월 28일부터 7월 16일까지 후성 주가가 무려 78% 이상 폭등했다. 그러자 7월 18일 후성 송한주 대표가 보유 주식 12만주 중 절반인 6만주를 팔아 단숨에 7억8000만원을 현금으로 챙겨 갔다.

우리 국민의 애국심 덕분에 주가가 오르자 후성의 최고경영자가 대거 주식을 팔아 치워 거액의 현금을 회수한 사실이 알려졌다. 투자자들과 시장의 비판이 커졌고, 또 윤리성 논란까지 거셌다. 송 대표의 대규모 주식 고가 처분 이후 단 며칠 만에 주가가 20%나 급락하는 사태도 있었다.

이들 외에도 식품과 소비재를 중심으로 일본 제품 대체재로 떠오르고 있는 국산 맥주 회사들, 속옷 등 의류 기업들, 여기에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불화수소(에칭가스)·포토레지스트’ 등과 관련한 소재·부품 기업들 역시 주가가 동반 급등하고 있다.

지난해 7월과 8월, 애국 테마 열풍이 한국 주식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기억이 있다. 1년 만에 다시 반일감정과 NO재팬 분위기가 확산하며 개인투자자들을 중심으로 애국 테마주로 몰빵 투자가 다시 나타나고 있다. 몇몇 애국 테마주들의 주가가 짧은 기간 폭등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고수익과 대박을 좇아 무조건 뛰어들면 자칫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이미 지난해 애국 테마주 열풍 속에서 이런 낭패를 당했던 개인투자자들이 수두룩한 게 사실이다. 기업의 실적과 건전성, 대주주와 경영진의 윤리성과 경영 능력 또 정말 일본산 제품을 대체할 수 있는 기술과 능력을 갖출 애국 기업인지 정도는 살피고 투자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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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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