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타항공 체불임금 문제를 놓고 인수 주체인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 사측의 책임 떠넘기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이스타항공 직원들 간 내분까지 더해지면서 사태는 더욱 꼬여가고 있다.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은 지난해 12월 인수합병 계획을 발표하면서 올 1월 계약을 마무리하겠다고 했지만 6개월 가까이 지난 현재 두 회사의 거리는 더 멀어져버린 상황이다.

코로나19로 인한 항공업계의 불황 탓도 있지만, 최근 불거진 임금체불에 대한 양사 간 입장 차이가 인수합병 작업 막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스타항공 측은 제주항공이 인수를 서둘러 마무리한 뒤 임금체불을 해결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제주항공은 계약상에 임금체불을 해결해줘야 할 의무가 없으므로 이스타항공이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측 간 줄다리기가 계속되는 사이 피해는 고스란히 이스타항공 직원들이 입고 있다. 밀린 임금만 4개월째다. 생활비를 위해 일용직 아르바이트까지 하던 직원들이 참다못해 이곳저곳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직원들 간 대응방식을 놓고 이견이 생기면서 단일대오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임금체불 문제를 놓고 사측과 협의하고 있는 이스타항공 직원들은 크게 두 집단으로 나뉘어 있다. 220명이 속해 있는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와 경영직 및 운항승무원 등이 포함된 일반직군 1500명의 ‘근로자대표’다.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는 지난 4월 민주노총 공공운수에 가입하면서 외부로 이 문제를 가져가는 투쟁 방식을 펼치고 있다.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는 지난 6월 15일 청와대, 6월 18일 더불어민주당 당사, 6월 19일 더불어민주당 전북도당 당사 등에서 연이어 집회를 열고 총 250억원에 달하는 임금체불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이상직 의원에게 책임이 있다며 비판을 가해왔다. 이 의원은 이스타항공의 창업주이자 사실상 실소유주다.

근로자 대표는 조종사노조의 이 같은 대응방식과는 온도 차가 있다. 밀린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지만, 외부세력을 끌어들여 논란을 만드는 것이 인수협상을 마무리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또한 이스타항공 근로자대표 측은 조종사노조의 무리한 투쟁 방식이 정작 임금체불 해소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도 주장하고 있다. 결국 임금협상 테이블에는 이스타항공 사측과 조종사노조, 근로자대표 등이 마주 앉아 있지만, 직원들 간 입장 차도 있는 탓에 합의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스타항공 고위 관계자는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현재 노조가 주장하는 건 회사를 망하게 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며 “조종사노조의 과격한 투쟁 방식 때문에 근로자대표 측과의 갈등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최근 사측과의 협의 과정에 두 단체 대표 사이에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했다.

21대 국회에 입성하며 4년 만에 다시 금배지를 단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 하지만 본인이 창업한 이스타항공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으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photo 연합
21대 국회에 입성하며 4년 만에 다시 금배지를 단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 하지만 본인이 창업한 이스타항공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으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photo 연합

제주항공 내부에서는 ‘인수 재고’ 목소리

고성이 오갈 정도로 감정이 악화된 것은 이미 끝났어야 할 제주항공과의 인수합병이 물 건너갈 위기에까지 처하면서다. 이스타항공은 지난해 여름부터 이어진 경영악화와 당초 2월로 계획됐던 제주항공과의 인수합병 지연 탓에 파산 직전에 이른 상태다.

앞서 이스타항공 인수 의지를 먼저 밝힌 쪽은 제주항공이었다. 항공업 덩치 키우기에 의욕적으로 나섰던 애경그룹은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실패한 뒤 이스타항공으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인수합병 실사 과정에서 이스타항공의 부실한 자본 상태가 드러나고 코로나19로 인해 항공업황이 악화하면서 제주항공 내에서 “인수를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최근 임금체불 이슈까지 커지면서 제주항공의 의지는 더 약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스타항공 근로자대표 측에서는 조종사노조의 강경 투쟁 방식에 회의감을 품게 됐고, 양측 대표자 간 감정싸움까지 벌어지게 된 것이다.

이스타항공 측은 최근 KBS와 JTBC 등에서 연이어 보도한 이스타항공의 지주회사 이스타홀딩스 관련 기사에 대해서도 조종사노조를 탓하고 있다. “조종사노조가 민주노총에 가입하고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의 도움을 받아 악의적인 주장을 기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타항공의 지주회사 이스타홀딩스의 대표가 창업주 이상직 의원의 두 자녀이고, 20대 안팎의 자녀가 이스타홀딩스의 대표가 된 과정과 이 회사의 정체에 대한 의혹은 이미 과거에 보도된 적이 있다. 그럼에도 이런 보도가 새로운 뉴스처럼 최근에 쏟아지는 이유를 두고 이스타항공 사측은 “민주노총과 민언련의 도움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스타항공 고위관계자는 “이상직 의원의 딸 이수지씨가 회사에 근무한 건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경영에 간섭하지 않았고, 자기 직급을 가지고 업무에 충실하게 임한 것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회사 포함 총 직원이 2000여명에 달하는 회사에 오너 친인척 2~3명 근무하는 게 그렇게 문제되는 일인지, 그걸 ‘족벌 경영’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노조가 이상직 의원을 정면으로 겨냥하는 이유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상직 의원은 현 정권 출범 이후 대통령직속일자리위원장,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 등을 맡으며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겠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자신이 창업한 회사의 직원들은 거리로 내몰릴 상황에서 “인수대금으로 막대한 자금을 챙기고 회사에서는 손을 떼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또 20대였던 자녀를 회사 고위직(상무)에 앉히고 19대 의원 시절 자신의 보좌진이었던 이들을 회사 주요 보직에 심으면서 ‘그들만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이 의원은 이스타항공의 인수합병이 마무리될 경우 약 400억원의 금전적 이득을 얻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이 의원은 “400억원을 현금이 아닌 전환사채 형식으로 받는 것이고, 세금 등을 내면 사실상 마이너스”라는 입장이다. 현재 이상직 의원 측은 이스타항공 관련 언론 보도에 대응을 전혀 하지 않는 상태다. ‘경영에서 물러났기 때문’이라는 것이 표면적 이유다. 하지만 임금체불과 제주항공과의 인수합병 등의 문제에 대해 이 의원 역시 골머리를 앓으면서 이스타항공 수뇌부와 연일 협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자신이 창업한 회사를 둘러싼 갈등이 격화하자 이 의원 측은 결국 제주항공에 당초 인수대금에서 100억원 가까이 깎은 400억원대를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이스타항공의 인수대금은 당초 695억원에서 코로나19 사태 이후 545억원으로 깎였는데, 여기에 100억원을 더 내릴 테니 인수를 서둘러달라는 의미다. 이에 대해 제주항공 측은 “공식적으로 밝힐 수 있는 내용은 없다”고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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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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