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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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즐리는?

국내 1위 면도용품 구독 서비스 업체. 고객이 원하는 주기에 맞춰 면도날과 면도용품을 정기적으로 배송해준다. D2C 방식으로 홈페이지에서만 판매한다. 유통단계를 줄인 대신 가격 거품을 뺐다. ‘면도는 아프고 귀찮은 일이 아닌 즐거운 일이다!’를 외치면서 제품을 넘어 습관과 경험을 팔고 있다.

‘남성 소비자들은 평생 속고 살았다’.

2년여 전 페이스북에 도발적인 문구의 광고가 등장했다. 국내 한 스타트업이 독과점 구조로 인한 면도용품의 가격 거품을 지적한 광고였다. 글로벌 시장을 장악한 거대 면도기 회사에 던진 도전장이었다. 이 광고는 ‘좋아요’ 5만개를 훌쩍 넘고, 공유 27만번, 댓글 3만건을 넘겼다. 그만큼 면도용품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말이다. 광고 덕분에 ‘페북 면도기’로 유명해진 ‘와이즐리(Wisely)’의 등장이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처럼 무모해 보였던 와이즐리의 도전은 견고한 국내 면도기 시장을 흔들었다.

모바일 리서치 회사 ‘오픈서베이’의 ‘남성 그루밍 트렌드 리포트 2020’에 따르면 날면도기 시장에서 와이즐리의 이용률(2019년 1월 기준)은 6%로 4위에 올랐다. 특히 20대의 이용률은 10%에 달한다. 질레트가 74.7%로 독주하는 가운데 도루코(29.3%), 쉬크(20%)까지 ‘빅3’가 수십 년 동안 국내시장을 장악해온 것을 감안하면 신생 스타트업이 의미 있는 시장의 변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와이즐리가 기존 시장의 가격 구조에 문제를 제기하며 큰소리친 배경은 뭘까. 와이즐리는 가격 거품을 빼기 위한 방법으로 유통 단계를 줄인 D2C(Direct to Customers) 전략을 택했다. 여기에 ‘구독 서비스’라는 엔진을 장착했다. 신문처럼 집에서 면도를 구독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구독 면도기 사업은 미국에서 이미 성공한 모델이다. ‘시간과 돈을 깎자(Shave time, Shave money)’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매달 면도날 정기배송 서비스로 면도기 시장의 패러다임을 뒤집은 달러셰이브클럽(DSC)이다.

“불합리한 시장 우리가 바꾸겠다”

2011년 마이클 두빈이 창업한 달러셰이브클럽은 한국 기업인 도루코의 면도날로 100년 넘게 미국 시장을 독점해온 질레트의 시장점유율을 70%대에서 50%대로 끌어내렸다. 2016년에는 다국적 생활용품 기업 유니레버에 기업가치 1조1000억원(10억달러)에 팔렸다. 와이즐리에 앞서 국내에서 달러셰이브클럽 모델을 그대로 시도한 곳이 있었지만 시장 진입에 실패, 결국 폐업했다. 똑같은 사업 모델로 와이즐리는 어떻게 성공했을까.

“달러셰이브클럽의 마케팅 메시지는 편리함이었습니다. 미국은 면도날 하나 사려고 해도 차 타고 마트에 가야 합니다. 소비자들이 가장 불편해하는 문제를 해소해줬기 때문에 성공한 것입니다. 그걸 한국 시장에 그대로 적용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걸어서 편의점 가면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동욱(31) 와이즐리 대표의 설명이다.

똑같은 구독 면도기 서비스지만 달러셰이브클럽과 와이즐리의 접근법은 달랐다. 우리나라 면도기 소비자의 불만은 비싼 가격이었다. 와이즐리는 그 부분을 공략했다. “기존 가격 구조는 면도날 매출 이익률 대비 원가가 5%에 불과합니다. 거기에 유통마진이 50%에 달합니다. 유통 마진·광고비 등 가격 거품 덜어내고 현명한 소비를 돕겠다는 메시지에 집중했습니다.” 김 대표는 “가격대는 1위 기업의 3분의 1 수준으로 맞췄다”고 말했다. 와이즐리의 면도기 구독 서비스는 첫 신청 때 면도기를 서비스로 주고 고객이 원하는 주기로 면도날을 배송해주는 시스템이다. 김 대표는 “구독을 하지 않아도 구입이 가능하지만 신규 고객 중 70%가 구독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와이즐리 고객의 구독 서비스 이탈률은 7%에 불과하다고 한다.

“칫솔을 오래 쓰면 안 되는 것처럼 면도날에 대한 죄책감은 모두 갖고 있었습니다. 교체 시기를 잊어먹기도 하고 가격이 비싸 아껴 쓰다 보니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던 겁니다. 고객들이 구독의 이유를 알고 있는 거죠.”

와이즐리의 탄생은 소비자로서 김 대표의 불만에서 시작됐다. “집에서 독립해 자취를 하면서 처음으로 제 돈으로 면도날을 사러 마트에 갔다가 가격이 너무 비싸 깜짝 놀랐습니다. 비싸니까 면도날 1개를 몇 달씩 아껴 쓰게 되고, 오래 쓰다 보니 날이 무뎌져 얼굴에 상처가 나고 세균에 노출돼 트러블이 생겼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대부분 남성들의 문제였습니다.” 이 문제의식이 창업으로 이어지기까지는 몇 년이 걸렸다.

김 대표의 창업 DNA는 대학생 때부터 발동이 걸렸다. 친구 따라 서울 동대문시장에 놀러갔다가 중국으로 의류 생산기지가 넘어가면서 작은 도매상들이 소량 생산할 곳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중국처럼 싼 가격에 작은 수량도 생산할 수 있는 솔루션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로 유아복 대상 창업을 했다. 경험도 없고 자본도 없고 욕만 실컷 먹고 망했다. 쓴맛을 보고 큰 기업에 들어가 안정된 연봉에 만족하며 살아볼까 했다. 다국적 컨설팅 회사 베인앤드컴퍼니에서 2년6개월, 한국피앤지(P&G)로 옮겨 6개월을 다니면서 “빡세게” 일했다. “이렇게 60살이 됐을 때 뭘 하고 있을까 생각해 보니 잘하면 임원이겠더라고요. 그 모습을 상상해 보니 전혀 멋있지가 않았어요.”

고객의 불만이 ‘와이즐리’의 아이디어 원천이다. 면도기 케이스, 뒷면이 평평한 손잡이 등 고객 불만 사항을 반영해 만든 와이즐리의 2세대 면도기. 디자인은 미국 뉴욕의 디자인 스튜디오 아룰리덴(Aruliden)이 맡았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고객의 불만이 ‘와이즐리’의 아이디어 원천이다. 면도기 케이스, 뒷면이 평평한 손잡이 등 고객 불만 사항을 반영해 만든 와이즐리의 2세대 면도기. 디자인은 미국 뉴욕의 디자인 스튜디오 아룰리덴(Aruliden)이 맡았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불편한 경험이 창업 아이디어로

그 길로 사표를 내고 미뤄두었던 면도기 사업에 뛰어들었다.

“내가 안 하면 누군가 하겠지만 내가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무기였다. ‘싼 것은 부실하고, 좋은 것은 비싸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싸고 좋은 면도날’을 찾는 것이었다. “전 세계 업체 리서치를 했습니다. 면도날은 고도의 기술력을 필요로 합니다. 생산국가가 한국 도루코와 미국, 일본, 독일 4개국밖에 없었습니다.” 독일을 집중 공략한 끝에 ‘칼의 도시’ 졸링겐에서 면도날 특허를 보유한 100년 기업을 찾아냈다.

20대의 초보 사장에게 선뜻 물건을 내줄 리는 없었다. 소비자가로 샘플을 사와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고객을 모았다. 때맞춰 부모님이 해외파견으로 집을 비운 틈을 타 집을 사무실 삼아 3개월 만에 고객을 4000명까지 늘렸다. 동생이 새벽까지 상자를 접어주고 출근하다 아예 회사를 그만두고 합류했다. 친구까지 3명이 법인을 만들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면서 앞서 소개한 카드뉴스식 광고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뒤집어져 있었다. 광고에 환호한 고객들의 주문이 쏟아졌다. 그러나 약은 독이 됐다. “재고는 바닥이 났고 주문을 처리하지 못해 항의 전화가 쏟아졌습니다. 전화기 한 대로 대응이 안 됐어요. 구청에 신고가 들어가고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김 대표는 이때를 와이즐리 최대의 위기로 꼽았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3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곤욕을 치렀지만 네이버 검색어 순위에 오르내리고 ‘와이즐리’를 시장에 각인시켰다. 2년여 전의 일이다. 요란한 등장만큼 와이즐리는 무섭게 성장하면서 스케일업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2세대 면도기를 시장에 내놓았다. ‘가성비 높은 제품’을 넘어 품질도 떨어지지 않는 제품 개발을 목표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직원은 3명으로 시작해 2년여 만에 34명으로 늘었다. 채용 수요는 계속되고 있다. 투자 유치도 이뤄졌고 연내 추가 투자도 추진 중이다.

소통의 힘

김 대표는 가장 중요한 성공 요인으로 ‘소통’을 꼽았다. “고객들의 불만이 와이즐리의 동력이다”라고 했다. 와이즐리는 다양한 고객 설문조사를 수시로 한다. 홈페이지를 통해서만 판매를 하는 이유는 ‘유통마진 줄이기’지만 고객 데이터 확보도 목적이다. 고객별 성향, 우리나라 남성들의 면도 습관, 불만사항 등이 와이즐리의 제품에 그대로 반영된다. 대부분 면도기를 엎어놓다 보니 면도날이 녹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면도기 뒷면을 평평하게 만들어 뒤집어 놓을 수 있도록 했다. 여행갈 때 휴대하기 불편하다는 고객들의 불만으로 케이스를 만들었다. 포장이 과하다는 의견을 듣고 재활용 가능한 포장지로 바꿨다. 면도 전 바르는 셰이빙젤 용기가 알루미늄 캔으로 돼 있어 바닥 부분이 녹이 슨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압축기체를 담을 수 있는 플라스틱 용기를 찾아 세계시장을 헤맨 끝에 벨기에에 공장을 둔 네덜란드 회사를 찾아냈다. 결국 비행기에도 가지고 탈 수 있는 플라스틱 셰이빙젤을 만들었다. 고객 설문조사를 통해 알아낸 와이즐리 고객의 면도 습관도 흥미롭다.

면도날 교체 시기가 평균 3개월에 한 번에서 구독 서비스 사용 후 평균 3주로 짧아졌다. 면도날 4개 팩을 구매하면 3개까지는 평균 1~2개월마다 소비하지만 마지막 4번째 날은 6개월 이상 사용하는 패턴이 많았다. 날면도기와 전기면도기 사용 비중은 65 대 35로 나타났다. 부드러운 면도날과 날카로운 면도날 중 선호 비중은? 70%가 부드러운 날을 원했다. “면도날은 개인마다 호불호가 나뉩니다. 부드러운 면도날은 절삭력이 떨어지고, 그 반대쪽에 날카로운 면도날이 있습니다. 부드러움과 날카로움을 어느 정도로 절충하느냐가 문제입니다. 듬성듬성 털이 나는 우리나라 남성에게는 부드러운 날이 맞지만 털이 거센 사람에게는 절삭력이 떨어질 수 있는 거죠. 두 가지 라인으로 만드는 방법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김 대표의 설명이다. 그의 목표는 종합 소비재를 생산하는 ‘아시아의 P&G’이다. 연내 샴푸 제품, 내년 화장품 출시도 준비하고 있다. 역시 고객 요청에서 시작된 일이라고 한다. “면도기 시장 못지않게 남성 화장품, 탈모샴푸 시장도 가격 거품이 많다”는 것이 김 대표의 말이다. 그 거품을 시원하게 걷어내기 위해서는 현명한 소비자의 역할도 크다.

다음 추천 주자는?

백패커 김동환 대표

추천 이유 모두가 안 된다고 했던 핸드메이드 마켓 ‘아이디어스’를 만들어 혁신으로 시장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기업가정신과 실행력이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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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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