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단마토 / 2. 샤인머스켓 / 3. 신비목숭아 / 4. 초당옥수수
1. 단마토 / 2. 샤인머스켓 / 3. 신비목숭아 / 4. 초당옥수수

막 장마가 시작된 6월, 국내 식품 유통업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아이템은 ‘초당옥수수’다. 단맛이 극대화돼 있다는 뜻에서 ‘초당(超糖)’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 옥수수는 1990년대 일본에서 개발된 신품종 옥수수다. 보통의 찰옥수수보다 훨씬 달아 당도를 나타내는 단위 브릭스(brix)가 20이 넘는 수준이다. 반면 열량은 적고 굳이 삶아 먹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초당옥수수는 ‘새로운 맛’을 찾아 헤매는 소비자들에게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재배 면적 5년 사이 13배 늘어난 초당옥수수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는 사람만 아는’ 인기 제품이었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올해에는 6월 수확철이 되자마자 초당옥수수는 유통업계의 인기 품목이 되었다. 당장 생산량도 늘었다. 초당옥수수를 많이 재배하는 제주도의 경우 올해 옥수수 재배 면적은 260헥타르에 달한다. 5년 사이 13배나 늘어난 규모다. 한국에 처음 초당옥수수를 선보였던 식품 개발업체 ‘식탁이 있는 삶’을 통해 올해 판매된 옥수수는 6월25일 현재 100만개가 넘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하자면 167% 늘어난 판매량이다.

그런데 식품 유통업계에서 신품종이 인기를 얻는 사례가 초당옥수수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초당옥수수와 비슷한 시기 출하된 ‘신비복숭아’는 마치 천도복숭아처럼 생겼지만 백도복숭아의 말랑한 식감을 가지고 높은 당도를 자랑한다는 장점 때문에 2~3년 전부터 소비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천도복숭아 생산량의 1%만을 차지한다는 ‘희귀성’ 덕분에 더욱 인기를 얻고 있다.

이제는 꽤나 유명해져 익숙해진 ‘샤인머스켓’은 보통의 포도보다 월등히 높은 17~22브릭스의 당도를 보이는 신품종 포도다. 씨가 없어 먹기 편한 데다 달기 때문에 과일 시장의 판도를 바꿀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마트에 따르면 샤인머스켓은 해마다 100~200% 넘는 매출 신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원래 포도는 인기 과일 품목이 아니었는데 샤인머스켓이 인기를 얻은 이후로 제철인 늦여름과 가을, 다른 과일을 제치고 매출 1위를 달성했을 정도다.

‘단마토’도 있다. ‘샤인마토’라고도 불리는 ‘스테비아 토마토’는 올해 초부터 급격히 인기를 얻어 유명해졌다. 스테비아라는 식물에서 추출한 ‘스테비오사이드’는 설탕보다 200~300배 더 단데, 이것을 토마토에 주입해 만들어낸 것이 ‘스테비아 토마토’다. 마치 설탕에 절인 토마토처럼 단맛을 내지만 여느 토마토와 다름 없이 적은 열량을 보이기 때문에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입소문을 탔다.

이처럼 최근 몇 년 사이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신품종 농산물에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우선 이들 신품종 농산물은 비교적 비싼 가격에 판매된다. 올해 초당옥수수는 온라인 유통 채널을 통해 농가에서 직접 구매할 경우 10개들이 한 상자에 2만원 안팎에 판매되고 있는데, 보통 찰옥수수의 2배에 달하는 가격이다. 샤인머스켓은 1kg당 1만5000원~2만원 안팎으로 판매될 정도로 비싼 과일이다. 단마토 역시 500g 방울토마토 한통에 1만원 안팎의 가격을 내세운다.

구입하는 경로 또한 기존 농산물과는 조금 다르다. 인기를 얻은 신품종 농산물들은 대형마트에서도 으레 판매를 하지만 다른 경로로 구입하는 사람이 많다. 온라인 식품 유통 채널인 퍼밀이나 마켓컬리 같은 플랫폼이 신품종 농산물을 구입하는 사람이 많이 찾는 경로다. 또는 포털사이트에 입점한 농가와 직거래해 농산물을 구입하기도 한다.

더 좋은 것을 찾는 소비자들

이런 온라인 유통 채널의 발달이 신품종 농산물에 대한 인기를 높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존 대형마트와 경쟁해야 하는 온라인 유통 채널에서는 대형마트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품종의 농산물을 앞세워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기 때문이다. 마침 이런 유통 채널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은 대개 가격보다는 품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젊은 층이다. 이들은 새로운 소비재를 구입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을 뿐더러 마음에 든 구입품은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널리 전파하곤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신품종 농산물에 대한 인기를 다 설명하기는 어렵다. 농식품 브랜드 컨설팅 업체 빛컴인의 전승권 대표는 쌀을 예로 들었다.

요즘 소비자들은 쌀도 품종을 보고 고른다. 이를테면 골든퀸3호 쌀은 ‘조선향미’ 혹은 ‘수향미’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곤 한다. 구수한 누룽지향이 나는 쌀이라 마니아를 모으고 있는데 2018년 매출액만 600억원에 달한다. ‘백진주’ 품종이나 ‘밀키퀸’ 품종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 쌀 품종의 가격도 다른 신품종 농산물처럼 저렴하지 않다. 조선향미만 해도 한 말(8kg) 가격이 4만원에 달한다.

“소비자들은 어떤 식품에 대해서는 가격을 신경쓰지 않습니다. 가격보다는 맛과 향을 매우 세세하게 추구하는 편이지요.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식재료와 식문화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생긴 일이기도 합니다. 늘 ‘좋은 것’을 먹을 수는 없지만 한 번 먹는 ‘좋은 것’에 대해서는 뚜렷한 취향을 가지고 접근합니다. 이전에는 적당히 이름이 알려진 지역의 쌀을 대량으로 사서 밥을 지어 먹었다고 한다면, 요즘 소비자들은 ‘나는 구수한 맛을 좋아하니까 조선향미를 먹을거야’라는 취향을 가지고 조선향미만을 소량 구입해 밥을 먹는 식입니다.”

인기를 얻고 있는 신품종 농산물은 대부분 ‘자주 먹는 것’이 아니다. 제철에 맞게 별식(別食)처럼 구입하는데 “기왕 먹는 것이라면 더 좋은 품질의 것을 먹자”는 태도로 소비한다. 이런 취향의 소비자라면 신품종 농산물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더 맛있는 과일이라면 당도가 높은 과일일 겁니다. 그러면서도 열량은 높지 않고 유기농 방식으로 재배된 것이라면 좋겠지요. 요즘 신품종 농산물들은 으레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인기를 얻은 신품종 농산물의 문제는 생산자의 차원에서 발생할 수 있다. 전승권 대표는 몇 년 전 큰 인기를 얻었던 ‘아로니아’의 예를 들었다.

“아로니아가 몸에 좋다는 입소문이 번지면서 찾는 소비자가 늘어나자 농민들이 앞다투어 아로니아 재배에 뛰어들었습니다. 2013년에는 전국에 492 농가만이 아로니아를 재배했는데 4년 만에 4753 농가로 12배 증가했을 정도지요. 문제는 아로니아를 찾는 사람은 한정돼 있는데 생산량이 폭증하면서 가격이 폭락했다는 겁니다. 1kg 당 3만원에 팔리던 아로니아가 지금은 3000원에 불과합니다.”

신품종 농산물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농민과 소비자들의 움직임은 매우 빠르다. 그러다보니 정부와 정책 기관의 개입이 뒤늦게야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전승권 대표는 “요즘 농산물 유통 업계의 움직임은 예전과 달리 소비자와 더 밀착돼 있고 기민하게 움직인다”면서 “그 과정에서 생산량이 폭증하거나 지나치게 가격이 상승하는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샤인머스켓은 몇 년 간의 인기에 힘입어 생산량이 폭증하고 있다. 지난해 샤인머스켓의 재배 면적은 2018년 953헥타르였는데 지난해는 1867 헥타르로 늘어났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는 그보다 더 늘어 2751헥타르에서 샤인머스켓이 재배될 예정이다. 자연히 가격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계속해서 개발되는 신품종 농산물의 ‘악순환’이 이어지지 않도록 정책적인 차원에서 개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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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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