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아이디어스는?

손으로 만든 작품들을 작가들이 직접 등록하고 판매할 수 있는 국내 1위 핸드메이드 전문 마켓 플랫폼. 1만8000여명의 작가가 직접 만든 액세서리, 의류, 소품, 수제 먹거리, 농축산물 등을 판매한다. 매년 쏟아져 나오는 디자인 전공자, 숨은 장인, 경력단절자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느리지만 정성이 담긴 수제품의 가치를 확산하고 있다.

“그 시장은 절대 안 돼요!”

“대규모 자본이 있어도 힘든 시장인데 스타트업이 무슨.”

“경영도 모르면서 되겠어요?”

국내 1위 온라인 핸드메이드 마켓 ‘아이디어스’를 만든 김동환(38) 백패커 대표가 창업 초기 숱하게 들었던 말이다. “만나 달라” 사정을 한 끝에 겨우 투자자를 만나 기획서를 내밀면 돌아오는 답은 똑같았다. “안 된다”보다 잔인한 말은 “열심히 해보세요”라는 말이었다. 희망고문 같은 그 말이 거절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은 몇 차례 뼈아픈 경험을 하고 알았다. 사무실 월세 걱정보다 거절당하는 괴로움이 더 컸다.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더 싼값에, 누가 빨리 배송하냐’가 이커머스 생존의 조건이 된 시대에, ‘느림의 가치’를 앞세운 수제품 전문 쇼핑몰에 선뜻 돈을 낼 투자자는 없었다.

입점 제의를 위해 만난 작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앱을 만들기도 전이었으니 실체는 없고 기획서라고 내민 종이를 믿고 자신의 작품을 팔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팔릴 것 같지도 않은 곳에 괜한 일만 더할 필요가 있나, 이런 반응들이었다. 김동환 대표가 창업 후 2년여간 겪은 일이다.

모두가 안 된다고 했지만 아이디어스는 무섭게 성장했다. 아이디어스는 지난 6월 300억원의 투자유치를 했다. 누적으로는 510억원 규모다. 아이디어스에 입점해 자신이 직접 만든 제품을 판매하는 작가(아이디어스는 모든 판매자를 작가라고 한다)는 1만8000명을 넘어섰다. “입점하고 싶다”는 문의 전화가 매일 100여통이 쏟아진다. 아이디어스 앱은 누적 다운로드 1000만 돌파를 앞두고 있다. 지난해 거래액은 1080억원, 올 목표는 2200억원이다. 매년 거래액 기준 2배 이상씩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입점 작가들의 온라인 강의 서비스 ‘금손 클래스’를 오픈했다. 최근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텀블벅’을 인수해 시너지를 노리고 있다. ‘K팝’을 이을 K크래프트’를 위해 글로벌 시장 진출도 준비하고 있다.

무엇보다 아이디어스는 판로를 찾지 못한 공예작가와 소상공인들에게 판을 벌여주고 숨은 수공예 고수들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손재주 좋은 경력단절녀, 주부들을 세상으로 끌어내고 ‘작가’라는 호칭을 붙여줬다. 아이디어스의 카테고리에는 도자기, 패션, 가구, 섬유, 액세서리, 문구용품은 물론 농축산물, 수제반찬, 전통주 등 먹거리까지 손으로 만든 것은 다 올라온다. 월 매출 1000만원 이상을 기록하는 판매자가 매달 10%에 달한다. 문 닫을 위기에서 벌떡 일어난 수제비누 작가, 휴대폰 케이스를 팔아 등록금 마련한 대학생 등 아이디어스에는 인생역전 스토리가 넘친다. 인기 작가의 경우 팔로어가 수만 명에 이른다. 김 대표가 창업 초기 투자자들의 외면에 무릎을 꿇었다면 없었을 일이다. 지난 6월 29일 서울 마포구 동교로에 있는 아이디어스 사무실에서 김동환 대표를 만났다. 입구에 들어서자 실로 수작업을 한 ‘IDUS’ 로고가 눈에 띄었다. 아이디어스 입점 작가의 작품이라고 했다.

“언젠가는 핸드메이드의 가치를 알아주는 때가 올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시장의 트렌드는 빠른 배송, 최저가로 하향평준화돼 있지만 전자상거래의 본질인 제품의 경쟁력으로 승부하는 시장은 반드시 온다. 그때까지만 버티자는 생각이었죠.” 김 대표의 이런 확신은 어디서 왔을까.

“자취를 함께한 사촌 동생이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했습니다. 동생이 힘들게 작품 만드는 것도 보고, 플리마켓 가판에서 도자기 파는 것도 거들면서 독창적이고 좋은 물건을 찾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동생 같은 작가들이 판로가 없는 것도 안타까웠습니다.”

해외에 이미 성공모델도 있었다. 미국의 목수이자 웹디자이너인 로버트 칼린이 설립한 핸드메이드 전문 쇼핑몰 ‘엣시(ETSY)’는 2015년 2조2000억원에 나스닥에 상장돼 시총 13조원이 될 정도로 성장했다. 전자상거래 최강자인 아마존도 이 시장에서는 힘을 못 쓴다. 김 대표는 손재주가 뛰어난 한국에도 다양성과 개성을 무기로 한 ‘엣시’의 전략은 유효하다고 믿었다. 무엇보다 느리지만 가치 있는 핸드메이드 문화를 만드는 일은 평생을 걸고 해도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었다.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에 있는 공유 공방 ‘아이디어스 크래프트 랩’. 가마·3D프린터 등 작업 도구와 촬영 스튜디오를 갖춰놓았다. ⓒphoto 아이디어스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에 있는 공유 공방 ‘아이디어스 크래프트 랩’. 가마·3D프린터 등 작업 도구와 촬영 스튜디오를 갖춰놓았다. ⓒphoto 아이디어스

돈보다 가치 있는 일을 위해

김 대표의 ‘삶의 공식’도 트렌드보다 가치를 앞세운 아이디어스의 철학과 비슷하다. 그의 이력서가 말해준다.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합격해 연수받다가 나왔다. “8시 출근, 넥타이 정장, 폭탄주 회식문화 같은 견고한 틀에 맞출 자신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포털사이트 ‘다음’에 들어갔다. 수평적 문화도 좋고 일도 재미있었다. 제휴마케팅을 맡아 2년째 일을 해보니 작년에 했던 일과 똑같았다. 내년에 할 일이 빤히 보였다. 다음을 나와 모바일 앱을 만드는 스타트업에 갔다. 새로운 일에 푹 빠져 3년을 “뼈를 묻을 각오”로 일했다. 모바일 초기 시장이라 일을 하는 만큼 성과가 났고 성장이 눈에 보였다. 사업 확장의 갈림길에서 의견이 맞지 않아 3년 만에 회사를 나왔다. 20대 후반을 그렇게 보내고 5개월 만인 2012년 11월 ‘아이디어스’의 가능성을 믿고 자본금 100만원으로 ‘백패커’를 창업했다. 배낭 메고 세계 여행 다니면서 카페에서 일하는 ‘노마드족’을 꿈꾸면서 만든 이름이 ‘백패커’이다.

“‘아이디어스’가 될 것 같긴 한데 때가 올 때까지 일단 먹고살아야 하니 우선 아이폰용 앱을 개발해 버티자고 생각했습니다. 타로 앱, 배경 바꿔주는 앱 등 50개 정도를 개발해 사업 밑천을 만들었습니다.” 개발자, 디자이너와 같이 3명이 팀을 이뤄 ‘일하면서 여행하는 꿈’을 현실로 옮겼다. 3개월 일정 동남아 20개 도시를 목표로 떠났지만 일정의 반만 겨우 채우고 돌아왔다. 현실은 달랐다. 비치 파라솔 밑에서 일하면 시원하겠다 싶었는데 엄청 덥고 땀만 났다. 호텔은 그림의 떡, 싼 숙소를 전전하다 보니 체력에도 한계가 왔다. 셋이 하루 종일 싸우다 돌아왔다. 치열하게 싸우면서 팀 호흡을 맞춘 과정이기도 했다. 2013년 여름을 이렇게 보내고 겨울부터 아이디어스를 본격적으로 준비했다.

이들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응원해준 투자자들이 있었다. 스타트업계의 대표 투자자인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전 4차산업혁명위원장),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 이기하 프라이머사제파트너스 대표였다. 1000만원씩, 모두 개인 차원의 투자였다. 창업 2년 만의 일이었다. “왜 투자하셨느냐 물어봤더니 ‘뭐든 할 것 같았다’고 하더라고요. 돈보다 응원이 엄청나게 큰 힘이 됐습니다.” 김 대표의 말이다. 아이디어스는 지난 6월 300억원 투자 유치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신규 참여 없이 기존 투자자들이 추가 투자를 한 것으로, 그만큼 성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확신이 크다는 말이다.

없던 길을 만들다

아이디어스와 함께 클 작가 풀은 충분하다. 매년 도예, 금속공예, 디자인 전공자들이 2만명씩 쏟아져 나온다. 수제품의 가치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아이디어스 입점의 벽은 까다롭다. 작가를 영입하거나 기존 작가의 추천을 받기도 하지만 대부분 작가들이 지원을 해서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심사 기준은 독창성을 최우선으로 본다. 신선식품은 주문 즉시 생산, 배송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현장 방문을 통한 확인은 기본이다. 미배송 분쟁 등 벌점이 쌓이면 퇴점 조치를 당한다. 제품의 퀄리티는 고객 후기로 걸러진다. 후기 삭제는 정책적으로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누적 구매후기는 191만건에 달한다. 작가와 고객이 채팅창을 통해 실시간 소통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입점 수수료는 매출이 발생할 때마다 15%(고정비 5만원), 또는 22%를 선택할 수 있다. 대형 온라인 쇼핑몰은 대부분 25~30%대이다. 오픈마켓의 경우 10%대 초반이지만 광고비를 추가하지 않으면 노출이 어렵다. 입점 작가에게는 다양한 혜택이 있다. 사진 촬영 등 스튜디오를 무상으로 지원하고 로고, 패키지 디자인 등을 실비로 제공한다. 원부자재를 직접 수입해서 작가들에게 최저가로 공급한다. 공유 공방인 ‘크래프트 랩’도 만들었다. 도자기 가마, 3D프린터기 등 값비싼 장비를 갖추고 개인 창고도 제공한다.

올해부터는 글로벌화를 추진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주춤하지만 해외 작가를 영입 중이고, 내년부터는 한국 작가의 해외 진출을 위해 앱을 개발하고 있다. 김 대표는 “손재주가 뛰어나기 때문에 글로벌 시장에서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했다.

투자도 많이 받았지만 마케팅과 글로벌화에 쏟아붓느라 아이디어스는 아직 적자다. 시장에서는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후보’로 꼽지만 김 대표는 아직도 매일이 도전이라고 했다. ‘시장이 다 한 것 아니냐, 여기가 고점 아니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김 대표는 “우리가 가는 만큼이 시장의 규모”라면서 “인재 채용, 투자 유치 등 매 단계마다 새로운 역량을 요구받기 때문에 매일 힘들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카톡 문패에는 ‘본래 땅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곧 길이 되는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길 없는 길을 가는 김 대표의 힘은 “아이디어스는 획일화된 사회에서 내 가치를 드러낼 수 있고, 취향을 찾아주는 플랫폼”이라는 믿음에서 나온다.

다음 추천 주자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와디즈 신혜성 대표

추천 이유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려면 담보를 요구하지만 와디즈에서는 가능성과 의지, 진정성을 바탕으로 투자가 진행된다.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가는 와디즈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경쟁사인 텀블벅을 인수한 입장에서 선의의 경쟁자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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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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