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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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업보다 투자로 주가 상승은 물론 기업 가치까지 재평가받고 있는 곳들이 있다.

한국 기업들은 제조업과 서비스업, 심지어 IT산업에 이르기까지 업종을 가리지 않고 수년 전부터 세계시장에서 고전해 온 게 사실이다. 시장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는데 각종 비용은 지속적으로 늘고 수익성은 빠르게 하락하면서 기업들의 설 자리가 좁아져 왔다.

이런 상황에서 몇몇 기업이 투자로 눈을 돌리고 있다. 기존 사업 이외에 신규 사업의 일환으로 다른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다. 특히 현금성 자산이 많아 큰 규모의 자금을 빠르게 조달할 수 있는 기업들은 한국은 물론 미국 등 해외 기업의 주식도 매수하고 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사 투자해 주가 급등

이런 기업들 중 최근 투자자의 관심을 끈 곳들이 있다. 1980년대 문구·팬시 업체로 출발해 현재 외식과 영화 제작, 화장품 관련 사업을 주로 하고 있는 ‘바른손’을 보자. 지난 7월 14일(현지시각) 미국의 바이오 기업인 모더나(Moderna)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백신 초기 임상시험 결과 대상자 45명 전원에게서 항체가 형성됐다”는 발표를 내놨다. 이날 미국의 의학저널인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슨(NEJM)도 같은 내용의 모더나 코로나19 백신 1차 임상시험 결과를 공개했다.

미국에서 나온 이 내용이 곧바로 한국으로 전해졌다. 7월 15일 한국 주식시장이 개장하자마자 바이오·제약업과는 전혀 무관한 바른손의 주가가 급등했고, 결국 이날 상한가로 뛰어올랐다. 7월 14일 2190원이던 주가가 15일 2845원으로 치솟은 것이다. 바른손이 미국 모더나의 주식을 보유한 기업이라는 점이 부각된 것이다.

실제로 바른손은 올해 3월 20일 모더나의 주식 2만1000주를 사들였다. 투자자들이 이 내용을 확인하고 바른손 주식으로 몰려든 것이다. 코로나19 백신 개발 가능성이 부각돼 모더나의 주가가 급등하면, 모더나의 지분을 가진 바른손의 평가차익과 자산가치 역시 함께 상승한다. 미국 모더나의 주가는 지난 3월만 해도 20달러대 후반 정도였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미국 전역으로 확산돼 감염자와 사망자가 쏟아지자 주가가 급등했다. 4월 40달러를 넘어서더니 5월에는 60달러대까지 치솟았다.

그리고 초기 단계이지만 코로나19 백신 1차 임상시험 관련 뉴스가 나온 7월 중순 이후 70달러대로 올라서더니 최근에는 80달러대에 이르고 있다.

자본력이 크지 않은 개인투자자들이 이점에 주목했다. 미처 미국의 모더나 주식을 사지는 못했지만, 모더나 주식을 보유한 바른손을 통해 일종의 간접투자 효과를 누릴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커졌던 것이다. 세금 등 제반 비용 등을 감안하면 조금 줄어들 수 있지만, 바른손 측은 현재 모더나 주식 매입으로 상당한 평가차익을 올린 상황이다.

개인투자자들을 중심으로 퍼진 시장의 기대감이 결국 7월 15일 바른손의 주가를 급등시킨 또 다른 배경으로 작용한 셈이다.

수소전기차 주식 사들인 태양광 기업

개인투자자들의 관심이 바른손으로 향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이들의 관심은 한화그룹 계열사로 쏠려 있었다. 한화그룹 계열사들이 투자한 신생기업이 미국에서 상장해 주가가 급등했다는 이유로 지난 6월 한화 계열사들의 주가가 일제히 상승한 것이다. 특히 한화그룹 2세에서 3세로의 경영권 승계에 활용되며 계열사 합병 같은 그룹 차원의 몸집 불리기 지원이 집중되고 있는 한화솔루션(옛 한화케미칼)을 향한 관심이 커졌다.

한화솔루션은 주로 석유화학사업과 태양광사업 등을 하고 있는 한화그룹 계열사다. 올해 2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장남 김동관 부사장이 등기이사직을 꿰차고, 동시에 태양광 기초소재 사업 포기를 선언하며 시장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지난 6월 이런 한화솔루션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증가하자 주가도 상승하기 시작했다.

시장에서는 ‘니콜라(Nikola)’ 덕분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니콜라는 미국의 신생 수소트럭 업체다. 아직 완성된 자동차를 단 한 대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시장의 기대감만큼은 상당하다. 테슬라의 시장 안착과 주가 급등을 지켜보고 있는 시장에서 니콜라가 제2의 테슬라로 성장할 수 있을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한화그룹 계열사인 한화에너지와 한화종합화학, 두 곳이 2018년 총 1억달러 규모로 니콜라의 지분을 사들였다. 이후 한화그룹 계열사들의 니콜라 투자는 잠시 잊혔다. 이것이 지난 6월 초 개인투자자들을 중심으로 주식시장에 갑자기 부상했다. 지난 6월 4일(현지시각) 니콜라가 나스닥에 상장했고, 상장과 함께 주가가 치솟은 것이다. 33달러를 조금 넘었던 상장 당일 주가는 단 며칠 만에 80달러에 육박할 만큼 급등했다.

이 소식이 한국 주식시장에 전해지며 6월 5일 이후 ㈜한화 등 한화그룹 계열사들의 주가가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한화솔루션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니콜라의 지분을 사들인 것은 한화종합화학과 한화에너지이지만 비상장사이기에 개인투자자들이 이 회사 주식을 사는 것이 쉽지 않다. 투자자들이 찾아낸 대안이 바로 한화종합화학의 지분 36.05%를 갖고 있는 한화솔루션이다.

지난 6월 7일부터 한화솔루션에 대한 개인들의 매수세가 강해지며 주가도 오르기 시작했다. 6월 5일 1만6900원이던 주가는 개인 매수세가 몰리며 6월 9일 1만8350원으로 뛰었고, 16일에는 1만9000원까지 뛰었다. 7월 8일 2만원으로 오른 주가는 이후 더 가파르게 상승했다. 7월 20일 2만5000원대를 넘더니 다음 날인 21일에는 2만7100원까지 급등했다. 물론 7월 중순 이후 한화솔루션의 주가 급등은 니콜라 상장 효과와 함께 문재인 대통령이 주도하고 있는 ‘한국판 뉴딜’의 수혜 기업이라는 기대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경쟁 기업의 지분을 대거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부각되며 투자자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는 곳도 있다. 게임기업 넷마블이다. 넷마블은 엔씨소프트의 지분을 대거 보유하고 있다. ‘리니지’로 유명한 엔씨소프트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거세진 언택트(Untact) 테마 덕에 주가가 폭등하고 있다.

넷마블, 경쟁사 주식 보유에 관심 폭증

코로나19 사태가 절정이던 지난 3월 19일 엔씨소프트의 주가는 53만원까지 하락했다. 하지만 이후 언택트 테마에 올라타며 3월이 끝나기 전 60만원대를 회복했다. 5월에는 70만원과 80만원 선을 차례로 돌파했고, 급기야 6월 하순 90만원 벽까지 넘었다.

이렇게 엔씨소프트의 주가가 폭등하고, 매수세가 커질수록 시장과 투자자들의 관심이 넷마블로 집중됐다. 넷마블이 보유한 엔씨소프트의 지분 때문이다.

넷마블이 9%에 육박하는 엔씨소프트 지분을 사들인 건 2015년이다. 당시 엔씨소프트는 경쟁사인 넥슨과 경영권 분쟁 상태였다. 이런 엔씨소프트의 편에서 9%에 육박하는 지분을 사주며 백기사 역할을 했던 게 바로 넷마블이다.

이때 사들인 엔씨소프트 지분의 가치가 올해 들어 치솟고 있는 것이다. ‘재주는 엔씨소프트가 넘고, 실속은 넷마블이 챙기고 있는 꼴’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넷마블 소유의 엔씨소프트 지분이 투자자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넷마블은 엔씨소프트 주식 외에도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BTS)을 보유한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지분도 보유하고 있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올해 상장을 추진하고 있어, 실제 상장에 성공한다면 넷마블이 최소 몇 배의 투자 차익을 올리게 될 것이라는 평이 나오고 있다.

넷마블은 엔씨소프트 외에도 상장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진 다른 게임 기업들의 지분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형 게임 기업으로서도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지만 시장에서 직접 경쟁하고 있는 게임사들의 지분을 대거 보유하고 있다는 점 역시 시장이 주목하고 있는 부분이다.

기업들 주식 투자 망한 곳이 더 많아

이렇게 본업 이외에 투자를 통해 주가와 자산가치를 끌어올리고 있는 기업들이 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오히려 조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백신 가능성만으로 주가가 급등한 모더나 덕에 바른손의 주가가 올랐지만 모더나의 백신 개발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미국 등 세계 곳곳에서 커지고 있다.

지난 7월 20일 JP모건은 “모더나의 주가는 이미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또 영국 옥스퍼드대학과 아스트라제네카 등 백신 경쟁자들의 개발 속도도 모더나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한화솔루션 주가 상승에 역할을 한 미국의 수소트럭 업체 니콜라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완성된 수소차를 아직 단 한 대도 내놓지 못한 실정이다.

2016년 니콜라의 1호 수소 트럭을 소개하는 행사에서 수소전지가 없는 트럭을 내놓아 빈축을 사기도 하는 등 지금까지도 기술력 의혹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니콜라의 주가 역시 거품이라는 지적이 크다. 6월 4일 상장 당시 33달러이던 주가가 며칠 만에 80달러에 육박하기도 했지만 추락도 빠르다. 상장 한 달 반이 지난 7월 20일에는 38달러까지 폭락했다.

니콜라의 상장과 이후 주가 급등으로 ‘대박 투자’를 홍보했던 한화솔루션 등 한화그룹의 움직임에 대해 최근 시장에서는 조금 성급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주식 투자 대박을 내는 기업도 있지만 투자 실패로 큰 손실을 보고 있는 기업도 수두룩한 게 현실이다. 이렇게 본업보다 주식 거래에 더 열을 올리고 있는 기업일수록 더욱 더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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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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